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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21 – 지상(over-ground)의 운동: 사라진 것과 남은 것

- 고병권(수유너머R)

1. 장소와 함께 잃은 것들

지난 11월 중순 경찰이 리버티스퀘어를 강제 철거한 이후 ‘점거 장소 없는 점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는 구호가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있고 가상공간에서도 활발하지만 점거의 물리적 장소로서 ‘리버티 스퀘어’는 어떻든 사라졌다. 어딘가를 점거하지 않고도 점거 시위가 가능한가. 점거 장소가 없을 때 점거자들은 무엇이 되는가.

월가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버스틀 타고 시애틀에서 온 레이 케이츨 (<뉴요커>. 12. 5)

물리적 점거 장소의 부재는 당장 현실적 문제들을 낳고 있다. 일단은 이번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보거나 참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머물 곳이 없어졌다. 리버티스퀘어는 그동안 뉴욕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어떤 결의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고 ‘그라운드제로’에 관광차 왔다가 우연히 들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뉴스를 보고 왔든 우연히 지나가다 들렸든 사람들은 그동안 자기 가슴속의 말이 타인의 입을 통해 나오는 걸 경험할 수도 있었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리버티스퀘어는 뉴욕의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불타고 있는 어떤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찾아갈 그곳은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두 달 넘게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일부는 집을 차고 나온 사람들이다. 다른 지역에서 여기에 합류한 사람도 제법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머물 곳이 없어져 버렸다.

가령 지난 12월초 <뉴요커>에 사연이 소개된 레이 케이츨(Ray Kachel)도 그 중 한 명이다. 케이츨은 시애틀에서 태어나 50년을 넘게 산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종이문서를 디지털 기록으로 전환하는 일을 했고, 다음에는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며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다. 때로는 기술자로 때로는 음악가로 살면서 그는 자기 세계 안에서 문제없이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일감이 줄기 시작했고 새로운 일자리도 없었다. 부정기적으로 이러저런 일을 하던 그는 여름부터 자신의 컴퓨터 장비들, DVD 컬렉션들을 팔았고, 가을부터는 집세도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트위터를 통해 월스트리트 점거 소식을 들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았다. 경제적 부조리와 불평등, 서민들을 빨아먹는 가진 자들의 탐욕 등등.

10월초 그는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다. “뉴욕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한다. 어쩌면 시애틀에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는 버스에 탔다. 그리고는 미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먼 길을 따라 리버티스퀘어에 왔다. 리버티스퀘어에서 그는 한동안 부랑자처럼 지냈다. 그는 혼자서 그렇게는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워킹그룹 중 하나인 ‘청소워킹그룹(Sanitation Working Group)’에 들어갔다. 어느 날 잠자리를 위해 여기저기 천 조각 같은 걸 모으는 걸 보고 다른 점거자가 그에게 슬리핑백을 건넸다. 그렇게 해서 그에게는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점점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온 많은 이들을 알게 되었고 또 친구가 되었다. 오랫동안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서 지내온 이가 자기 삶을 파괴한 원인을 찾아, 그것에 분노를 표하기 위해 뉴욕까지 왔는데, 거기서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이다.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여기는 코뮨적인 생활이 있다. 꽤 불편하기는 하지만 아주 놀라운 경험이다.” 그리고는 며칠 뒤, “시애틀 있을 때 지난 번 아파트는 십년 가까이 살았어도 겨우 2명의 다른 세입자랑 인사를 하고 지냈는데, 여기서는 단지 한 달을 살았는데 정말 많은 이웃들과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친구도 아주 많이 사귀었다”고 적었다.

갑자기 케이츨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소개한 이유는 점거 장소의 상실과 함께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리버티스퀘어의 상실은 새로운 방문자의 사라짐이고, 거기 계속 머물던 이들의 사라짐이다(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더 중요한 것, 물리적 장소로 환원할 수 없지만 물리적 장소와 함께 사라진 것이 있다. 바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모이고 머물게 했던 것, 케이츨이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했던 그것, ‘코뮨적 생활’, ‘대안적 삶’의 가시적 형체가 없어진 것이다. 지금도 월스트리트 60번지에서는 매일 대표자회의(Spokecouncils, *엄밀한 의미에서는 ‘대표자들’이 아니다. 어떤 의견을 가진 사람이나 그룹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대표를 보내 그것을 제시하는 모임이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를 비롯해서 여러 워킹그룹 미팅이 열리고, 리버티스퀘어로 불리던 주코티 파크에서는 제너럴 어셈블리도 간혹 열리지만, 실험적 삶의 공동체는 사라졌다. 돈도 남았고 토론도 남았고 전략회의도 남았지만 공동의 삶은 사라졌다.

2. 웃음의 의미

11월말 대표자회의(Spokecouncils) 모습

지난 12월 9일, 이 운동에 참여하던 마이어슨(J.A. Myerson)은 <네이션(the Nation)>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이제는 주방도 도서관도, 메디컬센터도, 미디어센터도 없다. 드럼서클도 없고 피켓 만드는 곳도 없고, 브로드웨이 쪽에 있던 안내 책상도 없으며, 북서쪽 구석에 있던 명상의 나무 주변의 제단도 없다. 이제 민주적인 제안서를 의논하고 그동안 방치된 일들과 함께 너무 큰 의제를 어떻게든 다루어보려고 애쓰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는 이런 물음을 던졌다. “청소해야 할 공원이 없을 때 청소워킹그룹의 기능은 무엇일 수 있을까? 메디칼이나 휴식공간은 또 어떤가?”

그는 리버티스퀘어의 상실 이후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자들이 두 그룹으로 나뉘고 있다고 했다. 한 그룹은 미래의 전략을 짜는 ‘활동가들(activists)’이고, 다른 그룹은 당장의 현실을 해결해야 하는 ‘점거자들(occupiers)’이다. 문제는 이 후자들이 자기 삶의 수단들, 더 나아가 자기 삶을 떠받치던 공동체를 잃어버리면서, 이번 시위의 ‘자랑스러운 민주적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대표자회의(Spokecouncils)에 계속 ‘블록(block)’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회의의 진행 자체를 가로막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대체로 활동은 줄어들고 말이 많아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나 활동을 자극하기보다 제시된 제안의 정당성이나 그 채택 절차의 공정성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도대체 제안서를 들고 오는 이는 누구인지, 어떤 조직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지를 의심하고, 또 어떤 조직들은 실제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조직적 노력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게 운동이 운동이기를 멈추고 조직만 남게 되는 일반적 경로이다. 모두가 이런 문제를 알고 있지만, ‘알고도 당한다’는 말처럼 이를 해결하는 게 만만치가 않다. 아직은 이번 운동의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인 ‘제너럴 어셈블리’의 운영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고, 대화 진행을 돕는 숙련(?) 조력자들이 많이 있기에 큰 잡음이 들리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떻든 많은 활동가들이 아무리 작은 장소라 할지라도 점거를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리버티스퀘어를 잃은 후 점거자들은 근처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뉴스쿨 빌딩, 일부 상업 공간 등에 대한 점거 시도를 했고 뉴스쿨의 경우 일정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어떤 교회에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공간을 사용하는 제안이 나왔다.

듀어트 스퀘어를 일시적으로 점거한 시위대(12월 17일)

듀어트스퀘어에 설치된 안내 책상

지난 12월 17일, 시위 3개월을 기념하는 점거의 시도가 있었다. 지난 번 점거 장소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공공 공원인 듀어트스퀘어(Duarte Square)를 오후 1시쯤 시위대가 점거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지난 번 리버티스퀘어에서처럼 안내 책상도 설치하고 한쪽에서는 퍼포먼스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작은 공예품을 만들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다시 점거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OWS 2.0’라는 피켓을 들고 다녔고, 어떤 이는 물리적 장소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호소를 피켓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OWS 독서그룹. “당신은 아이디어를 몰아낼 수는 없다.”

점거자들은 금세 천 명 가까이 모였다. 모두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기 바빴다.

사람들은 흥분한 듯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그들의 웃음과 활기는 그들이‘리버티스퀘어’라는 공동의 삶을 얼마나 되찾고 싶었는지를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오랜만에 바깥에서 힘차게 ‘마이크 체크’를 외치기도 했고, 새로 만들어온 피켓이나 펼침막을 서로에게 자랑하듯 보여주기도 했다. 월가의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던 리버티스퀘어와 달리 듀어트스퀘어는 차들이 속도를 내고 달리는 대로변에 있었다. 여러모로 공간은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너무들 좋아했다.

하지만 공원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만 개방되어 있었다. 게다가 당국에서는 지난번과 같은 점거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후 늦게 경찰은 점거자들을 해산시켰고 거기에 불응하는 사람들을 연행했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거기 있던 친구로부터 트위터를 통해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아마도 경찰에 연행된 누군가 닭장차 안에서 함께 연행된 시민들을 찍은 것일 텐데 표정들이 참 밝았다. 당분간 지상에서 재점거의 전망은 어둡다. 그런데도 전체 운동이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이런 표정 때문이다. 이들의 웃음이 이 운동의 최대 성과이자 최대 동력이다.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 시위대 너머에서 힘겹게 벽을 받치고 있는 경찰이 현재 99%와 권력자들의 대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출처: occupywallst.org)

2월 17일 연행된 사람들. 표정이 참 밝다. 이 표정이 이 운동의 최대 성과이자 최대 동력이다. (사진출처: http://pic.twitter.com/oyQWEtus)

*필자의 사정으로 이번 월스트리트 점거 리포트는 다음주 22호(지하의 운동)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관심가지고 지켜봐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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