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9-미래가 도래할 수 있을까 -채무자본주의 비판

- 고병권(수유너머R)

1.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는 자기만의 이유

이미 많은 이들이 하는 이야기지만 점거 현장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와 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도대체 뭘 요구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는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10월 5일 행진에서 간호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미국 의료보험 제도 개혁은 미국의 최대 현안 중의 하나이다. 오바마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재정이 대폭 삭감되면서 의료보험 개혁은 동력을 많이 잃어버렸다.

점거 지지 행진에 참여한 전국 간호사 연대

점거 지지 행진에 참여한 전국 간호사 연대

이윤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이윤보다 건강이 중요하다

미국 의료시스템의 후진성과 관련된 괴담수준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가졌지만 보험이 없어 병원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사람이 무려 5천만 명을 넘는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내가 겪은 충격적인 일 중 하나도 그와 관련이 있다. 룸메이트가 요리를 하다 손에 큰 화상을 입었는데, 911을 부르려는 나를 그는 강하게 말렸다. 그럼 병원에 가자고 해도 한사코 거부했다. 그는 보험이 없다고 했다. 내게는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사실 이런 건 충격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걸 안다.
10월 5일 행진을 할 때 브롱크스 지역의 의사 몇 명이 월스트리트 점거를 지지한다며 행진을 했는데 정말 큰 박수를 받았다. 몇 명 되지도 않은 그 의사들에게 그런 박수가 쏟아지는 것은 그 자체로 미국이 어떤 사회인지, 미국인들이 그동안 의사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어왔는지를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행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그들은 가난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재산보다 건강이 우선(HEALTH OVER WEALTH)’이라는 이들의 피켓은 우리가 흔히 듣던 말 ‘돈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많은 부자들이 서로에게 덕담처럼, 지혜처럼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 의료 정책에서는 그게 완전히 달라진다. 그들은 ‘건강보다는 이윤’을 위해 엄청난 로비와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의사와 간호사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번에 점거에 나선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있다. 대출학자금을 갚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고 나온 대학원생, 가계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빼앗긴 중년부부, 금융위기 여파로 해고된 노동자 모두 자기 가슴에 쌓아둔 이야기를 하나씩 갖고 있다. 언론에서는 사람들의 요구가 모호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다만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현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 성격과도 깊이 연관된 것이다.

2. 월스트리트의 정치경제학

오바마 대통령, 은행이 아니라 나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해주시오(10월 4일, 쥬코티 공원).

오바마 대통령, 은행이 아니라 나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해주시오(10월 4일, 쥬코티 공원).

산업자본은 개별 상품의 생산된 가치와 지불된 가치(맑스 용어를 따른다면, 노동력이 생산한 가치와 노동력에 지불된 가치)의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내지만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은 아주 다르다. 그렇다고 맑스주의의 전통 이론처럼 산업자본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지대로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이 없진 않겠지만 이들 현재적 행태를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산업자본의 잉여의 일부로 유지되기에는 금융자본의 규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금융자본은 전통적 의미의 상품보다는 다양한 권리들, 가령 주식이나 채권, 화폐 등을 상품화해서 그 매매 차익을 노린다(이 권리들을 다시 묶어 만들어낸 파생상품들의 규모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미래 수익 예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오간다. 그런데 이 예측은 그동안 경제학에서 ‘외부재’라고 불렀던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통제가 불가능한 자연환경(나쁜 기후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의 세금, 환율, 주택, 토목, 고용, 교육 의료 정책과 제도 등이 수익 계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공정책에는 막대한 로비와 압력이 행사된다. 한국은 이미 97년 외환위기 때 국제 금융자본의 명령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했다. 왜 돈 좀 빌리는데 사회 전체를 구조조정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람들이 월스트리트를 지목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지난 수십 년 간 겪어온 체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직접 월가의 금융자본가를 만날 일은 없었다. 월스트리트의 사람들이 상대하는 것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모니터이고, 일반 사람들이 상대한 것은 대출 납입액이 체납되었다고 압류 고지서를 들고 온 은행직원이기 때문이다. 기업 자체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금융자본과 관계되어 있지만, 해고명령서를 전달하는 것은 어떻든 그들이 아니다. 물론 학자금 상환 연체를 알리는 것도 그들이 아니다.

미국 노동생산성 상승과 임금 추세(since 1950). 신자유주의 내지 채무자본주의가 본격화된 80년대 이후 추세가 크게 달라졌다.

미국 노동생산성 상승과 임금 추세(since 1950). 신자유주의 내지 채무자본주의가 본격화된 80년대 이후 추세가 크게 달라졌다.

지난 수십 년 간(특히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80년대 이후) 노동생산성은 급증했지만 그만큼의 임금 상승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삶에 필요한 재화의 가치총계는 임금이나 열악한 사회복지망을 고려할 때 너무 높아졌다. 임금은 낮추고 소비지출은 늘려야만 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생산현장의 노동자가 시장의 소비자임을 생각한다면 아주 모순된 아이디어였지만, 자본가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보면 아주 일관된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도깨비 방망이를 가진 게 아닌 한 심각한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간극을 메우는 데 동원된 것이 채무였다. 각종 재화와 서비스를 얻는데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그 이자를 평생에 걸쳐 받아내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집도 자동차도 모두 빚을 내 얻어야 하고 죽을 때까지(‘모기지(mortgage)’라는 말은 그 안에 ‘죽음(mort)’을 담고 있다.) 무슨 수를 쓰든 갚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든(여기에 금융가는 관심이 없다). 항상 사회적 곤궁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도 ‘저리 융자’다. (사실 지금 한국이 그렇다. 서민대책은 ‘마이크로 크레딧’이고 학자금 대책은 ‘저리 장기 융자’, ‘취업 후 상환’ 같은 것이다. 집값을 낮추거나 등록금을 낮추는 일은 결코 없다.) 결국 빚을 내게 해서 빚을 갚게 만드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채무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크게 보면 미국 전체가 자신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들어온 값싼 채무로 해결해 온 채무자본주의 국가였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가 찾아오고 경제적 사회적 파산이 곳곳에서 일어나자 미국 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돈을 투입한 곳은 위기에 처한 서민들이 아니라 대형(투자)은행들, 다시 말해 금융자본이었다. 그들이 실패하면, 다시 말해 그들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위험하다는 논리였다. 실패하게 두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다(Too Big to Fail)는 것이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현재 사회 전체가 그들을 위해서, 그들 위에서 세팅되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월스트리트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처음에는 막대한 구제 금융을 받아 보너스 잔치를 했다는 것에 분개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이것이 점점 체제의 문제로 번져가고 있다. 이제 월스트리트는 특정한 은행이나 투자회사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된 하나의 체제 이름이 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연방정부 재정적자와 국방예산 추이

연방정부 재정적자와 국방예산 추이

*참고로 현재 오바마의 ‘증세와 공공부문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계획은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의 반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공화당은 지난 번 연방정부의 채무 상한을 올려주는 대신 향후 재정지출을 단계적으로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 연방정부의 재정이 이렇게 엉망이 된 것은 수입 쪽에서는 부자의 세금감면이, 지출 쪽에서는 전비지출이 큰 요인이다. 이번에 미국이 치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비용은 아주 보수적인 계산에 입각해서도 3조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J. Stiglitz & L. Bilmes, The Three Trillion Dollar War, 2008). 부시정부 하에서 미국 관료들은 미국이 석유 같은 자원 통제로 얻게 될 이익이 꽤 될 것처럼 말했지만(이 말의 도덕적 죄악성은 일단 따지지 말자), 그 액수는 추정 전비에 전혀 미치지 못하며, 더욱이 전비는 정부가 재정으로 충당해야 하지만, 전쟁의 직접적 수익은 군산복합체나 석유회사, 토목건설회사들이 챙긴다는 것이다.
연방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재정적자 때문에 가난한 이들을 도울 여력이 없다. 의료보험 개혁을 할 수도 없고, 공공부문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 오히려 기존의 복지 지출조차 줄여야 할 실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재정의 상당 부분을 전비와 거대 은행의 구제금융에 쏟아부었다. 게다가 부자들에 대한 세금감면 취소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받고 있다. 반전운동, 납세자 운동, 의료보험개혁 운동가들이 모두 월스트리트를 점거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3. 미래는 없다, 팔아버렸기에

아놀드 슈워츠제너거가 주연했던 영화 <터미네이터>는 흥미로운 시간구조를 갖고 있다. 일단 ‘기계의 노예’라는 운명이 인간에게 예정되어 있다.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말과 같다.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해 인간이 미래 인간이 현재로 돌아오고 그 인간을 저지하기 위해 ‘터미네이터’, 말 그대로 그 노력을 끝장 낼 기계가 돌아온다.
채무란 무엇인가. 올해 5월 ‘채무’라는 제목의 책을 낸 그레이버(D. Graeber)는 이렇게 정의한다(Debt, 2011). “채무란 약속의 전도(the perversion of a promise)이다. 그것은 수학과 폭력에 의해 변질된(corrupted)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대출을 받는다는 것, 빚을 진다는 것은 ‘미래에 갚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약속이지만 정확히 말해 미래를 저당잡히는 일, 더 나아가 미래를 포기하는 일, 팔아버리는 일이다. 현재 살기가 너무 힘들기에 우리는 미래를 크레딧, 즉 믿음과 신용의 이름으로 팔아버리는 것이다. 자본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약속 능력을 크레딧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순간, 우리는 무능력자, 다시 말해 노예가 된다.

학생들의 대출을 갚아달라. 미국에서는 교육비가 20만불에 이른다. (10월 5일 집회 사진)

학생들의 대출을 갚아달라. 미국에서는 교육비가 20만불에 이른다. (10월 5일 집회 사진)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음’을 강자의 능력으로 불렀다. 강자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자이다. 그것은 미래를 향해 자기가 말한 것을 책임지고 완수해내겠다는 의지이자 힘의 표현이다. 그런데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학자금 융자를 받을 때, 우리가 하는 서약은 니체가 말한 ‘약속의 힘’을 전도시킨다. 그 약속은 사실상 충성의 맹세이고 미래를 당신의 처분에 맡기겠다는 ‘자기 포기 각서’이기 때문이다.
<<채무>>의 저자 그레이버는 “주류 경제학 이론에 따르더라도 채무를 꼭 갚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재치있는 주장을 편다. “대부자는 어떤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가정되어 있다.” 그러기에 회수 가능성에 따라 이자율이 크게 변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대출이, 아무리 바보같은 대출을 했다해도 다 회수된다면, 다시 말해 파산법 같은 게 없다면, 아마 그 결과는 재앙적일 것이다.” 채무는 경제적 용어이기 이전에 도덕적 용어인 것이다. ‘빚은 갚아야 한다’는 도덕적 힘에 의해 작동한다. 하지만 은행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이 보여주듯 혹은 파산 위험 국가에 대한 채무 감면이 보여주듯, 채무는 어느 한계에서 갚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위클리 수유너머>에 소개된 바 있는 도쿄의 ‘블랙리스트회’는 학자금 대출을 갚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의 단체이다. 지금은 채무를 거부하거나 감면을 요구하거나 정부에게 구제금융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도 일순위로. 사실상 파산 상태에 있는 서민들의 삶을 봐서도 그렇고, 교육의 공공성을 봐서도 그렇고, 구제금융이 현재의 문제를 야기한 금융자본에 다시 투여되는 것을 볼 때도 그렇다.
참, 그러고 보니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이었던 슈워츠제네거는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캘리포니아 재정을 완전히 끝장내버린 인물이었다.

4. 약속의 도래를 위하여

점거는 진행 중이지만 점거를 통해 사람들은 시스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그 가능성이 아직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약속과 신뢰의 힘을 회복하고 있다. 채무에 의해 빼앗겨 버린 ‘미래를 향한 약속’ -그러고보니 화폐경제 하에서 많은 용어들이 도덕적 타락을 경험하고 있다. 1달러 화폐에는 ‘In God We Trust…’라는 말이 들어 있다. 약속, 믿음, 신용 등이 모두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을 판 대가로 얻는 돈의 크기가 돼버렸다-을 되찾을 가능성을 얻었다.

너희들 탐욕이 우리 미래를 훔치고 있다.

너희들 탐욕이 우리 미래를 훔치고 있다.

10월 5일 행진에 참여한 나오미 클레인(N. Klein)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가장 큰 걱정은 오바마 정부 아래서 젊은 세대들이 정치적 냉소주의와 정치적 반감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힘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변화가 워싱턴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 기업의 이해가 지배하는 그곳, 바로 지금 이 나라의 근본 위기를 만들어낸 그런 기업의 이해가 지배하는 그곳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워싱턴에 대한 꿈, 월스트리트에 대한 동경, 이 모든 것이 이번 점거를 통해 금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투표함이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변화가 투표함을 바꿀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월스트리트가 사회 최고의 엘리트들이 가는 곳, 아메리칸 드림이 농축된 곳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거기에 있는 건 오히려 돈에 눈이 먼 무책임한 탐욕자들, 인생의 도덕적 실패자들이다. 워싱턴과 월스트리트를 보는 대신 사람들은 이제 자신과 갖은 처지 있던 사람들, 주변의 동료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 진정한 힘, 진정함 꿈이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얼마나?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변화의 시작은 변화로 얻게 될 결과보다도 소중하다. 그리고 변화는 작게나마 시작되었다.

응답 5개

  1. 문득 노엄 촘스키 할아버지가 떠올라요. 그분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네요. ㅎ 국내에서 출판한, 인터뷰로 엮은 책을 통해, 미국은 생각보다 무서운놈들이란걸 깨달았지요. 대부분의 전쟁의 원흉은 미국이 개입하는데서 출발했다고보니까요.ㅠ

  2. 고추장말하길

    ‘토마토마님’ 아이디를 보니 어떤 불확실함을 가진 채 조심스러운, 그래서 또한 지혜롭고 희망적일 수 있는 ‘토마’가 떠오르는군요. 이미 토마토마님은 어떤 변화를 보여주셨네요. 두렵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아마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어느 임계점을 넘으신 거죠. ‘참을 수 없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큰 불길을 일으키기 위해 큰 불이 필요한 것은 아니랍니다. 어쩌면 토마토마님이 두근거리며 켠 작은 불꽃으로도 충분할지도..

  3. 토마토마말하길

    저 내일 시위나갈 건데 많이 두근거려요. 태어나서 처음 시위 참가합니다. 좀 두렵기도 하고… 그동안 등록금 시위 못나가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래요.
    선생님. 변화가 정말 올까요?

    • 화이팅 :)
      그리고 부담가지시지 마시고 즐기세요.
      또한 비워두세요.
      그들의 열정과 분노를 다듬고 또 다듬어 토마토마 님 자기자신을 채워나가세요.

  4. tibayo85말하길

    미래를 훔친다…참 의미 심장한 말이군요. 타인의 탐욕뿐만 아니라 자신의 탐욕이 자신의 미래를 훔치기도 할 것 같아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