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우리 삶을 보호하는 끔찍한 생체 권력에 대하여

- 고병권(수유너머R)

1.

지난 몇 달 동안 끔찍한 아동 성범죄가 계속 보도되면서 범죄자에 대한 대중의 증오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어린 여학생을 성폭행한 후 무참히 살해한다든지 겨우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학교 안까지 들어가 납치 성폭행을 한다든지, 연일 방송되는 엽기적 범죄 행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상이 도대체 어찌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떻든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도도 분노의 수위를 따라 수직 상승했다. 2008년 9월, 오랫동안 논란이 된 ‘전자발찌’ 즉 ‘위치추적전자장치’를 성범죄자에게 채우도록 한 것을 시발로, 올해 1월 인터넷을 통한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제도’가 시행되었고, 지난 6월에 드디어, 좀처럼 입법이 불가능해보였던 ‘화학적 거세’ 법안까지 통과되었다. 초범인 경우에도, 또 본인이 동의를 하지 않아도 약물투여를 통한 ‘거세’가 가능해졌다.

처음 이 법안이 발의되었을 때는 참 논란이 많았다. 당연히 인권침해 시비가 일었다. 아무리 범죄자지만 형벌 이외에 어떤 약물을 국가가 강제로 인체에 투입할 수 있는가. 약물의 효과와 안전성도 문제였다. 대체로 성욕을 감퇴시키는 호르몬제를 사용할 터인데, 그 약물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초기에는 오히려 성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약물의 부작용(우울증 유발, 간 기능 손상 등), 수백만 원에 이르는 약물 투여 비용도 논란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들 모두는 ‘조두순-김길태-김수철-동대문의 양모씨’로 이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릴레이 속에서 완전히 묵살되고 말았다. “그럼 그런 놈을 그냥 두고 당하고 있으란 말이냐”는 말 앞에서는 어떤 문제제기도 살아남지 못했다. 정치권은 반쯤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반쯤은 여론을 이용하면서 해당 법안들을 전격적으로 통과시켜버렸다.

2.

언론에 보도된 범죄들이 정말 끔찍한 것도 사실이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데도 공감한다. 하지만 ‘뭔가 이렇게 가는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비단 앞서 제기된 논란 때문만은 아니다. 가령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한 범죄자에게만 약물을 주입한다든지, 초범이 아니라 누범의 경우에만 한다든지, ‘징벌’이 아닌 ‘치료’의 관점에서, 범죄자가 아닌 환자라는 시각에서 접근한다든지 하면 인권침해 요소도 줄고 더 문명화된 느낌도 주겠지만, 여전히 남는 것, 아니 더 강화되면서 은폐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동 성범죄의 끔찍함을 몰라서도 아니고 가해자의 인권이 충분히 보호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누군가 엽기적 성범죄자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로써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강제 약물투여가 옳은가 이전에, 약물투여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유도하는 우리 사회의 권력 배치에 대해서다. 무엇보다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작동하는 권력, 또 그런 과정에서 번성하게 되는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습한 환경에서 곰팡이가 번져가듯이, 우리에게 이러저런 해결책이 있다고 알려주며 논란을 이끌어가는 어떤 권력이 무서운 속도로 번져간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세상이 어찌 되려고 저런 끔찍한 일이 날까.’ 엽기적 범죄자를 보고 우리는 그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푸코가 보여주었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 시대를 표현하는 것은 비정상인들의 엽기성이 아니라, 그 비정상인을 다루는 방법의 엽기성이다. 범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국가가 욕망을 직접 다스리는 것, 피부에 고통을 가하는 대신 피부를 뚫고 호르몬을 주입하는 것, 경찰과 교도관 대신 과학자와 의사가 교정의 정도(충동의 정도?)를 체크하는 것. 이 일련의 조치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3.

학교 안까지 들어가 초등학교 1학년생을 납치 성폭행했던 김수철은 현장 검증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안에 욕망의 괴물이 있다. 어떻게 자제할 수가 없다.” 범죄자 스스로가 치료해달라고, 화학적 거세를 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본인도 욕망하는데 굳이 약물투여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생각해보자. 김수철에게는 성적 가해 욕망이 있었고, 이제는 그 욕망을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 중에 어떤 욕망이 참된 것이라고, 그 자신이 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둘 모두 그가 원한 것이고, 둘 모두 그가 원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그가 원했기 때문에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이 경우 결정 불가능하다. 니체 말처럼 ‘행위 이후의 광기’는 ‘행위 이전의 광기’를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김수철의 말에는 주목할 대목이 있다. 그의 말은 ‘범죄자 자신도 약물치료를 원한다’는 맥락에서 부각됐지만, 나는 그의 말에서 ‘괴물’이 더 이상 ‘개인’이 아니라 개인 아래에 있는 어떤 요소, 어떤 욕망으로 축소 세분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은 개인이 아니라 욕망 내지 호르몬(테스토스테론의 분비 따위)이라는 식의 생각 말이다. 이 경우 사법적 판단은 과학적(심리학적, 의학적, 생물학적) 판단과 겹쳐질 수밖에 없다. 또한 범죄를 발견하고 없애는 문제가 오류를 제거하는 문제, 바이러스를 진단 퇴치하는 문제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자 오바마 선거캠프에서 국방정책을 자문했던 싱어(P.W. Singer)는 그의 책 Wired for War(2009)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 전쟁에서 미국은 무인폭격기를 비롯한 수많은 자동화 기기들을 참전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기기들이 오작동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었다. 기계에 의한 이 양민학살을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기기 원격작동자일까, 그것의 사용을 명한 사령관일까, 소프트웨어를 만든 엔지니어일까? 싱어는 자신이 인터뷰했던 미국방부의 로봇과학자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전쟁 중인 로봇에게는 사회적이거나 윤리적인, 혹은 법적인 차원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단지 리콜 문제일 뿐입니다.” 사회적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리콜 문제?

그러면 호르몬 주사를 맞은 성범죄자의 경우는 어떨까. 그가 주사에도 불구하고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면 우리는 무엇을 추궁해야하는가. 범죄자의 사악함? 과학의 불완전함? 검증위원회의 부실 심사? 결국 그 범죄자도 리콜 대상인 것인가? 윤리와 과학, 공학이 여기서 정치와 뒤섞이고 있음에 주목하자. 정치학이 생물학이나 의학으로부터 어떤 비유나 영감을 가져오는 수준이 아니라, 정치학 자체가 생명과학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끔찍한 범죄에 대한 분노를 호르몬제의 투약, 감시카메라의 설치, DNA정보 수집 등과 연결시키고, 그렇게 법과 제도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배치가 이미 생겨난 것일까.

4.

“미국심리학회는 어떤 종류의 고문에도 반대합니다만 범죄자 심문에 심리학자가 참여하는 것은 찬성합니다… 자, 이 말을 듣고 처음 떠오른 단어를 말해보세요.” 미국이 지금도 초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관타나모기지에서는 부시시절 잔인한 고문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거기 참여한 전문가 중 일부가 미국 심리학회 소속의 학자들이었다. 학술논문에서 제시된 다양한 이론과 실험치들은 수용자들로부터 정보를 얻거나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으로 돌변했다. 인간의 심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졌고 온갖 약물이 투여됐다. 수용소는 테러리스트 용의자를 응징하는 고문실이면서, 동시에 심리학자가 자기 이론을 시험해보는 실험실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화학적 거세는 어떨까. 저 엽기적 범죄자가 실험용으로 던져져 있으니 한 번 시험해 볼 필요가 있을까. 이런 반사회적 존재에게는 그 정도 실험도 과한 것일까.

“미국심리학회는 어떤 종류의 고문에도 반대합니다만 범죄자 심문에 심리학자가 참여하는 것은 찬성합니다... 자, 이 말을 듣고 처음 떠오른 단어를 말해보세요.”

잘 알려진 것처럼 독일의 나치는 가슴에 노란별을 단 유대인들과 검은별을 단 반사회적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생체실험을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치가 통치를 위해 과학을 악용하고 왜곡했다고 분개했지만 아감벤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당시 미국도 ‘자발적 동의’라는 외형을 취하긴 했지만 범죄자들을 상대로 다양한 생체실험을 했고, 무엇보다 나치의 생체실험 중 상당수는 보호나 치료를 위한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사실은 건강과 복리를 명목으로 했기에 더 끔찍한 것이었지만).

가령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유전적 질병의 연속성을 방지하는 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사법적 응징보다는 의학적 처방에 가까웠다. 유전병을 앓는 사람들의 경우 후손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학적 증거가 있으면 불임수술을 받도록 한 것이다. 법적 강제에 근거를 제공한 것은 과학이다. 권력은 수술대에 있는 환자를 대하듯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람(범죄자이든 환자이든 특별한 인종이든)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건강과 치료를 위한 권력은 언제든 ‘죽음의 권력’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상도 언제든 전체 인구로 확장될 수 있다. 아렌트는 전쟁 말기에 히틀러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전 국민을 엑스레이 검사한 후에 총통은 병든 자들, 특히 폐와 심장 질환이 있는 자들의 목록을 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보건법을 기초로 이 가족들은 공적인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 금지될 것이고 출산도 금지될 것이다. 이 가족들에게 일어날 일이 앞으로 총통이 세울 질서의 주제가 될 것이다.”

이미 18세 이상 전 국민이 열손가락 지문 정보를 제공했고, 징병을 이유로 모든 성인 남자가 신체 검사를 받는 나라에서, 이미 히틀러 총통의 꿈에 한 없이 다가간 이 사회에서, 공항에는 새로운 알몸 투시기가 도입되고, 필요할 경우 정보기관에 모든 통신의 도감청을 허용하는 조치들이 내려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범죄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푸코가 야유했던 것처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항상 ‘밝은 대낮’을 요구하는 권력. 모든 이들에게 잠재태 없는 현실태로만 존재하도록 명령하는 권력. ‘범죄성’을 ‘거세’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이들을 ‘임포텐트(im-potent)’, 즉 잠재성(potential) 없는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권력. 소위 ‘거세’를 빙자해서 그 권력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8년 9월부터 시작된 성범죄 대책 목록을 보라. 1) 전자발찌(위치추적전자장치)(2008. 9. 시행) 2) 성범죄자 신상정보 인터넷 공개(2010. 1 시행) 3) 아동성폭력범 최고 무기징역까지 형량확대(2010. 7 시행) 4) 성범죄자 등 흉악범 유전자(DNA)정보 채취, 데이터베이스 구축(2010. 7 시행) 5)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2011. 7 시행). 성범죄 연관 단어만 떼 놓고 보자. 우리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위치추적 전자장치, 인터넷 정보 공개, 유전자 정보 채취 및 데이터베이스화, 약물주입 등에 찬성한 셈이다. 그런데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전면화된 저 생명 권력이 우리를 질식시켜가며 천천히 죽일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인가.

-고병권(수유너머R)

응답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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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야기캐는광부말하길

    정말 날카롭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화학적 거세는 정말 혼란스러운 문제입니다.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ㅜㅜ

  3. 단단말하길

    “그렇다면 화학적 거세는 어떨까. 저 엽기적 범죄자가 실험용으로 던져져 있으니 한 번 시험해 볼 필요가 있을까.”
    이부분을 읽고서야 머리로만 말고 마음도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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