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7-빈 중심 -제너럴 어셈블리

- 고병권(수유너머R)

1. 태풍의 중심은 비어있다

이번 점거가 지도자가 딱히 없는 자율적 시위라고 하지만, 자율적이라는 것이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우토노미아, 즉 자율이란 방치와 무능력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 무엇보다 엄청난 능력을 요구하고 또 표현한다. 이번 시위에서 ‘규율 없는 무질서의 극치’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꾸로 군대식 규율이야말로 무신경과 무관심, 무능력의 표현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규율 아래서 사람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지도자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움켜쥔 권력자는 권력을 철저히 박탈당한 복종자, 말 그대로 꼭두각시인 인형을 이끌게 된다. 그런 조직에서는 힘과 권력, 영광이 오로지 지도자의 것이며 그것은 대중의 무기력과 무능력, 비참에 상응한다.
이번 점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점거가 대중에게 그저 내맡겨진 것 같지만, 우리는 이 ‘내맡김’이 얼마나 잘 준비된 것인지, 이 ‘내맡김’ 속에 얼마나 많은 운동의 경험이 축적된 것인지, 또 얼마나 지혜로운 것인지 알 필요가 있다. 악기가 저마다의 소리를 내면서도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분명 어떤 일관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점거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제너럴 어셈블리’다.

제너럴 어셈블리 모습(사진 출처:vice.com)

제너럴 어셈블리 모습(사진 출처:vice.com)

제너럴 어셈블리는 매일 두 차례 열리는 점거자 전체 회합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그 회합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모임의 이름이다(참고로 이번 시위를 주관하는 뉴욕 제너럴 어셈블리의 웹페이지 주소는 nycga.net이다.). 어떤 이들은 ‘너희가 뭔데 이것을 주도하느냐’ 혹은 ‘모임의 주도자가 누구냐’고 따지듯 묻는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아무도 제너럴 어셈블리를 대표하거나 책임지는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셈블리가 열릴 때 필요한 몇 가지 규칙들만 따르면 됩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처럼 조력자(facilitator)가 되고 싶다면 조력자들의 워킹 그룹에 참여하세요.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한 몇 가지 규칙을 배우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든 워킹 그룹에 와서 말하고 그냥 참여하세요.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든 제너럴 어셈블리에 그냥 와서 말하면 됩니다.”
이번 모임을 주관하고 있는 이들은 그냥 ‘조력자들’인 셈이다. 제너럴 어셈블리에서는 ‘주관자=조력자’라는 매우 역설적인 도식이 성립한다. 개인적으로 우스꽝스러운 기억이 있다. 90년대 중반에 ‘사파티스타’ 봉기가 일어났을 때,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글을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도대체 이런 ‘부사령관’을 둔 ‘사령관’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령관은 ‘원주민들’이었고, 마르코스는 자신을 조력자로서 ‘부사령관’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정말 멋진 사령관에 딱 맞는 부사령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심을 비울 때 운동은 파괴력을 갖는다. 태풍의 빈 중심을 누구도 태풍의 약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2. 삶도 운동도 앙상블이다

워킹그룹 Theater & Arts의 논의 모습(10월 4일).

워킹그룹 Theater & Arts의 논의 모습(10월 4일).

제너럴 어셈블리는 또한 다양한 위원회의 앙상블이기도 하다. 다양한 테마 그룹과 워킹 그룹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 긴밀하게 협력한다. 다양한 예술 퍼포먼스 그룹, 음식 위원회, 세탁과 샤워 기부 그룹(점거자 세탁물을 가져다 자기 집에서 세탁을 해서 전해준다), 디자인 워킹 그룹, 조력자 위원회, 인터넷 워킹 그룹, 미디어 위원회, 법률지원 위원회, 청소 위원회, 재정위원회, 학생 위원회 등. 각 위원회나 워킹 그룹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소개하고 의견을 내며 자신의 할 일을 찾는다. 점거가 널리 알려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오고, 현장에서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 이들이 참여하고 싶은 위원회를 안내해준다.
전체 제너럴 어셈블리든 각 워킹 그룹이든 운영원리는 비슷해 보인다. 의제가 제안되면 사람들은 다양한 손짓을 이용해서 그것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거부한다. 이런 규칙들은 뉴욕의 여러 운동 그룹들이 그동안의 직접 행동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고, 또 몇 가지 운영원리들은 세계 다른 지역의 운동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특히 스페인 등에서 만들어진 ‘피플 어셈블리(People’s Assembly)’가 상당한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지역 운동에서 배웠듯이, 자신들이 ‘제너럴 어셈블리’를 운영하는 방식과 원리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누구든 웹페이지의 연락처를 통해 이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다.

여기서는 당신의 역할을 어떻게든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당신의 역할을 어떻게든 찾을 수 있다.

최근 삼성과 애플의 맞소송이 보여주듯 자본주의 기업들은 아이디어나 디자인을 배타적 재산으로 취급한다. 지식이란 그 자체가 공동체(인류 공동체만이 아니라 만물 공동체)를 전제하고 그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것을 검증하고 공감하는 것 역시 공동체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만, 자본가들은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 희소성을 창조한다. 법의 힘, 즉 국가의 강제력을 이용해서 배타적 독점성을 확보하고 돈을 통해서만 거기에 접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 운동에서는 모든 아이디어가 모방과 응용의 대상이다. 여기서 ‘불법다운로드’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운로드’는 ‘도용’이 아니라 오히려 ‘연대’를 의미한다. 운동의 아이디어를 모방하고 확산시키는 것은 앎과 그 앎에서 나오는 감동은 전달될수록 그 가치가 증가한다는, 지식에 관한 본래적 사실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기증된 도서로 운영 중인 민중 도서관

기증된 도서로 운영 중인 민중 도서관

누군가 ‘김치 이야기’를 가져다 놓았다.

누군가 ‘김치 이야기’를 가져다 놓았다.

점거 중인 쥬코티 공원에는 매일 하나씩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요구를 내걸고 버티기를 하는 농성과는 다르다. 언론에서는 요구가 분명치 않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다른 삶’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들이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서는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다른 쪽에서는 토론이 벌어지며 또 다른 쪽에서는 음식을 나누고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그림을 그리며 또 다른 쪽에서는 굳은 몸을 마사지해주고 또 다른 쪽에서는 명상을 하며 또 다른 쪽에서는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나눈다. 여기서는 돈이 들지 않는다. 오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도서관이었다.

한 할아버지가 주변 밴드의 리듬에 맞춰 책상을 두들기며 즐기고 있다.

한 할아버지가 주변 밴드의 리듬에 맞춰 책상을 두들기며 즐기고 있다.

이 긴박한 시위의 순간에 무슨 책 읽기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점거라는 시위 형태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이다. 바리케이트형 시위에서는 사실상 시위대에게 시민 군대이기를 요구하지만, 점거형 시위에서는 ‘시공간을 점유해서 새로운 삶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러므로 시위가 ‘버티기’가 아니라 ‘즐기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배 권력을 희화하고, 무엇보다 현 체제가 기능하는 ‘삶의 형태’가 아닌 다른 삶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이런 운동을, 권력자들이 그대로 둘리는 없을 것이다. 싸움은 그 외면이 어떤 것이든 ‘삶의 형태’를 둘러싸고 벌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시험문제라니, 제가 학생들에게 못할 짓을 했군요. ^^ 고맙습니다. 자기 정리나 해야겠다 싶어 쓰는 리포트인데 선생님이 이렇게 활용해주시다니… 건강하세요. 위클리 100호쯤 나올 때 저도 서울에 있겠네요.

  2. 여하말하길

    이번 중간고사 시험은 고추장님의 월가 리포트들을 읽고 쓰는 겁니다. 서양현대사수업에 이보다 좋은 교재는 없다 싶고. 시험문제는 금요일 수업시간에 공개하기로 했지요. 오늘 수업시간에 는7편과 68혁명을 가지고 얘기를 나누었어요. 중계방송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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