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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22 – 지하(Under-ground)의 운동: 가능한 깊게, 가능한 멀리(1)

- 고병권(수유너머R)

1. 운동의 전파와 번역 

운동을 이해하는 아주 나쁜 방식 중 하나는 그것을 정치적 집권 및 제도화의 수준, 다시 말해서 집권에 얼마나 기여했느냐 혹은 결국 어떤 제도적 개편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운동을 정치적 집권 내지 제도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거나, 아니면 아직 제도화되지 못한 미숙한 정치 행위로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정치학자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져놓고 논쟁하기를 좋아한다. ‘운동인가, 제도인가.’ 그런데 이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확 좁아진다. 운동이 일차적이고 제도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보든, 결국 운동의 목표는 제도에 있으므로 제도야말로 운동의 성숙이라고 보든, 둘 다 중요하고 결국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보든 상관이 없다. 이 모든 입장들은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정치적 권력의 교체, 아주 좁게는 대권의 교체 문제로 축소시킨다(정치권력을 교체하는 힘이 사회운동에 있다고 보든, 성숙한 정당들의 경쟁력에 있다고 보든 상관이 없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2012년 시작을 알리는 포스터. 한 운동으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운동들이 만들어지는가. (출처: occupywallst.org)

작년 11월 4일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일 때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총선 심판론으로만 몰아간다고 해결 안 돼”, 참세상, 2011년 11월 4일). 민주노동당의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한미FTA 막는 야당 밀어주시죠. 그러면 야당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한 후에 한국종합예술학교의 한 학생이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한미FTA에서 자꾸 내년 총선과 대선 심판 이런 얘기하지 말아 달라. 그런 담론으로 투쟁이 확대되기는커녕 망한다. 다른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왜 우리 자신이 저항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정당 대표가 총선에서의 지지를 호소하고, 그것이 다른 야당을 투쟁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운동을 자꾸 선거와 관련시키지 말라는 대학생의 비판에는 뭔가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나는 그의 비판이 단지 투쟁의 전략이나 전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비판에는 운동과 정치적 대표의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들어있다. 

대의 정치제도에서 정당은 거의 모든 지역과 직능의 대표들(그 대표성을 자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보니 우리는 정당이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정당에 시인 대표가 들어 있다고 해서 정치적 세계가 시적 세계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시가 정치적 세계의 한 구성요소일 수 있는 것처럼 정치 역시 시적 세계의 한 구성요소일 수 있다. 작물을 기르는 농부에게는 비와 바람, 해 등의 자연요소와 함께 사람들의 문화나 정치도 부분 요소가 된다(물론 정치는 농작물을 가꾸는 데 있어 자연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더 중요해지기도 한다.). 동일한 물리적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심지어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을 때조차 이들 세계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이며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포함하거나 대표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절규, 하나의 파장, 하나의 운동이 생겨날 때, 누군가는 그것을 전달하고 누군가는 증폭하며, 누군가는 번역한다. 하나의 파장이 전달되면 시인은 그것을 시로서 전달, 증폭, 번역할 수 있다. 절규가 시가 되는 것이다. 정치가나 행정가는 그것을 공약이나 정책, 제도로 번역할 것이고, 시민운동가는 그것을 (좁은 의미의) 사회운동으로 증폭시키고 번역할 것이다. 시인이나 정치가가 미리 정해져있다기보다 그의 활동이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운동을 전달하고 증폭시키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심지어 그것을 흡수하고 중단시키는 과정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보여준다.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운동한다는 것이며, 그만큼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세계를 이동시킨다는 것이다(나는 앞서 대학생이 말한 것, ‘왜 우리 자신이 저항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운동에 참여할 것인가’의 말로 이해한다.). 그것은 시인의 이동이면서 시적 세계의 이동이고, 노동자의 이동이면서 노동 세계의 이동이고, 정치가의 이동이면서 정치적 세계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김진숙씨가 크레인85에 올라간 사건, 그의 절규가 만들어난 파장에 참여하면서 어느 시인은 자신이 받은 절규,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시로 번역하고 전달 증폭시킨다. 마찬가지로 어떤 정치가는 그것을 정치적 언어로 번역하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변화시키려 할 것이다. 모두가 파장, 즉 운동을 통과시킴으로써 스스로 전달의 매체, 증폭과 번역의 기계처럼 작동한다(자신을 진동시키지 않은 채 운동을 전달할 방법은 없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는 바로 그런 식으로 하나의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다(지금 매우 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그것을 하고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이 운동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이지 이것을 ‘어떻게 내년 총선에서의 지지로 귀결시킬 것인가’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총선승리와 대권획득을 위해 누군가 한진중공업의 크레인에 올라가고 누군가 제주의 강정마을을 지키러 가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들이 내지르는 절규이고 행동이다). 부산의 크레인에서 일어난 일, 제주의 구럼비바위에서 일어난 일의 파장에 뛰어들면서(그것을 전달, 증폭 혹은 번역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고 자기 세계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정치가에게도, 정치적 세계에도 이런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이동할 것을, 변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정당 대표를 비판했던 대학생의 말에서 그것을 느꼈다. 

2. 지하에서의 움직임 

운동은 개별 이슈가 아니라 사람 자체를 바꾸어 버린다. 따라서 그것은 미래의 일에도 이미 개입한다.(포스터: “나는 이미 다음 전쟁을 반대한다.” 출처:http://owsposters.tumblr.com )

운동에 참여하고 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이전처럼 살지 않는다. 그것은 월스트리트 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월스트리트 점거가 어떤 성과를 낳을 수 있을지 의문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수적 티파티 운동처럼 명확히 공화당을 오른쪽으로 견인하고 그 출신들을 정치적 대표로 진출시킨 것도 아니고, 제도화할 수 있는 어떤 통일된 요구를 명확히 내건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점거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도 이런 회의적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특정한 정치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 운동(OWS)을 정당 건설로, 아니면 최소한 정치적 조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들은 이번 운동이 ‘아무 것’도 얻지 못한 ‘한 때의 소란’ 정도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들이 아직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의 운동을 그 ‘어떤 것’을 얻는 수단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대개 정치적 집권이나 제도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운동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집권이나 제도화를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은 그 자체로 이동이자 변화이므로 결과가 즉각적이고 동시적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운동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면 그것이 그 자체로 변화이고 운동의 결과인 셈이다. 만약 누군가 이번 운동을 통해 미국에서 급진 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에게 그런 꿈을 꾸게 한 것 자체가 이번 운동의 결과일 수도 있다(그는 앞으로 이 운동을 백악관이나 의회, 정당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운동으로 번역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동의 파장은 삶의 큰 변화를 초래하면서도 곧바로는 정치적 집권이나 제도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물론 반대로 정권교체가 일어나도 삶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경우도 있고.). 

이번 점거시위를 계기로 만들어진 대안대학운동의 하나인 민중대학(People's University). 이날 강연은 저드슨 메모리얼 교회(Judson Memorial Church)에서 열렸다(2011. 12. 10).

한국을 예로 들자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2008년의 촛불 시위가 그 많은 사람들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 불임의 시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집단적 창조성과 정서적 공감의 경험은 사람들을 크게 이동시켰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누구도 이명박 정부를 뽑을 때의 시간, 불과 석 달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촛불시위가 끝난 직후인 2008년 말 인터넷 검열이 강화되고(미네르바 구속), 2009년 용산과 쌍용자동차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된 것, 대중 집회에 정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도 그 이동을 보여준다. 2009년 용산과 쌍용자동차가 한편으로는 끔찍한 비극이고 엄청난 패배인 것 같지만, 사실 용산 투쟁에 참여했던 활동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 등이 ‘희망버스’의 기획자들이 되었고, 희망버스에 참여한 경험은 용산의 한 유족을 새로운 ‘활동가’로 만들었다(위클리수유너머 98호 참조). (이런 변화는 해당 이슈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가령 어느 병역 거부자는 2008년 촛불시위가 자기 신념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시위가 병역거부 운동에도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병역거부자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다.” <경향신문>. 2012. 1. 14) 이렇게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물밑에서는, 즉 지하(under-ground)에서는 많은 이들이 어떤 사건을 경험하며 변화하고 그 변화를 전달하고 번역하면서 다른 운동을 만들어내고 또 세계를 이동시킨다. 

지난 리포트(21호)에서 나는 리버티스퀘어라는 물리적 장소의 상실이 가져온 문제를 다루었다. 물론 물리적 장소는 중요하고 점거자들의 끊임없는 시도를 하고 있으니 뭔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버티스퀘어를 탈환하느냐의 여부가 이 운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눈을 조금만 돌린다면 우리는 이 운동이 미국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 운동은 사방에서 온갖 주제로 일어나고 있다(인터넷에서 ‘occupy’라는 단어를 한 번 검색해보라.). 심지어 어느 언어학자의 말처럼 이제 영어에서 ‘occupy’라는 단어를, 이번 시위를 떠올리지 않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그는 이 운동의 여파로 그 단어의 의미와 문법까지 바뀌고 있다며, 언어 안에 들어 있는 인종주의나 등에 저항하기 위해 ‘언어를 점거하라(Occupy Language)’는 운동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H. Samy Alim, “What if We Occupied Language”, 뉴욕타임즈, 12. 21). 

아틀란타의 브리짓트 워커(Brigitte Walker)의 집. 점거 운동자들은 은행 모기지를 지불하지 못해 집에서 쫓겨날 뻔 했던 워커를 도와 체이스뱅크(Chase Bank)를 압박했고 결국 집을 지켜냈다(2011. 12. 20).

현재 ‘점거(Occupy)’ 운동은 대학등록금, 의료보험, 주택문제 등의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들은 물론이고 각 지역이나 단체에 고유한 이슈들(가령, 내가 사는 할렘에서는 경찰의 ‘불심검문(stop-and-frisk)’이 중요 이슈이다)로 번져나가고 있다. 뉴욕의 활동가이자, 우리에게 <뉴욕열전>의 저자로 알려진 사부 코소(Sabu Khoso)는 리버티스퀘어의 상실 이후 오히려 운동은 더욱 유체화 되었다고 말한다. “불안정해진 운동의 동력(impetus)은 더욱 유체화되고 흐름의 성격이 강해졌으며,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제 점거의 대상은 말 그대로 안팎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 모든 장소가 되었다.”(Radical Philosophy n.171(January/February, 2012)) 이것을 단일한 조직, 단일한 요구로 묶으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바람직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운동을 묶어내는 게 아니라, 운동을 계속 운동하게 하는 것이다.

응답 5개

  1. 고추장말하길

    ‘맨하탄 113번가’님, 제 이메일은 unzeit@gmail.com입니다. 제가 2일까지는 이타카에 머물 것 같고, 3일부터 뉴욕에 있습니다. 보름께 출국하고요. 그 사이 띄엄띄엄 약속이 있기는 한데요. 편한 시간, 커피나 한 잔 하시죠. 메일로 선생님 일정을 잡아 보내주시면 가볍게 뵙지요… 그나저나 여기서 자리를 잡고 계시는 건가요, 아님 잠시 머물고 계시는 건가요? ^^

  2. 고추장말하길

    맨하튼 113가면 콜롬비아대학 근처에 계신가요? 연재를 잘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아직은(^^) 맨하튼에 있답니다.136가, 할렘에 살고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시간을 내실 필요는 없구요^^. 글을 쓰신다니, 좋은 글 세상에 많이 베푸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맨하탄113번가말하길

      리플 주신 것을 이제야 봤습니다. 저는 완고해서 글을 보냈습니다. 원고 덕분에 고추장님이 쓰신 22회 글 전체도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더이상 OWS 현장글을 못 본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기회가 되면 점심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다리 건너면 바로 고추장님과 연결되는 곳에 있는지라 이 기회에 뉴욕에서 한 번 뵙고 싶기도 하고요. ^^; 귀국일이 얼마 남지 않으셨으니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미국 생활 알차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3. 맨하탄113번가에말하길

    연재 잘 봤습니다.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떠나신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현재 OWS 운동 원고를 쓰는 중입니다만, 큰 참고가 됐습니다. 덕분에 진행 과정이나 디테일한 부분에서 어느 정도 넘어가고 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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