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100호, 다음호, 그 다음호를 준비하며

- 고병권(수유너머R)

뉴스보다는 삶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위클리 수유너머>를 창간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언론이라고 부르지 않고 웹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코뮨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 자리 잡은 글들이 우리 삶의 공동 자산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빠르고 정확하며 객관적인 이야기는 우리의 지향이 아닙니다. 정보는 세상에 충분하고 그것들은 충분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누구보다신속하게 전하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어디에 서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실현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여도 좋습니다. 그것이 희미하게나마 대안 사회, 대안적 삶의 필요와 잠재성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크게 만들고 들리는 것보다 더 또렷하게 만들고자 합니다. 거짓을 전하려는 게 아니라 돋보기와 확성기를 갖다대려는 겁니다. 이른 봄날 텃밭에 여린 싹이 올라온 것을 보고 웃는 농부의 표정을 세계의 엄청난 희망처럼 말할 때가 있을 것이며, 풀이 죽은 가난한 아이를 와락 껴안은 공부방 선생님의 속울음을 세상의 절규와 비명으로 말할 때가 있을 겁니다. 어떤 사상가를 세상의 평가보다 더 높이 띄우는 일이 있을 것이며, 어떤 한 구절로 그의 전 저작을 덮어버리려고도 할 겁니다. 부디 우리의 이런 지향 속에서 지난 100호 동안 <위클리 수유너머>가 무엇인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가 전달되었기를 소망합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는 연구자들의 공동체인 수유너머 사람들이 기획과 편집을 시작했고 또 계속 해나갑니다. 우리 중 누구도 전문적으로로 미디어 활동을 하지 않고 또 미디어를 특화시키려고 하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공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뿐이고 또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들로부터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부이야기 만큼이나 농부의 농사짓는 이야기, 예술가의 작품 이야기, 노동자들의 생산 현장 이야기가 담기기를,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고 어른들이 늙어가는 이야기, 바다의 파도가 일렁이고 사막의 모래가 날리는 이야기가 여기에 담기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환호와 슬픔이, 세상을 이루는 이들의 목소리와 몸부림이 서로를 일깨우기를 희망합니다.

지난 100호 동안 이러저런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수유너머의 까페에서 얼렁뚱땅 몇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이 이렇게 오다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창간호만 내고 망한 잡지도 많다며 딱 100호만 내자고 웃으며 말했는데, 이제 웃으며 100호를 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은 그저 편집자였습니다. 소중한 글을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위클리 수유너머>를 애독해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이번 100호는 독자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글로 꾸며 봤습니다.

끝으로 편집진을 대신해서 두 분께 각별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매주 <위클리 수유너머>의 대문을 디자인해주시는 정기화 선생님, 그리고 지난 100회 동안 거르지 않고 ‘씨네콤’ 코너를집필해주신 황진미 선생님. <위클리 수유너머>가 100회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숫자를 차곡차곡 채워준 이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곧101호 만들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멈추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응답 2개

  1. 푸른숲말하길

    기다리는 즐거움을 안겨준 수유너머에 고마움을 전하고싶습니다~

    매번 좋은 글들과 생각 할 것들을 만날 수 있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계속 행복한 기다림을 가질 수있게 기쁘네요^^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함께 행복 할 수있기를~

  2. […] 100호, 다음호, 그 다음호를 준비하며 _ 고병권(수유너머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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