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 NLL 논란의 다른 측면 –

- 오항녕

1.

알라이다 아스만은 차곡차곡 쌓아 놓는 기억을 저장기억이라고 부르고, 탁 떠오르는 또는 그렇게 떠올리는 기억을 기능기억이라고 불렀다. 저장기억은 비활성화되어 있고, 비교적 무념무상하게 불러줄 때를 기다리고 있다. 19세기 역사 실증주의시대에 니체는 이 저장기억을 역사학의 책무로 삼는 경향에 대해 기억과 회상의 활기를 빼앗는 원흉으로 보고 비판했다. 물론 문서와 책으로 남은 기억에 대해 새로운 생명력의 발현으로 보는 르네쌍스 이래 세익스피어까지의 전통도 있었다.

나는 어떤 매체나 방식을 통해서든 경험을 적어서 남기는 기록행위[Documentation]과 그 기록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역사서술[Historiography]를 구분하고 있다. 아스만의 용어를 내 용법에 대입하면 기록행위=저장기억, 역사서술=기능기억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대체로 근대 역사학 분과에서는 후자를 역사학으로 치고, 전자는 기록학, 기록관리학, 문헌정보학, 도서관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반면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사(史)는 기록행위와 역사서술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었다.

흔히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을 오해하는 것도 여기서 시작된다. 실록을 근대 역사서술의 결과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록은 일기(日記)이다. 날씨, 날짜, 연관이 되기도 하지만, 연관되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실과 사건들, 오고간 문서들이 차례차례, 차곡차곡 쌓인 저장기억의 성격을 띤다. 내가 저녁에 쓰는 일기를 나라 차원에서 쓴 결과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편찬’이라는 말을 썼다.

물론 일기라고 다 기록하지 않는다. 숨기는 일도 있다. 감정을 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덤덤하게 기록한다. 기억을 얼려두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녹여서 재생하기 위해. 얼마 전 일기장을 보면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 새삼 나의 지나온 하루하루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체험을 했다. 그 소중한 느낌, 아련한 아쉬움과 함께 떠오르는 얼굴들……. 대부분 이미 내 활성기억, 기능기억에서 지워진 사건들이었다.(정말 안타깝게도 이 3년치 일기를 날려버렸다. 나는 디지털매체에서 왜 ‘날려버렸다’는 표현을 쓰는지 절절하게 실감했다. 다른 표현으로 대체할 수 없는 허탈함을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바이러스 먹은 컴의 한글파일에 복구프로그램을 멋모르고 돌린 결과 더 처참해진 파일들을 확인하면서, 또 검찰이 수사를 위해 프로그램 복원이 필요할 때 의뢰한다는 프로그램 복구회사에 일기만은 살려달라고 부탁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그 허탈감으로 석 달 이상 나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

니체의 우려와는 달리 나는 저장기억과 기능기억이 대립한다고 보지 않는다. 저장기억은 기능기억이 빠질 수 있는 왜곡과 위험을 교정하든지 줄여줄 수 있다. 국민국가의 기억인 국사는 기능기억이다. 19세기 국민국가의 기억은 ‘만들어진 전통’이다. 단군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도 20세기의 현상이다. 조선시대에는 역사서에서 언급하기는 해도 ‘반만년 역사의 정체성’ 코드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저장기억은 이 땅의 주류역사를 건국절로 시작하려는 시도나, 미국역사에서 인디언․여성․비백인남성들을 배제한 채 가르치는 교과서 같은 기능기억의 편협성과 왜곡을 시정하는 풀(pool)이 된다. 나는 최근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이라는 책을 내면서 저장기억과 기능기억 사이의 상보(相補) 관계, 비판적 역사서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

2.

조선시대 유일하게 활자로 간행되지 못하고 초고본으로 남은 비운(?)의 실록이 《광해군일기》이다. 광해군대 궁궐공사를 비롯한 재정파탄은 거의 국가파산(State-ruptcy) 수준이었기 때문에 인조반정 이후 극심한 곤란을 겪었고, 그 여파 중 하나가 《광해군일기》 중초본(中草本)과 정초본(正草本)이라는 생생한 증거이다. 《광해군일기》는 여타 실록과는 달리, 광해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실록이 아닌 일기라는 이름을 얻었다.

내가 현재 학계에서 주류 해석인 광해군 중립외교론에 반대하여 다시 광해군은 정신 나간 임금이었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책 출간과 함께 작은 파문이 일었다.(기실 이런 비판은 3년 전에 나온 《조선의 힘》에서 했고, 이번 책은 ‘비판’이라기보다 ‘실상의 이해’를 위해 쓴 시대사이다.) 나의 견해를 반박하는 사람들의 논거 중 하나가 “광해군일기는 반정 이후 서인들의 손에 의해 편찬되었기 때문에 왜곡되어 있고,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이런 비판을 예상했기 때문에 내 책에 광해군일기라는 사료의 성격(저장기억)에 대해 언급해두었는데, 그중 이런 말이 있다.

“셋째, 이 점이 재미있는 대목인데, 광해군 재평가의 시조인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에서부터 최근 민족통일의 비전을 줄 수 있는 존재로까지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높이 평가하는 연구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참고하고 자신의 논거로 삼은 연구 자료의 90% 이상이 《광해군일기》이다. 이 말은 《광해군일기》에는 광해군을 비판할 수 있는 자료는 물론 광해군을 추앙할 수 있는 자료도 동시에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랬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들먹이며 민족통일을 이룰 비전을 보여줄 존재로까지 추켜올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광해군일기》를 통해서 논거를 제시했다. 그와 달리 나는 《광해군일기》를 통해서 광해군의 외교는 기회주의 외교였고, 그것은 무너진 내치(內治)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중립외교라는 기능기억을, 《광해군일기》라는 저장기억에 비추어, ‘광해군은 어리석은 군주’라는 기능기억으로 수정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이 아스만이나 내가 생각하는 저장기억과 기능기억의 상보 관계이며, 비판적 역사서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이다.

3.

며칠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정문헌은 지난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단독 비밀회담에서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고, 이런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보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녹취록은 북한이 전해준 것이라고도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주장을 놓고 질질 논란을 끌었고 대통령 이명박은 난데없이 연평도를 방문해서 NLL을 거론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다가 10월 28일, 국가정보원장 원세훈은 국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대화록과 우리 쪽이 녹음한 테이프가 존재한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두 정상 간 비밀 단독회담은 없었고, 북한에서 전달한 녹취록도 없다.”고 말했다. 비밀정상회담도 없고, 북한의 녹취록 전달도 없었으므로 정문헌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정상회담 녹취록 공개를 요구했는데, 원세훈은 “국가안보가 더 중요하므로 여야가 합의해서 요구해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아마 그 문서는 비밀로 분류되어 있을 것이다. 법에 따라 비밀로 규정되어 있어도,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 이를테면 NLL에 대해 물고 늘어질 단서가 있으면 국가정보원에서 새누리당에 흘렸을텐데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한 것을 보면 대통령 선거에 이용하여 트집을 잡을 내용이 없기는 한가보다. 자, 여기까지가 한 단락이고, 중요한 한 대목이 더 남았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저장기억의 보존을 위해 ‘공공기록물 관리에 대한 법률’과 함께 ‘대통령기록관리에 대한 법률’이 있다. 대통령 기록은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국가기록원 대통령 기록관으로 이관되는데,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은 15년간 비공개로 할 수 있다. 경제, 안보, 국내정치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의 상식적, 합리적 판단을 신뢰하는 한편, 해당 대통령 때 생산된 문서를 15년간 보호해줌으로써 퇴임 이후 논란의 빌미가 될까 우려하여 기록을 폐기해버렸던 전례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나 역시 참여정부 때 진행되었던 기록관리혁신에 참여했던 관료였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청와대에서 생산되고 청와대로 보고되는 모든 문서를 e-지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 보존하였다. 삭제하거나 수정하면 그 흔적이 모두 남았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생산된 문서 현황을 매년 국가기록원에 보고하게 했다. 그 일은 수행했던 몇몇 동료는 거의 조선시대 사관(史官)에 뒤지지 않을 책임감으로 일을 했다.

내가 눈을 떼지 않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총리실에서 자행된 민간인 사찰 관련 기록들이 담겨 있던 컴의 파일을 삭제, 포맷하여 인멸했던 이명박 정부이다. 지금도 전문가들은 이 정권의 청와대에서 기록이 어떻게 생산, 관리, 보존되었는지에 대해 깊은 의혹을 가지고 있다. 과연 이명박 임기 말에 그동안 대통령 재직 기간에 제대로 기록을 남겼는지, 남긴 기록을 이관하는지 확인할 것이다.

이명박의 행적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근대국가의 행정을 담은 기록은 곧 그 국가가 영토로 규정하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나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청와대에서 반드시 생산되어야했을 기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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