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천황제의 현재화에 관한 순서 불문의 메모

- 가게모토 츠요시

요새 일본에서 가장 큰 뉴스 중 하나가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郎) 참의원 의원이 천황(일왕)에게 편지를 전달했다는 행위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천황의 정치 이용이라든가 이런저런 비판이 나왔으며, 인터넷에서도 아주 큰 논의 거리가 되었다.

 

야마모토 다로 참의원 의원은 원래 배우로서 활동을 해 온 사람이며,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반원전의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소속 연예사무소에서 목을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운동에 참여해 왔다. 지난 7월의 참의원 선거 때 도쿄 선거구에서 입후보해서 당선되었다. 그는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 의원으로 국회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다. 선거에서 표 모으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작은 시민운동의 자리에도 꼼꼼하게 나오는 인물이며, 내가 지난 7월 도쿄에서 있었던 대학 등록금 무상화 시위에 갔을 때, 선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타났다. 그때 야먀모토 다로는 ‘나는 고등학교 중퇴이다. 게다가 대학 등록금 문제로 이렇게 학생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도 요새 알게 되었다. 이건 문제니까 정치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다'(기억에서 쓴 것이라 정확한 발언 내용이 아닙니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아주 좋은 발언이었다. 학생들 100명도 안 되는 집회(그러니까 선거의 표가 되지 않음에도)에 선거 직전에 나타나는 인물이며, 정말로 선거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위해 선거에 나선 인물이라고 나는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야마모토 다로 의원에 대해 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혹은 시민운동도 찾기 어려운 자료 등을 얻기 위해 야마모토 다로를 전력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국회위원이 되었으며, 천황이 주최한 모임에 나가서 그곳에서 천황에게 직접 편지를 전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실망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천황이 주최하는 모임에 나간다는 것은 일본의 차별 구조를 재생산하는 기능을 가지는 천황제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아가서는 그의 정치적인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후쿠시마의 차별을 긍정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나는 야마모토 다로 의원이 원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천황의 힘을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진다. 나는 기존의 일본의 질서에서 권력의 집합체의 하나인 천황의 도움을 받아서 국면을 타개하려는 생각에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시민운동에서 만들어 온 혹은 만나 온 작으나마 그러나 확실히 눈에 보이는 소중한 인간관계와 연대의 힘을, 큰 권력을 가지고 부서지게 만드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다로의 방법은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야마모토 다로 의원의 행동에서 떠올랐던 것은 1936년 2월 26일 일본군의 청년 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의 모습들이었다. 이는 226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청년 장교들 역시 천황이 상황을 타개해 줄 것이라 믿고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반란군이라고 규정당하며 많은 장교들이 사형이 된 사건이다. 사실 야마모토 다로 의원이 갑작스럽게 천황에게 편지를 전달했다는 것에 대해서 떠올린 게 이 226사건이었다. 천천히 현실을 변혁해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큰 권위에 기대서 한꺼번에 현실을 바꾸어 나가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활동가가 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의 정리를 하겠다. 10월 31일, 천황이 주최하는 원유회(園遊会)에 초청된 야마모토 다로 참의원 의원은 천황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소문으로 전해져 있는 내용은 원전 사태에 대해 천황 “폐하”도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건으로서는 단지 이것뿐이다. 편지를 주었으며 천황은 손으로 잡았다. 편지는 천황 옆에 있었던 공무원이 바로 천황 손에서 빼앗으며, 천황은 편지를 읽지 못했다.

 

왜 그런 논의를 괜히 한국어로 쓰는가. 천황제는 일본 특수의 것이라 보이기 쉽지만, 정말로 그런가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천황제는 근대국가로서 일본이 성립하기 위해 재편성된 것이며, 결코 일본의 ‘전통'(???)만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의하고 싶은 것은 야마모토 다로의 방법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며, 야마모토 다로에 대해서 우익과는 다른 방식으로 비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비판은 힘으로 보아서는 미약하지만, 그러나 우익의 비판에서 야마모토 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야마모토 다로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위치를 선택하려고 하는 일본의 일부 반원전 활동가의 생각은 확연한 잘못이라는 것을 말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무섭게 느끼는 것은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반원전 활동가이며 참의원 의원 야마모토 다로는 천황에 편지를 주었으며 우익한테 공격받고 있다.

(2) 야마모토 다로를 우익이나 도쿄 본사의 어이없는 미디어에서 보호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부터는 납득하지 않는 부분이다.

(3) 따라서 반원전 세력은 단결해서 야마모토 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반원전 내부에서 야마모토 다로 비판을 삼가야 한다.

 

일본의 운동 분위기를 현장에 대해 모르는 내가 이렇게 지껄이는 것은 아주 창피스러운 일인데, (3)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주 위험하다. 내가 깜짝 놀랐던 것은 일본에 있었을 때부터 알던 믿음직한 분이 (3)의 의미를 가지는 말을 인터넷에서 했다는 것에 대해서다. 무언가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운동 현장에 없는 내가 인터넷에서 나온 한마디를 가지고 제대로 된 비판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혹시 같이 현장에 있으면 인터넷을 통하지 않으면서 직접 만나서 이런저런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원전의 운동은 사실 일본이라는 지역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우익이든 좌익이든 반원전의 시위에 나선다. 정치적인 구호에서 떠나서 일치할 수 있는 ’반원전’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러나 다수가 모이기 위해, 다시 말해 숫자가 많은 ‘우리’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논쟁 과정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라는 게 나의 의문이다. 일본에서 커다란 ‘우리’를 만든다면 천황의 힘을 빌릴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만들기 위해 차별 구조를 그대로 재생산하기에 불과하지만. 그리고 차별 구조를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것이지만. 야마모토 다로 의원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천황의 지지를 얻으면 반원전 운동이 힘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차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기제가 되기 때문에 힘이 강하게 될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야마모토 다로는 천황에 의지하려고 했다. 아마 운동을 위해 후쿠시마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말 양심적인 계기를 가지고 이러한 행위로 나섰을 것이다. 이 한없는 자발성이나 양심이 차별을 재생산한다는 모습을 야마모토 다로는 보여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좋다는 의식도 엿보인다. 물론 저항운동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운동을 기존의 권위에 의지해서 동원을 호소한다면 결국 어떤 저항의 의미를 상실해 나가며, 저항이던 것이 권위가 되어버린다. 사람을 동원하기 위해 숫자를 성급하게 계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한 숫자의 “1”이 되기 전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야마모토 다로 의원은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천황에 편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그러한 소중한 재산인 경험을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출처: http://www.huffingtonpost.jp/2013/11/04/yamamototaro-letter_n_4210745.html

출처: http://www.huffingtonpost.jp/2013/11/04/yamamototaro-letter_n_4210745.html

 

응답 1개

  1. 말하길

    매번 접하기 어려운 일본 사회의 진면모와 이면에 대한 이야기, 소중히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와, 저 사람 용기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면도 있군요. 그냥 제 생각인데, 야마모토 다로씨는 공원을 오가는 어떤 사람에게 반원전 전단지를 주는 것처럼, 천왕에게 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천왕의 권위에 호소한다기보다, 천왕을 공원을 오가는 한 시민의 지위로 내려 앉힌다는 느낌? 글쎄 그 행위의 진실이 어떤 것이 될지는 이후에 하기 나름이겠지만, 어쨌든 ‘사건’인 것만은 분명치 않을까…그런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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