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도 고향에 다녀왔다. 팔순 노모는 이번에도 이것저것 싸 주신다. 항상 팔 남매 모두에게 더 많이 싸 주지 못해서 안달이시다. 일곱째인 내가 고향 뜬 지가 28년이다. 큰형님이 출가한 40여년 전부터 그 오랜 세월 여덟 자식들에게 싸 주고 또 싸 주신다. 화수분도 아닐 텐데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아직까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어렵던 시절, 없는 재산에 선친의 박봉에도 팔 남매를 키우고 가르치고 짝을 맺어 주셨던 밑천은 두분의 땀과 눈물이요 피와 살이었다.
농촌은 주기만 하는 부모와 닮았다. 도시는 가져만 가는 자식과 닮은 꼴이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명분으로 농업을 희생양으로 전락시키며 도시를 키워 온 세월이 벌써 수십 년이다. 경제적 능력이 점차 소진되어 가면서 농촌은 지속적으로 망가져 왔다. 삶의 수단인 농업 기반만 망가뜨리는 걸로 그치지 않는다. 공간도 지속적으로 망가뜨린다. 도로, 발전소, 송전탑, 공장, 공항… 소위 SOC라는, 이건 꼭 사회 기반 시설이니 어쩔 수 없다는 명분으로 숱한 농지가 없어지고 자연환경이 망가지고 마을 공동체가, 삶의 터전이 망가져 왔고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보상을 받지 않느냐는 반문이나 문제제기는 본인의 일이 아니라고 편하게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은 돈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세상 사는 데 돈도 필요한 것 중 하나일 뿐이다. 농촌은 특히나 그렇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농촌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왔던 삶은 돈으로 보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세월 마을 공동체를 이뤄 왔던 이웃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깨끗한 공기와 마을에 흐르는 맑은 개울물, 마당에서 지저귀는 곤줄박이 소리는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낚싯대와 낚시터가 있어야 지속적인 삶이 가능한 것이다. 직장에서 퇴직 후 삶이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 아닌가.
그런데 정말로 농촌을 좌절시키는 것은 피해를 입는 당사자가 의사결정 과정에 배제된다는 것이다. 법적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며 정보는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너무 어렵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쉽지 않은데 시골의 어른들에게는 차단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소위 공직에 있다는 인간들의 행태는 그마저도 어쩌다 들르는 읍내 면사무소에 게시물 하나 올리거나 일간지에 공고물 하나 조그맣게 게재하는 걸로 절차를 밟았다고 우긴다. 가증스럽다. 농촌은 농업은 그러한 명분과 방법으로 수탈당한다. 그 열매는 도시가 가져가고 기업이 가져가고 힘을 가진 세력들이 가져간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면 종북으로 몰아버리고 운동권이라는 멍에를 씌워버린다. 아주 편리한 전가의 보도다. 아는 것 없고 힘이 없어 주변에게 도움을 받으면 외부 세력은 나서지 말라고 한다. 삶의 터전과 수단을 빼앗으려는 힘이 진짜 외부 세력인데 말이다.
내가 사는 양서면 목왕리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양서 화도 구간이 우리 동네를 관통한단다. 동네 뒷곁에 레미콘 공장 암석 파쇄공장도 들어선단다. 양쪽으로 뚫리는 터널의 폐수도 우리 동네로 압송해서 처리한단다. 동네가 아예 망가지게 생겼다. 참으로 허탈한 건 그 내용을 피해 당사자인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된 때가 불과 한 달도 안 된 환경영향평가 공청회 자리였다는 사실. 사업 주체인 도로공사는 피해가 예상되는 내용은 숨기고 문제되지 않을 내용만 설명했다는 사실. 레미콘 공장 등 오염 시설과 향후 도로 운영시 예상되는 대기오염 등의 피해에 대한 내용은 우리 동네 한 주민이 직접 인터넷을 뒤져 환경영향평가서를 찾아내고 사흘밤을 구백여 쪽의 평가서를 읽어서 알아내게 되었다는 것.
그 양반이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는 분이고 동네 아끼는 마음이 커서 가능했지 그냥 놓치고 되돌릴 수 없을 지경까지 그냥 진행될 뻔한 상황이었다.
나랏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남의 동네 망가뜨리는 것을 결정하는 게 지들 맘대로다. 감추는 게 능사고 다른 기관으로 떠넘기는 데 도가 텄다. 농사꾼이 밥이고 농촌이 봉이다. 가져가고 싶은대로 그냥 가져가도 되는 걸로 아는 모양이다.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부모에게는 자식이 잘 되는 게 기쁨이고 당신들이 돌아가시면 제사라도 지내드리지만 끝없이 농촌에서 가져가기만 하는 도시는 농촌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 사회에 필요한 시설들이고 다수를 위해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니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만 써먹을 때가 되었다. 피해 주고 빼앗으면서 비난까지 해댄다. 님비, 지역이기주의라고. 그런 논리와 명분을 등에 업은 협박에 순박한 농민들, 농촌 어른들은 억울함도 제대로 호소하지 못하면서 당해 왔다. 보상은 일종의 타협도 못 된다. 타협이란 건 최초 계획의 단계에서부터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 의견 조율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결정된 뒤에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냥 그것도 싫으면 말고다.
말을 안 들으면 법이 그들을 도와준다. 공탁, 행정대집행, 공권력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농촌에서 가진 방법은 거의 없다. 우리를 안타까워 하는 고마운 사람들 도움을 받으면 언론들이 바로 나서지 않는가. 외부 세력은 끼어들지 말라고. 외부 세력은 종북이라고. 싸잡아서 그렇게 몰릴까 봐 도와달라기도 겁난다. 밀양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우리 목왕리도 밀양꼴 나지 말란 법은 없다. 밀양을 지난 송전탑이 오는 길에 여주 양평도 거쳐 간단다. 그게 우리 동네로 지나갈까 봐 나는 벌써부터 전전긍긍이다. 그렇다고 다른 동네로 지나가면 그 동네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할 건가.
이제 그만 가져갔으면 좋겠다. 농업을 경제 발전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 좀 그만해라. 조금 더 가면 회복 불가능해진다. 개발 사업 에지간히 좀 해라. 개발 사업으로 경제 기반을 붙들어가는 게 지속 가능하리라고 판단할 정도로 위정자들이 띨띨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로 필요한 개발 사업이라면 피해 당사자와 같이 결정하는 게 상식으로 통했으면 좋겠다. 좋겠다가 아니고 그래야 된다. 지금까지의 의사 결정 방식은 갈등만 증폭시키고 국론까지 분열시킨다. 힘없고 약하다면 더 살뜰히 챙겨야지 그냥 뭉개고 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릇된 과정은 목적의 정당성을 손상시키는 것을 왜 간과하는 것인가.
자연이 망가지면 사람들의 삶도 망가진다는 건 초등학생 우리 딸내미도 안다. 농업은 인간 삶의 근간이고 농촌은 도시를 유지시키는 기반이다. 제발 밑의 초석을 갉아먹는 멍청한 짓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농업 농촌은 도시에게 항상 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계속 줄 기반이 망가지지 말아야 지속적으로 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