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뉴욕의 박물관은 자신의 욕망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 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

뉴욕은 박물관(혹은 미술관)의 도시이다. 도시의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성격의 박물관이야말로 이 도시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카드다. 그 카드는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온갖 상품들, 자극적인 쇼와 패션 아이템들과 가장 평균적인 입맛을 유지하는 음식들에 넌더리를 내며 이 도시를 싸구려가 아닌지 의심하는, 자칭 교양 있는 호사가들에게 넌지시 들이미는 회심의 패이기도 하다. “자, 이래도 감탄하지 않을 테냐?”

확실히, Met(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나 MoMA(The Museum of Modern Art)에 있는 예술작품들과 조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뉴욕이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미국의 능력을 실감하게 된다. 1달러 정도만 기부해도 입장이 가능한 Met의 갤러리를 꼼꼼히 돌아보려면 최소 3일은 걸린다. 이따금 편안한 감상을 방해할 정도로 심하게 밀착 전시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숨이 막힐 때도 있다. 원작의 아우라들이 너무 촘촘히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다. 순간, 이 놀라운 전시장 벽에 걸린 예술작품들은 욕심 많은 졸부의 과시용 실내장식으로 둔갑한다.

사실, 모든 박물관은 과시적이다. 유럽의 박물관들이 승리한 전쟁의 표식으로 탈취해 온 전리품들을 자신들의 문화유산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그 힘을 과시 한다면, 국민국가 이전의 역사를 갖지 못한 미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오래된 유물들과 각국의 예술작품들은 미국의 자본력을 과시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국가가 관리하든 개인이 운영하든 모든 박물관이 전하는 메시지는 둘 중 하나이다. 나는 싸움을 잘 한다, 혹은 나는 돈이 많다. 본질적으로는 후자 역시 전자에 포함된다. 이쯤에서 다시 벤야민의 문장이 떠오른다. “문화유산의 현존재는 그것을 창조한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는 동시대의 부역자들의 노고에도 힘입고 있는 것이다. 야만의 기록이 없는 문화란 있을 수 없다.”(「역사철학테제」중에서)

클로이스터스(Cloisters)와 프릭컬랙션(Frick’s Collection)은 뉴욕에 있는 모든 미술-박물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곳들만큼 자본 과시적인 공간도 드물다. 매트의 별관인 클로이스터스에는 중세유럽의 미술작품과 건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품들은 물론, 건물 자체를 유럽의 몇몇 수도원에서 옮겨왔다. 클로이스터라는 이름도 본래 회랑에 딸린 수도원의 정원을 부르는 말이다. 미국인들이 유럽에 쳐들어가 전쟁을 일으키고 수도원 건물을 훔쳐왔다는 기록이 없으니, 이 건물 안에 있는 채플실 벽을 장식한 돌 하나까지 다 돈을 주고 사온 것이라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오래 전 이주해 온 백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유럽에 대한 어떤 향수나 경쟁심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1938년에 문을 연 이 미술-박물관을 위해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바로 록펠러였다. 그는 많은 것들을 사들였다. 그리고 기부했다. 1930년대 록펠러재단의 몇몇 활동은 그 규모로 보나 의미로 보나 주목할 만하다. 유럽에서 망명 온 유태인 지식인들을 후원했고(대표적으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프랑크프루트 연구소), 클로이스터를 위해 엄청난 중세 유렵의 유물들을 사들였고, 맨해튼에서 가장 큰 교회인 리버사이드 교회를 지었다. 록펠러가 유난스럽긴 했지만, ‘기부’는 과시적 노블레스 오블리지이자 세금폭탄을 피하기 위한 미국 부자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이다. 미국이 아직 망하지 않고 있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카네기와 더불어 철강계의 강자였던 H.C.프릭은 자신이 살던 집과 수집품을 사회에 기부했다. 5th 에비뉴와 메디슨 에비뉴 사이에 있는 동쪽 70st 블록 대부분을 사들여 어마어마한 저택을 짓고 예술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한 프릭의 과시적 욕망 한쪽에는 훗날 쿠퍼휴이트미술관이 된 카네기의 저택을 왜소한 것으로 눌러버리고 싶다는 경쟁심도 한몫 차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이곳에 가면, 기대치 않았던 고야, 메르메르, 터너, 르노와르, 앵그르의 유명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18-9세기 유럽의 부르주아 귀족들의 몰역사적 실내장식 취향(아랍과 아시아에서 닥치는 대로 비싸게 공수해 온 여러 가지 장식적 생활용품들)의 한 예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릭의 미덕은 클로이스터즈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실내정원에 있다. 클로이스터즈가 수도원을 박물관으로 활용하며 천정이 없는 건물 내 실외 정원을 선보인다면, 프릭은 철골과 유리로 이루어진 천정을 가진 19세기 아케이드를 연상시키는 실내 정원을 자랑한다. 6개의 갤러리와 공연장을 사방 벽쪽에 둔 회랑 복도 안쪽에는 사철 고급스럽고 싱싱한 화초가 자란다.

돈 많은 한 개인이 자신이 가진 자본의 능력으로 예술작품을 소유하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자본가의 윤리를 동시에 과시하는 이러한 기부문화는 미국에서 드문 것이 아니다. 프릭 컬랙션 이외에도 노이에 갤러리, 모건 라이브러리, 쿠퍼 휴이트 디자인미술관 등이 모두 사적 재산의 일부를 공공에 기증함으로써 과시적이고 경제적인 효과를 기대한 형태이고, 그것을 기증받은 쪽에서는 이것들을 유지 관리함으로써 도시의 문화-예술적 수준을 과시하고 재정적 효과를 기대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뉴욕에 있는 대부분의 미술-박물관에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에 관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에게도 침략과 약탈의 역사는 묻어두고 싶은 수치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일까.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흔적은 뉴욕의 한쪽 구석,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로어 맨해튼의 국립아메리칸인디언 박물관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식민자의 후손들이 만든 이 박물관이 어떤 분위기일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Met의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Met의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Cloisters의 회랑풍경. 밖으로 허드슨 강과 포트 트라이언 공원이 있고, 벽 안쪽에는 전시장이, 사진 속 여자의 등 뒤로는 정원이 있다.

Cloisters의 회랑풍경. 밖으로 허드슨 강과 포트 트라이언 공원이 있고, 벽 안쪽에는 전시장이, 사진 속 여자의 등 뒤로는 정원이 있다.

Frick Collection 내부에 있는 클로이스터. 유리로 된 천정과  작은 분수대가 있는 정원이 아름답다. 회랑 벽쪽에는 전시장들이 있다. (가져온 사진)

Frick Collection 내부에 있는 클로이스터. 유리로 된 천정과 작은 분수대가 있는 정원이 아름답다. 회랑 벽쪽에는 전시장들이 있다. (가져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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