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뉴요커는 어디에?(2) – 게이퍼레이드에 즈음하여

- 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

뉴욕은 게이들의 도시다. 맨해튼 시내를 걸어 다니다 나도 모르게 눈길 한 번 더 주게 되는 훈남들 중 절반 이상은 동성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있거나 얼굴에 ‘나 게이거든’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특히 뉴욕 게이운동의 성지인 스톤월(stone wall inn)이 있는 크리스토퍼 거리, 게이 바나 그들의 완구점이 모여 있는 첼시나 웨스트, 이스트 빌리지 쪽에서 만나는 사람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내에서 목격했던 연인들의 훈훈한 애정행각 역시 대부분 동성커플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뉴욕에서 그들은 당당하다.

2011년 뉴욕 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이후, 적어도 뉴욕시에서 동성애자들은 더 이상 그들의 성정체성 때문에 법률적 차별을 받는 일은 없어졌다. 그들에 대한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종교적 관습의 틀 안에서 그리고 계급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관련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한명은 골드만삭스(세계경제의 악의 축인)의 CEO 로이드 브랜크페인(Lloyd Blankfein). 그는 동성결혼합법화를 지지하며 인권단체의 광고에 출현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미국 기업들은 예전부터 평등(그러니까 동성애)을 좋은 사업으로 여겨왔고, 그것(동성애)이 하나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천하의 골드만삭스 사장이? 라고 깜짝 놀란 사람도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안 될 것도 없다. 그는 목사가 아닌 것이다. 정작 놀라야 할 대목은 ‘미국의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동성애를 사업의 대상으로 편견 없이 대해왔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유연하다. 물론 후폭풍도 적진 않았다. 브랜크페인의 행동은 다분히 미국 사회의 메인 스트림 안에서 활동하는 동성애자들을 향한 구애의 의도가 있는 것이었지만, 덕분에 보수적이고 착실한 기독교신자들을 고객 명단에서 지워야했고, 그 자신의 연봉 또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야만 했다.

뉴욕시의회 의장인 크리스틴 퀸(Christine C. Quinn)이 자신의 동성 애인과 결혼식을 올렸을 때, 뉴욕은 또 한번 술렁거렸다. 합법화이후 뉴욕 시에서만 벌써 제법 많은 수의 동성부부가 탄생했지만, 그 주인공이 현직 공무원이자 유력한 차기 뉴욕시장 후보라면 또 한 번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그녀는 뉴욕 최초로 여성-동성애자 시장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분위기로 보건대, 그녀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시장 선거에서 떨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 뉴욕 사람들은 누구나 이미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그녀의 탁월한 업무수행 능력과 또한 별개라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퍼레이드에 참가 중인 경찰관(위), 소방관(아래) 게이커뮤니티

퍼레이드에 참가 중인 경찰관(위), 소방관(아래) 게이커뮤니티

브랜크페인과 퀸보다 더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바로 그였다. 그의 동성결혼 지지 발언은 정치적 계산이 충분히 끝난 후에 나온 얘기이겠지만, 개인과 신념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래저래 뉴욕에서 지금 ‘동성결혼’은 가장 주목받는 뉴스거리 중 하나이다.

그래서일까, 올 해 뉴욕의 게이 퍼레이드는 예년보다 더 뜨거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1970년 이후 매년 새로운 주제로 진행되어온 게이 퍼레이드의 이번 구호는 “사랑을 나눠요(Share the love)”. 다분히, 동성결혼 합법화 1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짙다.

퍼레이드를 즐기러 나온 커플

퍼레이드를 즐기러 나온 커플

사실 뉴욕에는 거의 매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퍼레이드가 많다. 뉴욕 사람들만큼 퍼레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다들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잘 논다. 우리처럼 올림픽 메달 선수들이 귀국할 때나 국빈들이 올 때 ‘강제동원’된 기억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퍼레이드란 대체로 위정자들의 자기 과시나 죄인들의 조리돌림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바, 어느 쪽이든 피지배층을 훈육하려는 의도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지만, 현재의 퍼레이드에서(덜떨어진 독재국가가 아니라면) 국가가 행사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퍼레이드는 민간 주도 자본 후원의 형태로 진행된다. 뉴욕의 퍼레이드에서 국가의 개입은 경찰들이 세워 놓은 저지선과 그들의 제복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누구든 선을 넘지만 않으면 제멋대로 퍼레이드를 즐길 권리를 부여 받는다. 게이 퍼레이드 역시 그렇다.

퍼레이드 행렬과 환호하는 구경꾼들

퍼레이드 행렬과 환호하는 구경꾼들

뉴욕의 그 많은 페레이드들 중에서도 게이퍼레이드는 그 행렬의 다양한 구성과 화려함, 재미, 구경꾼들의 호응도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국가별 인종별 직업별로 그리고 크고 작은 다양한 커뮤니티 별로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신들을 표현하며, 구경꾼들은 매번 크게 박수치고 환호하며 이들 행렬을 맞이한다. 이들 중에서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경찰과 소방관 게이커뮤니티였다. 공무원 조직에도 노조는 물론 동성애자들의 모임도 있어야 한다는 이 당연한 명제 앞에서 다시 한 번 생각이 복잡해진다. 우리에겐 언제쯤, 이 당연한 일들이 당연해질까. 흑인들이 조상의 피로 지금 미국에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었듯이, 뉴욕의 동성애자들도 처음부터 이런 호사를 누렸던 것은 물론 아니다. 68혁명의 시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운동은 끊임없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진행되어 왔고, 그것의 최신 버전이 동성결혼 합법화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적어도 뉴욕에서 동성애자는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행사에 참가했던 뉴욕시장의 축사가 아주 뻔한 소리라고만 생각되진 않았다. “개인의 사생활을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뉴욕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다.”

* 이 글에서 말하는 게이는, 남녀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즉 이른바 LGBT를 통칭하는 일반적 용어이다.

응답 3개

  1. jhdh말하길

    사후세계에 대한 귀중한 사이트 (www.jhdh.org) 를 하나 찾았는데 같이 공유 하고 싶습니다.
    귀신이 있을까요? 이 사이트 보니 진짜 있네요. 천당과 지옥이 존재 할까요?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사후 세계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불교 윤회는 사실 일까요? 예수쟁이 천당은 있을까요?
    이모든 특급 비밀이 이 홈페이지 안에 다 있습니다. 보시고 주변에 궁금 하신 분께 추천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모두 건강 하세요

  2. 케이말하길

    저도 그게 좀 궁금했었는데요… 말이라는 게 줄여서 경제적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게이’라는 말이 너무 안정적으로 쓰이고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신문이나 방송에서조차 공식적으로 이미 그 말이 굳어져 버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쨌든, 말씀하신 것처럼, ‘LGBT’라는 용어를 쓰는 게 좋겠다는 문제의식들은 있는데, 쉽게 정착되지 않고 있는 느낌. 2010년 퍼레이드에서는 일부러 힘주어 ‘LGBT’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고요. 근데, 저도 이 글을 쓸 때 좀 부주의했네요. ^^;;

  3. 화니짱말하길

    궁금해서 그런데 LGBT라는 용어가 있는데 굳이 그중에 하나의 주체인 게이를 쓰는 이유가 뭘까요? 마치 he/man 이 사람의 대명사로 쓰이던 때와 다를 바 없다고 느껴져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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