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개콘, 저리 가라! –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위엄 –

- 오항녕

지난 12월 3일, KBS 전주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교육부에서 검정 통과 교과서 저자들에게 내린 수정명령에 대한 토론을 하는데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상황을 잠깐 설명해야 될 듯하다.

이 문제는 교학사 한국사교과서의 왜곡에서 시작되어 지금 더욱 논란을 부추키고 있는 사안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13년 5월 10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1차 검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국편은 신청한 9종 교과서 가운데 8종의 합격을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교학사에서 펴낸 한국사 교과서(이하 교학사 교과서)가 끼어 있었다. 이어 8월 30일 최종적으로 8종의 교과서가 검정에 합격하였다.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자는 모두 6명이었는데, 대표 저자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한국현대사학회 초대 회장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이고,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은 이 단체의 2대 회장인 이명희(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였다. 세 사람은 현직 교사이며, 나머지 한 사람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좋다, 누가 쓰면 어떠랴! 제대로만 쓴다면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오항녕 수유칼럼

 [한국사교과서가 개콘보다 웃길 수 있음을 보여 주신 개척자들. 극구 자신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권희영 교수(왼쪽), 뒤질세라 이승만-박정희를 숭배하시는 이명희 교수. 사진은 경향신문]

 

개콘 워밍업

 

그런데 1차 검정 결과를 발표된 지 넉 달이 지난 8월 30일에 국편에서 최종 검정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때 국편은 합격한 교과서의 저작자(저자 전원)와 출판사를 공개함과 아울러 검정 과정에서 국편이 수정을 요구한 내역과 이에 대한 저자들의 수용 여부, 검정 신청본 이후 교과서 저자들이 자체 판단을 통해 수정한 내역을 정리한 도표를 동시에 공개하였다. 당초 교육부는 10월 중에 학교별로 이 8권의 책 가운데 하나를 채택하여 2014학년도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차 개그콘서트 같은 일은 바로 1차 검정에서 최종 결과까지 넉 달 동안 일어났다. 국편과 교육부는 최종 검정 결과 발표 후에도 내내 해당 검정 교과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장차 학생들이 다 보게 될 책이고, 학교 교사들이 8종류의 교과서를 비교하여 채택 여부를 결정해야 할 판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부 수구(守舊) 언론에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교과서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들 외에는 모두 딱 한 곳, 국회 야당 의원실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지정된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열람한다는 조건으로.

 

개콘 1탄

 

나는 어지간해서 남들이 쓰는 표현은 삼가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써야겠다. ‘경악했다.’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보고 ‘경악했다.’ 이 교과서를 심사한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의 발표에 따르면, 국편이 이 교과서를 대상으로 ‘오류니까 수정하라’고 권고한 내용 + 저자들이 발견하여 자체 수정한 내용을 합하여 479곳을 수정한 뒤 최종 검정 과정을 통과하였다.

아, 자상하기도 하셔라. 479곳의 오류를 무릅쓰고 검정을 통과시켜 주시려고 애쓰셨다는 거다. 교과서에 이렇게 많은 자료-사실-서술의 오류가 있으면 검정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내가 속한 한국역사연구회 등 한국사 연구 4단체가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479개를 수정하였다는 이 책에는 여전히 298개의 오류가 있고, 작은 오류까지 따지면 역사적 사실이 잘못 기술된 것이 무려 6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천(千)의 고원이 아니라, 토탈 천의 오류!

사실의 정확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아예 포털싸이트에서 긁어 온 시각자료로 책을 만들었다. “사실, 개념, 용어, 이론 등은 객관적이고 정확한가? 각종 자료는 공신력 있는 최근의 것으로서 출처를 분명히 제시하였는가?”라는 검정 기준은 애당초 무시하신 분들이다.

 

개콘 2탄

 

이 책은 표절도 창조적이다. 교학사교과서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성수(식민지시대 동아일보 사주)를 민족운동가로 둔갑시켰는데, 이는 위키백과사전을 긁어 온 결과였다. 참고로 요즘은 학생들도 긁어 오는 것은 부끄럽게 여긴다. 위키 측에서는 친일 행적도 분명히 싣고 있다. 베끼면서도 구미에 맞는 것만, 필요한 것만 베낀 것이다.

심지어 다른 교과서를 그대로 옮긴 곳도 있었다. 그 교과서의 원저자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알고 고쳤다. 헌데 이들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원저자가 실수한 부분을 그대로 옮기는 촌극을 빚었다. 또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교사 세 사람은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권희영, 이명희 두 교수의 전횡에 불만을 가졌고, 공동 저자들의 의견과 다른 내용이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필자 명단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요청하였다. 저자가 저자이기를 거부인 초유의 한국사교과서가 된 셈이다. 또 이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은 검정본부에 제출한 저자 약력을 허위로 작성하였음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참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기타 개콘 소재들

 

1) 훈민정음 삭제(교학사 교과서에 훈민정음 없다!)

2) 헌법 전문에도 들어가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연대표에서 ‘빠뜨리거나’, 애국가조차 틀리게 기술

3) 이승만의 이름은 교과서에서 모두 82회 등장!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은 김일성, 박정희, 김구 등이 17, 18회 안팎(박근혜는 왜 가만 있나?). 특히 1940년대 항일운동을 다룬 곳에서는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데 비해, 이승만 이름은 무려 32회 등장!

“이승만은 당시에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신뢰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방송을 함으로써 국민들과 더욱 친밀하게 되었고, 광복 후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었다.”(교학사 전시본 293쪽)

4) 탐구학습: 교과서의 190쪽에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에 가담하였던 일본인의 회고록을 사료로 인용한 뒤,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란 탐구활동을 제시(질문 수준 하고는~. 도대체 학생들로부터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개콘 PD, 교육부

 

이상 지면 관계상 맛만 보여드렸다. 연락 주시면 개콘 10회분의 소재를 드릴 수 있다. 이렇게 즐거운 자리에 이런 자리에 교육부가 빠질 수 없었다. 교학사 한국사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함량 미달의 수준이 알려지자 교육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교육부, 공연히 마피아 소리를 듣는 곳이 아니다. 여기도 내공이 있다.

우선 ‘고르게’ 오류 시정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교학사 교과서가 저질렀는데, 엉뚱하게도 다른 교과서까지 시정하게 함으로써 교육부의 역사교육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얼마나 교육부가 고심했는지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미래엔출판사에서 간행할 한국사 교과서에 몇몇 소주제가 있는데, 그 소주제명 가운데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다니!’,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운동’,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부'(322∼337쪽) 등이 교과서 용어로 부적절하다며 다른 표현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이승만 독재와 4.19혁명’이라는 소제목에서는 ‘이승만 독재’를 빼라고 명령하였다. 참 재미있는 교육부이다.

교육부는 수정명령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수정심의위원회’를 만들었다. 이거, 법적 근거 없다! 그런데도 만든다. 왜? 자신들이 수정명령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우기는 것이다. 왜 우길까? 그렇다. 현재의 검정제도를 무력화하고 결국 교육부가 지정하는 ‘국정교과서’ 체제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나마 여러 교과서를 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나아진 한국사교과서 제도를 군사독재시대로 되돌려 ‘주입, 세뇌’시키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KBS 전주방송에서 나와 토론하던 권희영 교수는 검정교과서가 모두 좌파라며 국정교과서로 가야 한다고 거품을 물었다. 이 분은 북한이 전체주의라서 싫다며, 자신은 파시스트이다. 나는 전체주의를 주장하고 실현하려는 자들을 파시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이 분은 다르게 생각하나 보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 우리는 이를 전문용어로 정신분열이라고 한다. 이 증상 꽤 오래되었다.

작년 10월 28일 서울 서대문 4.19혁명기념도서관 강당에서 이 분이 또 나왔는데, 난 그때 목격담을 수유너머-위클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목격담을 추가하는 이유는, 박명림 교수에 대한 토론 패널을 맡았던 권희영 교수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이는 역사학의 기본이다. 그런데 박교수는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그랬더니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일리가 있다.

그의 말대로,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학은 사료가 없이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더 역사학의 기본이다. 알고 보니 그 분이 현대사 전공인 역사학자시란다. 그리고 그 분이 마침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이신지라 그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했는데, 한국현대사학회는 학술 단체이지 운동 단체가 아니라고 하셨다. 학술이 운동보다 그리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학술이라도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다.

 

사료가 중요한 이유는 관점이 망상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이게 역사학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이 분이 내 칼럼을 못 본 모양이다. 역사 자료를 많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물론 이 분은 사료에 관심이 없다. 관점에‘만’ 관심이 있다. 나와 토론하는 내내 민중사관을 증오하는 말을 쏟아 놓았다. 민주주의사회에서 민중사관을 증오하면? 이거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거 아닌가? 체제 전복도 전복이지만, 그렇게 민중사관을 증오하고 사는 그 분 마음이 지옥인 게 더 측은하다.

 

후기: 난 국사라는 영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국사는 근대의 정치-역사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역사인 이상 지켜야 할 수준이 있다. 세상에는 조폭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조폭은 음지를 지킨다. 지키지 않으면 지키게 해 주어야 한다. 그 방법, 잘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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