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청정한 마음을 경험하다

-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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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께서 말씀하셨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말일 텐데, 나에게는 두 가지 이유에서 각별하다. 하나는 내가 전혀 ‘불온’하는 인격과 거기가 멀다는 것. 정말이지 난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화가 난다. 여기서 ‘온(慍)’은 ‘꽁한다’는 말과 가깝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꽁하는’ 건 겉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는 정도이다. 아무튼 난 꽁하길 잘한다. 인정!
둘째, 나와는 달리 자신이 꽁하는 인품이란 걸 잘 인정하지 않아서 심지어 전거(典據)도 없이 위의 ‘성내지 않으면[不慍]’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이라고까지 당치 않게 번역하는 용기도 마다하지 않는 분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기실 이건 귀여운 거다. 그 분은 안다. ‘성내지 않으면’은 ‘부끄러워하지 않으면’과 전혀 다르고, 어떤 용법에도 ‘온’자가 ‘부끄럽다’고 해석된 적이 없고, 특히 이 논어의 맥락에서는 더욱 그렇게 해석될 수 없다는 걸 그 분이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무리하게 왜곡 번역하는 것은 자신의 꽁함을 공자가 알아챘다고 인정하기 싫은 거다. 그러나 그 ‘오역’은 누가 보기 이전에 자신이 꽁함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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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신독(愼獨)’이란 말이 있었으리라. ‘혼자 있을 때 삼가라’고 풀지만, 그런 교조적인 표현보다 ‘삼가며 홀로 있음’, ‘경건히 자신을 쳐다봄’이라는 뜻에 가까울 때가 많다. 신독은 혼자 기도하는 상태와 비슷하다. 혼자 산책이나 산행을 하면서 걷다보면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에 빠지게 된다. 그것도 신독이다.
그 마음의 상태를 불교에서는 ‘청정(淸淨)한 마음’이라고 부르나보다. “청정한 마음이란 특별한 마음이 아닙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마음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본래의 마음입니다. 그러하기에 마음이 대상에 미혹되지만 않으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정화스님 풀어씀, 육조단경(六祖壇經), 법공양, 2012, 14쪽)
이 대목에서 ‘불온[不慍]’은 청정심과 만난다. 불온은 신독을 통해 얻어진 청정심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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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월간지 신동아에 ‘역사기록, 진실과 왜곡 사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신동아 측에서 크게 대중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뜻한 바도 있고 해서 조금 더 학술적인 방향으로 집필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명색이 역사학과 출신인데, 역사기록, 즉 사료(史料)의 진위를 비롯하여 문제제기, 서술, 증명, 논쟁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나 왜곡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역사학과가 대개 마찬가지다. 흔히 논쟁이나 비판이 없다고 탄식하지만, 하고 싶어도 논쟁하고 비판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다. 나중에 역사학도들을 위한 참고서를 꾸민다고 생각하고 쓰다 보니 간혹 딱딱한 느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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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포털 다음에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질문 자체가 허구다’라는 글이 대문에 올라왔다. 내가 신동아에 실었던 글인데, 1월호, 그러니까 작년 12월 초순에 보낸 글이고, 신동아 1월호는 12월 중순에 발간되었다. 그 글이 한 달이 지나 포털 메인에 뜬 것이다. 어찌 반갑지 않으랴. 그런데, 허걱!

– 무슨 기자**가 글을 이렇게 어렵게 쓰냐
– 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기사 내려라
– 왜 이리 길어. 스크롤바 있어서 다행이네

뭔 댓글이 이렇담? 내가 기잔가? 근데 왜 욕이야? 기사는 다 짧고 쉬워야 하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청정심, 부동심(不動心) 이전에 무동심(無動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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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헷갈리고 있는데, 이런 댓글들이 눈에 띤다. 여기서부터 조금 일단 동심(動心).

– 아, 똥아로군, 뭐야? ‘이순신이 없었다면’이 왜 질문이 안돼. ㅅㅂ
–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런 질문은 말이 안 된다고 하면서, 박정희의 경제발전을 정당화하려는 논리인가?
– 왜 이순신이야? ‘이승만이 없었다면,’ ‘전두환이 없었다면’, 이런 질문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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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내 글을 소개하는 게 좋겠다. 1월호 주제는 역사연구에서 나타나는 ‘질문의 오류’(1)였다.

… 예를 들어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 노량대첩을 통해 왜군의 물리침으로써 그 패퇴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그런 결과에 ‘필수불가결한’ 인물이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으며, 이순신 장군이 그 일을 했다는 사실이 당연히 ‘이순신 장군이 필수불가결한 인물’이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추앙하는 마음에서 심정적으로 그렇게 주장할 수 있어도, 그것이 경험적으로(역사적으로) 증명되는 일은 아니다.

역사학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그 일을 했다는 사실만, 즉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사실만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해전에서 승리했을지 없을지 역사학에서 논의할 수가 없다. 왜?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일어나지 않았으니 사료(史料)가 없다! 그러니까 논의할 수 없다는 거다. 물론 영화나 소설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정 아래 역사를 쓸 수는 없다. 그럼 이미 역사(학)가 아니다. ‘질문의 오류’ 복습 겸 후속 글로 신동아 2월호에도 역사탐구에서 허구적 질문이 갖는 오류를 다시 상기했다. 다음을 보자.

영국 스포츠 저널 더선 지(紙)는 8일자 기사에서, “맨유에 판 페르시가 없었다면 프리미어리그(EPL) 중위권에 머물렀을 것이다.”라고 했다. 작년 여름 아스날에서 판 페르시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21라운드까지 5경기밖에 승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 “이 기사를 지난 1월호에 나온 ‘역사의 오류’에 근거하여 비판하라.”
들어보니 현재 맨유는 17승1무3패(승점52점)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승률이 81%다. 박지성 선수가 없으면 좀 못해야 하는데……. 아스날에서 이적해온 판 페르시는 16골을 터트렸고, 어시스트도 6개란다. 맨유는 2위 맨체스터 시티(승점45점)에 승점 7점 앞서 있다.
더선의 기사는, “하지만 판 페르시 없는 맨유는 승률이 23.8%밖에 되지 않는다. 승점도 절반인 26점으로 뚝 떨어진다. 이는 11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같은 승점이다.”고 말한다. “판 페르시가 없었으면 맨유는 중위권이다.”라는 말이다.
이에 영국 네티즌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멍청한 기사다. 판 페르시가 없었다면 다른 공격수가 넣었을 것”, “다른 10명은 무시하는 건가?”, “판 페르시가 없을 때도 맨유는 중위권에 처진 적이 없다” 등등.
지난 1월호의 논의를 이어, 더선 지의 기사를 비판하면, ‘허구질문의 오류’에 속한다.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면(History Rewritten)’이라고 말하는 사례이다. “나폴레옹이 미국으로 도망쳤다면”, “임진왜란 때 조선이 망했다면” 등과 같은 질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기사는, 첫째, 판 페르시가 ‘없었다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은, 우습게도 판 페르시가 경기장에서 ‘실제로 뛰는 조건’에서 뽑아낸 것이었다. 판 페르시가 없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판 페르시가 ‘있는=뛰는’ 상황에서 산출해낸 결과, 즉 당초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증명이 성립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추론을 한 셈이다.
둘째, 네티즌들의 주장에서 정확하게 드러났듯이, 더선 지의 기사는 판 페르시의 대체 선수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완전히 무시된 채 작성되었다는 더 심각한 결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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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내 인격으로 미루어 이런 식의 매도를 당하면 울그락 불그락 했을 터. 그런데 마침 이 글이 뜨기 전 날인 21일 목요일 저녁, 나는 수유너머N에서 정화스님의 강좌를 듣고 난 뒤라 몸에 약간의 불성(佛性)이 남아 있었던 듯하다.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마음이 착 가라앉으면서 내 마음과 댓글의 반응을 따라가는 의식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댓글들이 화두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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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과 댓글이 불임(不姙)이 되지 않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똥아’에 대한 반감이 무척 크다는 사실, 그것이 내 글의 내용이 거의 읽히지 않은 채 무시되는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범(凡) ‘똥아’인 신동아에 실린 글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인신공격의 오류’, ‘의도 확대의 오류’에 속한다. 또 신동아에는 영화배우 심혜진, 배두나 기사처럼 볼만한 기사나 논고도 있다. 그러나 신동아가 증거와 논리에서 공정하지 못한 기사를 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일간지는 더 그렇다. 그러므로 신동아에 실린 내 글에 대한 비난은 오류지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나와 신동아라는 상대는 좀 다른 인연이 있다. 1970년대에 백지광고가 실릴 무렵, 중학생으로 나는 신동아를 만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내밀던 신동아와 동아일보를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이번 연재를 시작하게 만든 신동아 기자 후배(+그 후배와 친한 프레시안 기자)는 이 연재가 자기가 나와 친해서 된 것인 줄 알지만, 인연이란 게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내 글이 신동아에 실린 것 때문에 댓글을 긁었던 사람들에게 조금 화를 풀라는 뜻에서 사사로이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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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 이건 좀 시간이 걸릴 듯하고, 당분간 딱히 방법이 없기는 한데, 그럭저럭 공부를 하다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도만 생각하고 있다. 신동아 연재글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댓글을 보면서 연재글에 더 성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읽은 논리학 책에서, “논리라는 딱딱한 듯 보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좀 더 합리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램을 보았다.(김광수 저, [논리와 비판적 사고], 철학과 현실사, 2012) 나도 그렇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잘못 던지는 질문, 논증, 비판은 과거를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을 오염시킨다. 그 오염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줄여보고 싶은 것이다. 글이 어렵게 느꼈다면, 내가 덜 소화된 생각을 가지고 썼든지 원래 주제가 어렵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글 맨 끝에, “나는 역사와 씨름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따름이다.”라고 썼다. 엄살도, 그렇다고 자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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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청정한 마음을 놓칠 뻔했다. 욕, 비난, 매도의 댓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옹호하고 변론하는 댓글에서, 공감하고 칭찬하는 댓글에서 슬그머니 교만이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싫었다는 말은 아니다. 남이 알아줘야 불온(不慍)하는 인격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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