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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칼럼

視衆-‘우리’는 ‘우리’의 목격자 – 수상관저 탈원전 집회, 8월 10일을 중심으로 –

- 신지영

* ‘와타시다치(わたしたち)’와 ‘우리’ 사이에서

낮이 저녁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 기르던 개의 실루엣이 마치 나를 해칠 늑대인 양 어둠 속에서 낯설게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친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의 단 한 번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을 ‘이행’에 대해 거는 희망, 그것이 우리가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말에서 느끼는 감촉이며 데모나 집회 그 자체의 에너지다.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  ( 8월 10일)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 ( 8월 10일)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도 이 이행의 감촉이다. 탈원전-반빈곤 노숙자-오키나와 기지 반대 라는 좌표로부터 떨어져 나와, SKY-쌍용자동차 분향소, 제주도 강정마을, 용산, 그리고 두물머리의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이라는 좌표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이 이행이 가장 낯선 며칠 간은 문득 문득 놀란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또 일본에 오기 전부터도 내게는 이렇게 낯선 시간들이 문득 문득 찾아왔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이행의 순간, 한국의 운동, 일본의 운동과 같은 익숙한 집단명은 오히려 저 멀리 달아나고 개별적 순간들이 제멋대로 연결되어 가기 시작한다. 이행의 순간, 나는 비로소 일본에서 참여했던 집회들 속 숨겨져 있던 여러 목소리들을 듣게 된다. 내가 속해 있거나 속해 있지 않았을 ‘우리’들 그 각각이 서로를 다급하게 부르고 또 거부하기 때문이다.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8월 10일)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8월 10일)

5월 5일 경 일본 내의 원전이 모두 정지되었지만 6월이 지나면서 노다 총리는 후쿠이현 오이 원전 재가동을 결정한다. 이를 기점으로 탈원전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된다. 오이 원전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게이트에 자신의 몸을 묶고 차로 바리케이트를 치며 저항한다. 도쿄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수상 관저 앞에서 이루어지는 반원전 집회에 6월 30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집회는 현재 도쿄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원전 집회를 대표하지만, 실은 반원전이라는 말로 정리되지 않는 여러 자장 속에 있다. 공간적으로는 쓰나미와 지진으로 고통받는 동북 지방과 서쪽 지역의 원전 재가동 문제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큐슈의 미나마타병,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경험이 있다. 동시대적으로는 반빈곤 노숙자 운동과 오키나와 반기지 운동이라는 자장 속에 있다. 8월 10일 수상 관저 앞 반원전 집회는 이 모든 자장들이 집회 전후로 드러났다. 사회보장 법안 및 소비세 인상 법안 체결 일정을 이유로 집회 주최측과의 면담을 연기한 노다 총리에 대한 분노, 10월에 오키나와에 위험한 헬기인 오스프레이를 설치한다는 데 대한 분노로 1000명이 결집한 8월 5일의 데모,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 투하일을 기해 원전 재가동 반대 국민투표를 촉구하는 집회, 7월 31일에는 특별 조치법에 따른 미나마타병의 사후 발병 신청 기간이 마감된 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원전반대’ ‘재가동 금지’라는 단순한 슬로건으로 회수되지 않는 이 모든 소리들은, 한국에서의 쌍용-강정-용산 연대 투쟁과 만나면서 다시한번 선명해졌다. 나는 일본의 ‘와타시다치’에서 ‘우리’로 이행했을 뿐 아니라 대문자 ‘우리’에서 복수적인 소문자 ‘우리들’로 이행했다. 그리고 이행할 수 없는 것들 또한 선명하게 남았다.

모여든 사람들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모여든 사람들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 “그렇다!” 라고 반복하는 노란 티셔츠의 소년.

수상 관저 앞 자유 발언대 ( 8월 10일)

수상 관저 앞 자유 발언대 ( 8월 10일)

이행할 수 없는 순간들은 다음과 같이 찾아왔다. 수상 관저 앞 데모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발언대가 마련된다. 6시부터 점차 사람들이 불어나면 이에 따라 확성기로 노래와 발언이 퍼져나가고 해는 점점 저물어 얌전했던 그들이 사나워지기 시작한다. 발언대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선다. 이날은 발언대 바로 옆에 엄마와 함께 온 10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가 노란색 티셔츠에 노란색 반원전 팔찌를 키고는 서서 발언이 나올 때마다 “그렇다! 그렇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꼬마를 찍곤 했다. 꼬마의 엄마는 자랑스러운 듯 혹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꼬마를 보호하듯 껴안곤 했다. 저 꼬마는 필시 그저 저렇게 소리 지리는 게 재밌고 사람들의 시선이 기꺼운 것일 뿐일 거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10년 혹은 20년 뒤 멋진 활동가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밝아졌다.

페밀리존(8월 10일)

페밀리존(8월 10일)

민주당이나 공산당 등 당에 속한 발언자들의 타깃은 대개 노다 정권 비판이었다. 그와 다르게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후쿠시마 어린이들과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습작업을 하고 있는 원전 노동자들의 입장을 통해 재해 속에서 나타난 차별구조를 명확히 봐야 한다고 외치는 한 그룹의 발언이었다. 붉은 꽃을 든 여자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단지 원전을 폐쇄하자고 말하지만, 원자로를 폐쇄하려면 그 수습작업을 할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원전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이미 방사선량 기준치를 넘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기준치를 넘어서 일하지 못하게 되면 당신들이 대신 와 줄 건가요? 원전 노동자들은 대개 피차별 부락민, 재일 조선인, 외국인 노동자들이고 현재 일자리를 잃은 동북지방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원전에 일하러 가고 있습니다.” 모여든 대중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과 동요 감탄이 뒤섞였다. “내가 갈게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발언대를 만들어가는 한명의 ‘視衆’이란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재해 속 후쿠시마 동북지방민 원전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구조를 봐야 한다고 외치던 그룹(8월 10일)

재해 속 후쿠시마 동북지방민 원전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구조를 봐야 한다고 외치던 그룹(8월 10일)

그런데 저쪽에서 건장한 사람들이 무리 속을 헤치고 발언권을 잡았다. “이곳에 오시는 길에 우파 선전 자동차 3대를 보셨을 것입니다. 오늘 <다케시마>에 대한 이명박의 발언에 항의하러 한국 대사관에 갔다 온 차일 테지요.-중략- 다케시마도 센카쿠도 후쿠시마도 전부 우리 땅입니다.” 이어서 그는 탈원전에는 좌파도 종교도 없으며 오직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박수가 터졌고, 노란색 티를 입고 노란색 팔찌를 한 꼬마는 이번에도 외쳤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공감으로 그들이 이행하는 순간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마치 난생 처음 만난 타자를 쳐다보듯이 한명 한명의 얼굴을 살폈다. 만약 내가 여기서 “그건 틀렸다”하게 되면 혹시 그들은 나를 습격하지나 않을까?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라고 꼬마가 외칠 때마다 그 소리는 내 몸으로 습격하듯 파고들었다. 이후 발언대에 나온 청년 대표라는 15살의 소년은 “눈물이 나오면 우셔도 됩니다!”라는 자신만만한 말로 시작해, 국가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은 탈원전을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노란 티셔츠의 꼬마가 다시금 “그렇다!”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소년과 더 어린 소년의 대거리를 찍어댔다. 나는 그 순간 그 소년이 말하는 국가와 가족 속에 내가 없음을 절감했다. 어쩐지 “그렇다”는 소리가 괴롭게 끔찍하게 느껴져 서둘러 그 장소를 빠져 나왔다. 이 발언 앞에서 도쿄의 대중들은 “재해 속의 차별구조”에 공감하는 대중에서 갑작스레 “국가와 가족을 지키는 영웅”으로 이행해 버린 것 같았다.

이처럼 이행의 순간은 단지 긍정성만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발언대 앞에서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대중들의 이행이 파시즘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할 때, 그 속에 포함되지 않는 타자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익명성을 선택하고 발언을 멈추고 침묵한 채 속으로만 비명을 질렀다. 어쩔 수 없이 취하게 되는 익명성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강요되는 것임을 느꼈다. 이 순간 나와 너의 경계들은, 한국과 일본의 경계들은, 민족과 민족의 경계들은 고착되었다.

이처럼 발언대 앞 대중들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 그러나 나는 ‘재가동 반대’라는 슬로건 속에 수많은 소리들이 감추어져 있듯이, 똑같은 환호와 박수 속에도 복잡하고 다양한 표정들이 감추어져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해 속 차별구조를 보자고 외쳤을 때 대중 속에 나타났던 깊은 감정의 동요와 우파 발언자가 독도와 센카쿠 열도가 전부 자신들의 영토라고 말할 때 대중들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던 멋쩍고 묘한 웃음은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재해 속 차별 구조에 대한 공감들이 저 멀리로 퍼져나갔던 것과 다르게, 멋쩍고 묘한 웃음이 ‘영토’라는 이름의 소유감정을 건드리고 겹쳐지면서 개개인의 뱃속으로 고립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두 표정의 차이에 나는 희망을 느낀다. 모임으로써 갈등과 배제가 시작되지만, 동시에 모이지 않으면 공감도 이행도 불가능하다. 갈등하는 여러 힘들 속에서 대중들의 표정을 역사적으로 동시대적으로 공감각적으로 이행시키려면 어떤 말이 필요할까? 다시 한번 반복해서 외치건대 발언대 앞 대중들은 변화무쌍하니까.

수상 관저 앞 자유 발언대 ( 8월 10일)

수상 관저 앞 자유 발언대 ( 8월 10일)

* 사건적 이행을 차단하는 것들.

매주 금요일마다 수상 관저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데모에 대해서는 수많은 기대와 함께 수많은 한계들도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역시 현재 일본의 재해 이후의 소수자들의 요구를 보여주는 운동 중 하나의 동력을 형성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이 집회에 대한 비판이 이 집회의 활기를 더욱 고양시키는 쪽으로 진행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오히려 이 비판들을 통해서 일상적인 집회의 형태를 사건과 이행의 형태로 바꾸는 실험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원전재가동 금지! ( 8월 10일)

원전재가동 금지! ( 8월 10일)

비판 중 가장 많은 것은 주최측이 마치 경찰처럼 참가자들의 흘러넘치는 에너지와 행동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8월 10일 집회 선동문에는 <오이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수상 관저 앞 항의에 참여하는 여러분께>라는 제목 하에 몇가지 주의사항이 언급되어 있었다. 집회는 6시에 시작해서 8시에 해산하는데 이는 항의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현행법과의 타협안”이며, 이 집회는 어디까지나 “비폭력 직접행동”이기 때문이라고 씌어 있었다. 인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혼잡하므로 무리해서 관저가 보이는 곳까지 오지 말고, 데모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무리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 현장에는 완장을 찬 스탭이 교통 유도 등을 하는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스탭 지시에 따라 주고 만약 스탭의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트위터나 메일로 알려 달라 등등. 이러한 지시들 때문에 집회에 참여자들은 교통질서를 지키고 분노를 억누르며 8시면 칼퇴근을 하고, 그들 덕분에 완장을 찬 스텝은 점점 경찰처럼 되어 간다고 비판당한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에는 수많은 분노가 있었음을 실은 크고 작은 싸움과 충돌이 있었다는 것도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으로써 꼭 이야기해 두고 싶다!

경찰과 대치하는 참여자들  격노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경찰과 대치하는 참여자들 격노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이런 현상은 작년 6월경 그다지 폭력적이지 않은 집회였음에도 12명이 체포당했고 그 결과 집회 문화가 익숙지 않은 일본에서는 경찰의 폭력이 강화되면 일반인들이 집회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더라도 주최측이 마치 경찰처럼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외부의 억압 구조가 내부에서 반복되어 위계를 만들어 낼 때 파시즘은 내부적으로 단단한 구조를 갖게 된다. 규칙과 규율을 지키는 척 함으로써 더 강한 탄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속에 포섭되는 것일까? 데모의 장소는 변화의 순간이자 이행의 순간, 익숙한 일상이 낯설어지는 순간, 혹은 낯선 자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우발성에 의한 기존의 법과 규제에 대한 신체적 반발이 없는 공감은 과연 어디로 갈까?

경찰과 대치하는 참여자들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경찰과 대치하는 참여자들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또 자주 이야기되는 비판은 참가자들 자체가 정치적 깃발을 들거나 발언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제지하면서 ‘시민’ 혹은 ‘국민’의 운동임을 강조한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는 집회에서 불려지는 <고향(후루사토ふるさと)>라는 노래가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DNEIttwHnWU 혹은 http://www.youtube.com/watch?v=QLtLqvGZ3b0 ) 이 노래는 어쩐지 늘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부르는 것을 비춰주는 경우가 많다. 단촐하면서도 처연한 분위기의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후쿠시마와 후쿠시마 속의 많은 분열들 동북지방의 냉해와 쓰나미로 인한 가난과 그 속에서 또 차별을 받는 조선학교의 존재 등 수많은 모순들이 모두 ‘고향’이라는 한 단어로 해결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고백하자면 나는 몇 번이나 이 노래를 집회를 들으면서도 이 노래의 내력을 몰랐다. 어느날 우카이 선생님이 “지영씨는 고향(후루사토)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어요?”라고 물으셔서 그 노래의 유례를 듣게 되었다. 이 노래는 황민화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이 익히게 된 유명한 창가 중 하나로, 이 노래를 부른 끝에 기미가요(일본국가)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도쿄신문의 기사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순간들은 이런 질문들을 포함한다. 우리들이 새로운 상황으로 이행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들은 과연 우리들 밖에 있는가 혹은 우리들 안에 있는가? 기존의 기반으로부터 이행시키는 노래와 기존의 기반에 더 깊이 고착되도록 하는 노래는 어떤 것인가? 노래의 어둠과 빛과 색깔과 방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 視衆 – 우리의 얼굴이 바뀌는 순간을 우리가 목격하다.

친구I의 촬영(7월 20일)

친구I의 촬영(7월 20일)

‘視衆’이란 최근 마루카와씨가 보내주신 논문 < 중화권 영화 비교론(서설)- 토지개혁을 중심으로>에 나온 단어로 중국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한다. 냉전기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에는 토지개혁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토지개혁에 동반되는 것은 인민재판, 즉 ‘視衆(군중에게 보이는)“ 행위를 통한 대중에 의한 재판이다 노신은 ’시중‘ 즉 ’군중에게 보이는‘ 행위가 지닌 정치적 의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그것이 지닌 야만적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사형수로 아무도 모르게 국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은 대중 앞에서 죽는 것보다 쓸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이 쓸쓸하다는 말이 드러내는 정치성이 있다. 억울하게 죽을 지라도 심지어 대중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지라도, 대중이 그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이 갖는 정치성 말이다. 좋건 나쁘건 우리가 그 순간을 목격했고 함께 그 순간을 만든 당사자라는 것이 갖는 정치성은, 그 생산물에 대한 판단 이전에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자신들의 얼굴이 바뀌는 것을 한번이라도 목격했던 대중은, 각각이 지닌 그 선택과 발언의 경험과 무게감을 통해서 다시금 자신들의 얼굴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분노한 후쿠시마 대열 친구I의 촬영(7월 20일)

분노한 후쿠시마 대열 친구I의 촬영(7월 20일)

최근 올림픽에서 목격되었던 민족감정들, 독도와 센카쿠를 둘러싼 영토 문제, 그리고 15일 좌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데모에 대한 우파들의 탄압, 20일 도쿄 긴자(銀座)에서 열린 올림픽 메달리스트 환영 카퍼레이드에 50만명이상이 몰려들었다는 보도 등은 ‘포스트 냉전’이란 말도 신문지상에 불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논의들은 늘 뭔가 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이 우리를 흥분시킬 때 조차도 역시 우리는 독도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은 미디어를 통해서 ‘본다’ 그것들이 그 순간들이 우리들 앞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각각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을 목격하고 그 얼굴을 다시금 바꿀 순간들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어쩌면 변화무쌍한 이행의 순간들을 멈추지 않는 것, ‘視衆’의 감수성을 변화무쌍한 루트를 통해서 예민하게 만들어가는 것이지 않을까?

모여든 사람들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모여든 사람들 (7월29일 인간사슬) - 친구 I 촬영

끝으로 이번에 한국에서 만난 선배가 내게 해준, 이행을 멈추지 않는 힘에 대한 비밀 한가지를 모두에게 누설(漏衆)하려고 한다. 우리가 왜 망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지속할 수 있었는지를 물을 것. 우리가 얼마나 오래 예민한 異行을, 視衆을 漏衆을 지속할 수 있을지 물을 것.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라는 외침이 저 멀리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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