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주민 등록이라는 것 자체를 묻는 작업에 대한 몇 가지 우왕좌왕하면서 쓴 메모 – 김임만 감독 <가마가사키 권리 찾기>를 보면서

- 가게모토 츠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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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 인디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재일조선인 다큐 작가인 김임만 감독의 <가마가사키 권리 찾기>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나는 이번에는 이 다큐영화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이 때 우리란 누구냐면 나 같은 한국거주 일본인, 한국에 사는 한국인, 한국에 사는 재일조선인, 혹은 또 다른 여러 입장의 사람들을 포함한 아주 애매모호한 <우리>이다. 즉 어떠한 정치적 신분을 떠나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입장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주로 다루어진 것은 선거권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선거권에 문제를 아주 근본에서부터 잡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선거권 문제에서 빠져나오는 다양한 문제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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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좋다고 생각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 이번에 한국에 대통령이 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선거 때문이며, 일본에서 저런 총리를 만들어 버린 것도 역시 선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에 정치라는 것을 생각할 때, 정치를 선거만으로 한정해 버리면 안되며, 선거 밖으로 정치를 넓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제중 하나는 선거권이다. 영화에서 일본국적이 가질 수 있는 권리로서의 선거권이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 활동가들도 <국민>이라는 용어를 많이 썼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정치를 선거권에 한정시키는 것 따위가 결코 아니며 더욱 근본을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 점을 우리는 최저한 공유해야 한다.
영화의 무대인 오사카 가마가시키는 일본 최대의 인력시장이다. 지금은 불경기이며, 그리고 일용직 노동자의 고령화도 있기에 노숙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요새는 일용직 노동자를 인력시장에서가 아니라 휴대폰으로 직접 찾는 경우도 있으며, 인력사장으로서의 가마가시키의 모습은 과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물론 나도 옛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옛날 가마가사키 모습을 본 적이 있을 뿐이지만). 일용직 노동자들은 날마다 고용되고 날마다 해고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면서 사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그들은 기술자이기도 하고 다양한 면허증을 갖고 있고, 면허증이 없으면 현장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면허증을 받기에는 주소가 필요한데 정착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등록은 놓아야 할 곳이 필요하다. 그런 노동자를 위해 가마가사키 지역 안에 있는 가마가사키 해방회관이라는 건물 안에 3300명의 노동자가 주소를 두고 있었다. 그래야 면허증을 받을 수 있고, 편지도 받을 수 있고, 선거도 갈 수 있었다(선거는 일본국적을 가지는 사람에 한정되지만). 사실 일본 경제를 세운 사람은 동경대학교 출신의 관료가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일본의 에너지 상황이 바뀌면서 석유를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한 후 탄광산업이 쇠퇴하려는 무렵, 탄광에서의 노동자들은 일터를 얻기 위해 가마가사키를 비롯한 인력시장에 모였다. 여기에서 탄광노동자라는 말을 썼지만, 그들을 좀 더 거슬려 올라가면 조선인 강제동원 강제노동의 역사와 바로 연결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의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것은 가장 억압을 받은 사람들이 지녔다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일용직노동을 근본에서 파악하기에는 조선인 강제노동도 포함된 하층노동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일련 흐름이 지금은 원자력발전소에서의 피폭노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흔한 일이기 때문에 이해하기에 어렵지 아닐 것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세운 사람도 학교 초대 총장이 아니라 그러한 건설노동에 종사한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러한 노동자의 주소는 가마가사키 해방회관이었으며, 행정 쪽도 그것을 계속 인정해왔다. 그것이 어떤 신문사가 이상하다도 보도해서 일본 전체로 터졌다. 결국 해방회관에 주소는 말소되었으며, 일본국적을 가지면서 선거권이 상실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커다란 문제이다.
일본은 1920년대에 치안유지법이라는 한국에서 치면 국가보안법에 상당하는 악법과 동시에 남자보통선거권이 성립되었다(여성에게는 일본 폐전 이후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치안유지법은 45년10월까지 폐지되지 않았으며 45년의 일본이 폐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범으로서 감옥에서 죽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지는 보통선거가 이번 주소 말소 때문에 깨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혁명이 없었다. 45년의 일본 폐전으로 인해 헌법은 새로워졌지만 혁명이 일본에서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 선거정도 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선거밖에 없는 아주 협소한 정치가 일본에는 있어왔으며 일본인의 상상력도 그것에서 제한을 받는다. 물론 그 선거 밖에 모르는 정치적 상상력의 결여를 부수려고 다양한 운동이 있었다. 예를 들어 60년의 일미안보조약 연장반대 시위, 당시 일본에서 가장 핵심적인 산업이었던 탄광노동자들의 파업, 전공투, 공해반대운동, 반원전시위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징병제도가 없기 때문에 주민등록이 한국처럼 빡빡하지 않고 주민등록증도 없다. 그래서 주민등록의 말소란 사태가 본인이 살아있음에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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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부각되는 것은 <조선>이다. 즉 선거권이 없는(일본국적을 갖지 않는) 제일조선인이 선거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위에서 계속 써온 선거제도를 단순히 긍정할 수 없다는 식에 단순한 선거 이해는 무너질 수밖에 없어진다. 일본정부는 80년대까지 재일조선인을 다른 외국인과 같은 외국인으로 취급해왔다. 52년의 일본 독립으로 인해 재일조선인의 일본국적은 정지되었다. 65년에는 남쪽의 정부와의 한일조약 체결과 동시에 한국국적을 가지는 재일조선인에게는 영주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한국국적을 가지지 않는 재일조선인 혹은 한국국적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재일조선인에게 영주권이 부여된 게 80년대가 들어서야 겨우 부여된 것이었다. 재일조선인은 남북의 분단국가가 성립되기 전에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가지의 어누 한 쪽을 택한다는 식의 사유는 아주 협소한 것이며, 잘못한 이분법이며, 그러한 물음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한 인식에 기인한다. 게다가 일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국교가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 나라의 국적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조선인 중에서는 한국국적도 일본국적도 가지지 않는 자가 있다. 그들의 외국인 등록증의 국적란은 지금 국가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조선>이 쓰여 있다. 이들의 영주권을 일본정부는 80년대에 들어 겨우 인정했다. 이는 베트남에서 난민이 많아지면서 베트남난민을 난민으로 인정하기 위해 일본정부가 겨우 80년대에 들어서 난민조약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즉 국제적인 압력이 있었기에 일본정부는 한국국적을 가지지 않는 재일조선인에게도 영주권을 부여했다(이것저것 경과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쓸 필요가 있는데, 길어지는 것도 그러니까 이 정도로 하겠지만 이 글만 가지고 이해하면 안된다는 것 정도를 적어 놓겠다). 재일조선인에게 부여된 일본사회에서의 권익은 일본국적을 가지는 자가 가질 수 있는 그것과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었으며, 그것을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목인(혹은 문제 자체를 모른다는 식의 목인)하에 인정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어떤 일본공산다의 활동가가 <재일조선인도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꾸면 일본사람으로서 같이 운동할 수 있는데>라는 놀라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비교적 비판적인 공산당의 관계자도 이 정도의 인식밖에 없었기에 차별이 차별이라는 것조차 알 수 없는 체 지금까지 공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상호적인 차별이 있어왔다(물론 일본공산당은 지금 한국이나 중국과에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국민주의적인 논의를 하고 있으며 보통 우익보다 우익적인 입장에 있다). 지금 가장 어이없는 차별은 민족교육기관인 조선고등학교를 고등학교 무상화법에서 제외하려는 것이며, 다른 외국인 고등학교는 무상화가 되었음에도 일본사회가 조선학교 배제를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공적으로 아주 뻔뻔스럽게 차별을 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당연히 재일조선인에게는 일본에서의 선거권이 없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면서 명시화하고 싶었던 것은 재일조선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기만 하면 차별이 없어진다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영화는 일용직노동자의 권리가 아주 뻔뻔스럽게 삭제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이 뻔뻔스러움은 규탄하는 운동 쪽에 대해서 <나는 제일조선인인데 선거권이 없다!>고 항의하는 어떤 아저씨가 나타난다. 거기에서 영화는 일용직노동자와 재일조선인을 교차해나간다. 물론 오사카는 제주도 사람이 많으며, 가마가사키에도 재일조선인이 많다. 당연히 현실로 보면 두 가지는 교차할 수밖에 없는데, 선거권만을 초점화한다면 모둔 사람이 일본인으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영화가 되버리는데, 이 영화는 그러한 봉합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영화는 선거권과 일본국적이라는 틀을 파괴해 나간다. 그리고 동시에 <재일조선인들의 긴 투쟁>과 <선거권을 다루던 일용직노동자의 영화>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면서 교차해 나가며 연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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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는 노숙자 지원 운동, 특히 영화에서 나오는 활동가들은 선거권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가시화된 문제가 선거권에 관한 것이었으며, 주민등록을 못했기 때문에 생길 불이익이 있었기에 운동의 초점이 거기에 갔다는 것이다. 더욱더 일용직노동자에 대한 지원운동이나 노숙자지원운동에서는 인도주의 같은 생각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된다. 나도 몇 번 체험해봤는데 거기에 가면 인도주의적인 주체는 무너진다. 왜냐면 자기를 물어야하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으로 자기의 주체를 묻는 일이 없이 단순이 <불쌍한 사람에게 지원을 해준다>식의 생각은 무너진다는 일이다. 이는 현장에서 삶에 근본이 있기 때문이다. 야쿠자, 길거리에서 죽는 사람, 인도주의적인 지원자를 도발하는 자들, 등등,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주체를 안정하게 유지할 수 없는 현장이며 그러한 곳에서 운동할 사람들은 아주 힘든 상황을 많이 본 사람들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만으로 된다는 식의 생각은 결코 없다. 초점은 선거권을 부여하라가 아니라 선거권을 포함한 빼앗긴 권리를 다시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나오는 다시 찾아야 할 권리란 결코 시민적인 주체를 유지해주는 권리가 아리라, 시민적인 주체를 넘어서기 위한 싸움의 과정에 있는 권리들이다. 즉 빼앗긴 권리는 다시 찾아야 하지만, 그 권리를 얻으면 운동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운동이 운동인 이상 정지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시민적인 주체를 획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정이며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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