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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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2년 반이나 흘렀다. 그동안 대체로 여행자의 자세로 이 도시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단편적인 경험의 인상들을 이 지면을 통해 이야기해 왔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소극적이고 일면적인 인상의 파편들에 불과했다.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이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 혹은 다른 방식, 다른 속도로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에 있는 그린마켓 풍경
    ‘오늘은 또 뭘 먹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끈질기게 유전되는, 주부들의 오랜 근심거리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 간 식탁 위에까지 골고루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세계경제의 불황과 먹거리의 생산, 유통의 문제는 ‘뭘 먹나?’에 이어 ‘어떻게 하면 싼 값에 좋은 재료를 선택하나’라는 근심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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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한 삶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위한 휴식과 운동, 그리고 먹거리를 향유할 만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최상위 1%에 부가 집중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미국의 사회복지제도는 제 나라 국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끼니를 거르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
  • 애완견을 데리고 강변을 산책하는 사람
    발터 벤야민은 어떤 도시를 잘 알기 위해선 그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그렇다. 도로의 표지판, 지도, 유명한 랜드 마크들에 의지하는 방문객에게 어떤 도시가 보여주는 건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무엇, 어쩌면 그 도시를 방문한 목적일수도 있는 유명한 지형지물, 딱 거기까지이다. 어떤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우리가 즐겨하는 행동은 유명한 건축물과 지역 그리고 먹거리를 찾
  • 퍼레이드를 즐기러 나온 커플
    뉴욕은 게이들의 도시다. 맨해튼 시내를 걸어 다니다 나도 모르게 눈길 한 번 더 주게 되는 훈남들 중 절반 이상은 동성 친구의 손을 꼭 잡고 있거나 얼굴에 ‘나 게이거든’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특히 뉴욕 게이운동의 성지인 스톤월(stone wall inn)이 있는 크리스토퍼 거리, 게이 바나 그들의 완구점이 모여 있는 첼시나 웨스트, 이스트 빌리지 쪽에서 만나는 사람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내에서
  • 뉴욕에 대한 첫 인상. 야경사진 찍을 때나 쓸모 있는 높은 빌딩과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낡고 오래된 아파트. 그리고 고도 비만인들이 제법 많다는 것과 의외로 거리에 백인들이 드물다는 것. 하긴 평일 대낮에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이란 관광객 아니면, 실업자일 확률이 높지. 혹은 그가 일용 계약직 육체노동자일 순 있겠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쭉쭉빵빵한 백인 뉴요커들은 다 어디에 숨었을까,
  • Met의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뉴욕은 박물관(혹은 미술관)의 도시이다. 도시의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성격의 박물관이야말로 이 도시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카드다. 그 카드는 뉴욕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온갖 상품들, 자극적인 쇼와 패션 아이템들과 가장 평균적인 입맛을 유지하는 음식들에 넌더리를 내며 이 도시를 싸구려가 아닌지 의심하는, 자칭 교양 있는 호사가들에게 넌지시 들이미는 회심의 패
  • 하이라인 파크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 왼편에 낡고 세련된, 다양한 시간대의 건물들이 보인다.
    공원은 어떤 공동체가 자신의 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화폐적 가치가 그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보여주듯, 한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잉여적 공간은 그 집단이 자신들의 부(화폐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를 과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 공원에서 사람들은 자유롭다. 누군가를 연주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또 누군가는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서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인의 행동에 대해 너그럽다.
    맨해튼 지도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센트럴파크다. 그 크기도 크기지만 전혀 미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정직하고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 때문이다. 그 직사각형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면, 같은 크기의 공원 12개 정도로 도시의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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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아케이드는 19세기 초반에 나타났다 백화점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상점들의 집합소였다. 각종 물품들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마주보고 길게 도열해있는 건물 위에 유리와 철근으로 천정을 만들어 씌운, 실내도 실외도 아닌 이 기묘한 공간은 당시 파리지엔들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이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은 이 독특한 공간에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20세기적 삶의 문화 현상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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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무채색이다. 어떤 도시도 고유의 역사성, 분위기, 정서, 인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런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도시 안에 있는 ‘비도시적인 것’들의 일부일 뿐이다. 회색의 빌딩숲, 어디선가 몰려왔다가 다시 어디론가 몰려가는 군중들,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는 자동차들, 지하철과 노숙인들, 번쩍이는 네온사인의 백화점과 상점들 사이사이에 별처럼 박혀있는 수입브랜드의 커피전문점과 햄버거 가게들, 그리고 그들 틈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작고 허름한 노점상들. 이
  • 이 건물의 3층에 “이본의 다락방”이 있다.
    여기, 맨해튼 웨스트 136번가. “이본의 다락방(yvonne’s attic)”에 몇 명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공부한다. 읽고, 쓰고, 번역하고, 외국어로 토론한다. 그리고 간소한 일상. 함께 밥을 지어먹고, 대화하고 산책하고 요가하고 장을 본다. 이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을 함께 나누기 위해, 불과 얼마 전까지 뉴욕의 맨해튼과 이타카, 그 옆의 뉴저지 그리고 서울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그들은 2011년 9월, 할렘의 한 오래된 아파트 3층에 둥지를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