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공원이 존재하는 예외적인 방식 두어 가지

- 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

공원은 어떤 공동체가 자신의 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의 화폐적 가치가 그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보여주듯, 한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잉여적 공간은 그 집단이 자신들의 부(화폐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를 과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이런 점에서도 뉴욕은 부유한 도시이다. 이 도시에는 크고 작은 유,무명의 공원들이 도시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중 몇몇은 그 주위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도시 혹은 그 지역의 경제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뉴욕시 전체에서 이러한 역할을 가장 활발하게 하고 있는 곳은 물론 샌트럴 파크이겠지만, 2009년에 개장한 하이라인 파크 또한 주목할 만 하다.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West 10th av.의 14st.부터 23st.에 걸쳐 있는(그리고 지금도 계속 보완 개, 증축 중인)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는 폐기될 뻔한 사물을 재활용하여 용도변경에 성공한 곳이다. 지금 온갖 계절 꽃과 나무 그리고 예술 조형물들이 어우러져 있는 이 가늘고 기다란 공원은 자동차와 빌딩 대신 소박한 야생화와 풀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세련된 도시의 보도 위를 걷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곳은 화물 기차들이 주로 다니던 철로였다. 하지만 운송수단의 변화와 도시계획의 결과 더 이상 화물열차가 도시를 통과하지 않게 되었고, 철도는 한동안 흉물스럽게 방치된 채 녹슬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하이라인 파크가 개장 했을 때, 그 녹슨 선로 위에는 꽃과 나무들이 시원스럽게 자라고 있었고, 그 주위는 뉴욕시내에서 가장 아방가르드한 공원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이 공원에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나온 이웃 빌딩의 사무원들, 첼시마켓에 장을 보러 나온 젊은 주부와 아이들 인근에 있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을 순례하러 나온 작가와 미술 애호가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구경하면서 뉴욕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로 언제나 붐빈다. 하이라인 파크는 공원이 사물의 재활용 혹은 공간의 용도변경으로 성공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가 쯤에서 공원 계단을 내려와 그대로 동쪽으로 애비뉴를 7개쯤 지나면 그래머시 파크에 도착한다. 맨해튼 시내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길인 파크 애비뉴와 렉싱턴 애비뉴 사이에 위치한 이 공원은 엄밀히 말해 공원이 아니라 개인소유의 마당이다. 공원 근처에 있는 몇몇 아파트 입주자들과 파크호텔 투숙객 그리고 예외적인 몇몇에게만 이 공원을 출입할 수 있는 열쇠가 주어진다. 그 열쇠는 매년 교체되고,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물어야 하는 벌금(?)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래머시 파크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맨해튼에 있는 모든 공원에 공통적으로 있는 어떤 인물 동상과 오래된 나무 몇 그루, 벤치와 잘 가꿔진 약간의 계절 꽃이 그곳에 있는 것의 전부이다. 이 모든 것들은 공원 주위를 한 바퀴 돌면 얇은 창살 사이로 다 들여다보이는 것들이다.

그래머시 파크는 1830년대에 부유층들을 위한 아파트를 지었던 업자가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원 비슷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뉴욕 시에서 구입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공간을 두고 어떤 계층의 특권을 상징하는 하나의 공간적 표현물이라고 의미화하는 것에 대해선 약간 망설여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현재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그래머시보다 비싸고, 이른바 상류층 인사들이 그래머시에 몰려 살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국토’라는 개념으로 묶여 있는 공적 공간들을 미국인들은 국가 건설 무렵부터 침탈 내지는 거래 가능한 공간으로도 동시에 인식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돈을 주고 몇몇이 폐쇄적으로 사용할 공원을 산다거나 개인적인 용도의 해변을 구입한다거나 하는 일은 대단히 낯설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법적으로 국가 소유인 땅에 집을 짓고 살다가 쫓겨나는 철거촌의 풍경들이다.

그래머시 파크에 대해서 미국인들은 특별히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소유의 관점에서 바라볼 뿐. 어쩌면, 제인 제이콥스의 말처럼 정말 문제가 많은 공원은 이런 차별적이고 과시적인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전혀 지나다니지 않고 앞으로도 결코 지나다닐 것 같지 않은 곳”인지도 모른다. 사용되지 않는 사물, 사람들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은 채 황폐하게 낡아가는 공지들을 도시 여기저기에 덧붙이고 있는 곳이 또한 바로 뉴욕이기도 하다.

덧.
그리고, 이 모든 공원들 중에서도 가장 예외적인 용법으로 OWS(Occupy Wall Street)운동의 성지가 되어버린 주코티 파크 혹은 리버티 플라자 파크가 있다. 작년 가을 점거 시위대들의 놀랄만한 행동에 잔뜩 짜증이 난 뉴욕 경찰의 방해가 만만치 않지만, 봄을 맞이한 뉴욕은 지금 다시 점거와 시위의 움직임으로 들썩이고 있다. 어쩌면 2012년 99% 운동의 성지는 리버티 파크가 아니라 유니언 스퀘어 파크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이라인 파크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 왼편에 낡고 세련된, 다양한 시간대의 건물들이 보인다.

하이라인 파크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 왼편에 낡고 세련된, 다양한 시간대의 건물들이 보인다.

Gramercy Park. Inside Gramercy Park itself. You need a key to get in.   그래머시 파크를 이용할 수 있는 아파트를 선전하고 있는 부동산 회사의 광고 사진 중.

Gramercy Park. Inside Gramercy Park itself. You need a key to get in. 그래머시 파크를 이용할 수 있는 아파트를 선전하고 있는 부동산 회사의 광고 사진 중.

뉴욕시에는 이렇게 버려진 공지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대체로 이러한 땅들은 가난한 이민자들이 사는 곳일수록 더 자주 눈에 띤다.

뉴욕시에는 이렇게 버려진 공지들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대체로 이러한 땅들은 가난한 이민자들이 사는 곳일수록 더 자주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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