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케이씨의 뉴욕인상기 2> – Limelight Market Place, 21세기 뉴욕의 아케이드

- 권용선(이본의 다락방 연구실)

 파리의 아케이드는 19세기 초반에 나타났다 백화점의 등장과 함께 사라진 상점들의 집합소였다. 각종 물품들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마주보고 길게 도열해있는 건물 위에 유리와 철근으로 천정을 만들어 씌운, 실내도 실외도 아닌 이 기묘한 공간은 당시 파리지엔들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이기도 했다. 발터 벤야민은 이 독특한 공간에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20세기적 삶의 문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백화점에 밀려 더 이상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사소한 역사적 건축물들을 일컬어 ‘상품들의 신전’이라 부르며, 그 속에 ‘자본주의의 원현상’이 숨어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그가 남긴 미완의 작업,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벤야민이 자신의 계획대로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뉴욕으로 건너와 ‘메트로폴리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곳에서 아케이드보다 더 흥미로운 대상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의 작업이 제법 의미심장한 것이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에는 벤야민이 주목했던 파리의 아케이드 같은 것은 없지만, 그가 아케이드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화폐가 신이며, 그 화폐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만 은총처럼 상품을 소유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것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도시에서 상품들의 신전은 더 화려하고 더 거대한 모습으로 매순간 진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맨해튼 첼시에 있는 ‘라임라이트 마켓’은 대단히 흥미로운 공간이다. 이 마켓은 원래 19세기 중반, 리차트 업존(Richard Upjohn)이라는 건축가의 손에서 완성된 작고 아담한 고딕양식의 성공회 성당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1970년대 초반 어떤 돈 많은 호사가에게 팔리기 전까지 그랬다. 약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 1983년 ‘limelight’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을 때 이곳은 더 이상 성당이 아니었다. 엔디 워홀이 주도한 오프닝 파티에 기웃거리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고, 그날부터 매일 밤 새로운 파티들이 열렸다. 그곳에 가면 술, 댐배(때로는 마약) 그리고 음악과 춤이 있었고, 마돈나, 에드 머피, 마이클 더글러스 등 유명한 연예인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2007년 클럽의 문을 닫기 전까지 그곳은 온갖 이국적인 문화가 잡거하는 뉴욕에서도 특별히 더 재미있는 밤 문화를 제공했다.

드물게는 어떤 건물에도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다. 2007년 5월 라임라이트는 ‘실내시장’으로 둔갑했다. 옷과 보석을 파는 가게들, 커피샾과 유기농 식료품점들이 복층 교회건물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는 이 건물에 들어서면, 어쩐지 기묘한 기분이 든다. 건물의 외관은 여전히 19세기식 교회이지만 성물들이 놓여있던 실내에는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 ‘라임라이트’에서 ‘상품들의 신전’이라는 말은 더 이상 수사가 아닌 것이다. 화폐가 최고의 권력이자 욕망의 대상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안식과 은총의 공간이다. 이 마켓의 사이트에 적혀 있는 문장 하나가 모든 것을 요약한다. “Limelight is less forbidding, more theatrical and more fun.”

벤야민은 각기 다른 유리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방법론을 발견했다. 하지만, 라임라이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상품들을 빛내주는 진열장의 일부일 뿐이다.

 

맨해튼 6 av. 20th st.에 있는 라임라이트 마켓의 외부. 19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의 모습 그대로이다

라임라이트의 실내. 십자가가 걸려있었을 본당 정면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마네킹들과 물건을 고르는 여인

  

응답 5개

  1. 케이말하길

    앗, 선생님.
    별고없으시죠? 제가 정신이 없고 게을러서 인사도 못드리고 왔습니다. 죄송해요. 언제 서울 가면 꼭 뵈요 ^^

  2. 여강말하길

    오랫토록 못뵈 계속 궁금해하다…. 누구에게 슬쩍 물었더니 ㄱㅁ타고, 뉴욕 갔다고.. 나만 몰랐었소. 좀 섭했소.
    반갑소. 잘 계시고 서울 들리면 내게도 연락 주시요.

  3. 김정선말하길

    권샘!

    잘 지내시는군요…
    이렇게 글로 만나게되니, 매우 반갑습니다…
    근황이 매우 궁금했었거든요…
    근데, 서울엔 안 오시나요?
    제가 미쿡 갈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은데…

    • 케이말하길

      안냥? 오랜만. 근황이 궁금하면 메일이라든가 트위터라든가 뭐 많잖아..ㅎㅎ 여름쯤 휴가 내서 한 번 놀러 오렴. 모두에게 안부 전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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