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나의 멘토 세자르-특허이야기

- 남창훈(면역학자)

세자르는 1984년에 단일 클론 항체를 만들어 내는 Hybridoma개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나는 그와 6개월 동안 같은 연구소 비좁은 3층 서로 마주 보이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할 수 있었던 행운을 맛보았다. 나는 저녁이면 Mowbray road를 동료와 함께 산책하며 무언가 열심히 토론하던 그를 몰래 뒤 따라 걷다 몇 블록 넘어 있던 집까지 기쁜 마음으로 달음박질 치곤 했다. 내가 박사과정동안 하던 일 (B cell somatic hypermutation)이 그의 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터라 사실 MRC-LMB를 오기 전부터 그를 만나는 것을 꿈꾸어 왔었다. 그는 끝 꼭지 부분에 두터운 천을 대고 꼼꼼하게 꼬맨 흔적이 있는 우산을 들고 다니곤 했는데, 어느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며 그 우산을 유심히 보니 낡긴 했지만 흠 하나 없이 고치고 고친 흔적이 보였다. 불현듯 그 모습이 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이 넘게 동일한 주제로 외길 연구를 하던 그의 모습이 그 우산을 통해 연상되었다.

그는 74세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한주 전까지도 실험실에 나와 두 사람의 연구원과 함께 실험을 했다. 하루에 한 두번씩은 그와 마주치면서 꼭 한번 내가 파리에서 했던 실험에 대해 토론을 해봐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같은 주제였지만 그가 주장하는 바와 아주 상이한 결과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토론이 아주 유익할 거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오던 길에 과묵하게 서있던 내게 그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여기 온지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여기 오기 전에는 어데서 무얼 했는가?” “사실 파리에서 학위를 받을 때 박사님과 같은 주제의 일을 했었는데 그 결론이 박사님의 의견과 상반된 것이어서 여러 저널들로부터 거부당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제가 쓴 논문 초고를 읽고 의견을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아주 반갑게 그러마고 대답했고 다음날 나는 깔끔하게 정리된 초고를 그에게 드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복도에 붙어 있던 노란색 부고를 보았는데 그가 어제 아침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거기 담겨 있었다.

그는 여러모로 나의 멘토였다. 하는 일의 성격과 관심 분야도 그랬고, 일을 할 때 보이는 낙천성도 그렇고, 과학 연구에 대한 가치 판단까지도 나는 그의 작은 흔적들을 소중히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아로 새기며 그 이후의 연구에 임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하곤 했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에 대한 컨트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샴페인을 따라 마셔라.”는 농담으로 피를 말리는 실험 마무리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집착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또 어떤 분야의 세미나든 늘 맨 앞자리에 앉아 아무리 그의 연구 분야와 거리가 있을지라도 꼭 두세가지의 질문을 던져 지칠줄 모르는 그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우리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만일 특허로 출원되었다면 그 댓가로 일년에 수천억을 거머 쥘 수 있을 법했던 Hybridoma제조방법에 대해, 그것이 오히려 특허로 출원되지 않아 왜 다행인지를 여러차례에 걸쳐 우리 동료들에게 말하곤 했다. 아래 글은 세자르가 “The Scientist”라는 잡지에 1993에 투고했던 글이다. 나는 지식이 공공재라는 생각을 그를 만난 후 지금까지 줄곧 하고 있다. 아래 글은 내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단초를 제공했다.

과학적 발견에 대한 특허는 불공정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특허로 출원될 법한 아이디어가 우리 머리를 스치던 최초의 단초들과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던 때를 기억한다. 그즈음, 대학이나 정부출연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그들의 아이디어가 특허감이 될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과학적 고려들에 의거해 일했었다. 당시 특허는 극히 드물었다.

근대 BT의 출현은 대단히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심지어 호기심에 근거해 일하고 있는 과학자들조차 “이것을 특허로 출원해야하나?”라는 질문을 새 발견이나 새 방법론이 실험적으로 성공할 때마다 던지게 되었다. 만일 이런 질문에 빠져 있는 과학자들에게 보다 뛰어난 사업적인 수완이 있었다면, 그나 그녀는 아마 실험 결과가 확실해지기도 전에 특허를 출원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미 특허를 출원하고 실험은 단지 그 다른 이의 특허를 증명하는데 쓰이게 될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다.

최근 유전자 염기 서열의 특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점들과 관련된 여러 가지 개발들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와 연관된 이슈들에 대해 주의깊은 눈길을 보내는 것이 과학 공동체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로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ICSU(International Council of Scientific Unions)가 염기 서열의 특허와 관련된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할 것에 대해 천명한 것은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한 좋은 출발이었다.

문제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나라들마다 서로 다른 특허원리에 대한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은 우선 발명인데 반해 유럽은 우선 특허 개념이다. 또한 미국은 유예기간 개념인데 반해 유럽은 비공개원칙 개념이다. 더 나아가 법률가들과 과학자들은 같은 용어들을 쓰지도 않고, 같은 기준에 의거해 말을 하지도 않는다. 무엇이 이전에 정립된 사실들(과학적 판단에 의거)로부터의 명백한 연장(extension)인지 하는 판단이 어느 순간 소설(법률적인 판단에 의거)처럼 재구성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특허로부터 얻는 또다른 혜택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극단에서는, 현재로서는 어떤 명확하고 구체적인 암시조차 내놓지 못하는 과학지식에서의 도약이 이후 개발이나 미래의 셀 수 없이 많은 특허들의 초석이 될 수도 있다. 체세포 교잡법이나 대장균 내의 제한효소 메카니즘등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둘 모두 이를 바탕으로 한 이후 기초 과학 분야의 진보가 제대로 예측될 수 없었고, 때문에 특허로 출원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것들이 없었더러면 오늘날의 BT는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따라서 특허는 기본적으로 불공정하다. 그러나 아마도 특허는 종국에 사회에 혜택을 입힐 수 있는 물건들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할 것이다. 특허가 없다면 기업들은 그와 같은 개발들에 요구되는 막대한 금액을 소모할 계획조차 세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특허와 관련된 공식에 새로운 변수 하나를 설정해야 한다. 그것은 BT분야에서의 다분히 중첩되어져 존재하는 특허들의 복잡성과 다중성이 새로운 물질에 대한 개발을 저해하는 등의 문제점들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 아주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특허라는 유령은 단지 과학공동체에 새로운 긴장감만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호기심에 의거한 연구에 대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기초과학 발전에 심각하고 원치않는 영향들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응답 3개

  1. 남창훈말하길

    덤님, 실감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 1월 정도에 본격적인 면역학 강의는 어렵더라도 1-2회 강의로 현대과학과 관련된 쟁점들에 대해 수유너머 분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서 논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말하길

    와우! 특허의 문제에 대해 과학자 내부의 생각을 이토록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다니…정말정말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특허에 대해서는 유럽이 미국보다 더 배타적이군요. 로얄티라는 개념의 기원에 대해 좀더 찾아봐야겠습니다.

  3. 남창훈말하길

    지금 보니 몇가지 설명 없이 적어 놓은 전문용어들이 눈에 띄는군요. 우선 BT는 생명공학으로 풀어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B cell somatic hypermutation 은 사람 몸의 spleen비장에서 항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뜻하는 전문용어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아주 엄격하게 조절되는 돌연변이 반응이 spleen 에 서는 아주 특이한 기작에 의해 초과다발생하게되며 이런 과정을 통해 외부에서 들어 오는 아주 다양한 항원들에 대해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일군의 항체를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 과정을 제어하는 시스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며 엄격합니다. 이 과정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주도하셨던 분이 바로 세자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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