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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칼럼

[마을 만들기 파트4-4]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마라!’속 ‘친구’가 친구에게-차별철폐 도쿄 대행진&9.23 액션 용서 못해!차별 배타주의-

- 신지영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게 아니다.

네가 서 있는 그 지점이 지평이다.

 

새로운 밤이 기다린다. (‹자서›, «경계의 시», 김시종 지음 유숙자 옮김, 소화, 2008, 13쪽)

 

* 아… 뭔가가 있다

8월 15일은 일본에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서는 자이도쿠카이(在特會)를 비롯한 과격 우파와 이에 대항하는 카운터 데모가 동시에 펼쳐질 것이었다. 음흉하게 스며드는 불편함이 아니라, 불꽃 튀기듯 부딪치는 힘들 어딘가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시즘에 대항하는 것은 ‘경계선 따위는 없다’는 추상성이나, 그것은 ‘지도 위의 선일 뿐이야’ 하곤 자기 삶과 분리시키는 태도가 아니라, 그 ‘경계선’이 복잡하게 형성되는 순간들을 보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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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의 유슈칸에 모여든 사람들
– 침략전쟁과 강요된 죽음을 미화하는 곳

그런데 14일 저녁 늦은 시각, 전화를 받았다. “저기, 집회 참여자들 중심으로 비상연락 중예요. 메일은 안 되고 전화연락만 돼요. 내일 집회할 건물 위층을 우파들이 예약했어요. 전야제 촛불집회는 우파들이 차로 밀고 들어오려 했다고 해요. 내일은 정말 위험할 것 같아요. 그래서 바로 회장으로 가지 않고 다른 곳에 모여 이동해요. 모이는 곳은 그 주변일텐데 아직 몰라요. 주최측은 참여자는 일본인으로 한정한다는 방침이예요. 그렇지만 판단은 지영씨에게 맡길게요.”/ “흠… 참여할게요. 어차피 말 안하고 있으면 구별도 안 되니까요.” 대답은 했지만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집회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식 참여자가 될 수 없다는 모순적인 상황 앞에 마주했다. 그러니 상황은 우파/좌파 뿐 아니라 외국인/내국인 뿐 아니라, 아… 뭔가가 있다. 불명확한 공포는 그렇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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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위안부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쓴 완전 거짓말 플랜카드

 

국가가 대중들 사이의 불안과 대립을 이용하여 국가/대중의 전선을 흐려 놓고, 식민지배 책임을 은폐함으로써 대중을 공범으로 삼아 대중을 조정할 빌미를 얻는 곳, 은폐의 공범관계를 거부한/거부당한 자들에게는 내면화된 공포가 다시 그들 사이의 분열을 키우는 곳, 이곳은 현재 그러한 곳이다?! 전화를 받고 떠오른 장면은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한 집회였다. 그들이 집회 장소까지 안전하게 올 수 있도록 몇 명 친구들은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그들과 동행했다. 동양인끼리야 말하지 않는 한 같은 민족으로 보이지만 그분들은 겉모습에서부터 달랐다. 그때 보호받는 입장이 되었던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 보호받으며 집회하는 느낌 vs 할머니의 빨래집개 플랜카드

<8.15 반 야스쿠니 행동(http://13815a.blogspot.jp/)>은 매년 8월 15일에 열린다. 우파의 공격이 심하기 때문에 데모 행렬을 경찰이 싸고 한국식 사수대 같은 것이 내부를 다시 한번 싼다. ‘보호받는 대상’을 만들어내는 ‘사수대’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당장 경찰과 사수대가 없으면 폭력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다. 데모란 게 원래 범람하며 규칙을 깨는 힘인데 보호받는 느낌이 영 석연치 않다. 그럼에도 매년 참여하려고 하는 이유는 다양한 전선들 및 각각의 욕망들과 직접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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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드는 우파, 저지하는 경찰

아베 정권 개헌 움직임,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일을 ‘주권회복의 날’로 담론화하려는 움직임, 하시모토의 위안부 발언, 아소의 나치발언. 심해지는 우경화에 반대하여 올해의 슬로건은 “거부! 아베정권 역사인식을 묻다” 였다. 반 야스쿠니 행동은 곧 정부비판의 성격을 띠는데 올해는 그 측면이 보다 부각된 것이다. 아침 일찍 친구와 만난 나는, 매년 펼쳐지는 노병들의 코스프레를 예상하며 야스쿠니로 갔다. 그런데 야스쿠니에 도착하곤 깜짝 놀랐다. 이렇게 사람들이 잔뜩 모인 8월 15일의 야스쿠니는 처음이었다. 코스프레 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 사람들 사이에 낑겨 자동적으로 움직여졌다. 방사능과 자연재해가 야기한 갈 곳 없는 불안들이 야스쿠니로 집결한 듯했다. 전쟁은 과거가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집회도 순조롭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어 일정을 하나 취소하고 조금 빨리 <반 야스쿠니 행동>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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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들의 코스프레, 그 젊은 날의 향수도 전쟁을 미화한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어슬렁 거려도 사람들의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예정된 장소 한층 위엔 욱일승천기와 히노마루가 걸려 있고, 건물 주변엔 사복경찰과 우파들이 모여 있어 다가가기 두려웠다. 그런데 겨우 전화 연결된 친구는 이미 집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 있나? 등등. 헤매다 못해 함께 간 친구가 말했다. “그냥 들어가 보면 안돼요?” 용기를 내 건물로 가니 아무렇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고 이미 모두 모여 있었다. 나는 내가 만든 공포에 속았던 것이다. 갈 곳 없는 불안이 불명확한 공포를 불러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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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등장하는 여우 – 히노마루의 빨간 부분을 도려내고 행진했다

집회 참여 인원도 우파들의 규모도 올해가 사상 최대였던 것 같다. 또한 올해처럼 경찰이 열심히 지켜준 것도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수세에 몰린 국제 정세를 의식한 듯했다. 그러나 내게 이번 집회는 주눅 든 마음과 공포를 햇볕에 말리라고 촉구하는 내밀한 퍼포먼스 같았다. 아마도 옆에서 함께 걷던 할머니 덕분이었으리라. 집회 시작당시 마스크에 모자를 쓴 나는 긴장상태였고 ‘플랜 카드 들어 주세요’라는 말에 눈감았다. 플랜카드를 드는 것은 위험하다. 공격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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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집개 플랜카드를 든 할머니

그런데 허리가 꼬부라져 키도 몸집도 딱 내 절반인 할머니는 폐품을 빨래집개로 연결한 플랜카드를 들고 주스로 영양을 보충하면서 걸었다. 꽃 달린 모자를 쓰고 동네 산책하듯이. 망언을 퍼붓는 사람들과의 날카로운 아이컨텍, 과장되는 두려움, 보호, 대립들. 그 사이로 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녀는 누구일까? 일본인? 재일조선인? 한국인? 아니, 저렇게 작아지고 나이가 들고 성도 정체성도 아랑곳 않게 되는 건 얼마나 강인한 무기인가!

 

* 사이좋게 지내자! vs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마!

 

요 며칠 사이에는 차별과 배타주의에 저항하는 데모가 연속해서 열렸다. 9월 22일에는 <People’s Front of Anti-Racism> 주최로 <차별 철폐 도쿄 대행진(http://antiracism.jp/march_for_freedom, 이하 행진)>이, 9월 23일에는 <차별 및 배타주의에 반대하는 연락회> 주최로 <용서 못해! 차별 배타주의 9.23 액션(http://noracismnodiscrimination.blogspot.jp/, 이하 액션)>이 열렸다. 나는 <액션>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 듣자하니, <행진>에는 1000여명 정도가 모였고, 작가, 음악가, 교수 등 각층의 메시지가 쇄도했으며 집회 포스트는 각지의 인문과학 서점, 소규모 카페와 공연장 등에 놓여 졌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과 워싱톤 행진에 존경과 연대를 표시하는 의미로 양복 입은 브라스 밴드가 출현했고, 댄서와 디제이를 태운 사운드 카가 울려 마치 축제 같았다고 한다. “인종 국적 젠더 그 밖의 편견을 담은 범주에 따른 모든 형태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취지를 담은 <행진>에는 외신들도 관심을 기울여 한국에는 오사카에서 6일간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재일조선인 3세 이야기가 보도되기도 했다. 생각해 보라. 보통 연대 메시지는 ‘투쟁!’ 정도로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행진>에 도착한 메시지들은 차별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담은 아름답고 긴 문장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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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파 변호사 아사노씨 – 어김없이 나타난 도움을 주는 분

<액션>은 조촐했다. 모인 곳은 구석졌고 나이도 지긋한 분들이 많았고 플랜카드, 깃발, 구호도 전통적이었다. 산야의 깃발이 그 어떤 깃발보다 낡고 컸다는 점만 지적해 두자. 그러나 큰 물결 뒤에도 남겨진 다양한 힘들을 이 집회에서 느꼈다. 선동문은 “조선인, 한국인을 죽여라!”는 폭언이 판을 치는 상황 속에서 여기에 사는 사람, 일하는 사람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인종차별 정책을 용서치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거리에서 외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쓰고 있다. 데모 루트가 코리안 타운인 신오쿠보를 통과한 것은 이런 의도였다. <액션>은 2011년부터 매년 9월 23일에 열리는 차별 배타주의 반대 집회로 지속적인 “다문화 공생과 살 권리를 둘러싼 투쟁의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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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교육!

그런데 이 두 집회 참여자들 사이에는 입장 차이도 있었다. <액션> 참여자 중 <hate speech 에 반대하는 회> 회원들은 <행진>에 참여해 운영스텝의 허락을 받고 삐라를 돌렸다고 한다. 그러자 정장을 입은 대여섯명의 남자들이 다가와 “시끄러 바보야! 쓰레기들! 허가증 내놔!”라고 소리를 지르며 마이크를 뺏으려 하고 메가폰의 코드를 빼고 팔을 움켜잡거나 했다는 것이다. 그 남자들은 8월 15일의 <반 야스쿠니 행동> 때 자이도쿠가이와 함께 방해공작의 선두에 섰던 집단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전선을 형성했기 때문에 안면이 있었다. <hate speech…>측은 이런 자들을 용인한 반차별 운동에 과연 미래가 있을지 논의하자고 호소했다. 대중 집회 속 우익을 용인할 것인가 하는 논의는 2011년의 재해 이후 화두로 떠올랐다. 탈원전 집회에 욱일 승천기나 히노마루가 등장해 다툼을 야기했다. 일본의 레이시즘이 재해 이후 대중의 불안을 관리하려는 국가 선전으로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hate speech..>의 지적은 타당성을 지닌다. 반차별 행진이 관제 다문화주의식 동화나 제스츄어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참가를 추구하면서도 대립선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를 끄는 것은 각각의 슬로건이다. <행진>의 슬로건이 “사이좋게 지내자”로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있다면, <액션>의 슬로건은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마”로 대립선이 명확하다. <행진>이 1963년 마틴 루터 킹의 연설 “I have dream”과 워싱턴 대행진을 잇는다면, <액션>의 포스터에 씌어진 No Pasaran는 스페인 내전의 반 파시스트 연합의 구호 “그들은(파시스트들은) (이 전선을) 통과할 수 없다(No Pasaran!)”를 잇는다. 킹 목사의 연설이 “과거에 노예로 살았던 부모의 후손과 그 노예의 주인이 낳은 후손이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형제애를 나누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는 꿈”을 역설한다면, 스페인의 여성 운동가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파시즘에 대항해 싸우기를 촉구하며 외친다. “인민전선이여 영원하라! 모든 반파시스트 연대여 영원하라! 인민들의 공화국이여 영원하라! 파시스트들은 지나갈 수 없다! 그들은 통과할 수 없다(No Para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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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Pasa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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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참여했던 우카이 선생님
– No Pasaran이라고 씌어진 팻말을 들고 있다.

 

*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마’, 속 친구의 친구는 누구인가?

<액션>은 언어표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포스터를 보자. “증오로 가득찬 슬로건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다. 이것을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폭력이지 않을까?” 슬로건은 한국어, 중국어, 방글라데시어, 영어로 번역되어 플랜카드에 실렸다. 한국어로 번역된 구호들은 네이티브가 아니어서 더 매력적이다. “외국인을 차별하지 마라! 살아가는 권리에 국경은 없다! 우리 친구들을 때리지 말라! 내 친구에게 손 대지 마!” 살짝 엿본 작년 12월 16일 회의록에서 그들은 말한다. “퍼포먼스에 퍼포먼스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계속 지속되는 우리들 땅의 끔찍한 상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든 해보자고 여기에 모인 거잖아요? 비록 무력한 말일지라도 희미한 소리일지라도 우린 낼 수 있어요. 소리의 연대를 구하는 우리들의 싸움도 바로 그 지점에 있지 않겠습니까?” “슬로건에는 주의해야 한다. -중략 등록상표에는 조심해야 한다.” 이 논의로 선택된 슬로건이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마”였다. 이 구호는 프랑스의 극우파들에 의해 외국인들이 살해당하는 정황 속에서 나온 것인데, 그만큼 현재 일본의 파시즘을 우려하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은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을 살해했던 역사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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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된 플랜카드

그러나 나는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말”라는 슬로건에서도 ‘보호받는 자’로서 참여하는 듯한 이물감 느꼈다. 최근 우익의 타겟은 재일 조선인과 한국인을 향해 있어서, 나는 이 슬로건의 발화자는 될 수 없고, ‘이야기되는’ 친구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신오쿠보를 지날 무렵 주최측은 슬로건을 한국어로 외치자고 제안했다. 떠듬거리는 한국어로 “내 친구를 때리지 말라” “차별에 반대한다.” “살 권리에 국경은 없다”라고 외칠 때, 이 구호 속 ‘친구’인 신오쿠보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사실 슬로건을 듣는 사람들은 차별받는 당사자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구호는 그들을 향한 것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구호를 한국어로 외치는 행위는 그 소리를 듣는 코리안 타운 사람들=친구들의 반향을 통해 되돌아 와 결국 발화자에게 외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반향 속에 뭔가가 일어났다. 친구들과 우카이 선생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외치자, 내 발음은 그들의 속도에 맞춰졌고 어렵게 움직이는 그들의 근육에 따라 변형되었고, 점차 이곳은 한국이고 그들이 외국인인 듯했고, 그들이 슬로건 속 ‘친구’가 되어가는 듯했다. 이 슬로건은 나를 ‘친구’에 고착시키는 게 아니라, 말하고/말해지는 위치를 교란시켜 더 많은 ‘친구- 소수자’들과 연결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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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동지 고바야시의 죽음을 듣고
(중국어 일본어로 씌어 있다)

일본과 중국 사람들은 미래의 형제자매입니다.

자산계급은 사람들을 사칭하고

사람들의 피로 경계선을 그리고

지금도 계속 그리고 있다.

그러지만 무산계급과 그 선구자들은 피로 그것을 계속해서 씻어내 왔다.

-노신 <동지 고바야시의 죽음을 듣고>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차별 반대, 추방 그만둬!”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 집회에는 야숙자와 장애자 분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그중 한 분이었다. ‘차별’과 ‘추방’이 선창인데 한결 같이 강하게 외치니, 대응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마도 차별받은 아픈 기억이 있는가보다 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차별의 대상은 외국인만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두 명이 한조가 되어 걷는 장애인들과 야숙자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장애인도 야숙자도 그 이야기되는 ‘친구’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껏 여유로워져서 생각했다. 발화자가 아니면 뭐 어떤가. 이야기되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 분들이 끊임없이 외치던 구호  “차별 반대 추방 멈춰라!”

이 분들이 끊임없이 외치던 구호
“차별 반대 추방 멈춰라!”

 

* 타이완 원주민들의 8월 15일 – 대체 8월 15일이 뭐야?

이번은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맞이한 8월 15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점차 ‘어떤’ 망각을 욕망하게끔 된다. 아니, 다른 식의 기억을 욕망한다고 해 두자. 8월 16일에는 타이완으로 갔다. 타이완의 8월 15일은 한국이나 일본과 사뭇 달랐다. 8월 15일은 한국에서 “식민지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고 일본에서는 스스로의 피해의식을 고조시키는 국치일이거나 전후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 두 해석 모두 8월 15일 천황의 옥음방송을 기점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타이완에서는 독립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문 «自由時報» 에도 작게 위안부 문제 해명을 촉구하는 기사가 실렸을 뿐이었다. 올해는 타이완에서도 8월 15일에 전례 없이 과격한 반일 시위가 열렸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감각으로 광복절은 10월 25일이다. 일본 식민지배에서 다시금 중화민국의 지배에 놓이게 된 이 정황을 타이완인들은 “개가 가니 돼지가 왔네”라고 표현한다. 그러니 10월 25일이 쌍수를 들고 기뻐해야 할 날도 아니다.

광복절보다 이 시기 화제가 된 것은 8월 18일 원주민들의 토지투쟁이었다. 언어 장벽으로 더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정부가 원주민의 토지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에 대항하는 집회라고 했다. 그런데 식민지배와 백색테러를 겪은, 이른바 주권권력의 쓴맛을 제대로 본 이 땅의 사람들은 그럼에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 TV에서 본 집회는 과격했고, 바닥과 건물 가리지 않고 그림과 글자를 낙서했다. 무엇보다 구호였다. “내일, 정부를 부순다(明日拆政府)” 拆라는 동사는 해체하다 헐다 부수다 그리고 (오줌 등을) 배설하다 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9월 중순 1923년 관동 대지진 학살로 죽은 조선인들이 공식 기록보다 3배 많은 2만 3058명이라는 자료가 발표되었다고 경향신문이 전했다.(강효숙 교수, 동북아 역사재단 심포지엄) 관동 대지진 당시에 퍼져간 루머는 경찰에 의한 것이었을까? 아니며 갈 길을 잃은 대중들의 욕망이 몰려든 탓이었을까? 판단할 수 없다. 단지 광복절은 단일 민족 국가의 독립을 확립하고 ‘발화자’만이 힘을 갖는 날이 아니면 좋겠다. 오히려 “내 친구에게 손대지 마”라는 구호 속 ‘친구’가 공포정치에 지레 겁먹지 않고 또 다른 친구를 부르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부르고…, 끊임없는 ‘친구’를 부르는 형식을 통해서 광복절이 기념되면 좋겠다. 그러니, 8월 15일에 만났던 빨래집개 플랜카드 할머니는 누구의 친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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