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프레카리아트’에서 생각난 것들

- 가게모토 츠요시

위크리 수유너머에 실릴 기사를 써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했던 것은 과연 어떤 독자가 이 글을 볼까? 라는 것이었다. 아마 일본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재밌게 쓰면 그만한 게 없을 것이다. 일본의 이야기를 하면 될 텐데 한국에 있어보니까 요새 일본에서 재밌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그러니까 한국에 있으면서 문맥 없이 생각하게 된 것을 아웃풋을 할 샘치고 즉흥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독자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 일본 문학연구자가 그런 말을 했다. ‘독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필자의 책임이 커진다’. 너무 중요한 말인 것 같다. 대학 시절에 샐 수 없을 정도로 쓰고 만들었던 치라시도 몇 백 장 밖에 인쇄를 하지 않았지만 참 열심히 썼다. 물론 그렇게 쓴 치라시도 읽는 사람은 그리 많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치라시의 문구의 위해 친구들이랑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논의를 했다. 치라시는 읽고 나서 바로 쓰레기통으로 가는 운명이다. 버림을 당할 것을 열심히 만들었을 때의 열기가 치라시에는 있다. 그러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치라시를 좋아한다. 한국어도 치라시를 통해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라시의 문구에는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의 글 보다 책임감이 있을 때가 많다. 그리고 어떤 상업적인 치라시라 하도라도 치라시를 주고받는 순간의 만남에 어떤 무엇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무조건 치라시는 받아 다니다. 한 장의 치라시처럼 무언가를 써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본제로 들어가야 한다. 몇 일 전에 프레카리아트 운동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는 이 낯선 말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대학교시절에 나타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아마 2005년 겸인데 ‘임펙션(IMPACTION)’이라는 일본의 운동잡지에서 프레카리아트 특집이 나왔다. 내가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에 처음에 접했던 게는 그 잡지를 보면서였다. 잡지의 좌담회나 논문을 보면 프레카리아트라는 게 뭔가 중요한 말인 것같이 보였다. 그렇지만 굳이 이 말과 개념을 사용해서 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그 잡지에 대해서 친구들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잡지를 읽던 친구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우리를 표상할 때 쓸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잡지를 읽지 않던 친구는 프롤레타리아트 같은 기존의 개념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따지는 그런 논의를 언청나게 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나는 2005년에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네그리 하트의 ‘제국’에 나오는 ‘마르치츄드’라든가 낯선 외래어를 많이 접하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논의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면서 자기 스스로도 논의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고, 옆에서 소주나 일본술의 대병을 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술을 마시다 보니까 잠이 와서 논의의 자리에서 자주 잤다. 새벽에 잠이 깨면 아직 친구들이 논의를 계속했었을 경우도 있었다. 한번 무슨 집회인지 기억이 없지만 치라시에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 후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은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 경험에서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타자에 대해 호소할 때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 이유를 밝혀야겠다.

우선 말해야하는 것은 세계화가 진행이 되면서 불안정한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도식을 기반으로 해서 프레카리아트 문제를 논의한다는 식의 구도가 있다. 불안정노동자의 증가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좀 더 봐야하는 게 있지 않을까. 무슨 말이냐면 불안정노동은 늘어났을 뿐이지 옛날부터 계속 있어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정규직이었던 남자가 비정규직화되면서 비로소 불안정노동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안정한 노동형태는 주로 여성들이 해왔던 노동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일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같은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사한 점은 많을 것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진 후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했다. 그것을 지탱했던 사람들은 양복을 입고 회사에 다니던 정규직 아저씨나 기술자들이라고 말해왔다. 기업전사(企業戰士)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오사카에 있는 일본최대의 인력시장인 가마가사키에 가면 일용직의 노동자들이 나 같은 학생에 대해 ‘너희들이 다니는 학교는 총장이 세운 게 아니야, 내가 만들었지’라는 말은 많이 들게 된다. 사실 일본의 경제 발전은 언청난 불안정노동자를 필요로 해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발전의 상징같이 보이는 정규직 회사원은 그러한 불안정노동자를 필요로하는 전체적인 구조의 위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까지의 일본사의 수업의 영향인지 혹은 아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간에 60살까지 같은 회사에 다니며 양복을 입으며 날마다 전철을 타고 출근하는 아저씨들이야말로 일본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가마가사키의 노동자의 말은 내가 가져온 지식을 반전시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한 상징적인 아저씨들이 비정규직화되면서 겨우 비정규직의 문제가 문제로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닐까. 누가 아이를 키워왔는 지 누가 설거지를 해왔는지에 대한 물음부터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안정노동 혹은 노동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노동은 있어왔고 운동도 있어왔다. 가마가사키에서의 일용직 노동자 운동이라든가 여성들의 운동이라든가 장애인의 운동이라든가 그러한 운동들이다. 나도 역시 비정규직의 문제화와 동시에 학생으로서 가질 만한 ‘취직할 수 있을까’는 불안을 가져본 적이 있다. 그 불안에 대해서는 프레카리아트라는 말보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비주류의 운동에서 시도되어온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취직을 하지않고 사는 방식’아라는 연속 강연회도 했다. 강연회라고 하면 훌륭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대학 졸업 후 비정규로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식이 모임이다. 기억하기에는 신체장애인의 활동보조로 사는 친구에게 강연을 부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졸업 후 정규직이 되건 비정규직이 되건 도움이 될 만한 노동법을 배우는 강연회도 했다. 대학교의 취업지원센터 같은 데에서는 노동법이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는 비정규직노조에서 활동하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강연을 했다, 그런데 들으러온 학생들의 알바이토에서 당하고 있는 착취에 대한 상당회 같은 자리가 되었다. 내가 친구들이랑 같이 했던 그러한 시도에 대해 프레카리아트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내가 친구들과 같이 해온 여러 것은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않고 살아남는 전략으로서의 지식과 인맥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스스로를 회고해보니까 상당히 프레카리아트 운동인 것 같이 보인다. 시위에서 호소할 때도 ‘알바이트에 대해서 ‘알바군’이라고 부르지 말아! 이름으로 부르라!’라든가 어쨌든 프레카리아트 운동스러운 일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나는 프레카리아트란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왜일까? 아마 자기들의 있는 상황이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지금까지의 비주류의 운동 속에서 쌓여온 경험부터 배우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작가인 아마미야 가린(雨宮処凛)이 쓴 ‘프레카리아트의 우울’이라는 매우 중요한 책도 있으며 일본에서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아마미야 가린은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을 보급시키기에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쓰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지금 한국에서 프레카리아트란 용어가 어떻게 쓰여 나가는지 매우 궁금하다. 이 용어를 어떻게 쓰는지, 그리고 쓴다면 어떠한 의미를 부여시키는지 그러한 논의가 활발해지면 재미있겠다. 힘을 가진 말이 되면 좋겠다.

응답 1개

  1. 서업말하길

    쿠마상 글을 보니 반갑네요^^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되면서 비로소 가사노동하는 분들이 보였다는 게 의미심장하네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운동을 지지하면서도 왠지 찜찜함이 느껴졌었어서요~ 물론 개개인의 삶은 전부 소중합니다만, 뭔가.. 그런 찜찜함을 표현하면 매장당할 것 같은 분위기가 아직 운동판이랄까… 그런 곳엔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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