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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칼럼

마을 만들기 파트4-1 우리 집 앞, 보이지 않는 그녀들, 비밀들 –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 위안부 할머니들 –

- 신지영

서명해 주세요!
1 <위안부 피해를 고발하는 시민운동 탄압에 항의하는 긴급 서명(한글 페이지 있음.)> http://blog.goo.ne.jp/yoninwomamore/c/7277fdeaaa1e60c19a6b0986c47d04ef

* 우리 집 앞 마트의 익숙한 낯설음

방학이 되어 한국에 돌아올 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때, 나는 마치 미지의 시간을 찾아 가는 듯하다. 바람까지도 낯선 어떤 시간이, ‘떠나올’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우리가 국경-또 하나의 삶-에 품는 희망은 이처럼 이방인들의 비밀스런 시간들을 여러 갈래로 열어젖힌다. 어쩌면 나는 자칫 낯설음이 익숙함으로 안주하지 않도록, 익숙한 것들 속의 낯설음을 국경을 건너는 순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1 들어가는 입구

1 <혜화동 1번지> 들어가는 입구

한국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는 부모님과 함께 집 근처 마트로 장보러 가는 일이다. 한동안 맛보지 못한 익숙한 음식들은 나를 편안하고 건강하게 해 준다. 그날도 기쁜 마음으로 장을 보러 가는데 어쩐지 주변이 너무나 시끄러웠다. 마트로부터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약해지를 당했다는 플랜카드와 함께 선전음악이 울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을 쉬려 집 앞으로 장을 보러 가다 마주한 일인 시위는 일본에서 경험한 집회들과 겹쳐지면서도 기묘하게 낯설어 엉거주춤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정규직의 고통, 불안한 삶은 이렇게 우리 집 앞 어디든 다가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익숙한 집 앞에서 부딪치는 이 낯설음, 사실 언제 내게 닥쳐올 지 모르는 이 불안한 낯설음을 스스로의 삶과 병립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 앞에 등장한 <혜화동 1번지>의 단막극 페스티벌은 매우 반가웠다. 이 연극은 혜화동 성당에서 6년째 농성을 하고 있는 학습지 선생님들-특수고용노동자-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연극인들이 뜻을 모아 만든 연극제로 2월 14일부터 24일까지 열렸다. 연극제를 개최한 극단은 <연극 실험실 혜화동 1번지>다. 1993년부터 20년간 연출가들이 모여 만든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실험공간’이다. 연극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뜻을 함께하는 분들의 후원금으로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간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용산 참사나 한진 중공업 희망버스에 동참하거나,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통해 두리반을 지켜내는 활동이 있었으나 연극인들이 발벗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특수 고용 노동자 – 보이지 않는 그녀들의 우물 채우기.

그들은 왜 재능교육 이야기를 연극으로 담아내게 되었을까? 연극제를 제안했던 이양구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극장에 갈 때마다 재능교육을 마주보아야 했고, 지금에서야, 진심으로 마주보고 있다. 왜 마주보아야 했는가? 그것은 맹자 누나가 한겨레 21과의 인터뷰에서 ‘혹한의 겨울보다 두려운 것은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고 고백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이양구, 「<아름다운 동행>을 발의하며」, 『단막극 페스티벌<아름다운 동행>』소책자,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2013, 9쪽 이후 (필자:쪽수로 표시) )

2 공중 농성중인 혜화동 성당 꼭대기

2 공중 농성중인 혜화동 성당 꼭대기

<혜화동 1번지> 공연장으로 가다 보면 오늘(3월 4일)로 1901일을 맞이해 최장기 농성장이 되는 천막과 혜화동 성당 꼭대기에 오른 두 명의 여성들이 마주 보인다.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의 전원 복직 및 단체 협약 원상회복·노동조합 활동보장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인정을 촉구하는 연극인 선언」 에 서명하며 연극인들은 말한다.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는 연극인들이 이 사태에 계속해서 침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능 교육 사태는 연극인들의 문제가 되었다.(34쪽)” 그녀들의 고통을 6년째 매일같이 보고 지나쳐야 했던 <혜화동 1번지> 연극인들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재능 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6년째 혜화동 한복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극제의 예술 감독 이양구씨가 쓴 「‘재능교육 사태’의 쟁점과 해결방안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를 읽으면 일단 “특수 고용 노동자”라는 낯선 말과 마주친다. 특수 고용 노동자란 근로계약 대신 도급, 하청, 아웃소싱 등으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근로자를 가리킨다. 이런 특수 고용 형태는 기업이 노동력의 사용자로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개인 사업주”로 만들어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전가하는 형태다.(이양구:28쪽(윤애림, 「특수고용노동자와 노동기본권」『비정규노동』 91호, 85쪽)에서 재인용)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어 일시적으로만 노동력이 증가하는 업종이나 갑작스런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정을 유동적인 노동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의 생산수단을 포함한 노동력을 기업 외부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노동자들을 개별 용역화하는 구조조정의 극단적 형태”다. (이양구:32~33(전국 불안정 노동철폐 연대 사무처장 엄진령,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 방안 보장」에서 재인용) )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않기 때문에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 행동권)이 없고, 열악한 임금/작업환경 등을 협상할 수 없다.

3 재능교육 앞에 쳐진 농성 텐트

3 재능교육 앞에 쳐진 농성 텐트

재능 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바로 이 특수 고용 노동자다. 임금 대신 영업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실적유지/증가를 위한 세일즈를 겸해야 했다. 회원이 탈퇴하면 수수료가 차감되기 때문에 회비를 대납해서라도 회원을 유지하는 행위를 그들은 “퇴회홀딩(退會holding)”이라고 부른다. 학습지 교사들이 견디다 못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벌이자, 재능교육측은 학습지교사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이므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도 파업을 할 수도 없다고 대응한다. “매일 출근을 해서 조회를 하고 관리자인 지국장으로부터 하루의 업무 일지를 작성·제출하고 저녁이면 퇴사든 유선이든 일과를 보고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사장(26)”이라는 논리였다. 더구나 2005년 11월 24일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놓는다. 이들은 33일간 파업하고 노동조합설립 필증을 받는다. 그런데 다시금 2007년 5월 17일에 개정(개악) 단체 협약으로 월급이 수십만원씩 깎인다. 3개월 동안의 회원 가입률의 증가에 따라 월급을 책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회원수를 늘이지 못한 어떤 교사는 100만원이 차감된 560원을 월급으로 받기도 한다.(31쪽) 이렇게 시작된 농성이 현재 6년째를 맞이했다. 그녀들은 노동자가 아니므로 회사 측이 이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부당노동행위”가 아니기 때문(20)에 좀처럼 협상이 쉽지 않다. 오랜 싸움 끝에 2012년 11월 1일 서울 행정법원은 학습지 교사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회사 측은 선복귀 후 단체협약 체결, 노조 측은 선 단체협약 체결 후 복귀”로 맞서고 있다.

4 최장기 농성장이 된 재능교육 농성장

4 최장기 농성장이 된 재능교육 농성장

연출가 이양구는 이렇게 말한다. “흐르는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웅덩이를 다 채우고 나서야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流水不盈科不行)”이 있는데 맹자누나(조합원 유명자)는 “웅덩이를 만났고 지난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웅덩이 속으로 빠뜨렸다. 다 채우고 나서 다시 앞으로 흘러가기 위해서.”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이웃인 대학로의 연극인이 빠진 웅덩이이며 비정규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한국 사회가 빠져든 웅덩이”라고.(이양구:8)

* 우리는 ‘죽은 자’의 복직을 요구한다.

연극제에 참여한 작품들은 산 자를 죽은 자로 취급하는 권력과의 부단한 싸움 같다. 버젓이 노동을 함에도 노동자로 보지 않고, 천막을 쳐도 지나쳐가고, 공중으로 올라가도 고통이 전달되지 않는 이 모든 불안정한 존재들의 유령화.

연극은 A파트와 B파트로 나뉘어져 공연되었고 나는 B파트만 구경할 수 있었다. A파트의 작품을 소책자에 기반해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한밤의 천막극장>이란 작품은 오세혁의 작가노트에 따르면 농성 중인 천막에 들어가 본 경험을 그리고 있다. 김한네는 작가 노트에서 “이들이 저기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51)”고 말한다. <다시 오적>이라는 작품은 김지하의 시 <오적>을 판소리 형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이다. 이 작품에서 가수 겨을은 유령관객을 향해 끊임없이 노래하지만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갑중은 그녀가 가수임을 노래를 해 왔음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63) 노동을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갈 뿐인 재능 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혜화동 로타리>는 공연장 바로 옆에 재능 농성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그 최초의 시간들에 대한 고백”이다. 이양구 연출가는 이렇게 말한다. “맹자 누나들 덕에 우리가 정말 연극인이 되는 것 같아서 고맙고 감사하다(76)”.

내가 봤던 B파트에는 3개 작품이 공연되었다.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 <잉여인간>, <비밀친구>. <잉여인간>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장이 나와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아쉬움도 있었지만,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내용은 이렇다. 수트 케이스를 갖고 다니던 36살 여자는 그 후 노인이 된다. 수트케이스를 옆에 둔 채 노인 남자(원래는 36살의 여자)는 끊임없이 타이핑을 하며, 수트 케이스에서 허밍소리나 심장소리가 새어나오면 툭툭 건드려 소리를 잠재운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두 명의 30대 여성은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둘 중 한명은 임신부이고 다른 한명은 좀 더 젊다. 그 둘은 끊임없이 허밍을 듣고(부르고) 심장소리를 듣고(부르고) 하면서 노인에게 말을 건넨다. “오오! 우리 정말 귀신인가? / 그렇잖아요? 안 보이는데 어떻게 월급을 줘요? (사이) 어떻게, 코도 파고, 막, 노래 부르고 막, 그러는데, 아무도 날 못봐(자신의 몸을 만지며 곳곳을 살핀다) 오오.(84)” “이상했거든요. 사람들이 날 못 보니깐요, 첨엔 분명 당황스러웠거든요. 근데, 나중엔 점점 무서워지는 거에요. 어릴 때 본 귀신이 생각이 나서요. 나한테 그 귀신이 따라붙었나. 사람들 눈에 그래서 내가 안 보이나. 간혹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아까 그랬어요.(자신의 몸을 비비며) 어후! 소름 돋아.” 이 둘의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확산되어 가지만 노인 남자는 오직 타이핑만 하며 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참 어릴 때 날 닮았어”. 살아있는 그들을 죽은 셈 쳤던 사회적 타살에, 그녀들은 생계 때문에 가담하거나 복종하면서 다시금 타-자살의 대상이 되어 갔다. 이 고통이 불안한 허밍과 심장고동을 타고 전해져왔다.

그러나! 이 타-자살에도 불구하고 수트 케이스에서는 끊임없이 허밍과 심장고동이 새어 나오고 임신한 여자는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젊은 여자는 스스로 살았을 증명하기 위해 노래도 해보고 코도 후벼보며 온갖 행동을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농성중인 11명의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복직과 단체협상을 요구할 뿐 아니라 죽은 이지현 조합원에 대한 복직을 요구한다. 이지현 조합원은 2007년 12월에 천막을 치던 첫날 사측 구사대에게 폭행을 당해 다리를 다쳐 6개월간 휴직을 한다. 그러나 현장에 복귀해도 회사는 수업을 주지 않았고 해고 상태로 있다가 암으로 사망했다. “같이 투쟁하다 다치고 해고당하고 결국 사망한 이지현 조합원에 대해 명예회복을 위한 복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23)”고 농성중인 그녀들은 말한다. 이 ‘죽은 동료’에 대한 복직요구는, ‘죽은 셈’ 쳐져 온 그녀들의 존엄에 대한 회복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싸움을 두고 어쩌면 누군가는 불과 11명밖에 안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불과 11명이 6년간이나 해낼 수 있는 힘은 대체 무엇일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끊임없이 고동치고 호소하는 수트 케이스처럼 그들은 수많은 특수 고용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그런 자신들의 목소리가 다른 불안정 노동자들과 화합하길 바래 왔다. “그들이 종탑 위로 올라가자 언론이 갑자기 주목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종탑 위로 올라가신 분들의 말씀이 놀라웠다. 종탑 위로 올라가기로 결심한 뒤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자신들의 행동 때문에 다른 투쟁 사업장들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빼앗게 될까봐 미안하고 두려웠다는 것이다.(11)”

수트 케이스 속에 은폐된 불안정 노동자들, 노동하는 존재들의 유령화/비가시화. 현재 한국 12곳에 설치된 농성촌(농성촌 지도는 『시사IN』 282·283합병호, 48쪽 참고)은 이미 존재함에도 그 존재를 유령화시키는 권력에 대한 싸움, 비밀지도, 공중의 지하생활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죽은 자들,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자들, 유령화된 자들의 사회적 “복직-명삶과 존엄”을 요청하고 있다.

7 종탑에 보내는 메시지를 적는 게시판

7 종탑에 보내는 메시지를 적는 게시판

보이지 않는 고통과 불안은 사실 우리 집 앞, 직장 속, 가족 속, 몸 속, 익숙하다고 여겨진 모든 것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파고드는 이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외면을 낳고 쌍용 자동차 분향소 천막을 333일째 되던 날 불태워버리게 한 환청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농성장 옆에는 격려 메시지를 적는 게시판이 있다. 그곳의 글귀를 보다가 문득, 혜화동 성당 위에 올라 외치는 그녀가 36살, 내 또래임을 아프게 깨닫는다.

* 비밀들 – 그녀들은 보여지고 싶어 했을까?

이 산자를 죽은 자로 취급하는 유령화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에서는 유령화가 “자기검열”의 형태로 일어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한 예로 “위안부” 피해를 고발하는 시민운동에 대한 탄압이다. 2012년 9월23일에 오사카 시내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씨의 증언회가 있었다. 이 집회에는 극우파 단체인 “자이도쿠가이(在特会)”가 들이닥쳤고 집회 참여자들은 이를 저지한다. 자이도쿠가이의 멤버들은 집회 참여자들에 의해서 상해를 당했다고 날조했고, 오사카부 경찰은 4명의 집회 참여자를 구속했다. 피의자 중 한명이 한기대씨는 일본에서 열리는 위안부 수요 데모,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집회,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반대, 탈원전 운동 등으로 활약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체포 이후 오사카에 지진 잔해 소각장을 만드는 것에 대한 반대 활동이 활기를 잃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6개월이나 올해 2월 13일과 14일에 갑자기 증거품 압수 명목으로 집회 참여자 일곱집을 가택수사한다. 일련의 사태는 KBS에서 보도 되었고( 2013.2.22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617382)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27일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버젓이 살아서 증언하고 있음에도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인 양 하고, 있지도 않았던 상해죄로 가택수사를 한다. 연이어 반일 감정은 그 정치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자칫 한국인들이 지닌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일본의 배외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 일본 안의 내재적 맥락이 삭제된 채 한국에 보도되면, 곧 한국의 내셔널리즘과 통해 버리는 기묘한 도덕주의가 이 “자기검열” 속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습지 교사들의 퇴회홀딩 또한 이러한 자기 검열의 강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학습지 교사들의 싸움은 그들을 보이지 않게 하는 사회(會)로부터의 탈퇴(退)를 6년간 유지(holding)하고 있다. 그 속에는 자기검열의 퇴회홀딩과 다른,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퇴회홀딩이 있다. 산자를 죽은자로 치부하는 검열과 유령화의 시대에, ‘죽은자’로 치부된 우리들 사이에는 어떤 검열과도 어떤 눈으로부터도 포착되지 않는 비밀스러운 삶이 열리고 있다. 번역되지 못했으나 그 언어를 아는 사람들끼리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독서처럼, ‘죽었다’고 여겨지는 자들 사이의 공감의 지대가 우후죽순처럼 번성하고 있는 것이다. 재능 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그들을 ‘죽은 자’ 취급하는 데 맞서 자신들의 노동자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을 6년씩이나 싸울 수 있게 했던 힘은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것에 머물지 않으리라. 언제든 어디서든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죽은 자들 사이의 비밀스러운 만남과 실타래처럼 풀리는 이야기들이 6년간의 싸움을 이끌어 온 비밀스러운 힘이지 않았을까? 6년간 농성장 옆을 지나며 자기 검열을 통해 외면해야 했던 고통이, 결국은 그녀들의 농성장과의 공감으로 열리게 되었던 이 연극제처럼, 익숙함과 낯설음 속에서 비밀스럽게 직조되고 있는 시간들. 그리고 비밀스러운 시간들의 숙련공들인 그녀들.

최근 나는 어떤 일본인 사상가와 한국의 친구들과 함께 이와 같은 “자기검열”의 고통을 공유해야 했다. 동시에 그러한 자기 검열을 넘어서서 흘러 넘쳤던 비밀스러운 시간을 공유했다. 번역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은 언젠가 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시간을 미리 사는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이미 미래가 된 과거의 시간들. 그 시간들은 자신들만의 ‘시민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을 벗어나 더 멀고 풍성한 비밀스런 영역을 열어 젖히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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