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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칼럼

지킴이, 가장 내재적인 외부세력 – 두물머리 지킴이 친구와 만난 날 –

- 신지영

* 나의 아름다운 여자 친구들

“혼자 있다”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도쿄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이 말이 의심스러웠다. 혼자 있으면 기억 속 사람들이 얼마나 소란스레 말을 걸어 오는지. 그 중에서도 대추리에서 만난, 지금은 두물머리에 사는 지킴이 친구D는 많은 순간 나와 함께였다. 그녀가 어딘가에서 지킴이로서 멋지게 살 것이란 생각이 나를 바로 세워줄 때가 많았다.

사실 오랜만에 D와 만나기로 한 날, 나는 어떤 답을 기다리며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삼십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주변 여자 친구들의 삶은, 정치적 이슈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투쟁 같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 취직은 되지 않은 채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한 살씩 더 먹어가니, 외로움과 빈곤은 가중된다. 그런데 D는 전화로 내게 “10년 뒤의 두물머리를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의 10년 뒤를 두려움 없이 두물머리와 함께 말하는 D의 기세에 놀랐다. 그리고 외롭고 가난한 나이든 여성들의 삶과 두물머리 지킴이의 삶이 이상하게도 겹쳐져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지만 여전히 정의롭고 아름다운 나의 여자 친구들에게 보내는 연애 편지다.

지킴이 친구D

지킴이 친구D

촉박한 한국 체류 기간 동안 두물머리까지 직접 찾아갈 결심이 선 것은 병권 선배가 한 강연에서 했던 지킴이에 대한 발언 및 수유+너머 위클리에 쓰신 <생정치 시대, 지킴이의 개입과 실천 (http://suyunomo.jinbo.net/?p=10590 )>를 읽고 얻은 감흥 덕분이기도 했다. 이 글은 투쟁들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삶과 투쟁이 수렴된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지킴이들의 실천방식이 지닌 의미를 포착하고 있었다. 삶과 투쟁이 서로 괴리된 상태로 긴 투쟁이 지속될 때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 수 있는가, 또한 투쟁의 힘은 삶으로부터 나온다는 소중한 사실을 이야기해 주셔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킴이라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 대두하기 전부터 삶 그 자체가 투쟁이었던 존재들도 있다. 여성에게는 일상 자체가 투쟁이었고,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노동 차제가 투쟁이었고, 장애인들에게는 삶 자체가 투쟁이었기 때문에, 투쟁은 이 속박된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지킴이들은 ‘투쟁과 수렴된 삶’이 다시 그/그녀들을 속박하는 일상적인 삶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어떻게 벗어나고 있을까? ‘삶 그 자체가 투쟁’이라는 것과 ‘삶과 투쟁이 수렴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킴이들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 수렴의 순간 삶과 투쟁이 동시에 새로워져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지킴이들이 느끼는 ‘수렴’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이 글은 이렇게 찾아가 만난 지킴이 D의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이다. 그러나 D의 이야기 그대로는 아니다. 병권 선배의 문제제기 속에서 지킴이 D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인상 깊게 남겨진 단상들을 적은 것이다. 지킴이들이 말을 하고 옮기고 남기고 말을 걸어 퍼지게 해 왔듯이, 그런 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무엇보다 쓰도록 축복해 준 D에게 고맙다.

* 수렴의 공간-포크레인 앞에 난 두더지길.

두물머리 입구 공원의 연밭

두물머리 입구 공원의 연밭

양수역에 도착하자 D는 두물머리 유기농 농부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마중나와 있었다. 그녀는 밭일 덕분이었을까? 예전보다 탔고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양수리는 엠티의 추억이 어린 관광지였다. 조금 들어가자 대학 때 엠티를 갔을 때 들렸던 양수 역 부근의 시장이 있었고 조금 더 걷자 연밭이 펼쳐진 공원이 나왔다. 그곳에는 가족과 연인들이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곧 포토 스팟 이라는 두물머리의 큰 나무가 있는 곳이 나왔다. D는 연밭을 만든 뒤로 이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 나무가 죽으면 양수리가 죽는다고 믿고 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이곳을 장터로 만들고 무슨 무슨 박물관과 전시관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나무를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과 장터를 만드는 마음이 모순 없이 겹쳐진 곳, 그곳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 물 머리’였다. 그녀는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그 공간이 지닌 이러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곳에 가보지 않았다면 너무나 모순적으로 느껴졌을 이야기들이, 그곳 마을의 논리 속에서 때로는 해학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결합했다.

죽어가는 두물머리 나무

죽어가는 두물머리 나무

D는 나에게 “너무 늦게 왔어”라며 줄곧 아쉬움을 표했다. “여기는 하우스가 있었고, 여기는 고구마가 있었고 여기는 고추가 있었어. 병권형이 온 날 내 밭이 철거당해서 정말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고추를 땄는데… 그래서 이야기는 많이 못했어, 저건 파프리카. 잘 자랄지 어쩔지 걱정했었지. 1년이 아니라 2년 걸려야 곡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어. 이곳을 철거당할 때 우리가 했던 것은 종자를 받아두는 거였어.” “종자를 받아?” “응. 자기 종자라고 해서 이 땅에서 개량되는 거야. 그게 중요해. 이 해바라기는 내가 심은 건데 이거 심으면서 꽃이 필 때 쯤이면… 이라고 생각했었어. 여기는 장애인들과 일군 노들 텃밭이야. 봐, 휠체어 길이 보이지? 정말이지 나는 밭전 위원회 하면서 밭 가꾸기 매니저 하고 살면 딱일 거 같았는데.” 그 순간 나에게는 대추리 그녀의 텃밭에서 뽑아다 담갔던 김장김치랑, 대추리 벽들에 새겨져 있던 그림들이랑, 그곳의 노을들이 스쳐는 듯했다.

노들 야학 텃밭자리

노들 야학 텃밭자리

노들 야학 텃밭의 휠체어 길

노들 야학 텃밭의 휠체어 길

우리는 한쪽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서자 그녀는 “보이는 것 보다 실제는 더 멀어. 하우스가 전부 철거되고 느낀 건데 여기가 원래 대단히 넓어 보이는 곳이었거든. 그런데 이제 한눈에 전부 들어와 버려. 왜 몽골 초원에 가면, 무척 가깝게 보이는 것도 실제로 가보면 무척 멀잖아? 마찬가지로 하우스랑 작물들이 전부 파괴되자 이곳이 마치 좁은 땅인 것처럼 한눈에 들어와. 그리고 무엇보다 숨을 곳이 없어.”
숨을 곳, 하우스들과 작물들, 그 자잘하고 구불구불한 길들, 볼일 볼 장소들, 포착불가능한 잉여의 공간들이 사라지자 풍성했던 공간은 갑자기 줄어들었다. 이처럼 공간의 크기는 수치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그 시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들로 결정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몸소 만들고 함께 지내온 지킴이들에게 현재의 파괴된 두물머리는 과거의 풍성한 두물머리와 겹쳐지면서 10년 뒤를 꿈꾸게 한다.

자전거 도로를 낸다는 이유로 파괴된 하우스와 텃밭

자전거 도로를 낸다는 이유로 파괴된 하우스와 텃밭

D의 밭을 보러가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흙이 너무 푹신해!” 그녀는 “내가 이 흙에 반한 거야. 두 개의 강이 만나 쌓인 퇴적층이라서 부드럽고 영양분도 풍부해. 뭘 심어도 잘 된다니까. 이거 봐. 이건 새들이 지나간 발자국. 아주 난리를 치고 지나갔네. 이거 봐라, 이게 지렁이 똥인데 여기 구멍 있지? 이게 지렁이 똥구멍이다. 전부 @@아저씨가 알려 주신 거야. 이건 포크레인 자국이야. 근데 바로 앞을 두더지들이 파고 지나갔네.” 헤집고 지나가는 포크레인의 거대한 바퀴 자국에 난 두더지가 땅을 판 자국. 이것이 개발논리와 환경파괴에 맞서 만들어낸 텃밭과 같은 공간, 즉 삶과 투쟁이 수렴된 공간일 것이라고 느꼈다.

콘크리트 자국 앞에 난 두더지길

콘크리트 자국 앞에 난 두더지길

사실 나는 내심 10년 뒤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두물머리의 풍요로운 자연이 참 부러웠다. 2011년 3월 11일 이후 일본의 후쿠시마와 동북지방은 너무나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그 폐허 속에서 과거를 겹쳐서 상상해 볼 여지가 희박하다. 특히 방사능 오염은 10년 뒤의 후쿠시마에 대해 상상할 수 없게 한다. 방사능은 개발논리가 마을을 파괴할 때, 그 마을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까지도 빼앗아 가 버린다는 것을 가장 처절한 형태로 보여주고 있었다.

* 수렴의 시간 – 마음을 모으는 시간.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시간이야. 밭을 만들고 술도 마시고 이야기하고 만나고 하는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들… 나는 대추리 때에도 그랬는데 농부들이 어떻게 저런 통찰력과 지혜를 갖고 있는지 놀랍고 궁금할 때가 많았거든. 깨달음의 방법도 두 종류가 있잖아. 공부를 많이 해서 깨닫는 것과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통찰력 같은 것도 있구. 후자의 깨달음은 왜 잊혀져 버린 걸까?” 그녀는 지킴이들 중에서도 두물머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지킴이였다. 그녀는 밭일 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의 술자리건 회의건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저 뒷방의 대화법의 귀재인 그녀는, 대추리에서도 할머니들의 집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듣곤 했었다. 두물머리나 대추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이 지킴이들의 몸을 통해서, 나는 들리지도 이야기되지도 못한 감흥들을 느끼고 대추리에 찾아갈 수 있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

그녀는 그것을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라고 불렀다. “오직 농사짓고 텃밭 가꾸는 데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들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말야, 잘 응해 주지 않기도 해. 당장 이거 심고 가꾸고 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이야기냐는 거지. 그렇지만 서로 계속 말을 걸고 술도 마시고 만나면, 그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은 마음을 모으는 시간들이 모이면…., 그게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경험을 했어. 행정대집행이 예정되니까 꿈쩍도 안 할 것 같았던 사람들이 방울 토마토를 키세스 초코렛 모양으로 포장하고 이쁜 앞치마까지 만들어 입고 전철에서 두물머리를 지켜달라고 외치는 거야. 그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마음을 모으는 시간, 그것은 삶의 시간이다. 그 속에서 투쟁의 시간이 함께 흐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삶’이란 수많은 사람들에게 억압적이었던 일상과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그녀를 나는 기억하고 있다. 대추리에 처음 들어갔던 D는 한 때 머리를 빡빡 밀고 남자들이 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잠자코 있으면 170정도의 키에 일 잘하고 씩씩한 그녀는 남자로 보였다. 그 헷갈리는 모습에는 어떤 집단에서건 그치지 않고 일어나는 성차별 성추행 성폭력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두물머리에서는 그러한 지점들이 얼마나 이야기될 수 있었을까? 이런 이야기들은 중요한 투쟁의 한복판에서는 대개 투쟁을 위해서 은폐되어야 한다고 여겨지기 쉽다. 내부의 균열을 드러내는 것이 투쟁을 억압하는 쪽에게 개입의 빌미를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큐슈 지방에서 만들어졌던 탄광촌 코뮨에서도 다이쇼 투쟁의 한복판에서 여성 동료 한명이 강간을 당하고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여성들과의 모임을 주도하던 모리사키 카즈에는 이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니가와 간은 이 문제가 밖으로 불거질 경우, 다이쇼 투쟁 속에 경찰이 개입하고 투쟁의 힘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하에 불문율에 붙이기로 고통스런 선택을 한다. 그러나 정말로 투쟁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무엇이며 투쟁의 승리란 과연 무엇일까?

지킴이, 두물머리의 무사귀환!

지킴이, 두물머리의 무사귀환!

그녀는 내 질문에 “생협 언니들의 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생협 언니들은 정말 맛있는 밥을 정말 훌륭하게 해내. 엄청난 양인데도. 언젠가 한번은 언니들이 늘 맛난 밥을 해 주었으니까, 이번엔 우리가 밥을 하고 언니들은 즐기시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어. 이런 이야기들을 편안히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두물머리가 지닌 좋은 점이야. 그때 밥을 내가 총괄해서 준비하기로 했거든. 근데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는 거야. 그래서 결국 생협 언니~ 하면서 도움을 청했고 이틀 만에 모든 게 해결되었어. 당일 날 밥을 우리가 하긴 했는데 생협 언니들처럼 훌륭하진 않았고 결국은 언니들이 부엌으로 계속 오시는 거야. 대추리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부분들에 내가 좀 까다롭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어쩌면 보수화된 걸지도 몰라. 그런데 생협 언니들이 그 일을 잘 하시거든. 정말 훌륭해.”

“보수화된 거 아니야. 이곳에는 이곳의 논리가, 생협 언니들의 논리가 있는 거지. 예를 들어 매매춘을 비판하는 건 당연하게 여겨지잖아? 그런데 카라유키상이라고 아주 옛날부터 일본 마을에서는 빈곤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딸들을 해외로 팔아 보내곤 했는데 그걸 일컫는 말이야. 그렇게 팔려나간 여자들은 정말 고통을 겪지 그런데 그녀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도 차별하거나 하지 않았대. 그녀들은 그냥 돈 벌러 갔다 왔다고 이해되었고, 또 어떤 여성들은 그것을 계기로 자기 마을에서 벗어나 먼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도 했대. 이건 복잡한 문제지만 매춘을 했으니까 여성을 착취한 거라고 단순히 비판만 하기 어려운 마을의 논리, 아니 그녀들의 논리가 있어. 그녀들이 살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그녀들이 당당하게 그야말로 살게 해주는, 마을 속 한 꺼풀 더 깊이로 들어가지 않으면 모르는 그런 어떤 것.”

“그래, 사는 거. 그게 중요한 거 같아. 포크레인들이 여기 와서 땅을 마구 파려고 하는데, 매주 마다 많은 지킴이들이 와서 자기 밭을 만들거든. 포크레인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구마를 캐고 고추를 따고 하고 있는 거야. 그러면 포크레인도 어쩔 줄 몰라 해. 그렇게까지 할 명분을 잃고 마는 거야.” 두물머리의 ‘어떤 것’을 모르는 내게 그것을 온 몸으로 표현해준 그/그녀들 덕분에, 두물머리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도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함께 해 왔던 것 같은 환상에 빠져 들어갔다. 대추리, 탄광촌 여자코뮨, 홈리스 마을, 카라유키상… 삶이 투쟁과 수렴함으로써 만들어져 갔던 새로운 삶의 시공간들.

* 병은 ‘삶과 투쟁의 수렴’이 시작되는 계기.

그녀도 나도 얼큰하게 술이 오르고 해는 저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몸과 나의 몸은 달랐다. 아디다스 모기라는 별명이 붙은 놈이 쉼 없이 공격을 해댔다. 반면 그녀는 자기는 아무리 물려도 사워 한 번에 말끔히 사라진다고 했다. 지킴이들에게는 이른바 마을 주민을 선동하는 외부세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그런데 모기자국들은 지킴이 그녀의 몸이 내부세력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장 내재적인 외부세력, 그것이 지킴이였다.

그녀는 지킴이들의 층위는 너무나 다양해서 ‘지킴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D는 그 중에서도 두물머리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킴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번에 이렇게 깊이 오랜 시간 들어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 대추리와 여러 코뮨에서 얻은 병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추리 때 뭔가 끝까지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남아 있었거든. 이번에는 그때 못한 걸 전부 다 해 보려고 했어. 밭농사도 원 없이 하고.. 대추리 이주단지는 얼마 전에 가 보았는데 밭이 없으니까 할머님들이 힘이 없어. 대추리 할머니들 중에 욕심쟁이 할머니가 계셨거든. 지킴이들 밭까지 다 빼앗아서 자기 밭으로 하려고 김을 매 놓는 밭욕심 많은 할머니. 그 힘 좋던 할머니가 힘이 없으셔. 그래서 할머니, 예전에 제 밭 빼앗아 가실 만큼 힘 좋으시더니, 했더니 그제사 모두들 배꼽잡고 웃어. 그 할머니는 지킴이 밭 빼앗았다고 다른 할머니들한테 왕따 당했다며 웃고, 밭일을 해야 그런 힘이 생기는데.”

사라졌지만 여전히 자라고 있는 그녀의 텃밭 앞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자라고 있는 그녀의 텃밭 앞에서

이곳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여기라서 살 수 있었어. 이곳이 너무 좋아.” 두물머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D에게도 나이가 든 어머니에게도 치유의 공간이자 적은 돈으로 풍요로운 먹거리와 관계성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고 했다. 이전에 몸 담았던 마을들에서 그녀가 다 못했던 것들, 우리가 다 못했던 것들, 세상에서 얻은 병들, 나이가 드는 것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빈곤 속에서, 두물머리가 드물고 귀한 풍요로운 삶의 장소였다는 것을 이젠 의심하지 않는다. 시대가 내쫓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두물머리는 기존의 일상과 경제 사이클로 복귀하는 것 없이 스스로 내재적인 논리를 만들어 가면서 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킴이들이 지키려고 한 것은 자연이나 유기농이나 이데올로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삶과 투쟁의 수렴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관계 전체, 오랜 시간을 들여 자연과 어울어져 만들어온 관계 전체임을 느낄 수 있었다. 대의명분을 위한 투쟁은 투쟁이 끝난 뒤 삶도 끝나 버린다. 반면 우리들이 앓고 있는 병을 계기로 삼아 새로운 삶을 만들어내는 지킴이들의 투쟁은, 투쟁과 함께 사는 법과 병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

* 아름다우니까 놀러왔지, 이렇게 아름답지 않았다면 이렇게 와 보지도 않았을 거야.

그날 저녁밥이 얼마나 꿀맛이었는지는 꼭 자랑하고 싶다. 그녀와 어머니의 집에는 울며 따온 고추랑, 작고 귀여운 호박이랑이 잔뜩 있었다. 밥상에는 밭에서 금방 따온 채소며 곡식들이 잔뜩 놓여졌다. 못 본 사이 D의 땅과 식물과 곡물에 대한 지식은 한껏 성장해 있었다. 농부 아저씨들은 D를 보면 토지에 대해 공부하라고 채근하신다고 한다. 지킴이들은 밭농사꾼인 동시에 과학자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자기 종자를 개발하는 농부들처럼 삶과 투쟁의 수렴지대를 만들어내는 특이하고 다양한 ‘자기 종자들’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지킴이들은 농촌 마을의 가장 내재적인 외부세력들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지킴이들의 사는 방식이 마을을 밖으로 열어 젖히고, 밖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어머니가 버려진 티브이 속에서 찾아낸 거울

어머니가 버려진 티브이 속에서 찾아낸 거울

일본의 동북 지방의 농부들은 쓰나미와 방사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결국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원전 노동자가 된다. 주변을 전전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을 주변으로 내 몬 바로 그 폭력의 핵심으로 들어가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는 이 기막힌 사이클. 두물머리도 어쩌면 그러한 사이클의 하나일지 모른다. 그런데 지킴이들은 바로 그 사이클의 한 가운데를 뚫고 들어가 폭력의 핵심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낸다. 마치 포크레인 사이로 난 두더지길처럼. 삶이 늘 투쟁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삶과 투쟁을 수렴시킬 수 있는 법을 스스로 개발해 가기 시작한다면, 그래서 삶도 투쟁도 새로워진다면, 그것이 아마 코뮨이 아닐까? 모두가 과학자가 되어야 할 일본의 상황 속에서 두물머리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사능 한복판의 지킴이는 어떻게/과연 가능할까?

두물머리의 10년 뒤를 이야기하는 지킴이들 앞에서, 나는 특이한 자기 개량종로 우뚝 선 20년 30년 뒤의 지킴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내 주변의 나이가 들어가는 여자 친구들의 불안이 지킴이들의 삶과 접속함으로써 위로를 받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킴이들을 두물머리로 부른 것은 병이 아니라 병 속에서 반짝이는 감정의 무늬들이었음에 틀림없음으로. 나는 두물머리에 있지 않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정의로운 여자 친구들의 기쁨과 슬픔에 매혹당하며 내재적이고 다양한 외부세력, 지킴이들이 된다.

응답 9개

  1. 고추장말하길

    ‘여자친구들’이 너무 부럽네요! 아~ 이 소외감이란…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었던, 아니 그 이전에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이렇게 멋지게 풀어져 있다니… 지영에게도, D에게도 그저 고맙다고 말할밖에…

    • 낙타말하길

      저야 말로 좋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다행이예요. 병권형이 해준 문제 제기 덕분에 저도 계속 생각을 하게 되었고, D와도 더 깊이 서로 묻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그저 지나치는 이야기들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정말 고맙습니다!!
      선배가 한 질문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자친구들’을 통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 보고 싶었어요. 또 좋은 질문들 많이 만들어 내 주세요!!
      엊그제는 재해피해를 입은 동북지방에 또 다른 여자친구 ^^ 를 만나러 갔었어요. 상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광경들이 펼쳐졌어요. 바다가 그런 소리를 내는 건 처음 봤어요.
      그 이야기도 다음 글에서는 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2. 사루비아말하길

    위클리에 올라오는 언니 글은 정말 반가워요!!
    이번 글을 특히나 아름답네요. D와의 찐한 우정이 글을 더욱 풍성하게 한 것 같아요. 수렴의 시간에 나오는 부분은 나도 D에게 물어보고 싶은 거였어요. 두물머리에 가면 매 끼니마다 풍성하게 밥을 차려주시는 언니들을 보고 조금 불편하기도 했었거든요. 왜 여기에서도 성별분업이 일어나는가…싶기도 했고. D의 답도 멋진데, 그에 대한 언니의 대답은 감동이에요. 좋아서 노트에 손으로 옮겨적어뒀어요.

    한 문단 한 문단 좋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고 수줍은 고백도 함께 보내요~ ^-^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3. 사루비아말하길

    위클리에 올라오는 언니 글은 정말 반가워요!!
    이번 글을 특히나 아름답네요. D와의 찐한 우정이 글을 더욱 풍성하게 한 것 같아요. 부분은 나도 D에게 물어보고 싶은 거였어요. 두물머리에 가면 매 끼니마다 풍성하게 밥을 차려주시는 언니들을 보고 조금 불편하기도 했었거든요. 왜 여기에서도 성별분업이 일어나는가…싶기도 했고. D의 답도 멋진데, 그에 대한 언니의 대답은 감동이에요. 좋아서 노트에 손으로 옮겨적어뒀어요.

    한 문단 한 문단 좋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고 수줍은 고백도 함께 보내요~ ^-^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 낙타말하길

      사루비아님,
      (누군지 알 것 같은데, 혹시나 싶어서요. ^^)

      힘나는 답글 고마워요. ^^ 이 글은 제 것이면서 실은 D의 것이고 병권형의 것이기도 하고 또 두물머리를 지키는 농부들과 외부세력들이 있었기에 쓸 수 있었던 것이고, 무엇보다 그곳에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느껴준 사루비아 님의 경험이기도 하고, 현재 일본에서 방사능에 맞서 애쓰는 여러 농부들의 것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잘 읽혔던 게 아닐까 싶어요.
      때때로, 모두의 것이자 각자의 것으로 느껴지는 잉여가 많은 그러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

      요즘 좀 지쳐 있었는데 덕분에 힘을 얻었다는 수줍은 고백도 저도 함께 보냅니다. *^^*~

  4. 미리퐁말하길

    읽고 그냥 가기 어렵네요 모기에 물려도 안 가려운 내재성^^ 이 와 닿습니다.
    마지막 사진 판타스틱 하다는데 왕공감 입니다~

    • 낙타말하길

      미리퐁님 답글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며칠 동안 무지하게 가려웠는데요, 덕분에 그날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었어요. 이것도 나쁘지 않지… 생각했어요. ^^ 두물머리가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5. 지나가다말하길

    소중한 인터뷰, 소중한 이야기, 정말 고맙다. 마지막 사진은 ‘판타스틱’하다. 정말 멋진 사진이야.

    • 낙타말하길

      마지막 사진, 저도 무지하게 좋아요. ^^ D의 어머님의 작품 덕분에 우리가 호강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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