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영토문제’에 개입을 해야 할 이유와 개입을 위한 하나의 방법

- 가게모토 츠요시

지금 우리를 둘러싼 문제들 중의 하나로 영토문제가 있다. 어려운 문제라고 말해서 도피하는 게 아니라 비판적으로 검토를 해야 하겠다. 물론 국가주의가 높이는 것은 이번 영토문제가 처음인 것이 아니다. 거듭 있어 온 것이고 그 때마다 국가주의가 고요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가 행해져왔다. 이러한 국가 간의 갈등에 대해서는 무시해도 되겠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가주의자 놈들의 싸움에 우리가 휘말릴 필요는 없겠다고 하는 생각에는 나도 동의를 한다. 그러나 이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으며,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에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그리고 올림픽 남자 축구 경기에서에 정치적인 의사표현 등을 배경으로, 한국과 일본 국가 사이에서 매우 좋지 않는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나는 한일 양쪽의 신문기사를 보고 있지만, 이번 경우 일본의 기사는 정말 저질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일본의 정치인이나 신문보도가 말하는 내용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차별적인 말들과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이 좋다는 식의 우생학을 도출하기 쉬운 생각은 싫어하지만, 정치인이나 신문은 일반 대중과 다른 입장을 당당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면서 인터넷과 비슷한 수준의 차별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같은 발언도 나가기 시작하고, 참 일본의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한심이 끝없이 나를 힘 빠지게 만든다.

일본의 인터넷을 보면 정말 보기 힘든 발언들이 나열이 된다. 아마 한국에 있는 분이라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일본에서의 조선인 및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은 역사적으로 같은 형식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영토문제는 결코 새로운 형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들리는 발언들의 내용을 보면 역사적으로 계속 이어져 온 일본적인 차별의식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로 생각해야한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래와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표면화할 때, 사람들이 나쁜 방향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것을 나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영토문제 같은 국가주의 우익들의 싸움과는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일본에서 대학에 다녔을 무렵, 어떤 괜찮은 활동가 아저씨와 우연히 지하철 안에서 만났다. 20분이나 30분 정도 같이 전철을 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당시 아마 북한과 일본의 사이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그 아저씨와 같이 일본정부의 방식을 비판할 논의를 하려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그 아저씨는 ‘이번은 북한이 너무한다. 그러니까 이번은 용서 못 하겠다’…… 그런 말을 하셨다. 놀라운 일이었다. 괜찮은 활동가라고 생각하면서 같이 운동판에서 논의도 해온 아저씨가 갑자기 일본정부의 입장을 섰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왜 ‘조선’과 만날 때, 갑자기 정부의 입장에 서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 지금도 답을 찾아내지 못 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큰 물음이다. 일본인 우익은 말할 것도 없지만, 좌익도 ‘조선’이란 것에 대해서는 갑자기 변화한다. 뭐라고 할까, 지금 일본의 반-조선, 반-한국의 이론가들의 대부분은 원래 좌익이었다는 것도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전향’은 한국의 주사파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흔한 현상일 수 도 있다. 어쨌든 ‘영토문제’는 너무 쉽게 사람을 바뀌게 만든다. 그렇지만, 아니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토문제에 대해 잘 인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일이다. 가장 나쁜 의미에서의 ‘전향’을 우리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몇 일전에 어떤 일본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놀랐던 일이 있었다. 무엇에 대해 놀랐냐면 영토문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너무나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이러한 내용이었다. 올림픽 축구경기에서에 깃발 사건 문제를 둘러싼 이야기였는데, 그 사건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떤 말을 했냐면 ‘스포츠의 자리에 정치문제를 가져오지 마라!’는 것이었다. 그 의견은 내가 보기에 일본인의 최소공약수적인 것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말이 가지는 의미는, 먼저 한국 쪽을 한 단계 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정치적인 것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다시 말해 정치적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너무나 정치적인 것이다. 그러한 자리에서 정치적인 표현을 하지마라!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너무 정치적인 발언이 된다.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 가장 정치적일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러한 발언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중립성을 믿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을 가지고 ‘논리 없는 한국인’이란 표상을 만들어 일본인의 우위성을 확보한다.

이야기가 너무 탈선해버렸다. 원래의 ‘영토문제’에 돌아가야겠다. 나의 ‘독도/다케시마’문제에 대한 입장을 어느 정도 명확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도 일본인을 하면서 한국에 살다보면 ‘독도문제를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이러한 국가간 관계가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나도 여러 가지 대답을 한다. 귀찮을 때는 ‘예, 한국 땅입니다’라고 말해서 넘어갈 때도 있지만, 그 한 마디로는 나의 입장을 말하기에는 매우 모자라다. 그러나 나는 그 섬이 일본의 영토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견해를 간략하게 표현하면, 그 섬이 일본의 영토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냐면 일본이란 나라가 아시아지역에 대해서 침략할 과정에서 자기 ‘영토’로 만든 섬이기 때문이다. 나의 입장은 너무 간단한 것이겠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일본의 주변 지역을 침략 및 수탈을 했다는 것을 제대로 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침략과정에서 ‘영토화’한 논리를 가지고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지주의를 계속 가지겠다고 하는 일본국가의 입장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그것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입장이다. 즉 지금 일본 국가가 말하는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구호를 긍정한다는 것은 일본이 주변지역을 침략 및 수탈을 한 식민지주의를 긍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번 영토문제를 들러싸고 국제재판에서 승부를 하자고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마치 재판이 중립적일 수 있다는 행복한 환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05년 당시, 즉 식민지주의가 ‘국제적’으로 ‘허용’되었던 당시에 ‘합법’이었던 영토편입을 지금도 계속 ‘합법이다’고 외치는 일본국가의 입장은 몰역사적이면서 동시에 식민지주의를 계속 가지겠다는 의사표현일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결코 수긍할 수 없다.

그렇게 말을 해보면 더욱 다양하게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보신 분의 대부분은 일본이란 나라를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라는 4개의 큰 섬을 중심으로 하면서 ‘오키나와’등의 주변의 비교적으로 작은 섬들로 구성이 된다고 생각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본’이란 지도(地圖)적인 이미지에 대해, 내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반식민지주의적인 위치에서 다시 검토를 하면, 일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는 물음이 생길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반식민지주의적으로 일본지도를 볼 때,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확실하게 일본의 ‘고유의 영토’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는 한반도보다 훨씬 길게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당하고 있는 중이라고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구조적으로 차별이 남아 있으며, 특히 오키나와는 일본의 면적으로 치면 0.6%에 불과하며, 인구로 쳐도 1%정도 밖에 없는 지역이지만, 재일미군기지의 75%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구조적인 차별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며, 그 확실한 차별을 차별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을 잃어버린 일본인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차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적인 차별은 구조적인 만큼, 일본사회에 행복하게 실고 있으면 느낄 수가 없으며,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은 역사적인 차별에 기인한다는 것조차 일아 낼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본국가가 식민지주의를 계속 가동시키기 위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는 중인 일본인 다수들은, 너무나 정치적으로 둔감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쉽게 말해 버린 일본인의 발언은 영토문제에 한정되는 일이 아니라, 그러한 말을 발언(선언)함으로써 일본국가의 식민지주의를 거듭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문맥에서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나의 입장은,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선주민족인 ‘아이누민족’을 수탈해, 선주민의 대지를 사유화하면서 일본이란 나라가 ‘발전’해 갔던 그러한 역사를 보면, ‘홋카이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고 하는 논의에 대해서도 해당할 것이다. 즉 나는 일본정부가 거듭 말하는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외침을 비판하면서 일본이란 이미지의 지도를 부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주의자가 될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문제는 사람을 바로 국가주의자로 만들어 버린다. 우익이나 좌익, 혹은 어떤 정치적인 사상인지를 막론하며 사람들을 바뀌게 만든다. ‘전향’이라는 말이 있다. ‘전향’의 기본적인 의미는 ‘스스로 바뀌다’이다. 즉 밖에서 강제적으로 혹은 폭력적으로 사상을 바뀌게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 바뀌게 만든다는 일이다. 태어나자마자 끔찍한 국가주의자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토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상황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국가주의자가 될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밖에서의 강제력 없이 생각을 바뀌는 일. 그러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식민지주의를 긍정할 말을 쏟아낸다. 즉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영토문제는 국가 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커다란 사상 전향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우리에 가까운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않기 위해, 계속되는 혹은 재생산이 되는 식민지주의와 싸우기 위해, 이러한 영토문제에 비판적으로 거듭 개입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한국정부에 대한 의견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정부의 입장에 동조할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글을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비판해야 하는 대상은 일본정부이기 때문에 이러한 글을 썼다는 것이다.

응답 1개

  1. 유메말하길

    와! 머리 속에 떠돌던것을 확실히 잡은 느낌이 옵니다.
    식민주의 시절에 강탈한 영토를 계속 현재에도 주장하는것에 반대 한다…라는 입장
    중립적이라는 것이 정치적인것에 무관심(혹은 무관계)여야 한다라는 환상으로 인해 더욱 쉽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한다는 일본인으로서의 견해.
    한국정부에 동조가 아니라 일본인으로서의 담백한 의견.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지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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