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잡곡 농사

- 최요왕

엊그제 옥상에 쌓인 눈을 치웠다. 그 동안 몇 번이나 왔던 눈이 거의 고스란히 쌓여 있어서 꽤 힘들었다. 다 치우고 나서 앉아서 쉬다보니 지난 가을에 추수해서 종자하려고 조, 수수 이삭들을 걸어 놓은 게 눈에 띈다. 헌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이런! 새들이 쪼아 먹어서 조 이삭이 꽤 상해 있고 새들은(주범은 멧새들!) 사람이 있는데도 근처까지 왔다갔다 한다. 지들 식사하는데 방해된다고 항의하는 모양새다. 요런 썩을 노메 새들!
주로 수수 이삭이 새들 때문에 초토화가 된다 해서 그것만 양파망에 넣어 걸어놓고 조 이삭은 그냥 걸어놨던 게 불찰이었던 거다.
몇 가지 이유로 잡곡 농사를 하고 싶었는데 손을 못 대고 있다가 작년에 조를 약간 시도를 했었다. 수수는 밭 가장자리 몇 군데에 씨를 던져놨던 것이다.
내가 도지로 얻어서 노지농사 짓는 땅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고라니피해가 많다. 내가 속한 영농조합은 주력이 채소라 김장거리, 양배추 등을 심었었는데 4년 동안 고라니 비둘기 피해 때문에 거의 매년 별 수확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짐승을 안타는 작물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양파 쪽파 등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 작물들은 가을 파종 봄 수확하는 것들이라 여름작물과 이모작을 당연히 생각하게 되었고 일단 답이 잡곡이었다. 생각만 해왔던 잡곡을 처음 하게 된 배경인데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잡곡밥을 좋아한다. 좋아도 너ㅡ어무 좋아한다. 원래부터 좋아하는데 있어 보이는 명분까지 생기게 된 사연이 몇 년 전에 있었다.
우리 집사람이 정맥류로 고생할 때 영농조합 관련 일을 해주시던 자연의학계쪽에 내공이 높으신 분께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의 처방은 음식이었다.

요지는, ‘인스턴트음식에 절어서 혈액이 너무 탁하다. 도시락을 싸서라도 돈주고 사먹는 음식을 일체 먹지 마라. 도시락 반찬 만드는 게 귀챦으면 잡곡밥을 하되 약간 소금간을 하면 먹기가 훨씬 수월하다. 잡곡에는 왠만한 영양소들이 있어서 몇 가지 섞으면 큰 문제없다. 파는 음식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였다.
솔직히 무슨 광명이 비치는 기분이었다. 쫌 오바스럽지만 난 그랬다. 그렇다면 내가 농사짓는 사람인데 당연히 우리 식구들 먹을 잡곡을 내가 농사져서 만들어 내야지!
하나 더. 농사의 근본 의미는 식량생산 아닌가. 주곡인 쌀농사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좌절치 말고 잡곡농사라도 형평껏 해야지.
에효… 뭐, 몇년을 그런 생각만 하면서 보냈다. 콩을 야심차게 한번 심었다가 비둘기에게 초장에 박살이 나고 기세가 팍 꺽이기도 했고.
맘과 달리 쉽게 잡곡농사를 식작 못한 이유가 우선 잡곡은 돈이 안되서다.
단위면적당 소출이 가장 낮은 게 보통 쌀농사라고 하는데 잡곡은 그 보다 못하다. 이번에 조를 조금 심은 걸 보고 주변에서 하나같이 돈도 안되는 걸 왜 심었냐고 핀잔 비스무리하게 묻는다. 내가 워낙에 조밥을 좋아해서 먹으려고 심었다고 간곡하게 변명을 해야 어~. 그래애? 하면서 ‘용서’해주는 형편이다. 이지역의 밭 도지가 평당 1000원~1500원인데 잡곡 농사 평당 매출액이 3000원 되기가 힘들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도지 낼 소출도 올리기가 힘들다. 그리고 잡곡은 재배과정이 기계화 내지는 표준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손이 너무 많이 간다. 거의 모든 일을 인력으로 해내야 한다. 벼농사와 비교를 해보면 단적으로 알 수가 있다.
벼농사는 파종에서 모내기 수확까지 대부분 기계화가 되어 있다. 김매기도 요즘 대부분의 친환경 벼농사에서 적용하고 있는 우렁이제초는 몇 가지 조건만 갖춰주면 어떤 기계보다도 확실하게 제초를 해준다. 수확 후에도 벼를 건조하고 도정하는 틀들이 타이트하게 짜여져 있어서 농사 초보자나 본인만의 농사인프라가 없는 사람도 썩 어렵지 않게 수를 찾을 수가 있다.

이번에 조농사 조금 하면서 절실히 깨달은 바다. 늦은 봄 조종자를 구해서 대략 백여평 심었다. 조농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동네 노인네 한분을 멘토로 삼아 물어물어 시도해 본 거다. 파종방법부터 쉽지 않다. 멘토께서는 보통 모종을 키워서 심고 있었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거라 직파를 했다. 산파를 하려면 멀칭을 못하고 풀을 잡을 자신이 없어서 유공비닐을 깔고 점파 파종기로 점파를 했다.
틈틈이 하는 일이라 이삼일은 걸렸던 것 같고 다행히 비가 와줘서 발아는 잘 됐었다. 헌데 종자가 워낙 작은 거라 한 구멍에 보통 열개씩은 들어간다. 파종기 구멍을 최소한으로 작게 해도 말이다. 멘토는 두개씩만 키우라고 했는데… 뭐 별수 있나 솎아야지. 마구 올라오는 피 바랭이 비름 쇠비름 명아주를 같이 뽑으면서 말이다. 결론은 실패. 그리고 모종을 내는 게 더 낫다. 모종 심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나중에 솎아주는 시간이나 그게 그거다. 되려 모종을 내면 김매는 게 훨씬 편하다. 결국 솎기와 김매기 시간이 솔챦이 걸리는데도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틈나는 대로 하다 보니 장마철이 와버린다. 결국 솎아주지 못한 데는 조와 풀이 마구 뒤엉키며 조는 조가 아닌 강아지풀이 되버렸다. 그래도 가을이 되니 솎은 자리는 제법 탐스런 조이삭이 고개를 숙이며 익어 가드만.
이제 수확. 이놈은 따로 탈곡기가 없고 도리깨로 털어야 된다니 벼처럼 밑동을 벨 수가 없어서 이삭 모가지만 따로 베내야 한다. 이거 시간 많이 걸리는 일이다. 바구니나 자루 하나씩 꿰차고 다니면 낫으로 이삭 하나하나 잘라서 담고 어느 정도 차면 한군데 갖다 붓고 다시 하고… 수확과 탈곡과 낟알의 포대담기까지가 한방에 끝나는 콤바인은 어디 안드로메다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어째든 모가지만 베내서 갑빠를 깔고 밭에서 말렸다. 멘토 왈, 조는 빠짝, 아주 빠짝 말려야지 안 그러면 낟알이 잘 안 털린단다. 열두번 털어낸 조이삭을 또 털어도 시집간 딸네집에 줄게 나오는 거란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집은 농업적인 인프라가 없다. 농기구 보관할 창고나 농작업을 할 헛간등이 갖춰져 있지 않다. 마당도 주차공간 외엔 도시출신 장인어른께서 정성으로 꾸며놓으신 화단이 대부분이라 뭘 펼쳐 널어놓고 그럴 게재가 아니다. 그래서 집에서 한참 떨어진 밭에 널어놓고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저녁엔 덮었다가 다음날 아침엔 다시 펼쳤다가를 반복해야 했다. 도리깨를 양수리 장날 하나 사서 털어 봤는데 별로다. 결국 두물머리 젊은 것들 도움으로 손으로 비벼서 털었지만 이삭에는 아직 많은 낟알이 남아 있어서 따로 선별해서 말린다고 널어놓은 게 아직 집 옥상에 널부러져 있다. 알곡이라고 골라놓은 것도 검불을 바람에 날려 2차 선별을 해야 되는데 아직 자루에 담겨 있다. 뭐 내가 게으른 놈이라는 건 짐작들이 되시겠지만 중요한 게 수확과 그 후 갈무리가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라는 거다. 수확해서 약간 손질하고 바로 출하해버리는 채소농사에만 익어 있는 내겐 답이 안 나온다. 더구나 혼자서 하는 농사에!(집사람은 직장생활, 애들은 어리고, 어른들은 도시출신)잡곡이란 게 참 비싼 물건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손은 많이 가고 돈은 안 되니 재배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물건 자체가 얼마 없으니 비쌀 수밖에…
콩은 그나마 주변에서 농사짓는 걸 적쟎게 볼 수 있는데 조, 수수 등은 밭 한 귀퉁이나 가장자리에 심는 것만 드물게 보고 대부분 노인네들이 소일거리 비슷하게 용돈벌이나 집에 먹을 거 정도로 하는 농사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잡곡농사는 기계화가 거의 되어있지 않는 것도 접근하기 힘든 중요한 이유다. 농사경험 8년동안 잡곡용 농기계는 몇가지 파종기와 콩타작기 정도다. 콩타작기도 베는 것은 손으로 베서 기계에 먹이는 방식이다. 벼농사의 콤바인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한참이다. 쌀 이외의 식량작물은 완전히 포기해버린 대ㅡ애한민!국!(짜ㅡ작 작 짝 짝) 농정의 잡곡을 대하는 싸늘함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농진청에서 발행한 2011년도 ‘농축산물소득자료집’에 나온 47개 작목 중 보리류 말고 잡곡은 하나도 없다.
도정도 쉽지 않다. 조는 가정용 벼도정기로 된다는데 부속(거름체)을 교체해야 된단다. 아주귀챦은 일이란다. 부속도 새로 사와야 되고. 수수는 보리방아 찧는 걸로 적용이 되는데 일정량 이상이 되어야 찧어준단다.
아ㅡ!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잡곡이여~!
내농사에 전략 품목은 시설채소다. 거의 사시사철 집중해도 새로 구입할 고가의 농지자금 갚고 집에 몇푼이라도 갖다 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려면 한 눈팔지 말아야 하는데 잡곡이 자꾸 땡긴다. 망해가는 농업에 자꾸 땡겨서 귀농을 했을 때의 감정과 비슷한 맥락인 듯도 하다.
지난해 가을에 괴산에 있는 ‘흙살림’ 토종종자전시포에 갔었다. 거기서 재배관리하고 있는 엄청난 종류의 토종 콩, 조, 수수, 기장 등 잡곡을 구경하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냥 그러기만 했다. ‘아직 내가 감당할 농사가 아니다. 최요왕 제발 욕심내지 마!’ 중얼거리며 말이다. 농사꾼의 제일 본분은 식량생산이다. 식구들 먹을, 주위의 지인들 먹일 식량이라도 내손으로 만들고 싶은 내 바램은 현재스코아 아직 바램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응답 2개

  1. 김누미말하길

    저도 잡곡밥매니아인데. 요왕아저씨의 잡곡 욕심이 이뤄지면 좋겠네욤. 잡곡 출하하시면 우선구매하겠음 ㅋㅋ

  2. 경문주말하길

    애쓴다 남편 짭곡 경험으로 전문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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