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사파티스타는 지금(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 멕시코)

- 윤여일(수유너머R)

사파티스타는 지금(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 멕시코)

* 지난주에서 이어지는 글이며, 인터뷰는 두 차례 나눠서 개재합니다.

구스타보씨에게 듣다

마르코스의 스키마스크는 아직 벗겨지지 않았다. 마르코스라는 전설도 깨지지 않았다. 검은 스키마스크는 사파티스타 반군 모든 이들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이는 얼굴로 지도자와 피지도자를 가르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가 지도자이며 대중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이자, 동시에 자본의 세계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없다는 고발이었다.

그러나 나 같은 외부자에게는 그 모두가 마르코스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떤 흔적이라도 붙들고 싶었다. 그러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는 결국 사파티스타의 근황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다큐멘터리를 본 다음 날 떠나야했다.

다시 실마리를 잡은 것은 멕시코시티에서였다. 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의 박사과정으로 있는 친구 박수경씨가 자신의 대학에서 사파티스타를 연구하고 계신 분을 소개하고 인터뷰도 잡아주신 것이다.

인터뷰 장소는 역시 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이었다. 이곳은 1982년 스물여섯에 치아파스로 무장운동을 조직하러 떠나기 전 마르코스가 시각예술이론을 강의했던 곳이기도 하다. 6시의 인터뷰 약속에는 다소 여유가 있어 공을 차는 학생들이 있길래 끼어볼 요량으로 근처를 얼쩡거리다가 짧게 경기를 했다. 곧 숨이 차올라 헐떡거렸다. 마침 비가 내려 무승부로 경기를 접을 수 있었다. 상기된 채 구스타보 가르시아 로하스씨를 만나러 갔다.

사실 그 날은 구스타보씨 아이가 아파서 올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들었다. 하지만 와주셨고, 죄송하게도 약속장소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직접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눈빛과 손놀림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다음의 기록은 그 날 인터뷰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통역은 박수경씨가 맡아주셨다.

구스타보 가르시아 로하스(Gustavo Garcia Rojas)씨, 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Universidad Automona Metropolitana) 박사과정, 34세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사파티스타에 관한 소식을 종종 접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뜸해졌네요. 이번에 치아파스를 여행하는 동안 사실 어떤 실마리를 쥐길 바랐지만, 흔적들만 지나쳤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멕시코시티에 온 이후 사파티스타 연구자가 계시다기에 이렇게 찾아뵙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통해, 물론 당신의 사고를 거친 사파티스타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 먼저 저는 사파티스타를 지지하지만 사파티스타의 일원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히 해둬야 하겠네요. 사파티스타는 치아파스의 밀림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니까요. 저는 일개 시민일 뿐입니다.

마르코스는 종종 ‘거울의 덪’에 대해 말한다. 거울은 우리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반대로 거울에 비춘 만큼만 우리는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거울은 거울 밖의 모습을 사고할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을 갉아먹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혁명은 어떤 사회체계를 다른 체계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물구나무 선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예, 그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 저는 이 곳 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사파티스타를 학적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편 사파티스타는 2005년 라칸도나 밀림의 6번째 선언을 통해 ‘다른 선거’(La otra campaña)를 내놓았는데, 저는 그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즉 제게 사파티스타는 학문적인 관심인 동시에 정치적인 약속입니다.

– 우선 그 논문의 주제부터 여쭤 봐도 될까요.

: 사파티스타 카라콜(caracol) 사례를 통해 그들의 반란과 원주민 자치권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주제의 초점은 사파티스타의 조직구성에 맞춰져 있나요.

: 정확히 말하면, 사파티스타 조직이 아니라 사파티스타를 지지하는 마을들에서 일궈진 사회·정치적 단체들을 연구하는 것이죠.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사파티스타의 동향

– 한국의 사상계에도 사파티스타에 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초점은 구체적인 활동의 내용보다는 사파티스타가 지닌 상징성에 맞춰져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사파티스타에 관한 저작들이 주로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글을 번역한 내용들이라는 점도 한 몫 하겠지요. 마르코스의 책은 벌써 6권 가량 번역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파티스타가 한국의 좌파운동에 어떤 영감을 안긴 것도 사실입니다. 한동안 인터넷과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심심치 않게 그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도통 찾아보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최근 수 년 간 사파티스타의 동향을 여쭙고 싶습니다.

: 아마도 소식이 뜸해졌다면, 그것은 사파티스타 운동의 국면과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사파티스타는 원주민의 권리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까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중요한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2000년 선거에서 70년 가까이 집권해온 제도혁명당(PRI)이 패배하고 국민행동당(PAN)의 비센테 폭스(Vicente Fox Quesada)가 당선된 일이겠죠. 비록 보수파이긴 하나 2000년 선거는 변화와 희망을 의미했습니다. 그리하여 좌파도 폭스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제도혁명당을 축출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파티스타는 그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폭스가 당선되어 오랫동안 중지되어 왔던 정부와의 협상을 재개할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2001년 ‘대지의 색채 행진(La Marcha del Color de la Tierra)’에 나섭니다. 익히 알고 계시는 마르코스를 비롯해 모든 부사령관이 여러 주와 도시들을 경유해 치아파스로부터 멕시코시티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안(ley de derecho y cultura de indigena)’을 제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애초 이 법안은 1996년 세디요(Ernesto Zedillo) 전대통령과 합의한 산안드레스의 협약(Acuerdo de San Anderes)에 의거하고 있습니다. 그 협약을 법안으로 옮기기 위해 ‘평화와 화합 위원회’를 꾸려 압력을 넣었습니다. 에스데르(Esther), 따초(Tacho) 두 부사령관은 이 법안이 왜 필요한지 의회에서 연설했고, 그 연설은 전국으로 방영되었습니다. 이 법안은 원주민 자치권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 가운데 이 행진은 멕시코시티의 의사당 앞에서 마무리되고, 사파티스타는 그들의 지지자들과 함께 치아파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해 의회에서는 거꾸로 뒤집힌 법안이 통과되었고, 사파티스타는 이제 막 재개된 정부와의 대화를 중지해버립니다. 모든 정당 그리고 정치집단과 더 이상 대화의 가능성은 없으며, 그들은 원주민을 배반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광범한 원주민 운동진영도 새로운 법안을 승인할 수 없다고 밝히며 정부와의 대화를 그만둡니다.

– 그것이 2001년의 일이군요.

: 예, 이후 시민활동가 그룹과 접촉하는 일은 있었지만, 공식적인 대화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2003년 트레세아바 에스텔라(La treceava estela) 성명서를 통해 새로운 법안을 거부한다고 거듭 밝히고 원주민 공동체의 자치를 선언합니다. 이때 조직체계를 개편하는 데, 아과스칼리엔테스(Aguascalientes)라고 불리던 다섯 개의 영역편제, 즉 지난 조직구조는 시효를 다했고, 이제 다섯 개의 카라콜로 바뀐다고 천명합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파티스타의 조직체계가 이때 생겼죠.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조직체계의 기능이나 정치적인 관점도 바뀌었습니다. 각각의 카라콜은 ‘좋은 정부 위원회(Junta de Buen Gobierno)’를 갖습니다. 무장조직 부문과 사파티스타 마을의 민주적 조직 부문, 즉 의회와 무장투쟁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었던 셈이죠. 2년간 정비과정을 거쳐 2005년에는 라칸도나 밀림의 여섯 번째 선언이 나옵니다.

라칸도나 밀림의 여섯 번째 선언

야! 바스타! Ya! Basta! 사파티스타는 세계 민중에게 “야! 바스타!”(이제 그만!)라고 외치자고 말한다.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자본주의를 향해,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질서를 향해 우리 모두는 “야! 바스따!”를 외쳐야 하고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주의 마르크스주의자 해리 클리버는 “야! 바스따”를 “하나의 ‘아니오’ 무수한 ‘예’ One NO, Many yeses”라고 표현했다. ‘One NO’는 신자유주의 체제이며, 보다 본질적으로는 권위적인 모든 억압이며, ‘Many Yeses’는 무수한 인류가 꿈꾸는 다양한 존재와 삶의 방식, 그리고 저항 방식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사파티스타는 “야! 바스타”를 통해 그/그녀들의 지역적인 투쟁과 욕망을 세계 민중들의 저항과 연결시킬 수 있었다.

여섯 번째 선언은 멕시코를 다시 건설하겠다는 목적에서 제출되었습니다. 세 가지 기본축을 가지는데, 첫째, 전문정치가들이나 정당과는 거리를 두되 기층부터 반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좌파까지 아울러 정치를 새로운 형태로 건설할 것. 둘째,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제정할 것. 셋째, 새로운 멕시코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을 전국적인 차원에서 구성할 것 등입니다.

– 현재 사파티스타의 행보를 이해할 때, 이 여섯 번째 선언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요.

: 여섯 번째 선언은 가장 최근에 나온 선언입니다. 최근의 3, 4년 사이에서는 방향을 제시한 가장 중요한 선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사파티스타의 이름으로 선언이 나왔다고 할 때, 그 주체는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요. 제가 접할 수 있었던 여러 선언문은 한 개인이 작성한 것인가요.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방향을 정하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나요. 사파티스타가 어떻게 조직되는지와 관련해서 아무래도 그 점이 궁금합니다.

: 선언의 경우라면 카라콜, 즉 각각의 원주민 자치단체들 안에서 어떤 제안이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초안이 작성되면, 다시 그 내용에 동의할만한지 함께 점검합니다. 또한 조금 다른 사례인데요, 여섯 번째 선언은 새로운 멕시코를 구성하기 위해 ‘다른 선거’를 제안했습니다. 다섯 번째 선언까지는 사파티스타가 바깥사람들에게 지지를 구체적으로 요청한 적이 없었죠. 하지만 여섯 번째 선언은 바깥으로 참가요구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개인으로 그리고 단체로, 인터넷으로 혹은 직접참가로 그렇듯 다양하게 지지를 표하고 동참했습니다.

최근의 동향을 마저 소개하고 싶네요. 2005년 제안된 ‘다른 선거’는 2006년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선거정치를 거부하고 다른 정치를 시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다른 선거’ 제안 이후 마르코스는 전국순회에 나섭니다. 그리고 각 지역과 단체에 자신들의 제안에 동의하는지 의사를 묻습니다. 이와 아울러 사파티스타의 여섯 번째 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이 위원회는 부사령관들과 지휘관들로 꾸려지는데, ‘다른 선거’를 통해 멕시코의 다른 운동단체와 관계를 맺는 데 힘을 기울입니다.

– 마르코스의 순회도 그런 맥락이었겠네요.

: 그렇죠. 순회를 거쳐 단체들의 의견을 취합한 것입니다. 그보다 먼저 서로 어떻게 그리고 왜 투쟁하고 저항하는지 그 내용과 형식들을 알고, 억눌린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순회에 나섰습니다. 2005년 12월에 시작된 순회는 남쪽에서 중부로 올라왔다가 2006년 5월 3일, 4일 산 살바도르 아텐코(San Salvador Atenco)에서 벌어진 경찰의 발포사건으로 중단됩니다. 아텐고라는 지역에서 정치범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잠시 순회를 멈춰 탄압에 반대하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말 다시 순회를 재개해 2007년 중반에 순회가 모두 마감됩니다. 이때 멕시코시티에서 한 달 가량 머물렀는데, 치아파스에서 군병력의 탄압이 있어 돌아갔습니다. 거기에는 사파티스타에 반대하는 우파 무장세력을 조직해 기층 단위에서 내분을 조장하는 복잡한 문제가 깔려 있었죠.

2007년에는 세 차례에 걸쳐 ‘사파티스타와 세계 민중의 만남(encuento de los pueblos Zapatistas con los pueblos del mundo)’이 꾸려졌습니다. 그간 사파티스타 마을에서 일궈진 자치권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12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 근처에 있는 티에라 대학(Universidad de la tierra)의 컨퍼런스에서 마르코스는 이런 식으로 순회를 계속하고 멕시코 전역의 운동 단체를 결집하다가는 자칫 내전으로 번질 수 있다며 우려를 토로했고, 현재 사파티스타는 치아파스 바깥으로 나가는 일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 사파티스타 스스로 바깥과의 연계활동을 중단했다는 말씀이신가요.

: 예, 스스로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끊임없는 공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도 해야 했습니다. 여섯 번째 선언은 전국적인 단위로 나서겠다는 내용이었지만, 잠시 접어두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죠. 다만 ‘다른 선거’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파티스타의 대표자들은 빠진 채이나, 정치범의 석방과 사파티스타에 대한 무력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지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이라면 2008년 6월부터 8월까지 진행된 대장정(caravana)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전국 규모로 그리고 세계 각지의 활동가들도 참가하여 사파티스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행사였습니다. 사파티스타는 혼자가 아니며 고립되어 있지 않다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 이제 겨우 최근의 움직임을 다소 이해할 수 있겠네요. 저도 여섯 번째 선언은 번역된 내용이 있어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맥락은 너무도 아는 바가 없어 정치적인 수사로 넘겼다는 기억입니다. 멕시코의 정치상황과는 무관하게 읽은 셈이죠.

: 번역은 어땠나요.

– 한국에는 사파티스타를 지지하고 국제연대를 도모하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곧잘 선언문을 옮깁니다. 번역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멕시코의 정치적인 상황까지는 소개되지 않아 실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더 알아보지 않은 탓도 크고요.

: 한국에서 번역되었군요. 여섯 번째 선언은 이전의 선언과 다릅니다. 이전의 선언은 원주민을 위한 원주민에 의한 정치를 주장했지만, 여섯 번째 선언은 다른 단체와의 연대를 내놓았죠. 원주민 자치를 촉구하지만, 원주민만을 위해서도 원주민의 편에서만 내놓은 것도 아니었죠.

– 윤여일 (수유너머 R)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