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일(수유너머R)

Releases

  • 사쿠라이 다이조 씨의 텐트연극과는 번번이 엇갈렸다. 2007과 2008년, 나는 도쿄에서 생활했다. 그동안 그의 텐트연극을 보러갈 기회가 있었지만 공연이 잡힌 날에 멕시코로 떠날 일이 생겼다. 사쿠라이 씨와는 종종 만났고 지인들로부터 그의 연극에 관해 전해 들었고 연습하는 장면을 보러가기도 했으며, 그가 쓴 대본도 읽었다. 하지만 정작 공연은 본 적이 없다.
  • 3월 11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 지진과 해일로 인한 사망자는 1만 4천 명을 넘었고 행방불명자도 1만 2천 명에 달했다. 1995년 한신 지진은 6천 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한 달 후 집계된 행방불명자는 두세 명에 불과했다. 이번 지진에서 이처럼 엄청난 수의 행방불명자가 발생한 까닭은 많은 사람이 해일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갔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행방불명 목록에 속해 있는 자는 이제 사망자 안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도쿄전력은 사람들을 휩쓸고 간 그 바다에 ‘낮은 농도’라면서 방사능 오염수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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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적고나는데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식상한 새해 인사인데도 입에 담기가 불편합니다. 새해가 밝으면 어둠으로 밀려났던 사건들에 빛이 비춰질까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이 주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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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한미FTA가 비준되고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FTA비준안과 이행법안에 관한 서명을 마쳤습니다. 분노가 치밉니다. 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번번이 악에 받쳐 올랐습니다. 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매일 분노를 삭이고 있으면 힘이 부치고 이 시간이 길어지면 속이 상합니다. 희생이 생기고 쌓일 때마다 잊지 않으려고 그 목록을 기록해두며 긴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목록은 기억할 수 있는 양을 초과해버린지 오래입니다. 이제 분노는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점차 변질되려 하고 있습니다.
  •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경험한다는 것, 그것은 부득이하게 잘못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말입니다. 어쩌면 니체야말로 방사성을 띠는 그의 아포리즘이 너무도 쉽사리 타인에 의해 ‘아름답게’ 인용되는 사상가일 것입니다. 저 역시 그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 지난주 금요일 수유너머R과 카페 별꼴의 오픈파티가 있었다. 수유너머R에게 그것은 삼선동 시대를 여는 소박한 자리였다. 그러나 다채로운 공연, 그보다 더 다양한 손님들의 면면은 새 출발에 큰 힘을 보태주셨다. 아니 ‘손님’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오신 많은 분들은 수유너머에서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으며 혹은 수유너머를 통해 우리와 연을 맺으신 분들이며, 앞으로 수유너머R의 미래를 지켜봐주실 분들이기 때문이다.
  • 2007년 여름 오키나와로 향했습니다. 이라는 행사가 오키나와에서 열렸습니다. 장소는 마루키(丸木) 미술관. 오키나와를 무대로 활동하는 화가와 다큐멘터리 작가로부터 그들의 작품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시실에는 묘하게 금속성 느낌이 강한 추상화가 여러 점 걸려 있었습니다. 흙빛과 핏빛의 강렬한 색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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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선생이십니다. 집안 내력이 그렇습니다. 증조할아버지는 훈장, 할아버지는 교장, 누나는 중학교 선생입니다. 거슬러 오르면, 파평 윤씨 시조인 윤신달도 왕사였다고 합니다. 윤(尹)이라는 성이 왕건에게 하사받은 것이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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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연쇄테러 용의자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테러를 감행하기 직전 인터넷에 1518쪽 분량의 선언문 을 올렸습니다. 선언문의 1천407쪽에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트위터를 통해 돌아다닌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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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클리 수유너머 편집진은 수유너머R의 작은방에서 편집회의를 합니다. 수개월 내 편집회의 장소가 바뀔 것 같습니다. 수유너머R은 이사 가기로 정했습니다. 도시살이에서 이사가 특별할 것이야 없지만, 연구실에서는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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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자리로 간 가게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대학원생인 이탈리아 여성에 관한 일입니다. 현재 외국인 유학생으로 결성된 자원봉사자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진재해 후 고국의 부친이 티켓을 보내 3월 16일에 일단 귀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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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유너머 위클리의 편집진은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반에 모여 편집회의를 합니다. 그 풍경을 얼마 전 [편집자의 말]에서 고추장이 묘사해주셨죠. 편집진들은 한 자리에 모여 고정코너의 글들을 검토하고, ‘동시대 반시대’를 기획하고, 특집을 정합니다. 이후 3, 4회분의 기획을 잡고 필자들을 섭외합니다. 회의 분위기는 어수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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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날 저녁, 일본의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하루 이틀에 걸쳐 다들 답장을 보내줘 일단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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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 사랑하다(aimer)의 변화는 까다롭다. 과거는 단순하지 않고, 현재는 직설적이며, 미래는 조건적이다.” - 장 콕도 ‘20대 무한독전’ 팀이 사랑 얘기를 진탕 쏟아내셨다. 사랑 얘기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천일야화를 갖고 있으리라. 그러나 흔하디흔한 게 연애담, 사랑담이라지만, 그게 경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다지 만만치 않다.
  • yyi
    고위인사의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도 있는 편지 한 장이 고급 아파트에서 도난당했다. 도둑이 지목되었다. 그는 장관이다. 그가 편지를 가로채는 장면이 목격된 것이다. 편지는 여전히 그의 수중에 있다. 파리 경찰청이 수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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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항이란 자신을 억압하는 자신보다 강하고 큰 상대와 맞서는 일이다. 하지만 「다케우치 요시미: 동양의 저항과 동아시아의 가능성」에서 확인했듯이 다케우치 요시미가 이해한 루쉰의 저항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자기동일성에 대한 거절까지를 요구했다. 저항하는 정당성이 상대가 나를 억압한다는 사실에서만 구해진다면, 내가 지금의 나인 까닭은 상대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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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과 동양은 담론적 구성물이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의 관계는 비대칭적이며 둘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서양은 경계지어진 영토상의 명칭이지만 자기한정을 거부하고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서양은 자신이 하나의 특수로서 다른 항(동양)과 대립하지만, 다른 항이 자신을 특수로서 인식할 때 보편적 준거점으로 작동한다. 동양은 서양과의 차이를 통해 자기인식을 획득한다. 따라서 서양은 ‘서양 대 동양’이라는 대립관계의 한쪽 항이자 그 대립 자체가 발생하는 장소이다. 서양의 ‘근대’ 과정과 동양은 ‘근대화’ 과정은 그 동학을 통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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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20개국인가. G20이랍시고 20개국이 모여 세계경제질서를 좌우할 권한은 누가 맡겼는가. G20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모인 나라들은 대표성을 갖지 않는다. G7에 경제규모와 지정학적 이유가 반영되어 G20이 꾸려졌을 뿐이다. 경제규모가 참가 여부와 발언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G20은 기업의 주주총회와 닮았다...
  • 사진은 흘러간 과거를 기록으로 남긴다. 사진에 담기면 어떤 과거든 제법 되돌아볼만한 해진다. 사진은 또한 전문적 훈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도 그럴듯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주류 예술이다. 운이 좋으면 무심결에 세상의 멋진 단면을 수집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은 여행과 나란히 성장해왔다. 사진은 여행을 다녔다는 증거이자, 여행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는 프레임이다...
  • 이번호는 ‘텐트연극, 현실을 허구화하다’이다. 그 주인공은 사쿠라이 다이조(桜井大造)다. 그는 일본과 타이완, 중국, 한국 등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연극인이다. 그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극단 ‘곡마관’(曲馬館)으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텐트연극을 했다. 해산 후에는 ‘바람의 여단(風の旅團)’을 창단해 10년간 전국 공연을 다녔고, 1994년 다시 ‘야전의 달(野戰の月)’을 꾸렸다. 1999년에 대만에서 「EXODUS出核害記」를 공연하면서 이후 일본과 타이완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2002년부터는 극단 이름을 ‘야전의 달=해필자(野戰の月=海筆子)’로 바꾸어 …

  • 여행을 떠나며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그렸다. 낯선 텍스트를 접한 독자의 이미지 말이다. 나는 장소를 텍스트로 삼아 한 명의 신중한 독자가 되고 싶었다. 낯선 텍스트를 대할 때 어떤 이는 자기 마음에 드는 일구만을 건져간다. 어떤 이는 행간을 읽어내기도, 전체상을 움켜쥐기도 한다. 장소가 텍스트라면, 행간은 그 장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직조해내는 삶의 논리일테며, 전체상은 역사에 값하리라...
  • 잃어버린 낙원, 샹그릴라는 이제 실재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것은 중국에 있다. 1997년 중국 정부는 샹그릴라를 발견했다고 대대적으로 공식 발표했다. 원난성의 중띠엔(中甸)이 바로 그곳이라는 것이었다. 2001년에는 중띠엔을 샹그릴라(香格里拉, 샹거리라Xiānggélǐlā)로 개명하여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개발하였다. 도로를 포장하고 공항을 개설하고, 2003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켰다. ...
  • 질문은 어설프고 가벼웠으며 답변은 묵직했다. 사실 구스타보씨는 잡지에 실린다는 사실을 인터뷰 직전까지 모르고 계셨다. 그런데도 콕 찌르면 꿀물이 흐르듯 저렇듯 정리된 말씀을 지니고 계셨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령 구스타보씨가 한국에서는 무엇이 운동의 축이냐고 물었을 때 과도기라며 얼버무리고 다시 화제를 사파티스타로 옮겨갔다. ...
  • 마르코스의 스키마스크는 아직 벗겨지지 않았다. 마르코스라는 전설도 깨지지 않았다. 검은 스키마스크는 사파티스타 반군 모든 이들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이는 얼굴로 지도자와 피지도자를 가르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가 지도자이며 대중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이자, 동시에 자본의 세계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발견할 수 없다는 고발이었다. ...
  •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치아파스라고 답했다. 재차 그게 어디냐고 물어준다면 사파티스타의 근거지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러냐”는 반응을 접할 때 약간의 우쭐거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땅을 밟는다! 그리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 와서 안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난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
  • 안나푸르나에서 트래킹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 묵는 곳이 바뀐다. 로지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기 전에 식사부터 주문한다. 시간이 제법 걸리니까. 밥이 나오는 동안 샤워를 하면 말끔하련만 그게 쉽지 않다. 추워서 옷을 벗으려면 결심이 필요한 데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려면 나무 두 그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 개중에는 낮에 비축해둔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곳도 있다. 상쾌함과 자연보호 그리고 추위를 두고 타협을 벌인 결과 샤워는 사흘에 한 번 꼴이다. ...
  • 눈앞에 둔 사물과 머릿속 생각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 큰 생각은 때로 거대한 광경을 요구한다. 깎여져 내려가는 절벽을 마주하노라면 품위 없다고 느껴지는 근심이 있다. 반면 어떤 착상들은 그 광경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자연의 웅장함은 산란한 마음을 차분하게 덮어준다. 압도적인 규모는 뇌를 포화시켜 소소한 것들을 걷어낸다. ...
  • 안티구아는 걷기 좋은 도시다. 오래 걷자니 발의 피로보다는 배의 허기가 먼저 찾아왔다. 마침 한국음식점을 발견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얼마만의 한국음식인지. 메뉴를 물을 것도 없었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밥을 먹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허기를 달래니 이제 힘이 붙어 잠시 도시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
  • 많은 여행서는 이렇게 권유한다. “떠나라! 일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꿈과 자유가 있을지니.” 하지만 그저 이국적이라면 외국의 장소는 일상의 감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차라리 내게 ‘마음의 장소’는 여행에서 일상을 만나고, 일상에 여행의 숨결이 입혀지도록 이끄는 곳이다. 나는 멕시코시티에 오면 띠앙기스를 기다린다. 띠앙기스는 아무 때나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
  • 일상의 무게에 그리고 가픈 호흡에 여행의 기억은 점차 바래간다. 먼저 여행지가 그 고유한 빛깔을 잃고, 나중에는 여정의 줄거리가 사라진다. 그 망각은 여행하는 동안에도 예감할 수 있다. 그래서 훗날 회상하려고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긴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가끔씩 어떤 장소는 사진 대신 마음에 남는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 장소의 편린은 감각의 밑바닥에 남아있다. ...
  •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는 남의 일상에 갑자기 작은 파란을 불러일으킨다. 그 파란은 서로 간에 웃음으로 번질 수도 있고, 상대의 주뼛거림이나 불편한 표정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찍고 찍히는 사이에 그렇듯 알게 모르게 의미가 교환될 테지만, 대개 그 의미는 찍는 쪽이 결정하거나 적어도 보존한다. 글로 쓰는 일과 달리 사진은 사진찍는 내 행위를 상대가 눈치 채기 쉽다. ...
  • 멕시코시티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오른 것은 네 번째다. 미국을 경유한 비행기는 늘 밤 시간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바깥 세계의 어둠들. 창에는 바깥 풍경 대신 내 얼굴이 비친다. 또 왔구나. 오랜 비행시간에 초췌해진 얼굴을 보며 말한다. 우웅 … 귀를 가득 메우는 비행기 실내의 소음은 내면의 대화로 들어가는 적절한 정막이 되어 준다. ...
  •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은 전사자의 묘지이다. 광장에 가지런히 세워진 검은 석제 묘비는 한자 한자 전사자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광장 뒤편의 기념비는 일본의 각 도시·부·현 단위로 전몰자를 위령하고 있다. 찬찬히 비석들을 훑어본다. 일본인만이 아니라 적국이었던 미군 병사의 이름도 눈에 띤다. 전쟁의 역사를 뒤로 하여 민간인과 군인 전사자의 이름이 국적을 불문하고 함께 새겨져 있다. ...
  • 네 사람이 구부정하게 서 있다. 머리모양과 차림새가 비슷하다.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지 싶다. 서 있는 곳은 경작지로도 보이고 뒤로 흐릿하게 나무 형상이 있는 걸 보아 어느 들판인지도 모르겠다. 그림자를 보니 대낮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정오 무렵에 이들을 만나거나 불러낸 모양이다. 둘의 시선은 카메라를 향하고, 둘은 카메라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