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 윤여일(수유너머R)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

이렇게 적고나는데 다음 문장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식상한 새해 인사인데도 입에 담기가 불편합니다. 새해가 밝으면 어둠으로 밀려났던 사건들에 빛이 비춰질까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이 주어질까요.

삼주 동안 연이어 편집자의 말은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2011년에 관한 토로가 이어집니다. 싸움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사건은 장사지내지 못했습니다. 희생의 목록은 여전히 늘어가고, 매듭지은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제주해군기지도 올해 예산이 대폭 감축되었더군요. 물론 현재진행형인 사건입니다.

지난주 편집자의 말에서 병권이형은 올해 위클리가 다룬 주제를 열거했습니다.

부당 노동행위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싸웠던 홍대미화원 노동자 이야기를 시작으로,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대학생,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 구제역 때문에 생매장한 동물들, 쓰나미와 방사능피폭으로 희생된 일본 민중들, 쥐그림 재판, 4대강의 파괴현장, 강제철거에 맞섰던 두리반과 마리, 희망버스, 병역거부자, 잡년 행진, 용역의 폭력, 제주 해군기자, 월가 시위, 한미FTA, 한국의 원전, 재능지부노조의 싸움 등등.

이 모든 사건들은 올해 위클리가 다시 취재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2012년은 2011년으로부터 단절된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 2011년에 해결하지 못한 일의 유예이며, 싸움의 지속입니다.

차라리 제게는 1년에 관한 다른 셈법이 더 가치 있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이번호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정영신 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0년 1월 9일 355일 동안 미뤘던 장례식을 치뤘어요. 감옥에 있는 남편과 저는 반대했어요. 도대체 뭐가 해결됐다고, 뭐가 밝혀졌다고 장례를 치른다는 말인가요?” 여기서 1년은 분노와 고민과 기억의 단위입니다. 그 용산참사는 올해 1월 20일이면 3주기가 됩니다. 희생의 시간이 늘어나 3년을 채웁니다. 2009년 1월 19일부터 지금까지는 같은 시간 안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을 세고, 해를 세야 하는 사건들이 늘어갑니다. 2011년 위클리도 그 시간의 기록이었습니다. 때로 불행의 사건들만을 추려보면, 세계는 공존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마치 병 속에 갇힌 말벌들이 서로를 찔러대듯 서로에게 고통을 가하기 위한 장소라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작년 위클리를 보면 상처와 아픔만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다른 시간도 있습니다.

2.

다음주에 사쿠라이 다이조라는 분과 만납니다. 28호에서는 그와 텐트연극에 관해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시간’, ‘우리의 시간’에 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배우이자 극작가로서 ‘변환 부스럼딱지성’이라는 연극의 극본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연극은 모래시계 이야기로 희망과 절망을 다룹니다. 우리는 모래시계 속에 있는 한 알 한 알의 모래입니다. 모래시계가 뒤집히면 우리는 시간의 누적을 표시하며 그저 떨어집니다. 모래시계는 체제입니다. 모래시계가 표시하는 시간은 우리 자신의 시간이 아닙니다. 체제의 시간 속에서 우리 삶은 내버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모래알은 떨어지면서 서로 스칩니다. 스치며 모래입자가 변합니다. 우리의 신체가 바뀝니다. 그것은 아픔을 동반합니다. 그 스침만이 우리의 시간이며, 옆의 존재와의 마찰 속에서만 희망을 사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연극에 이런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희망(希望)의 희(希)는 드물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절망은 희망의 반대말이 아니라 희망을 구해나서야 할 토양인지도 모릅니다. 절망은 나아갈 길이 끊긴 상태입니다. 희망은 길이 끊긴 그곳에서 힘들게 길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번번이 돌아오는 새해가 진정 희망이라는 의미와 관련될 수 있다면, 그건 아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시간’으로 들어서기 위해 다시 한 호흡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다시 새해 인사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서로에게 복이 되기 위해 함께 싸웁시다.

응답 2개

  1. Beilang말하길

    한 해 동안 고생하신 편집진 모든 분들께 새해인사 드립니다. 여러분 덕택에 멀리서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방관자로 머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한해 절망이 많은 이들을 덮쳤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은 작고 작은 싹들처럼 꼬물거리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절망에 사로잡힌 이들이 모여 서로에게 절망을 넘어 희망의 싹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비스럽게 느껴집니다. 새해에는 저도 누군가에게 복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With Solidarity, From Harlem,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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