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사랑, 마르고 닳지 않는

- 윤여일(수유너머R)

“동사 사랑하다(aimer)의 변화는 까다롭다. 과거는 단순하지 않고, 현재는 직설적이며, 미래는 조건적이다.” – 장 콕도

1.

‘20대 무한독전’ 팀이 사랑 얘기를 진탕 쏟아내셨다.

사랑 얘기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천일야화를 갖고 있으리라. 그러나 흔하디흔한 게 연애담, 사랑담이라지만, 그게 경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험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다지 만만치 않다.

나는 20대가 아니다. 이제 확실히 서른을 넘겼다. 주위에서 성화까지는 아니어도 가끔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결혼을 하기에 나는 시간에 이기적이다. 가정이 생기면 공부와 여행에 차질이 생길까봐 금생에는 없는 일이라고 일단 정해두었다. 결혼생활이 아니라 연애관계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연인은 있지만 연애는 하지 않는 상태가 내 생활에는 적합하다. 나는 소위 원거리 연애를 하고 있다.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있다. 몸은 작지만 날개를 펴면 3-4m에 달하며 활공을 통해 날개짓을 하지 않아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간다. 한번 날개를 펴면 이년 동안 날아다니다가 이년 후에 자신이 떠났던 벼랑으로 돌아와 교미를 한단다. 이 대목은 잘 믿기지 않는다. 어쨌거나 거기에 정착하여 새끼를 낳아 기른다. “알바트로스는 짝짓기 철이 되면 수많은 무리들이 한 곳에 모여 일생동안 단 한 상대하고만 짝을 짓는다.” 친구는 알바트로스와 닮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수컷이 아니라 그저 벼랑일 가능성도 있다.

이년 만에 친구가 잠시 돌아왔다.

2.

사실 친구의 사정도 있지만 현재 내 삶에서 연애가 얼마만큼의 비중이 되어도 좋은지를 결정할 수 없는 까닭에 연애 ‘활동’은 유보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연애는 분명 사람이 성숙하는 장이다. 책이라면 밑줄을 그어가며 얼추 이해할 수 있지만, 연애에서는 행간을 읽어내지 못하면 끝장이다.

그 안에 진정 사랑이라 부를 만한 게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끌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섭이 있다. 그토록 타인을 애써 바라보는 관계는 없을 것이다. 거기서 추상은 허용되지 않으며, 인간의 말은 생생해진다. 에둘러가는 말들도 생생한 것이다. 그 관계는 분명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갖는다.

3.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자에게 사랑에 빠진 다음 날 아침의 인간 심리만큼 비옥한 영토는 없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당신에게 누구여야 하나요?”

이제 막 사랑하려는 사람은 두 물음 사이에서 한정 없이 오간다. 그리고 사랑에 발을 내딛은 사람은 상대의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려는 낭만적 편집증자가 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사랑을 발을 내딛은 상대는 나를 향하고 있음에도, 묘하게 내가 전부를 알아서는 안 되는 감정을 나에게 발신한다. 그 연인이 전화를 두고 꾸물거리는 편이라면 전화기는 내게 잔인한 고문도구가 된다.

4.

연애의 초기에 충돌할 여지는 비교적 적다. 그러나 사랑이 현실에서 실현되려면, 사랑의 천사는 지상으로 내려와 육체를 가진 존재로 화한다.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껴안으리라 생각했건만, 그러한 신의 사랑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연애 초기의 몽환은 생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이윽고 그 시간이 도래한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저 사람일까. 맞은편에서 밥을 먹는 상대를 보며 생각한다. 상대를 향한 사랑이란 상대의 표정, 생각, 말투, 차림새에서 일부를 부풀려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나는 혹시 잘못된 환유를 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상대의 아름다운 손가락과 상대가 상냥했던 기억을 상대로 착각하는 오류를 말이다.

5.

삐침. 그것은 연애감정의 근간이며, 기묘하며 버겁고 예술적이기까지 한 사랑의 기술이다.

삐침이 성공을 거두려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삐치게 만든 쪽에 어떤 잘못이 있어야 한다. 다만 삐침의 정치학의 특징은 삐칠 만한 내용물과 그로 인해 상대에게 가하는 비방 사이에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를 돋운 일에 비해 벌이 지나치게 세다.

연인들은 삐칠 기회를 노린다. 모든 삐침의 밑바닥에는 그 자리에서 얘기했더라면 쉽게 넘길 수 있는 잘못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상처 받은 쪽은 나중을 위해, 좀 더 고통스럽게 폭발시키려고 상대의 사소한 잘못을 속에 쟁여둔다. 그래서 즉시 털어놓았다면 풀렸을 일을 음산하게 배양한다.

삐친 사람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발산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떼쓰지만, 막상 상대가 그것을 주려하면 거부한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삐친 사람은 의미를 상징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반은 상징이 해독되는 것을 기대하고, 반은 두려워하면서.

6.

연애는 감정상의 자잘한 전투이다. 연애관계는 연인들 간에 전략과 전술을 요구한다. 행위의 효과는 계산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때로 연애하는 것과 연애의 요령을 하는 것은 혼동되기도 한다. 그래서 연애는 피곤하고 소모적이다.

그리고 상대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현실에서 관심을 거두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편의적이다. 또한 연애는 배타적이다. 관계가 소유로 바뀔 때 연애는 인간의 소유욕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증폭시킨다. 상대에게 배타적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배타적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배타적이 된다. 자신의 소유가 되면 연인은 더 이상 바라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의 소유물이 되어 교환관계에 들어선다. 서로의 가치를 비교한다.

7.

물론 그 사실을 안다고 피할 수 있다면, 시작하지 않을 수 있다면 연애가 아니다.

나는 곧잘 여행을 다닌다.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가장 아름다운 커플은 어느 순간부터 노부부였다. 함께 여행하는 노년의 커플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그들에게는 산도 바다도 잘 어울린다. 완만한 반복 속에서 서로의 시간은 서로 섞여 함께 흘러간다. 열꽃처럼 타오르지는 않을지라도 결코 식지 않을 은근한 열기. 그것이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에 더욱 가까울 것 같다. 노을, 축복, 부서진 돌조각, 헌신, 물줄기, 애틋함.

그런 커플을 만나면, 하는 수 없이 나도 지금의 내 사랑을 묻게 된다. 저들만큼 나이가 들어 여행길에서 만난 이에게 나의 사랑 이야기를 추억할 때 추하지도 훈계조처럼 되지도 않을 수 있을까. 그 눈빛은 그윽할까. 아니면 과거를 향한 아쉬움이 묻어 나올까.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사랑 자체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없지만, 사랑을 생각하는 일은 마르지도 닳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하는 존재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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