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11호] 어떤 카리스마(치아파스, 멕시코)

- 윤여일(수유너머R)

사파티스타의 근거지와 레스토랑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면 치아파스라고 답했다. 재차 그게 어디냐고 물어준다면 사파티스타의 근거지가 있는 곳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러냐”는 반응을 접할 때 약간의 우쭐거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땅을 밟는다!

그리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 와서 안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난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검은 스키마스크를 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거리를 배회하기라도 바랬던 것일까. 하지만 이 도시는 1994년 1월 1일 NAFTA가 발효되자 사파티스타가 봉기를 일으킨 바로 그곳 아니던가. 나는 동향을 알고 싶었다. 아니면 흔적이라도 줍고 싶었다.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 1994년 2월 21일 이곳에서 19명의 사파티스타 사령관과 마누엘 카마초 당시 외무장관 사이에 평화협상이 이뤄졌다. 열흘간의 협상 끝에 교육, 의료, 사법과 토지개혁에 관한 34개 요구사항에 대한 합의를 이뤄냈다. 석 달 뒤 마르코스는 협상결과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협상안을 주민투표에 부쳤는데 거부되었던 것이다.

도착한 날 저녁, 으레 관광객들로 붐비기 마련인 중앙광장 옆 골목에서 사파티스타 사진을 전시한다는 곳을 발견했다. 레스토랑이었다. 위치를 기억해두었다가 해가 떨어지고 나서 다시 찾았다. 들어가 보니 지붕 없이 하늘로 트인 넓은 공간에 테이블이 정렬되어 있었고, 사방을 둘러싼 벽에 사진이 걸려 있었다. 대개가 검은 스키마스크를 두른 자들이 담긴 흑백 사진이었다.

그 뿐이었다. 안내문도 없었고, 연도순으로 배치된 것도 아니며, 사진들 사이에 그렇다할 관계도 발견하지 못했다. 고급 레스토랑이었는데 사진은 레스토랑 분위기와 동떨어진 듯 묘하게 어울렸다. 다만 그 공간에 관광객으로 불쑥 쳐들어간 것 같아 내 쪽이 멋쩍었다. 느릿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는데, 그래서 되레 발걸음을 빨리 옮겼다.

다음날, 음식이 괜찮다는 레스토랑에 갔다. 이곳도 벽면에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었다. 한 점은 EZLN과 네 명의 여성이 달을 배로 삼아 어디론가 떠나는 듯한 모습이었고, 다른 한 점은 라칸도나 정글인지 EZLN이 어울려 살고 있는 정글 안 공동체의 풍경이었다. 레스토랑에서는 사파티스타의 문양이 새겨진 티셔츠도 팔고 있었다.

혹시 뭔가 있을까 싶어 서빙을 보는 분께 여쭤보았다. 그림은 몇 해 전 사파티스타를 지지하는 행진이 있었던 때 그려졌으며, 이 가게는 사파티스타를 지지한다고 말씀해주셨다. 혹시 티셔츠 판매수익이 EZLN에게 전해지냐고 물었지만, 그것은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레스토랑에서 만나 사파티스타의 사진과 그림

어떤 카리스마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를 뜨기 전날,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근처에 영화관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마침 그 날 마지막 상영작이 사파티스타(ZAPATISTA, 감독 Benjamin Eichert, Rick Rowley, Staale Sandberg, 1998년작)였다. 날씨가 쌀쌀했는데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에 맞춰 들렀다. 영화관은 키노키(KINOKI), 푸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었다. 자그마한 커피숍이 있어 그곳에서 대기하고, 커피를 손에 든 채 입장하니 스크린은 당구대보다 두 배쯤 컸고, 관람석으로는 간이용 1인 침대 등이 어질러져 있었다. 언제라도 연극이나 세미나를 위한 장소로 둔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관객은 한 열다섯 정도 되었을까. 대개가 여행객 차림이었고, 현지 사람은 없는 듯했다.

작품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그만큼 실망했다. 빠른 비트의 랩송이 나오고 카메라는 숨 가쁘게 EZLN의 모습을 뒤쫓는다. 중간중간 당시 정치상황이 간결하게 소개되고 사파티스타의 선언이 잇따른다. 현지 주민의 인터뷰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사실 다큐멘터리가 끝나기 전에 맡겨놓은 세탁물을 찾으러 가야해서 안절부절 못한 탓도 있다. 이야기가 현실에서 떠보였다. 내가 현실을, 현지상황을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여러 이방인들과 섞여 다큐멘터리로 감상하고 있자니 그런 느낌이 짙었다. 10년 쯤 지난 작품이니 하는 수 없을지 모른다. 1995년에는 EZLN이 소집한 국민투표에 100만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고, 1996년에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륙간 회의(EIHN)가 개최되었고, 1997년에는 EZLN의 지지단체에 속해있던 초칠족 원주민 45명이 학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저 배경음악만큼 긴박했다.

그 이후의 사정을 몰라서일까. 작품은 묘하게 현실감을 잃어 괜히 1년 전 오키나와에서 본 영화가 떠올랐다. 나하(那覇)의 재래시장 후미진 곳이었다. 극장 이름도, 영화이름도 까먹었다. 다만 어떤 표정이 기억난다. 그 작품 역시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였는데, 이탈리아의 어느 배우를 추도하는 내용이었다. 배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내용은 내내 그 배우와 함께 작업했던 여배우, 감독, 프로듀서 혹은 신문기자, 사진가 등의 회고담으로 채워졌다.

그들의 표정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 배우를 회고할 때 표정에는 뭔가 약간 들뜨면서도 그윽한 맛이 배였고, 눈빛은 살짝 몽롱해졌다. 모두 그 배우 인생에서 기꺼이 조연으로 연출하기를 자처했다. 다들 그 배우와 제법 가까이 지낸 사이처럼 말했다. 소소한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었는데,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그 배우였다. 하지만 묘한 전도가 발생해 그들은 그 배우를 떠올리고 있는 동안, 자신이 그 배우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 배우를 회고하는 것이 곧 자기 얘기를 간증하는 일이었다. 내가 본 것은 어떤 카리스마 같았다.

살아있는 전설

키노키에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그 느낌을 받았다. 드문드문 나오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마르코스를 말할 때 그랬다. 마르코스는 배우이자 동시에 무대와도 같은 존재다. 나 역시 그의 카리스마에 매혹당한 적이 있다. 과거일로 적을 만큼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그런 감상이 어떤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카리스마는 이탈리아 배우와는 달리 베일에 가려져 있어 더욱 짙게 풍긴다. 마르코스라는 무대 위에는 좀 더 많은 상상력이 깃들 수 있다. 1994년 1월 1일 봉기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코스는 자신을 향한 세간의 관심과 억측들을 향해 “나는 천주교 교리 전도사도, 사제도 아니다. 난 기혼자도, 동성애자도 아니다. 내가 바로 ‘살아 있는 전설’이다!”라고 말했다.

확실히 그는 살아 있는 전설처럼 보인다. 검은 스키마스크 사이로 보이는 푸르고 영민한 눈빛, 여유를 머금은 담배 파이프, 계급장인 붉은 별 세 개가 새겨진 마오 풍의 모자, 목에 두른 붉은 손수건, 가슴을 가로지르는 탄약띠, 그 옆의 무전기, 그리고 오른쪽 어깨 너머로 둔중한 소총. 현대판 로빈후드이자 체게바라의 환생이다.

마르코스. 얼굴은 개인의 것이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는 비주체적이다. 인간의 얼굴을 잃은 권력을 향해 마스크는 살아있는 자의 얼굴을 가려버린다. 대신 마스크는 집단적이고 다음성적이고 신체적이다. 마스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파수로 기능한다.

멕시코 정부는 그의 정체를 밝히려고 혈안이었다. 몇 달 동안 정보기관이 프랑스 출신의 베네수엘라 조류학자, 텔레커뮤니케이션 업체의 중역, 페루의 게릴라 활동가, 예수회 신부, 전 치아파스 주지사의 아들 등을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그의 신화만을 부풀렸을 따름이었다. 마르코스에게 직위해제당한 전 EZLN의 고위 간부가 불만을 품고 멕시코시티에 자리 잡은 EZLN 안가의 위치, 치아파스의 주둔지 위치, 반군의 조직 구조와 무장 현황을 털어놓고 아울러 마르코스가 원래 라파엘 기옌이라고 폭로하기 전까지 멕시코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이 정보를 잡고는 텔레비전에서 중대발표로 보도했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식지 않은 듯하다.

저 “토지와 자유”를 외치며 농민혁명을 일으켰고 오늘날 사파티즘의 원형이 된 사파타(Emiliano Zapata)는 정부의 함정에 빠져 총살당했다. 그는 노새에 실려 도로 한복판에 내다버려졌고, 그의 얼굴 위로 수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그렇게 정부는 사파타의 신화를 깨뜨리려 했지만, 사람들은 한 동안 그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죽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에밀리아노사파타

– 윤여일 (수유너머 R)

응답 1개

  1. 북극곰말하길

    세심함이 묻어나는 문체와 담담한 성찰을 하게 해주는 여행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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