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몰락과 전환

- 윤여일(수유너머R)

1.

3․11로부터 1년이 지났다. 상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3월 11일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 지진과 해일로 인한 사망자는 1만 4천 명을 넘었고 행방불명자도 1만 2천 명에 달했다. 1995년 한신 지진은 6천 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한 달 후 집계된 행방불명자는 두세 명에 불과했다. 이번 지진에서 이처럼 엄청난 수의 행방불명자가 발생한 까닭은 많은 사람이 해일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갔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행방불명 목록에 속해 있는 자는 이제 사망자 안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도쿄전력은 사람들을 휩쓸고 간 그 바다에 ‘낮은 농도’라면서 방사능 오염수를 배출했다.

도호쿠 지진에 이어진 후쿠시마 사태는 체르노빌에 비견되는 심각한 재앙을 초래했다. 몇몇 과학자는 체르노빌이 아닌 후쿠시마를 인류 최악의 핵 참사로 기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일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 세슘의 양은 1만 5000테라베크렐에 달하는데, 이는 히로시마 원폭 당시 유출된 양보다 무려 168.5배가 많은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0.5배까지 계산해 내는 저 통계가 미덥지 않다. 오히려 저런 통계적 신념이 후쿠시마 사태를 낳은 한 가지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태 발생으로부터 한 달이 지나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국제원자력 사고등급은 체르노빌 때처럼 ‘7등급’으로까지 올라갔다. 등급은 7까지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의미를 선뜻 알아듣기 힘든 ‘계획 피난 구역’ ‘긴급시 피난 준비구역’이 설정되고 ‘옥내퇴피’屋內退避 ‘자발적 피난’ 명령이 내려졌다. 10만 명의 이재민들은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피폭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원전결사대로 주목을 모았던 노동자들 가운데서 피폭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직 방사선이 직접적 원인이 되어 죽음에 이른 자는 소수다. 그러나 1년 동안 이재민 가운데 20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후쿠시마 30km 인근에 살던 93세 여성이 목숨을 끊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무덤으로 피난갑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많은 농민도 자살했다. 원전에서 뿌려진 방사성 물질이 간토 전역으로 쏟아져 대지가 한순간에 오염되었다. 방사능 물질이 퇴적된 땅에서 일하는 농민은 나날이 피폭당하고 있으며, 공들여 길러 낸 야채는 옥소와 세슘이 검출되어 출하가 금지되었다. 땅이 더럽혀지자 농민은 생존의 근거 그리고 생존 자체를 상실했다. 땅을 버릴 수 없고 전망을 찾을 수 없는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2.

후쿠시마와 상대적으로 떨어진 도시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죽음의 그림자’는 내부 피폭의 현실에서 결코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으로 사람들은 피폭당한다. 방사능 먼지가 아스팔트 위를 떠다니고 있다. 물은 가려서 마셔야 한다. 기준치를 넘은 채소가 유통되고, 후쿠시마산 볏짚을 먹인 소에서 방사능이 검출되고, 먹이사슬을 고려하건대 생선도 이제 안전하지 않다. 죽음을 낀 채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나아가 피해는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미 여러 기업이 지진 재해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했다. 재해지의 기업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해고가 진행되고 있다. 방사능 물질이 아이들을 먼저 노리듯 해고는 비정규직처럼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한 자들을 먼저 향한다.

그리고 도시 하층 빈민에게 향해야 할 지원이 끊기고 있다. 복구를 위해서는 조 단위의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정부는 재원 마련을 위해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재해 난민에게 사용될 ‘부흥 자금’은 종래의 사회적 난민(노숙자)에 대한 지원과 바꿔쳐질 것이다. 부흥에는 선별이 따르게 마련이며, 거기서 외면된 자들은 기민으로 유랑하며 방사능 도시를 헤맬 것이다.

3.

그러나 복구니 부흥이니 하는 명목으로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하더라도 복구도 부흥도 이뤄 낼 수 없을 것이다. 핵폐기물인 우라늄-238의 반감기는 40억 년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천문학적 수치다. 우라늄-238이야 극히 미량이더라도 흩뿌려진 플루토늄은 종류에 따라 반감기가 88년에서 2만년에 이른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자로 안에는 여전히 대량의 핵분열 생성물질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스스로 발열하고 있다. 그 열을 냉각시키지 못해 원자로가 녹아내린 것이다. 이제 겨우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1단계에 다다랐으며 원자로의 연료봉을 제거하기까지는 10년 이상이 소요되리라는 보고가 나왔다.

하지만 실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은 방사능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원자로가 녹고 원전이 폭발할 때는 대량의 증기가 피어올랐다. 함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었다. 그런데 인간이 방사능 물질에 관해 경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상은 증기뿐이었다. 정작 증기는 방사성 물질이 퍼져나가는 걸 막으려고 주입한 물들이 분해되며 생긴 현상이었다. 지진 그리고 해일과는 반대로 방사성 물질은 어떠한 감각적 자극도 동반하지 않는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방사성 물질 앞에서 인간의 오감은 처절할 만큼 무능하다.

그리고 지진 그리고 해일과는 반대로 원전 사태는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지진과 해일의 가공할 모습과 그로 인한 참담한 피해 장면을 보며 재해민을 돕겠다는 연대의식이 고조될 수 있었다면, 원전 사고로 흩뿌려진 방사성 물질은 무형이기 때문에 각 개인을 고독한 싸움으로 몰아넣었다.

일본 시민에게는 오로지 숫자로 환원된 데이터만이 방사능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정보로 주어진다. 그러나 그 데이터가 아무리 과학적으로 작성되었다고 한들, 그 수치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자신이 어떠한 행동에 나서야 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방사성 물질은 무형이기에 더욱 공포스럽다. 그리하여 신체에 축적될지 모르는 방사성 물질을 둘러싸고, 방사성 물질에 관한 해석을 둘러싸고 생존의 정보전이 벌어진다.

빗물에서 요오드가 검출되고 공기 중에서 세슘이 나온다. 매일매일이 공방전이다. 수돗물과 채소의 방사능 수치를 확인하며 하루를 돌봐야 한다.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이 뒤엉킨 회색지대에서 혼란에 빠진다. 방사능은 미지의 대상이기에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은 일관되지 못하며, 행동을 결정해야 할 때마다 고독한 결단이 요구되며, 입장 차에 따라 대립과 갈등마저 생긴다.

4.

3월 15일, 도쿄도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쓰나미를 잘 이용해 사욕을 깨끗이 씻어내야 합니다. …… 이건 역시 천벌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패전 시기의 1억총참회론에 버금가는 책임회피 논리였다. 그런데도 4월 10일에 실시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이시하라는 4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선거의 결과만을 두고 일본사회가 여전히 우경화되었다는 둥의 판단을 한다면 섣부를 것이다. 3․11 이후에 치러진 광역단체장․광역의원 선거나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집권 민주당이 참패하고 원전반대파들이 부상하기도 했다.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시위도 빈발하고 있다.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일본사회에서 원전 정책은 전환기를 맞으려 하고 있다. 일본만이 아니다. 3․11 이후 프랑스에서 태국에서 미국에서 이스라엘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 전환은 근본적이라 할 것이다. 아니 근본적이어야 할 것이다. 원자력은 그저 하나의 발전 방식에 불과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5.

원자력에너지, 아니 핵에너지라는 말을 잠시 사용하자, 핵에너지는 생명에 적대적이다. 원전은 태양권의 에너지 산출방식을 생태권 속에서 인공적으로 실현시킨다. 핵분열로 끄집어 낸 에너지는 지구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생태계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본래 에너지는 유기체가 외부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동안 투입과 산출 과정에서 발생한다. 외부환경이 유기체의 내부로 들어오면 에너지 현상이 일어난다. 바로 화석연료는 생명체 내에서 일어난 에너지 현상의 부산물이 오랫동안 응축되고 발효되고 응고되어 화석화된 산물이다. 그런데 원전은 에너지 현상을 생명 현상과 분리시키고 있다.

물론 화석연료를 사용하면 수만 년 동안 묻혀 있던 대량의 탄소가 한꺼번에 방출되어 생태계의 탄소순환을 교란시킨다. 그것이 인류에게 심각한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조금 과하게 말해 인간이 인류의 멸망에서 원인제공자가 된다면, 그건 지구온난화와 핵개발일 것이다. 그런데 핵은 또다른 종말의 시나리오를 품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한 시기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석유가 고갈되는 시대에 저탄소 에너지라는 신화가 확산되어 원전이 증설되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발전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핵분열로 원자로에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는 장치인데 핵분열 과정에서는 온실가스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의 전과정을 보면 적잖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우라늄을 채굴하고 운송하고 제련하고 농축하고 발전소를 가동하고 핵폐기장을 짓는 데는 엄청난 화석연료가 들어간다. 또한 원전에서 냉각수로 사용된 후 초당 7톤 정도가 배출되는 온배수溫排水는 주위 바다의 온도를 4~5도 올리며 해양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원전이 (점진적이거나 때로는 파국적으로) 세계의 파괴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원전 폐쇄의 움직임은 근본적 사건이다.

6.

또한 원전 폐쇄는 자본주의의 동학에 맞선다는 의미에서도 근본적 사건이다. 더 이상 식민화할 외부를 갖지 않는 자본주의는 외부를 물질 내부에서 발견했으며 그것이 핵에너지다. 아마도 ‘핵연료 리사이클’ 구상은 자본이 바라 왔던 영구기관의 꿈일 것이다. 재처리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에 남아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내 고속증식로를 가동하면 다시 연료가 증식되기에 영구적인 발전發電과 발전發展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일본의 고속증식로 몬주의 쓰라린 실패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불가능한 판타지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은 여전히 제한 없는 개발주의의 망령에 토양이 되고 있다(한국수력원자력의 홈페이지에는 앞으로 우라늄을 쓸 수 있는 기간이 60년인데 재처리를 하면 60배, 즉 3,600년간 쓸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원전 폐쇄는 단지 발전의 형태를 바꾸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체제를 전환하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지금 일본에서 진행중인 것은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를 유도하는 현대 사회체제와의 싸움이며, 무한한 성장을 실현해 줄 무한한 에너지 사용이 지구상에서 가능하다는 자본주의적 망상과의 싸움이며, 지금 축배를 들고 뒤처리는 미래세대에 맡기자는 반윤리와의 싸움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