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여행, 사진, 경험

- 윤여일(수유너머R)

1.

사진은 흘러간 과거를 기록으로 남긴다. 사진에 담기면 어떤 과거든 제법 되돌아볼만한 해진다. 사진은 또한 전문적 훈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도 그럴듯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주류 예술이다. 운이 좋으면 무심결에 세상의 멋진 단면을 수집할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은 여행과 나란히 성장해왔다. 사진은 여행을 다녔다는 증거이자, 여행의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는 프레임이다.

여행을 다니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목격하면 그것을 붙들고 싶어진다.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카메라를 꺼낸다. 시간이 흘러 그 장면을 놓쳐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

그러나 사진은 경험을 증명하는 방법이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진정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면 그 장면의 구조와 운동성을 읽어내야 한다. “이 벽은 왜 저 벽보다 낡아 보일까.” “안개는 어디서 오는가.” 그 호기심 속에서 아름다움은 서사를 갖는다. 그러나 사진은 그러한 이해의 노력을 여분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물음이 무르익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셔터를 향한다. 호기심의 대상을 순식간에 기념품으로 바꿔버린다. 그리하여 본다는 행위의 보조 장치였을 사진 찍기는 보는 행위를 대체하고, 여행의 동선은 그럴듯한 사진의 피사체를 쫓는다.

여행에서 돌아와 그렇게 탐욕스럽게 찍어댄 사진들은 한 데 모아 놓는다. 그러면 신물이 날 때가 있다. 그저 예쁘다. 박제된 아름다움들만 가득하다.

2.

타지에 나가 아름다운 장면들만 모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장면과 상황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낯선 대상과 마주치더라도 혼란을 완화시킬 수 있다. 낯선 상황에 부딪혀도 그 의미를 곱씹는 일은 뒤로 미뤄둔다. 먼저 찍어서 보존하는 일로 족하다. 잠시 멈춰 선다, 찍는다, 그리고 자리를 뜬다.

사진은 분명 낭비를 일삼고 가치를 조작하는 현대사회의 본질적 예술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여행을 떠나서도 챙겨가는 노동윤리의 소산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 하나씩 전리품으로 챙긴다. 그 성실함이 있기에 낯선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방황하지 않는다. 낯설수록 성실하게 찍어둔다. 그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방황할 기회가 차단된다.

더욱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면, 정서적 교감이나 유대 없이 남의 삶을 방문하고 엿볼 수 있다. 카메라는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어설 수 있는 패스포트다. 타자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거리를 획득한다. 나는 관찰자로서 카메라 뒤에 숨는다. 나의 시선과 표정은 카메라 뒤에 감춘다. 피사체가 아름답든 추하든 바인더 너머의 대상을 쏘는(shot) 자는 한쪽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린다. 호흡을 잠시 멈춘다. 피사체가 포즈를 취하지 않은 채 무방비일수록 더욱 날 것을 사냥할 수 있다. 찰칵. 사진으로 포획된 대상은 삶의 맥락에서 뜯겨져 나와 실재성을 상실한 채 박제화된다. 그렇게 이미지를 착취하고 감정을 소비한다.

3

카메라는 진즉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떠났다. 소형화되어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어디서나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진은 카메라 옵스큐라가 내장하고 있던 내부성의 형이상학을 떠나지 못했다. 카메라를 들고 눈을 바짝 바인더로 가져다 붙일 때 찍는 존재는 고립되고 어두운 공간으로 슬며시 들어가 시각적 배치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피사체를 만족스럽게 포착할 때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빛의 밝기, 구도, 가난, 존엄에 피사체가 부응할 때까지 셔터를 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한 시선의 폭력이 있기 때문에 사진은 이따금 표면 너머를 사고하도록 이끈다. 사진은 절단의 미학이나, 바로 그렇기에 카메라의 초점이 외면한 여백은 여백대로, 잘려나간 공백은 공백대로 우리를 추론, 사색, 환상으로 초대한다. 또한 사진을 찍으려고 심도를 재고 각도를 정하고 빛의 양을 조절하는 일들은 그 하나하나가 대상을 어떤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은지 사고의 절차를 밟도록 만든다. 개중에 어떤 사진은 보고 있자면 왜 저렇게 찍었는지 그때의 감상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진을 찍는 일과 보는 일은 해석학적 기쁨을 동반한다. 삶의 한 순간을 포착해 의미를 입히거나 잘려진 삶의 한 단면에서 풍부한 의미를 발견해내는 일은 삶이 지니고 있을 깊이와 복잡한 결을 이해하는 일종의 훈련이 된다.

사실 사진 한 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세계는 없다. 오히려 이해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 역설적 진실마저도 우리는 사진을 통해 깨닫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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