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6호] 마음의 장소(함피, 인도)

- 윤여일(수유너머R)

일상의 무게에 그리고 가픈 호흡에 여행의 기억은 점차 바래간다. 먼저 여행지가 그 고유한 빛깔을 잃고, 나중에는 여정의 줄거리가 사라진다. 그 망각은 여행하는 동안에도 예감할 수 있다. 그래서 훗날 회상하려고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긴다. 하지만 어떤 장소는, 가끔씩 어떤 장소는 사진 대신 마음에 남는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 장소의 편린은 감각의 밑바닥에 남아있다. 그런 곳을 ‘마음의 장소’라고 불러보고 싶다.

시인 워즈워드는 ‘시간의 점’이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서 읽은 내용이다. 워즈워드는 알프스 여행 중이었다. 그는 알프스를 접하자마자 그 광경들이 평생 잊혀지는 법 없이 자기 마음속을 떠다니며 행복감을 안기리라고 확신했다. 그 기억을 불러낼 때마다 자신의 영혼을 거기서 힘을 얻을 것이다. 그는 과연 시인답게 표현했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한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워즈워드가 느낀 감정은 ‘숭고함’에 가까웠다. 숭고함은 종교와 신을 잉태하는 감정이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규모와 절대적인 나이 앞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초라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산을 일으켜 세우고 계곡을 깎아내려간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지만 자기 한계를 다독일 힘도 얻는다. 워즈워드는 알프스의 압도적인 높이, 봉우리의 만년설, 만년설 아래로 수천 년의 압력을 말해주는 지층의 균열을 보며, 언어를 골라내기 어려운 그 위용 앞에서 차라리 행복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

내게 ‘마음의 장소’라는 말 역시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 어떤 장소를 만나 그 장소에 어떻게든 이름을 붙여보고 싶었을 뿐이다. ‘마음의 장소’라는 말의 울림과 어울리는, 아니 그 표현을 처음 떠올리게 된 장소는 망고트리라는 레스토랑이었다. 하지만 망고트리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훨씬 소박하고 변덕스러운 것이었다.

2004년 1월 인도의 뭄바이에서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되었다. 거기에 참가하려고 일주일간 뭄바이에 머문 다음 며칠 간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망고트리를 만난 것은 함피였다. 함피는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 남인도에서 번성한 힌두왕조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수도였다. 유적도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왕국은 사라졌어도, 그 왕국이 남긴 잔영은 시간 속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망고트리는 유유히 흐르는 시간도 또 한 번 멈추고 가는 장소였다.

망고트리는 호텔들이 들어선 마을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다. 나는 망고트리라는 레스토랑을 알고는 매끼니를 거기에 가서 먹었다. 사실 호텔, 레스토랑이라는 말은 그곳들의 소박함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 말들은 그곳의 최소한의 기능만을 말해주며, 다소 거추장스럽게도 느껴진다. 아무튼 숙소를 나와 망고트리에 가려면 강가를 향해 걷다가 안에서 뭘 하는지가 뻔히 보이는 간이 화장실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 길로 꺾어야 한다. 어제도 만났던 잡상인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지나가다가 개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으면 그게 맞는 길이다. 좀 더 걸어가면 망고나무와 바나나나무 숲이 나타난다. 그 너머에 망고트리가 있다.

망고트리는 따가운 햇살이 기운을 잃은 저녁에 가야 제맛이다. 망고트리는 절벽 위에 있다. 저녁녘에 그곳에서 강물이 붉게 물들어가는 풍경을 바라본다면, 내 얼굴에서도 어떤 표정이 번져간다. 그네가 있다. 그네에 앉아 망고나무에 감싸인 구운 바나나와 계란프라이를 꺼내먹으면, 저 아래로 해는 저물고 아낙은 유적터에서 손빨래를 서두른다. 그네는 한 번은 강 위로 나를 데려가고 한 번은 땅 위로 데려온다. 그네를 결코 빨리 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워즈워드의 알프스 체험만한 확신을 갖고 남들에게 망고트리를 소개하지는 못한다. 워즈워드가 알프스에서 느낀 숭고함과 달리, 망고트리에 대한 나의 정감은 무척 변덕스러운 것이었으리라. 아마도 그때까지의 여정과 망고트리를 알게 된 날의 날씨, 망고나무 숲을 지나던 길에 동행자와 주고받은 농담, 몸 상태와 주머니 사정 등이 모두 망고트리에 대한 정감 안에 섞여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 한 번 가보라고 권할 수 있기는커녕 내가 다시 간들 그 느낌이 아닐지도 모른다.

행여나 그때 감기라도 걸리고 한국에 남겨놓은 일거리들이 잔뜩 있고 동행자와 싸움이라도 한 다음이었다면, 망고트리는 이랬을지 모른다. 음식은 딱히 맛있지도 않은데다가 기름지고, 테이블에는 케첩들이 점점이 섬처럼 말라붙어 있다. 자꾸 파리가 날리고 테이블을 훔친 행주 탓인지 아까부터 코를 자극하는 값싼 광택제 냄새가 난다. 하지만 다행히도 망고트리의 시간은 아득하면서도 들뜬 기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식사라는 일상행위 안에 묻어 있어, 이따금 소박하면서도 기분 좋은 밥상을 대하면 그 기억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얼마든지 더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마음의 장소’란 그런 비교가 무용한 곳, 그것으로 족한 곳이다.

– 윤여일 (수유너머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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