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언어의 단층과 현실의 무게(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 멕시코)

- 윤여일(수유너머R)

언어의 단층과 현실의 무게(메트로폴리탄 자치대학, 멕시코)

한국에서의 독법에 관하여

*지난주 인터뷰에서 이어집니다.

갑자기 구스타보씨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받으러 나간 사이에 통역자는 푸에블라(pueblos)라는 말을 어떻게 옮겨야할지 고민스럽다고 말씀하셨다. 민중이라는 어감도 공동체라는 어감도 담겨 있고, 지역의 단위이자 곧 사람의 단위이며 땅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구스타보씨가 돌아오셨다.


: 조금 있다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아이는 아프고 방금 미국에서 사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죽마고우인데요. 어떻게, 다시 시간을 잡아서 볼까요. 아이가 전화할 때까지는 우선 될 것 같은데요.

어쩌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미리 알아보고 인터뷰에 나서야 했는지도 몰랐다. 이제 가까스로 본궤도에 올랐는데 시간이 없다. 그러나 사흘 후면 나는 멕시코시티를 떠나야 했다. 인터뷰는 “아이가 전화할 때까지” 운명에 맡기고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이때부터 시간이 아쉬워서 질문을 압축해서 던진다는 게 말이 많아진 꼴이 되었다.

– 한국에서 사파티스타는 멕시코의 정치상황과 유리되어 하나의 상징처럼 수용되었다는 인상입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사파티스타가 주로 마르코스의 작품을 통해 유통되는 과정을 거쳐, 사파티스타가 문학적이고 철학적으로 윤색된 것이죠. 물론 그의 작품은 어떤 극한상황에서 일궈낸 전환의 산물이겠지만, 상황의 바깥에 있는 자가 그의 작품을 통해 그 무게를 감지하기란 좀처럼 어렵습니다.

둘째, 마르크스주의 붕괴 이후 한국의 활동가에게는 새로운 활동과 비전에 대한 수요가 있었고, 그런 수요도 함께 고려해야 하지 싶습니다. 여기에는 아이덴티티에 근거한 기존의 운동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가 화두로 놓였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이와는 다른 층위이나 결부된 문제로서, 한국의 지식계에서는 자율주의나 후기구조주의 담론이 힘을 얻었지만, 그 주장이 서유럽에서 터져 나온 것은 6·70년대로 지금 한국과는 시간적 격차가 있으며, 정작 서유럽에서는 현재 그런 양상의 운동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이런 조건에서 사파티스타는 그 논의를 동시대적으로 실증하는 하나의 전범으로 이해된 면모도 있습니다.

만약 실제 그렇다면, 이렇듯 멕시코와 한국 그리고 서유럽 사이의 위계와 굴절된 관계를 배경으로 한국의 운동계와 지식계 안에서 형성된 이미지와 사파티스타 이해방식은 매우 복잡한 함의를 갖고 있겠죠.

그 내용을 전부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다음의 두 가지 이미지 내지 이해방식과 관련해 질문을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다분히 지적인 색채가 가미된 이해방식일 수 있겠지만, 하나는 사파티스타를 아이덴티티의 정치에서 벗어난 한 전형으로 이해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권력, 특히 국가권력의 상상력에 포획되지 않은 운동이라는 평가에 관해서입니다.

“봉기는 비현실적이며 실패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필요에 맞지 않는다. 이 운동은 이데올로기적 근거가 빈약하다. 그들의 이데올로기에는 ‘의고주의’(arcaismo)가 현저하다. 우리의 시대와는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단순한 사고들이다. 거기에는 반역의 망상적인 성격 외에 폭력에 대한 숭배가 담겨있다.”(옥타피오 파스)

: 아이덴티티의 정치라면 무엇을 뜻하나요.

– 가령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여성들이 여성운동을 하듯이 사회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계급, 신분, 성별 등과 같은 아이덴티티에 근거해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을 가리킵니다.

: 그런 운동이 아니라면, 한국에서는 무엇이 운동의 축이 되나요.

– 지금이 그 모색기로 보입니다. 자기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중요하지만, 그 물음이 제일 먼저 놓인다면 다른 물음들을 내리누를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아이덴티티는 범주와 구획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폭력성도 깃들고요.

물론 이런 이해에는 지적인 색채도 묻어납니다. 그런데 사파티스타가 그렇게 수용되기도 했습니다. 가령 검은 스키마스크는 정체성을 감춘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죠. 마르코스가 했다던 유명한 말 “우리는 원주민이고 여성이고 약자이며 모두입니다”라는 말은 “멕시코가 가면을 벗는 날 우리도 가면을 벗을 것입니다”라는 말보다 더한 울림을 갖고 전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들어보면, 사파티스타는 멕시코라는 구체적인 역사에 기반하여 원주민의 권리회복과 자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덴티티는 운동의 기반이라고 여겨지는데요.

: 사파티스타는 아이덴티티에 근거해 원주민의 권리회복을 주장합니다. 물론 과거 마르크스주의의 반자본주의적 전통을 계승하는 면도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 뿌리를 둔 급진 좌파의 영향도 배어있습니다. 하지만 사파티스타는 멕시코 원주민의 권리회복 운동입니다. 아이덴티티에 기반을 둔 운동이죠.

그래서 여섯 번째 선언이 사파티스타 운동의 근간을 원주민만이 아니라 더 많은 존재들에게로 넓혀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멕시코의 여러 지식인들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구체적인 곳에 역량을 모으지 않고 초점을 흐린다고 반대했던 것이죠.

– 그렇다면 권리 요구와 권력의 문제는 어떨까요. 권리 요구는 자칫 국가에게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요구가 되었을 때, 기성의 제도와 체계에 대한 승인을 필요로 합니다. 그 권리를 인정해줄 국가의 권한을 전제로 삼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의 정치과정은 그만큼 단순하지 않겠죠. 그래서 “자치권을 요구한다”는 복잡한 형태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국가에 대한 입장입니다. 오늘 설명해주신 사파티스타의 최근 동향에서도 ‘국가에 대한 입장’이 사태를 이해하는 기본골격이 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방금 말씀하신 지식인의 반응도 이를 둘러싸고는 상당히 복잡한 것처럼 엿보입니다.

가령 홀러웨이(John Holloway)와 같은 지식인은 국가권력을 장악하지 않고도 혁명을 꿈꾼다며 그들의 정신을 높이 샀고, 혹자들은 그것이 사파티스타 판타지라고 비판했다면,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Lozano)와 같은 지식인은 멕시코의 정치현실에서 유리되었다고 꼬집었죠.

“사파티스타는 그들이 진부한 혁명 언어로 간주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혁명 언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 상상하기, 말하기는 몹시 중요하다. 심각한 메시지를 대중적으로 전파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반란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지배의 언어와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배는 진지하고 따분하다. 반란은 재밌어야 한다.”(존 홀러웨이)

: 사파티스타는 소비에트 사회주의나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그러하듯 국가권력을 탈취해 운동을 성사시키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권력을 구성한다, 혹은 새로운 정치공간을 일군다고 보아야겠죠.

사파티스타 운동은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 평화적인 해결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대화상대자로서 국가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지는 않으며, 대신 새로 국가를 구성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내이션을 만드는 겁니다.

사파티스타는 2004년 이후 정부와의 대화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선거’를 들고 나왔죠. 다른 단체와 공유지점을 만들어나가며, 새로운 정치공간을 구축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 이제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 서둘러서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구스타보씨는 사파티스타의 일원이 아니라 사파티스타 연구자입니다. 저는 학술적 연구와 개념으로 그들의 절규를 담는 일이 무척 어려우리라고 짐작합니다. 더구나 현재 벌어지는 동시대사의 사건이기 때문에 연구대상으로 삼는 데에 더욱 어려움이 따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 문제, 즉 학술 언어로 운동을 묘사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문제와 동시대사 사건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의식하고 풀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 둘째 질문부터 답할까요.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다른 지역의 원주민 조직을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진행중인 정치적 사안에 관한 연구물은 아주 많습니다. 제 경우가 특이하다고 할 수 없겠죠.

둘째, 사파티스타 구성원이나 원주민 공동체의 누구일 수도 있겠으나, 그 주체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그 목소리들의 서사를 쫓아갈 작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사파티스타는 벌써 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사파티스타 운동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치아파스주 지역운동이라는 커다란 전통 안에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에, 역사성과 맺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언어를 고르는 문제인데요, 어떤 운동을 학적 대상으로 삼을 경우 연구자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죠. 어떤 학문적 훈련을 거쳤느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

또한 이런 것들도 문제가 되겠죠. 학문적인 위치에 있느냐 바깥에 있느냐, 그 운동을 지지하느냐 아니냐, 운동 가까이에 있느냐 아니냐. 저는 사파티스타를 지식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게 아닙니다. 학술논문이니 논문의 관점은 취해야 하겠지만, 대상을 학술적으로 해석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현장조사는 시작하지 못해서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운동주체들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의 형식, 즉 사파티스타 구성원들 사이에 이뤄지는 의미의 교환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실증연구를 할 계획이 아닙니다.

또한 주체의 목소리를 덮는 논문을 쓸 생각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파티스타를 지지하기 때문에, 공감이냐 아니냐는 대목에서 내부적인 갈등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마쳐야 하겠네요. 아이가 아파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어떻게 사파티스타가 받아들여지는지 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함께 사진 한 장 찍어야죠.

– 하하. 감사합니다.

언어의 단층들

질문은 어설프고 가벼웠으며 답변은 묵직했다. 사실 구스타보씨는 잡지에 실린다는 사실을 인터뷰 직전까지 모르고 계셨다. 그런데도 콕 찌르면 꿀물이 흐르듯 저렇듯 정리된 말씀을 지니고 계셨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령 구스타보씨가 한국에서는 무엇이 운동의 축이냐고 물었을 때 과도기라며 얼버무리고 다시 화제를 사파티스타로 옮겨갔다. 혹시 지적으로 윤색되었을지 모를 사파티스타 수용방식을 문제 삼고 싶었지만, 내 질문 자체가 그랬다.

인터뷰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다. 준비해놓은 질문 가운데 마르코스와 멕시코 지식인사회의 반응에 관한 것은 사용하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 질문들은 왠지 선정적인 대목을 쫓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더 묻고 싶었던 것은 ‘언어의 단층들’이었다. 정말 그런 류의 선언문들이 이곳에서는 몇몇 개인의 감상을 넘어 현실을 때리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을 수사로 넘겼던 내 쪽의 시각을 교정하고 싶었다. 더불어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 토양도 따져보고 싶었다. 그리고 구스타보씨가 답변을 하셨지만, 역시 시간에 쫓긴 티가 역력한 문제, 학술의 언어와 현실의 절규 사이의 간극도 더 곱씹고 싶었다.

분명 분노에서 시작되었을 텐데, 체계적인 연구 끝에 분노가 탕진된 결과물들을 이따금 접한다. 그보다 더 자주 학술 언어가 대상의 복잡함을 가리거나 대상과의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는 데에 쓰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개념을 내놓고 그만큼 뒷걸음질 친다. 그리하여 날이 선 격론이 실은 개념들 사이에 공전(空轉)하는 소리에 불과한 경우도 종종 보았다. 남 얘기가 아니다. 그 자리에 일부로서 참여하고 있었기에 나는 본 것이다.

사파티스타의 언어에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상징을 활용하여 현실의 색채를 바꿔놓았다. 그리하여 혁명의 언어는 진부함을 벗어났으며, 오래된 관념들조차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그러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 본 그 다큐멘터리, 그들의 언어가 저렇게 편집되었을 때 그것은 왠지 현실에서 떠보였다. 무엇이 걸러져나갔기에 그렇게 보인 걸까. 말이 다음 말로 넘어갈 때 앙금처럼 남아 상대에게 실감을 안기는 그 현실이란 요소는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구스타보씨의 목소리를 옮겨 적으며 보다 복잡한 경로를 생각하게 된다. 원주민의 절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파티스타, 그리고 그 언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마르코스, 그들을 연구하는 구스타보씨, 스페인어를 한국어로 옮긴 통역자, 그리고 한국에서 접하던 내용을 바탕으로 그 말을 이해하려던 나 사이에는 대체 몇 겹의 번역(통역)행위와 언어의 단층이 가로놓여 있을까. 현실은 이 가운데 어느 언저리에 머물고 있을까. 번역을 거칠수록 현실은 옅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동등한 무게를 지닌 채 복수로 존재하는 것일까.

에티오피아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영주가 지나갈 때, 현명한 농부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조용히 방귀를 뀐다.” 영주의 눈, 귀 그리고 코에 농부의 방귀소리는 감지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농부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농부들에게 그 방귀가 무엇인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것은 불복종이다.

– 윤여일 (수유너머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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