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3호] 도시의 크기 (멕시코시티, 멕시코)

- 윤여일(수유너머R)

1.

멕시코시티로 들어가는 비행기에 오른 것은 네 번째다. 미국을 경유한 비행기는 늘 밤 시간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바깥 세계의 어둠들. 창에는 바깥 풍경 대신 내 얼굴이 비친다. 또 왔구나. 오랜 비행시간에 초췌해진 얼굴을 보며 말한다. 우웅 … 귀를 가득 메우는 비행기 실내의 소음은 내면의 대화로 들어가는 적절한 정막이 되어 준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창밖으로 하나둘씩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호숫가에 흩뿌려진 꽃잎처럼. 이윽고 불빛의 행렬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마치 <나우시카>의 오무떼들이 산을 넘다가 그 자리에서 멈춘 것처럼 붉은 빛을 발한다. 비행기는 공항으로 진입하려고 동체를 오른쪽으로 크게 틀어 저공비행을 한다. 그러면 내 몸도 함께 기울어 지면을 향한다. 거리와 건물들의 윤곽이 어렴풋하게 눈에 들어온다.

해발 2000m 분지에 형성된 멕시코시티의 그 웅장함. 차라리 산보다 바다를 연상시킨다. 내려가 보지 않으면 불빛들의 정체와 그 불빛 아래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멕시코시티의 밤풍경은 분명 인간이 만들어낸 장관이다.

멕시코시티는 큰 도시다.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은 크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에. 또한 도시가 크다는 뜻도 여러 가지겠다. 인구가 많을 수도, 영향력이 클 수도, 상징성이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멕시코시티는 물리적인 규모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다. 멕시코시티의 면적은 시를 기준으로 1,479㎢, 대도시권을 포함해서 2,286㎢에 달하는데, 서울의 네 배 규모다.

2.

그리고 넓을 뿐만 아니라 깊다. 깊이로 말하자면, 한 도시가 다른 도시보다 깊다는 비교는 쉽사리 허용되지 않겠지만, 멕시코시티의 역사적 깊이는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몇 겹의 역사가 깔려 있다. 원래 이 거대한 분지 안에는 테스코코라는 호수와 작은 섬들이 있었다.

이곳에 도시를 세운 이들은 아스테카인이었다. 14세기 초부터 그들은 땅을 매립하여 제국의 수도를 세웠고, 그 웅대함은 라틴아메리카 세계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그 이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án). 당시에도 그들의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리라. 아스테카인들은 테노치티틀란을 거점 삼아 남쪽으로 뻗어가 16세기 초에는 지금의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일대를 포함하는 중앙아메리카를 호령했다.

그 제국의 심장, 테노치티틀란은 운하의 도시였다. 곳곳이 운하로 이어져 있고, 그 위로는 다리가 놓여 있어 위기상황이 닥치면 들어올릴 수 있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감히 제국의 수도를 넘볼 적국은 가까이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1521년 대서양을 건너 코르테스가 쳐들어왔을 때는 그들이 적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그 이후 테노치티틀란은 스페인의 부왕령 가운데 하나인 누에바 에스파냐의 거점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도시의 이름은 아스테카 세계로부터 물려받았다. 메히코(México)라는 명칭은 아스테카의 군신(軍神) 멕시틀리(Mexictli)의 땅이라는 뜻이다. 멕시틀리는 멧틀리(metztli, 달)와 식뜰리(xictli, 배꼽)에서 온 말로 ‘달의 자식’을 의미한다.

1521년 이전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 템플로 마요르는 아스테카 제국의 대신전이었다. 아스테카인들은 이곳의 정상에서 비의 신 틀랄로크(Tlaloc)와 태양의 신 위칠로포츠틀리(Huitzilopochtli)에게 제사를 올렸다. 당시 신전에는 130개의 계단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모형은 지하철 소칼로역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메트로폴리타나 성당의 모습

메트로폴리타나 옆에 마요르터. 중앙광장인 소칼로에 메트로폴리타나 성당이 세워져 있다. 템플로 마요로는 대성당의 동쪽에서 일부 유적이 발굴되었다.

3.

테노치티틀란의 웅장함, 그 세계의 규모를 지금 가늠하기란 어렵다. 그 정확한 면적을 안다고 해도 건물들의 구획과 쓰임새 그리고 색상, 혹은 거기서 거주하던 이들의 세계관이 다르다면 도시가 품는 세계의 크기도 달라진다. 어쩌면 테노치티틀란의 규모를 상상하려면 저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에 올라가기보다 떼오띠우아칸(Teotihuacan)의 피라미드 정상에 서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떼오티우아칸은 아스테카의 유적지가 아니다. 톨테카(Tolteca)족이 건설했으며 아즈테카족은 그들의 후예이다. 떼오띠우아칸은 멕시코시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소칼로에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다. 전성기는 6세기경이었고, 당시는 20만 명의 주민이 거주했으리라고 추정된다.

천문학적 통찰력이 뛰어난 것은 이 지역을 살아갔던 이들의 공통된 내력일까. 떼오띠우아칸의 압권은 70m에 달하는 태양의 피라미드다. 자연으로부터 절연된 채 오만스러운 자태로 자신의 기하학적 비례를 뽐내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떠있는 양, 지상의 어떤 유대관계보다도 창공에 더 가까운 듯하다.

하늘로 향하는 그 길에는 4면에 91개씩 계단이 놓여있다. 아흔 한 번의 숨을 고르고 오르면 정상에 제단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365, 즉 태양년의 날수가 된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하짓날이 되면 태양이 정확히 정면을 향하면서 저물도록 건축되었다. 자연과 문명은 서로를 비추며 일 년의 하루를 축복한다.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 힘과 생존은 저 장엄함 속에서 하나로 융해된다. 그날 인신공양이 있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파라오를 안치하고 내세를 기약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만인이 보는 스펙터클의 장소이며, 영원한 신의 섭리가 영원한 현재 속에 거하는 장소였다.

머리가 굴러 떨어진다. 저 계단이 있기에 머리는 요란하게 튕기며 떨어진다. 수 만 명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른다. 한 생명이 하늘에 바쳐진 순간 응축되었던 세계는 함성과 함께 횡으로 종으로 확장된다. 떼오띠우아칸의 규모는 면적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저 피라미드의 넓은 토대가 높은 제단을 위한 것이듯, 수평감은 수직감으로 이어진다. 물론 테노치티틀란은 떼오티우아칸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겠다. 하지만 스페인의 정복자들에게 내쫓겼을 때 그 도시의 인간들 역시 땅만큼이나 하늘을 잃었을 것이다.

떼오띠우아칸. 해의 피라미드와 해의 피라미드 정상에서 달의 피라미드를 바라본 광경이다.

– 윤여일 (수유너머 R)

응답 1개

  1. 장동건말하길

    영화 아포칼립토의 장면이 생각나요. 생명이 바쳐질 때 함성과 함께 세계가 종으로 횡으로 확장된다니. 발상이 기발합니다.^^ 근데 정말 크군요..~~크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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