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고하다

동양, 여행, 상상

- 기픈옹달(수유너머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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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항상 자아를 벗어나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다른 땅으로 가기를 열망한다. 그곳은 방랑의 장소이자 동시에 귀향의 장소로 여겨진다.(르 부리Le Bris)

몇 년 전 어떤 책을 들추다가 이 문구를 접했을 때 몹시 그럴 듯했다.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졌다. 책상머리 앞이었지만, 여행을 동경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문구였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나는 변하고 노트 한 구석에 적어둔 문구는 빛이 바란다. 여행이 길어지고 나서 이 문구를 오래 만에 발견했을 때, 예전의 감흥과 울림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대신 두 문장이 하나로서 완결성을 품던 저 문구는 한 단어에서 다른 단어로 넘어갈 때마다 삐걱거리며 파열음을 냈으며 거기서 물음들이 흘러나왔다.

“인간”이라는 통칭을 저리도 쉽게 사용할까. 다른 땅을 그토록 열망하고 열망할 수 있는 인간은 누구인가. “항상”이라는 말 앞에는 어떤 사회적·감정적 상태가 조건절로 붙어야 하지 않을까. “자아를 벗어나”라는 대목 역시,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면 나는 정신적 자유를 원했지만 언제나 자아(와 모어사회)라는 ‘맥락’을 이끌고 낯선 장소를 찾았으며, 결국 여행하는 동안 사고의 공간이 마련된 것은, 자아와 현지 사회 그리고 다른 여행자들이 빚어내는 맥락들 사이의 간극과 충돌에 부대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어떠한 “다른 땅”에서도 나는 한 번도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앞 문장보다 매력적이라고 느껴졌던 두 번째 문장, 만약 여행의 장소가 “방랑의 장소”이자 “귀향의 장소”일 수 있었다면 바로 초월할 수 없는 공간, 극복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결국 어디를 가나 존재의 축소감을 간직하고 시달렸기 때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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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들이 산만해진다. 나는 저 “다른 땅”, 어떤 장소를 상상하는 일과 그 상상을 둘러싼 자아(혹은 모어사회의 문맥)와 이동(방랑과 귀향을 아우르는)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한 장소를 상상하는 것은 단지 가공의 물리적 배치를 그려보는 일이 아니다. 장소에 관한 상상은 육체와 사회와 세계가 맺는 관계에 대한 의식을 품는다. 한갓 망상이 아니라면, 장소에 대한 상상은 늘 담론적이고 수행적이며, 따라서 거기에는 상상하는 주체의 조건이 묻어난다. 주체의 조건은 상상의 장소로 투영되고 각인된다. 양각화되거나, 때로 음각화된다.

자아를 벗어난다는 르 부리의 저 진술도 실은 유럽이라는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유럽은 장소에 관한 다양한 유형의 상상을 품었으며, 상상의 내용이 상상의 물질적 토대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유럽은, 유럽이라며 단수로 부를 실체가 있는지, 있더라도 어느 시기로 한정해서 그 표현을 써야할지는 따져 물어야 하겠지만, 만약 전에 없던 장소를 꿈꾸며 그 상상으로 자기인식을 획득해간 어떠한 운동체를 유럽이라고 불러본다면, 자신의 안과 바깥,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투사해온 상상의 장소 속에 거꾸로 유럽의 한 면모가 비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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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그것을 토마스 모어의 소설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유토피아는 자기극복을 향한 유럽의 어떤 상상력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사회가 지닌 불평등과 억압은 정의와 자유가 숨 쉬는 유토피아 상상과 결합되었다. 과거를 향한 향수로는 그 첫 장에 호머의 <오디세이>에 묘사된 도시국가 패아키아(Phaeacia)가 등장할 테며, 르네상스 이후로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도시 형태의 이상세계를 계승했으며, 신의 도시, 영원한 도시, 언덕 위의 도시 등 여러 변주가 이어졌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뜻하지만, 한낱 공상을 뜻하지는 않았다. 정의와 진리, 동정과 사랑, 공평과 조화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르던 시대에 사회계획가들은 대개가 유토피아 사상가였다. 오웬, 푸리에, 하워드 등은 유토피아적 공간을 편성하고 직접 실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토피아 상상은 실체화되는 과정에서 의도는 소멸되고 기획은 타락한다. 자유를 향유하던 고대의 도시에는 부패와 환락이 독버섯처럼 피어나, 소돔과 고모라가 그러하듯 파괴가 되풀이되며, 사회의 질서를 기도한 근대의 도시는 인간의 생리를 유토피아적 도해에 끼워 맞춰 파놉티콘을 낳는다. 빛의 공간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로 역전된다. 하지만 변질되고 타락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새로운 장소에 대한 상상이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고, 긴장감을 지닌 채 현실과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이 유럽 안에서 새로운 장소를 꿈꿨을 때, 그 상상은 비판적(critical)이며, 동시에 위기적(critical)이었다.

아마도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 그 상상의 대표적인 사례라면, 종교적 시간성과 결합된 천년왕국이 아니었을까. 천년이라는 약속의 시간이 현세에서 구현되어야 하고, 때로는 앞당겨야 할 ‘과제로서의 시간’이 되었을 때 천년왕국을 현실화하려는 시도는 농민봉기로 유럽을 뒤덮고 때로는 권력쟁투의 촉매제가 되었으나, 천년이 현세와 내세를 가르는 절대적인 단층이 되었을 때 천년왕국은 ‘인민의 아편’이 되어 피안의 세계가 현세를 구속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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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래할 장소에 대한 상상이 유럽 안에서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르 부리의 저 낭만적인 진술 속의 “다른 땅”은 자기 사회 바깥을 향해 있으며, 낭만적인 만큼 그 상상은 덜 위험하다. 그곳은 현실개혁의 장소가 아닌 ‘여행’의 장소이며, 그만큼 현실과의 안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다.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중국 기행은 유럽인들에게 잘 알려진 동양에 관한 ‘대하소설’(텍스트로서의 동양)의 머리말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본격적인 1막은 16세기 지리상의 발견이 불러일으킨 소위 ‘신대륙’을 향한 유럽인의 의식과 권력의 팽창으로 시작된다. 만약 신대륙이 신세계이고 구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낙원이라면, 그래서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장소이려면, 거기에 인류와 문명은 존재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신대륙에는 인간도 문명도 존재했으며, 따라서 신대륙을 향한 상상은 여러 가지로 굴절되었다.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신세계Novus Mundus>를 집필하여 신대륙을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묘사했다. 한편 정복자 코르테스는 황금의 나라 ‘엘 도라도(El dorado)’를 꿈꾸며 대서양을 건너갔다. 그리고 신부 라스 카사스는 선주민을 향한 선교활동과 정복자에 맞선 정치활동을 병행하며 신대륙에 대한 구세계 인간의 자기도취적인 상상력에 질타를 가했다. 그는 선주민의 인권논쟁을 일으키고 신대륙을 통해 구세계 비판에 나섰다. 이처럼 신대륙은 그저 유럽의 바깥일 수 없었다. 유럽이 거대한 식민의 영토로 삼으려 하였기에, 아메리카는 유럽의 바깥에 존재하는 내부였으며, 따라서 신대륙을 향한 상상은 그 미묘한 거리감으로 유럽 내부에서 정치적·사상적 논쟁을 격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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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양이라는 대상은 또 달랐다. 신대륙이 개척하고 이주할 땅이라면, 동양은 마르코 폴로의 기행이 그러하듯 신비로운 여행의 장소에 가까웠다. 17세기 무렵까지도 중동 너머의 지식은 백지장이었고, 나체수행자, 전제적 황제 등의 갖가지 신비로운 이미지가 어렴풋하게 밑그림으로 깔려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점차 예수회 선교사로부터, 나중에는 탐험가와 식민지 행정가로부터, 마지막에는 학자와 구도자로부터 동양이 보고되었다. 아직 동양에 대한 물질문명적 우월함을 확보하지 못했던 시대, 동양을 다룬 유럽의 많은 작품들은 동양을 과장된 이미지로 부풀려놓았다. 마술적이고 때로는 숭고하고 가혹하며, 시간은 멈춰 있고 상상적 도피와 집단 환각이 가능한 장소, 이국적이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안기는 곳으로 묘사되었다. 신대륙을 향한 상상과는 달리 동양의 상상에는 구체적인 잇속만큼이나 또 다른 구세계를 향한 종교적 감상도 짙게 깔렸다. 그런 만큼 동양을 향한 상상은 유럽인의 무의식을 잘 보여준다. 만약 르 부리의 진술이 지닌 상상의 성분을 분석해, 유럽이 품었던 새로운 장소를 향한 상상의 역사와 견준다면, 그의 진술은 소위 동양에 관한 상상과 가장 잘 맞아떨어질 것이다. 동양은 방랑과 귀향을 위한 신비하고도 안전한 거리가 확보된 장소였다.

– 윤여일 (수유너머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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