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언더라인

당신의 웃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 박카스(수유너머R)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서 가끔 전화가 오곤한다. 이들의 하소연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말이 붙는다. ‘뭐랄까. 잘못된 건 없는 데 뭐가 잘못된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할까. 좀 허무하다고 할까’ 대학교 4년 내내 목숨을 걸어가며 준비한 끝에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도 곧잘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미국의 사회학과 교수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그의 책 <감정노동>에서 오늘날 기업이 단순히 행동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감시함으로써 어떻게 우리를 통제하고 있는 지를 밝히고자 한다.

– 감정노동의 도구가 된 노동자

“일곱 살 짜리 애를 업고서 눈길을 헤쳐 가며 공장에 데려가고, 데려오고 했어요. 아이는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했죠. 애가 기계 옆에 서서 일하는 동안 제가 꿇어앉아 음식을 떠먹인 적도 많았어요. 아이가 기계 곁을 떠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기계를 멈출 수도 없었으니까요.”

<감정노동>의 첫 구절은 칼마르크스의 <자본론>중 1863년 영국 아동고용위원회에 제출된 증언으로 시작한다. 증언에서 아이는 일하는 동안 식사를 공급받아야 하는 ‘노동의 도구’로 등장한다. 마르크스는 당시 영국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의 도구가 되어감에 따라 잃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마르크스는 공장노동의 도구가 된 인간이 어떻게 자기의 시간과 자기가 만든 생산품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가는지 밝혔다. 140년 이상이 지난 지금 『감정노동』에서는 델타항공사의 교육현장의 한 문구에 주목한다.

“여러분, 근무할 때는 진심을 담아 웃어야 합니다. 미소는 여러분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나가서 그 자산을 활용하세요. 웃으세요. 진심을 담아서 웃는 겁니다. 진심으로 활짝 웃으세요.”

공장 노동직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주요노동의 형태가 전환하면서 노동자가 해야하는 노동에는 ‘육체노동’에 ‘감정노동’이 덧붙여졌다.

“감정노동이란 개인의 기분을 다스려 얼굴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통해 외부에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항공기 승무원의 경우 기내 복도 사이로 무거운 기내식 카트를 끄는 동안에는 육체노동을 하고, 비상착륙이나 비상 탈출에 대비하거나 실제로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정신노동을 해야한다. 그렇지만 이런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승무원들은 또 하나의 노동을 수행한다. 그녀는 승객들에게 언제나 밝은 미소를 띄우려고 노력한다.

항공사 사이에서 서비스가 중요한 경쟁의 장이 되면서, 항공사는 승무원들에게 보다 많은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델타항공의 경우를 보자. 델타항공은 광고를 통해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준다. 상냥한 예절과 따뜻한 대인 서비스를 떠올릴 수 있는 아름답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부 백인 여성의 이미지를 광고로 내보낸다. 또한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인간적’인 맞춤 서비스를 약속한다. 심지어 항공사측은 “우리는 당신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치맛자락을 휘날립니다.(콘티넨탈 항공), “저를 날려주세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내셔널 항공)같은 카피를 통해 미소에 성적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항공사측은 광고에 성적인 분위기를 감돌게 하여 그들의 주 고객이 될 수 있는 대기업남성들의 고객층을 확보하고자 한다. 덕분에 항공기의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갖게되는 무의식에는 성적인 코드가 덧씌워진다. 광고가 만들어낸 환상을 갖는 승객들에게 승무원들은 그들의 미소를 통해서 승객들이 생각하는 환상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연기해내야하는 배우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 진정성에 대한 요구

“토요타의 광고를 총괄한 그렉 스나젤은 카피라이터 지망생들을 상대로 하는 수업에서 첫 시간마다 ‘언제나 정직하라’고 가르친다.”

회사는 그들의 이윤창출을 위해 노동자에게 진정성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진정성이란 노동자가 자기 존재에 대해 행하는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진정성’이란 개념을 모호하게 이야기하면서 회사에게 자신의 내면의 진정함을 다할 것을 요구한다. 회사는 먼저 신입사원에게 ‘가족’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회사는 신입 승무원들에게 자신의 회사가 가족처럼 움직인다고 믿게 만든다. 델타항공의 경우 소장은 ‘엄마’ 이고, 젊은 남자 상관은 ‘아빠’처럼 여겨진다. 그리고는 신입사원들로 하여금 상급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한다. 회사는 한편으로 신입 사원들에게 언제든 자신들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말하며 불안을 느끼게 하면서도 그들로 하여금 이 친절한 새 가족 안에 들어온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끔 한다. 이에 신입사원들은 기업에 감사를 느끼고 회사에 충성한다. 이렇게 가족이 된 사원에게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델타를 광고합니다” 라는 답은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광고하는 겁니다.” 이것이 회사가 사원들에게 요구하는 답이다.

그렇게 회사는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인격화를 강조한다. 회사는 그들의 인격이 곧 회사의 인격이 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회사의 욕망이 곧 노동자 개인의 욕망과 일치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로써 회사는 노동자에게 그들로부터 내면의 친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끔 만든다. 신입사원이 회사라는 가정의 일원이 된 순간, 회사는 비인격적인 관계를 인격화하는 관계에 둔다고 말하는 동시에 노동자 개인의 인격을 비인격화한다.
승무원의 경우 이제 승객의 화를 잠재우는 것은 그녀의 가족을 위해 그녀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 된다. 그녀는 승객을 아이와 같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승객의 이름을 이용하여 암묵적인 인격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도 하며, 승객과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방법을 익히고 자신의 내면의 화를 다스리기 위해 ‘꼴 보기 싫다’ 등의 난폭한 표현을 ‘통제가 안 된다’ 라는 업무용 언어로 이야기하는 노력을 행한다. 승무원들은 화를 삭히기 위해 분노를 삭혀줄 동료를 찾기도 한다. 승객의 행동에 화를 내는 것은 전적으로 승무원이 다루어야 할 것으로 이야기된다. 항공사는 이에 승무원들에게 이야기한다.

“화는 스트레스의 한 요소입니다. 델타항공을 위해서 화를 다스리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객을 위해 이렇게 하셔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항공사는 승무원에게 ‘진정성’에 대해 강조하면서도 그가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야할 대상으로 여기라고 말한다. 항공사는 승무원에게 자신의 표정에 ‘진정성’을 담되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을 ‘가짜’로 여길 수 있는 거짓자아를 불러오라고 말한다. 이때, 승무원은 자기 일에 진정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돈과 관련될 때만 진정성을 갖게 된다.

– 감정마비이거나 냉소하거나

자본가가 요구하는 배역에 자신의 내면을 완벽히 일치시키는 노동자의 경우, 노동자는 자본가의 유능한 배우가 되어 자신의 배역을 소화해낸다. 하지만 노동자는 곧 자신이 누구인지, 왜 무엇 때문에 자신이 웃는지도 모르면서 웃게 되는 감정적 마비상태에 빠져든다. 진정성을 가지고 회사를 위해 일하는 이들이 이 경우다. 이들은 이제 곧 자신을 객관화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주변의 세계를 해석하는 주요수단을 잃게 된다. 곧 자본가가 주는 즐거움과 쾌락에만 도취되어 살아간다. 노동자들은 감정적 마비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감정적 마비의 인간들은 앎을 추구할 때 찾아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무엇에 손을 내민다. 주어진 배역을 따르는 것은 앎을 추구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출구를 제공함으로써 그 사람이 물리적으로 그 직업에 계속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결국 노동자는 자본가의 페르소나가 되어 결국 정신도 몸도 자본가에게 내준 채로 살아가게 된다.

한편 감정마비를 겪고자 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회사 밖에서의 자아와 회사 안에서의 맡은 바 배역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노동자는 자기자신을 위해 언제 연기를 하고, 언제 그렇지 않은 지를 명확하게 정의한다. 이러한 경우 노동자는 기업의 요구를 받되 진심으로 그 행위를 행하진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에서 노동자는 감정마비의 위험은 벗어날 수 있겠으나 자신의 직업이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가짜’의 느낌을 떠안고 지내야한다. 또한 회사는 진심어린 미소를 띄우지 않는 노동자들을 보고 일에 대한 열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며 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노동자는 이때 스스로의 무능력에 고민할 수 있으며 ‘가짜’연기를 하는 자신에 대해 갈등을 가져올 수 도 있다. 또한 이러한 ‘가짜배우’로 지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간직하며 살 수도 있다. 한편, 표면행위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회사에서는 당당히 거짓미소를 내비치고 또 다른 장소에 가서는 자신의 내면을 까발리거나 화를 풀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표면행위와 내면행위가 다르다는 것에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다채로운 즐거움의 획득에 기쁨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끝이 난다. 그들은 다만 환상속에서 머물며 즐거움을 취하고 있는 경우와 같아 삶 자체에 대한 허무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 “일이 문제죠, 우리가 아니라”

“승무원들이 자존감을 구해내는 유일한 길은 그 직업을 ‘환상을 만드는 일’로 규정하고 그 일에서 자아를 분리하며, 그 일을 심각하지 않고 가벼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의 작은 부분만이 자아에 영향을 주면 자아는 더 작아지게 된다.”

표면행위와 내면행위가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한 승무원들은 냉소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자기 자존감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에 승무원들은 직업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서 허위와 자존감에 관련한 문제를 풀고자한다. 거짓인 것은 내가 짓는 미소가 아니다. 항공기 위의 시간이야말로 진짜 가짜다. 문제는 거짓된 나의 표정이 아니라 내가 일터에서 보낸 시간 자체이다. 이렇게 승무원 자신이 보낸 시간은 가짜가 되어버린다.

<감정노동>은 우리에게 지금 웃고 있는 웃음이 누구의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우리가 열심히 흘린 땀과 더불어 생겨나는 미소가 세상을 냉소하기 위한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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