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언더라인

돈으로 물건을 사자? NO! 돈으로 삶을 창안하자! YES!

- 이상미

<호모 코뮤니타스>를 읽고 정말 단순하게, 내게 있어 돈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봤다. 부끄럽지만 까놓고 말한다. 난 푼돈을 몹시 사랑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은 없는 사람이다. 나름 신의 직장을 나온 아버지 덕에 내 수중에 돈 한푼 없다고 길거리에 나앉을 걱정 없다. 월급 통장에 들어오는 돈의 맨 앞자리만 힐끗 보고 그게 100만원 초반인지 200만원에 육박하는 돈인지도 신경 안 쓴다(연봉 협상할 때 뭐 들었니). 모기업 간부를 부모로 둔 사람들이 듣는다면 코웃음 치겠지만, 나름 있는 집(!) 자식이다(이쯤 되면 ‘엄친딸’이냐고 불평할 분들 계실지 모른다. 걱정 마시길. 성격은 모났고 외모는 볼품없다. 한 인간에게 할당되는 행운의 분량은 공평하게 배분돼 있나 보다. 어쨌든) 돈은 내게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는 단순한 개념일 뿐이었다. 적어도 대학 때까지는 말이다.

항상 “뭔가를 사고 싶다!”

대학 때 돈이 부족해서 고생 해본 적 없다. 그런 나도 어느 날 아버지 재산이 내 생활을 졸업 후까지는 책임질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빈대 붙음이 사람 된 도리가 아님을 통감한 바 있어 돈벌이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이 즈음 아버지는 본인의 희망과 상관 없는 ‘희망퇴직’을 당했고, 애초부터 졸업 후 놈팡이로 굴러다니는 자식놈에게 생활비 지급할 마음 따윈 없는 분이었다. 아버지 재산과 내 재산은 별개라는 것을, 부끄럽게도 그때 처음 알았다.
비정규직 1년, 정규직 2년의 사회 생활을 해오고 있다. 경제 공부는 안 해봤어도 내 컨디션을 팔아 받는 허수인 ‘화폐’를 벌어들인다는 것은 안다. 경제 구조를 돌아가게 만드는 일종의 ‘포인트’적인 개념. 그 ‘허수(虛數)’를 벌어들이기 위해 다들 사무실에 앉아 운이 좋으면 땡퇴근을 하고 아니면 야근을 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누구는 밥 먹으려면 7000원 이상 되는 식당에서 먹어야 한다는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미용 안마 시술을 받는다. 소비 심리 충족을 위한 용도가 아니더라도 돈은 꽤 많이 들어간다. 생활비 품목에서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상당량의 가스비, 전기비뿐만 아니라 특정 명목의 관리비까지 지출한다. 놀러 갈 곳은 많고 차비는 계속 오른다. 커피값, 옷값도 계속 오른다. 예쁜 옷, 예쁜 가방에 대한 환상을 줄일 수 없어 우리 모두는 옷을 통해 자신이 예뻐 보일 것 같다는 환상에 돈을 지불한다.
결국 뭔가를 사기 위해 쉼 없이 일하고 그나마 나는 여유시간까지 소비에 잠식당한다. 몸은 지치고 삶의 질은 낮아지는데, 이 와중에 머릿속에서 뭔가를 사고 싶다는 욕구는 멈추질 않는다. 돈의 다른 용법을 상상할 여유도 능력도 없다. 주변 사람을 돌아봐도 마음 나눌 친구나 동료는 부족해지고, 그런 헛헛함을 돈 말고 대신할 것이 없다. 이런 빈곤한 일상!

소비 이미지로 대변 되는 삶

<호모 코뮤니타스>는 돈에 대한 책이되 돈을 불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아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의 다른 용법을 창안하는 법, 돈을 통해 삶을 선물하고 친구를 만드는 법을 가르친다. 책에서는 돈이 삶을 침식하는 여러 예를 든다. 갑자기 돈이 많이 들어왔을 때 정작 사람 사이의 다툼으로 더 불행해지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그 돈을 삶을 창조하는 상상력으로 환원시키지 못하는 극한의 이기심 등 돈을 통해 보여지는 각종 진상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부에 대한 판타지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왜? 성공의 이미지가 늘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는 언제나 벼락부자 혹은 미다스의 손들이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한다. 무대를 채우는 배우는 끊임없이 바뀌지만, 대중들은 그걸 감지하지 못한다. 달빛만 보고 그 이면은 보지 못하듯이.”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65쪽>

미디어는 결코 소비구조의 핵심을 소비자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그 물건이 사람들의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지점만을 임팩트 있는 이미지와 텍스트로 바꿔 확대 재생산한다. 그 물건을 사야 내 라이프 스타일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환상. 어떤 물건을 가짐으로써 내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드는 환상을 말이다. 사람들은 이 메시지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상상력과 컨디션 모두 부족하다. 정확히는 그런 것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학창시절 어느 학교의 급훈, “4시간 자고 공부하면 마누라 얼굴이 바뀐다!” 어린 시절에 배운 학교 교육까지도 더 좋은 물건과 사회적 지위를, 심지어 더 좋은 배우자를 ‘소유’하기 위한 것이다. 돈이 삶을 좀먹는 법을 가르칠지언정 돈으로 삶을 만들어내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호모 코뮤니타스>는 자본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돈으로 삶을 창조하라 말해준다. “자본의 폭주 속에서 삶의 창조성을 지켜내는 당신만의 새로운 돈 쓰기 용법을 창안하라!”

우정의 공동체, 증여의 네트워크

<호모 코뮤니타스>에서는 우정으로 단단히 맺어진 공동체를 통해 돈의 새로운 용법을 고안한다. 돈으로 사는 소비재를 통한 네트워크가 아닌, 서로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 되는 관계의 향연이다. 저자 고미숙 샘이 공부하는 연구 공동체 ‘수유너머’에서는 물건을 사는 ‘돈’이 남과 함께 하는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또 연구실 생활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면 ‘돈’을 통해 서로에게 인연을 선물하기도 한다. 마음을 주고 받다 보니 사회 생활에서처럼 고립감을 느낄 틈도 없다. 우정과 돈이 저절로 ‘증식’되는 신기한 구조다.
모든 사람들이 수유너머 사람들처럼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함께 힘을 모을 만한 ‘매개’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돈의 다른 쓰임을 상상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 돈으로 다른 삶을 창조하는 능력은 절실히 요구된다. 화폐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법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돈과 사람이 어울리는 행운을 단지 ‘운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투여할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가 풍요로워지면 그 사이에서 돈과 친구와 공부가 넘실거린다. 돈의 쓰임을 바꾸는 것은 물론 돈이 없이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다. 서로의 존재가 선물인 우정의 공동체에서는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

나는..과연 접속할 수 있을까?

책을 보면서 든 생각. 지금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내게는 도무지 상상할 “짬”이 없을 것 같다(내 광고주가 야근 안 하게 일거리를 좀 줄여준다면 모를까). 책에 나온 메시지에 공감하면서도 행동은 주저하게 된다. “책 읽는 거는 좋아하지만 공부에는 영 재능 없는데(책 너무 많이 보면 잠 온다구)”, “지금 다니는 직장이 나름 괜찮은 면도 있는데”, “난 어차피 책 사는 거 말고는 돈 별로 안 쓰잖아(반쯤 거짓말)” “난 나름 자동이체로 기부금도 낸단 말이다(두 군데 밖에 안내잖아)” 등등 여러 생각이 떠다닌다. 머리와 가슴과 손이 따로 노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책에 나온 내용처럼 살 거라며 떳떳하게 말하고 다니진 못하겠다. 우정의 공동체가 고졸이던 대졸이던 상관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내가 사는 현실은 고졸이라면 서류도 못 내미는 곳이니까. 내 정신적인 취향까지 “돈이 될만한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뽑히고 걸러진다. 실력도 학벌도 없어서(이런 한탄 하기 전에 수능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그랬나) 정규직으로 취직해봤자 여자들에게 적은 봉급 주고도 당당한(“너희는 남자들처럼 생계를 책임지는 건 아니잖니” “저희도 저희 개인 생계는 좀 책임지고 싶거든요! 아님 야근이라도 줄여주던가!!”) 출판사와 소규모 언론사를 전전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덧 그런 살벌함이 점점 더 익숙함을 넘어 친숙하게 느껴진다. 내가 몸 담은 현실은 그런 곳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나마 다른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본다. 난 돈을 통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변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즐비하게 물음들만이 떠다닌다. 이 글을 읽고 명확하게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 같아서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런 책을 읽고도, 이런 감응을 느끼고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나는 할 수 있을까?” 지극히 세속적인 청년의 만년 야그너 푼돈 벌이 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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