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언더라인

중동전쟁이 내 출근길에 미치는 영향은-지정학적으로 생각하기

- 이상미

대학로 혜화동 성당 앞이나 동묘 앞역 근처를 걷다 보면 필리핀계 사람들이나 미싱을 돌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주로 인도, 네팔인)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시장판에 끼어 물건을 사진 않는다. 왠지 비위생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 “스탑, 크랙다운”이라는 구호가 적힌 전단지를 보지만 그리 주의 깊게 읽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안쓰럽다” 생각하는 시각이 그나마 긍정적인 듯하다. 백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손짓 발짓이라도 해가며 도와주는 모습과 제3세계 사람들이 길을 물어보면 슬슬 피하는 행동 사이에는 묘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클라우스 도드의 책 『중동전쟁이 내 출근길에 미치는 영향은-지정학적으로 생각하기』에서는 인종 차별적인 개인의 시선이 지정학적 문제와 결부돼 있다고 주장한다. 책 내용을 더 일목요연하게 요약한다면 “중동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치 판단이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쯤 되겠다.

1. 나치와 지정학

이 책은 세계 정치 질서를 국가 간의 지리적 위치와 그에 얽힌 권력 관계를 분석하는 ‘지정학’에 대한 개론서다. 저자 클라우스 도드는 세계 질서를 이해하는 툴로 지정학을 소개하는데, 이 ‘지정학(geopolitics, ‘지리학’과 ‘정치학’의 합성어)’이란 개념은 냉전 시대 이래 지금까지 미국이 자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수립하고 세계 여론을 형성하는 수단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지정학이 미국과 밀접하게 결부돼 있던 것은 아니다.

학문으로서 지정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당시 연합국가들은 나치와 히틀러의 세계 정복 계획을 뒷받침하는 학문이 바로 지정학이라 생각했다. 독일에서는 하나의 유기체인 국가가 자신의 세력권을 보장받기 위해 ‘생존공간(히틀러는 저작 <나의 투쟁>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을 확보해야 한다고 믿었다. ‘생존공간의 확보’ 문제는 독일뿐 아니라 유럽 강대국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어쩌면 연합국들은 세계 시장을 재빠르게 선점해가는 독일을 보고 배가 아팠을지 모른다). 독일의 패전과 함께 전승국들은 독일에서 주로 쓰였던 지정학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국제 정치 질서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정학은 전 세계적으로 냉전 분위기가 완화되던 시기 미국에서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2. 미국에서의 지정학 부활

미국과 소련이 적대했던 냉전의 긴장이 완화되는 국제 분위기가 조성되던 무렵, 미국의 장관 헨리 키신저는 지정학을 미국 중심의 국제정세를 확립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재발굴 한다. 소련과의 적대 관계는 완화되었지만 베트남 전쟁으로 비롯된 국제 여론 약화로 미국의 위신은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이때 미국은 악화된 국제 여론을 완화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했다. 키신저는 지정학을 통해 공산주의를 확산시키려는 소련의 ‘지리적’ 야심을 막고 세계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미국의 역할을 전 세계에 제시했다. 미국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에게 ‘지정학’은 정치, 군사적 대응책을 형성하는 데 지리적 요소를 중요하게 부각시킬 유용한 단어로 부각된다. 그들은 종종 연설에서 소련의 ‘팽창주의 정책’을 언급했으며, 소련을 저지해야 한다는 지정학적 신념에 차 있었다. 이들은 레이건 행정부를 거쳐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정권의 각료로 고스란히 흡수된다.

3. 국가 정체성을 주입하는 미디어

오늘날까지 미국 내에서 자국 중심의 보수주의자들이 내는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그들의 정치 견해는 뉴스와 신문은 물론 영화와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신문 보도, TV 방송, 인터넷 등은 어떤 사건이 정보로서 가치 있는지 위계를 나누고 적절한 포지션을 정한다. 미디어가 갖는 지정학적 힘은 바로 사건, 사람, 장소를 ‘틀로 짜서 가공(Framing)’하는 방식에서 온다. 미디어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정보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축소, 왜곡시키기도 한다. 이때 축소, 왜곡의 목적은 불특정 대중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국가 정체성, 지정학적 전통, 시각문화, 국가의 역사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상에서 매일 동원된다.

미디어를 통해 표현되는 국가 정체성 속에는 한 국가의 권역을 규정짓고 그 권역에 대해 가치 평가하는 시선이 들어 있다. 때문에 방송을 들으며 제공되는 정보를 듣고 어떤 가치평가가 포함돼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영화나 뉴스를 통해 일상적으로 들었던 악의 축, 제3세계, 아시아 같은 단어들을 곰곰이 떠올려보면 국가나 공동체를 구분하고 위계 짓는 방식이 지극히 이분법적임을 알 수 있다. 뉴스나 영화에서 유색인종이 미국의 적으로 나오는 것을 자주 보게 되면 자연스레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유색인종이 속한 나라의 국가 정체성은 언제나 세계 질서에 반하는 이미지로 그려지고, 미디어를 접한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도 미국인들과 다를 바 없는 지정학적 관념을 학습한다.

세계 곳곳의 사회운동 단체와 대안 정치가들은 국민국가가 정체성의 유일한 단위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이들은 미디어를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세계에 알렸다. 바로 대안 미디어의 탄생이다.

4. 저항의 지정학

오늘날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감을 갖는 사람들은 대안 언론과 블로그를 적극 사용한다. 이란 정부에서는 블로그에 정치적 불만을 표현하는 글이 올라오지 못하게 통제하지만, 이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블로깅(Blogging)’이 전자 통신 방법으로 널리 쓰인다. 애플의 아이팟과 방송이 결합된 팟캐스트(podcast)로 개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독립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아랍 세계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관점으로만 조명하는 영국과 미국의 언론에 맞서 이라크 또한 문명화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폭격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이라크 사람들의 모습은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대안 방송을 통한 시각적 충격은 아랍 정권을 악마나 미치광이로 묘사하던 서구 주류의 지리적, 정치적 견해에 대한 도전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기로 결심한 개인은 인터넷으로 자신과 생각을 같이 하는 타 집단과의 교류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서로 경험을 교류하고 단체를 조직하며 행동 날짜를 논의한다. 이들이 시도하는 ‘저항적인 틀짜기(Faming)’는 자신들 고유의 세계관을 알리고 세계 정치의 지배적인 표현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5. 편협한 지정학을 넘어

세계적인 추세로 일어나는 저항적인 판짜기는 한국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미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시선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시선에 길들여지는 편리함이 더 우세하다. 매체를 통해 형성된 제3세계 사람들에게 대한 관념은 대부분 미국 중심의 지정학이 만들어낸 허구(그러니까 미국이 아랍권의 테러와 맞서 싸워 세계 평화를 지키는 할리우드 무비는 좀 적당히 봤어야 했다)지만, 백인 사회에서 제3세계를 보는 방식은 우리 나라 뉴스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의 없이 치우친 지정학적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에서 제3세계 이주 노동자를 배제하는 모습은 자유를 사랑한다 외치던 미국에서의 흑인 차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테러국가의 국민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고 존재 자체가 불법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간에 그저 머릿속에 박힌 선입견으로 외국인들을 규정짓고 업신여긴다. ‘반공의 최전선’,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인식 틀에 끼워 맞춰지던 과거(지금도 상당 수는 그렇게 믿거나 아님 잊어버렸거나)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면 마치 피해자가 자신을 가해하는 듯한 모습이다. 타인과 나에게까지 강제된 지정학의 모순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클라우스 도드가 제시한 저항의 판짜기가 무력하게 느껴지는 한국의 현실에서 거듭 생각하게 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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