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언더라인

권력을 이긴 사람들 : 하워드 진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집단 상처

연말에 일제히 올해의 주요 사건을 정리 할 언론들은 상투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 라는 말로 뉴스를 시작 할 것이다. 올 해도 작년처럼 지나치리라 만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대북관계의 일촉즉발 불안함과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국민들의 박탈감이 기묘하게 결합하여 무거운 공기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허무주의라기 보다는 집단적 상처와 같다.
4대강 공사로 낙동강 남한강 금강 영산강이 파헤쳐지고 많은 생명들이 사라졌다. 설마 대운하를 강행 하겠는가? 믿지 않았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박탈당한 삶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이웃들은 감옥에 갇혔다. 권력의 오용으로 모든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 격주 마다 사람들과 낙동강에 내려가 포크레인이 금모래 파헤치는 것을 보는데, 소리라도 지르면 속이 시원 하겠지만 가위눌린 것처럼 소리는 목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초조한 마음으로 공사장을 노려보다가 서울로 올라온다.
현대차 비정규직, 기아차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높고 좁은 대문에 올라가 칼바람 얼굴에 맞는 노동자들을 뉴스로 보며 가슴 졸이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든지 마치 남이 힘든 일 겪는 것을 격려하는 것 같아 어색하다.
북한 포격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들과 민간인들, 4대강 공사 하다가 사고 혹은 과로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 4대강 공사로 깊어진 수위 때문에 훈련중 물에 빠져 죽은 세 명의 군인들 에게 위로하는 말 외에 딱히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더러는 우리가 할 수 있는일이 없지 않은가 회의에 빠진다. 이 짓눌린 공기를 찢고 나갈 수 있게끔 권력의 오용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

문수스님은 몸을 불로 밝혀 어리석은 짓을 그만 두라고 하셨으나 정부는 듣지 않았다. 그래도 민중은 인권위가 해체에 항의 하고, 비정규직이 생명을 담보로 투쟁을 하고, 4대강공사를 반대하고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촉구 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12월 7은 국회 예산 통과 마지막날 이었다. 내년의 공사를 막기 위해 오늘은 너무나도 중대한 날이지만 북한의 무력도발이 중차대한 사안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주었다. 민족의 평화에 관심도 눈치도 없는 북의 독재자는 도발을 해서 그나마 어렵사리 만들었던 남한 민중의 단결 시간을 빼앗았다. 어떻게 이렇게 김빠지게 만들 수 있을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이런 우울함이 어깨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도 억압받는 이 상황에서, 늘 지기만 하는 것 같은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아마도 ‘권력을 이긴 사람들’ 의 이야기 것이다.
반전-시민불복종운동, 미국 민중사로 유명한 실천적 지식인 하워드 진은 미국의 역사를 정권이 아닌 미국 사람들에게 돌려주려고 한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은 ‘프로그레시브’라는 매체에 하워드 진이 기고한 칼럼들을 선별하여 모은 책들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민중의 작은 투쟁의 역사 까지도 기록하고 공유하고자한다. 인디언들이 자신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투쟁, 미국 흑인들의 투쟁, 베트남 전쟁에 대한 투쟁, 미국이 다른 나라를 유린하는 현재의 진실 그는 이러한 역사를 말하지 않는 것은 범죄와 같다고 말한다.

역사를 씀으로써 인종차별, 성 편견, 계급불평등, 그리고 국가의 오만함 같은 문제들에 중대한 인식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또한 기존 체제의 권력에 맞선 민중들의 알려지지 않은 저항을 드러내려 한다. 이런 저항행위들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권력이 오작 총과 부를 가진 자들에게만 있다는 공식적인 견해를 지지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워드 진은‘실천’,‘민중과의 정보 교류’를 중요시한다. 가상현실성- 파생 실재에 포위된 현대사회를 냉소하는 쟝 보드리아르와는 사뭇 태도가 다르다. 쟝 보드리아르는 ‘시뮬라시옹’에서 현대의 차가운 매체는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이미지도 아닌 것-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했다. 홀로코스트 TV시리즈로 인하여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사건은 사라지고 이미지도 아닌 것들만 남은 시뮬라시옹의 상태를 비난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을 영화나 TV에서 재현하는 것이 대중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워드 진은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소급에 대해 좀 더 중요한 시점을 정확히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진 하워드는 어느 유대인들 모임으로 부터 강연을 부탁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6백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당치 암살을 일삼는 중앙 아메리카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미국정부로 인해 학살당한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민중의 이야기를 했다. 진하워드는 어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타민족과의 결혼이나 동화로 위협받고 있는 자신들의 특별한 정체성을 보존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홀로코스트를 사용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철조망 쳐져서 역사의 다른 잔혹행위에서 고립되어선 안되며 자신들의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는 근거로 과거의 홀로코스트를 이용하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라 주장한다.
맑스의 루이 보나빠르트의 18일 에서 맑스는 혁명의 열매를 고스라니 독재자 루이 보나 빠르트에게 바치는 것을 서술하며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이중성-어느 순간 안착하고 싶은 본능을 지적한다. 하지만 진 하워드는 민중을 믿고 지지한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인들이 이라크 전쟁 초기에 75%나 전쟁을 지지 했지만 지금은 절반도 안되는 사람들이 전쟁을 지지한다고 하며 극 소수 어던 사실에도 변하지 않을 골수파를 제외하면(그런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일은 힘의 낭비가 될 것이다.-원문인용) 상식을 가진 대중들은 차단된 정보만 제공한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Che fare?” –“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민중운동을 위해서 없던 승리를 고안해내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역사를 쓴다는 것이 그저 과거의 수많은 실패만들을 개괄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역사가들을 끝없는 패배의 순환에 일조하는 부역자로 만드는 것이다. 역사가 창조적이려면, 역사가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서 가능한 미래를 예견하려면, 역사는 민중들이 저항하고 함께 모이고 그래서 때로 승리했던 과거의 숨은 사건들을 그것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순간이었더라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창조해내야한다.

맑스에 따르면 역사적 인물은 역사에 두 번 나타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루이 보나빠르트의 당선은 박정희의 가죽을 입고 나타난 이명박의 당선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2년 후 돌아올 대선에서 박정희의 다른 망령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젊은 세대는 뼈저리게,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기성세대와 이웃에 무관심했던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한탄한다. 3년이나 버텨오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은 빠른 정보 공유였다. 진 하워드는 ‘ 교사들이 젊은 학생들에게 표준 교과사에서는 얻지 못할 정보를 전달하는 일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친구, 이웃 직장동료들과 대화하고 신문에 편지를 보내고 토크쇼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라고 한다.
파시즘 치하 이탈리아 소작농들에 대한 이야기인 이그나치오 실로네의 소설 ‘폰타마라’에서 한 지하 저항운동조직은 통제되어 왔던 정보들을 퍼뜨리기 위해 만든 전단지에서 간단히 이렇게 묻는다. “Che fare?” –“ 무엇을 할 것인가?”
침묵은 악의 편이다.‘4대강 체험’ 답사 카페에서는 운하반대교수모임과 4대강 파괴현장을 둘러보고 우리 강의 아름다운 원형도 볼 수 있다. 1년의 설득 끝에 지난 주 낙동강 상류 예천이 고향인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왔다. 십년만에 내려가는 고향, 그 아름다운 강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직접 보고 가슴이 내려 앉는 것 같다 하셨다. 4대강 답사는 오감을 바꿔주는 소중한 기회이다. 지율스님은 매주 금요일 시청 3시에 시민들과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여주환경연합 이항진 선생은 여주 이포보 현장에서 정권을 교체하는 것 보다 사람들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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