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준의 언더라인

«삼성을 생각한다»에 노동자는 없다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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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가 출간되었을 때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언급되지 않았을까 생각 하였는데, 전혀 언급되지 않아 조금 실망했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다. 필자는 2007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2교대 근무하던 두 여성이 7개월 간격으로 같은 종류의 백혈병으로 사망하였지만 삼성에서 산재인정을 거부한다는 뉴스를 보고,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현재 삼성반도체 백혈병, 암 발병 피해자는 100명에 육박하고 그 중 알려진 사망자는 22명이다. 이 사건은 삼성 무노조 경영의 온갖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고, 대한민국 사회의 비합리적인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김용철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에서이사건을언급해주었으면하는마음은대중에거의노출되지않은사건을알리는데좋지않았을까하는애타는마음에서나온욕심일수도있다. 김용철변호사가삼성에연루된모든이야기를담아낼수는없는노릇이고, 본인경험위주의이야기로책을채우다보니재무비리, 검찰에관련한이야기로구성될수밖에없다는생각이들었다. 공교롭게같은시기에 ‘삼성반도체와백혈병’이라는책이발간되었고자주가는한소형서점에서는두책을나란히진열해놓았지만한권은서점의효자품목이 된반면 『삼성반도체와백혈병』은몇달이지나도록한권도팔리지않았다. 언론보도도잘되지않고단체후원도미약한상태에서홍보가부족한탓일 것이다. 심지어삼성백혈병산재를알리기 위해노력한반올림활동가이자산업전문의사인공유정옥씨가세계적인권위를 지닌미국공중보건학회의 ‘2010 산업안건보건상’ 국제부문수상자로선정됐으나언론에서는거의보도되지않았다

그런데 삼성전기에 근무하다 성추행으로 회사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본인이 정작 불이익을 당하여 오랜 법정 싸움 끝에 3천만원 승소 판결을 받은 이모 씨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이모 씨가 인터넷을 통해 삼성을 생각한다에 삼성 노동자 이야기는 없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한다. 그리하여 『삼성을 생각한다』2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이번에는 정말 삼성 노동자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을까 다시 기대했지만 책을 구입한 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2편은 사실 1권이 나왔을 때 조중동에서 광고를 거부했다는 이야기와 관련 인터넷 기사를 단순히 스크랩 한 것을 모아 제본한 수준이었다. 대국민 삼성 판타지를 깨는데 큰 역할을 한 『삼성을 생각한다』의 후속편으로는 너무 내용이 부실하다. 우리 사회가 진정 삼성을 생각할 시간이라면, 2권에서는 노동자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왜 화이트 칼라의 내부고발과 노동자의 투쟁은 분리되어 이야기 되어야 하는가.

노동자판 삼성을 생각한다 :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

『삼성을 생각한다』에 빠진 삼성 노동자들의 이야기- 무노조 경영의 실체가 궁금하다면 두 권의 책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을 권하고 싶다.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은 2007년 23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유미 씨 이야기로 시작한다. 유미 씨가 사망하기 불과 몇 달 전 유미 씨와 같은 생산라인 교대로 일하던 이숙영 씨가 같은 종류의 백혈병으로 사망한 터라 이것은 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어른은 이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 모든 언론을 찾아갔으나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황상기 어른이 활동가들과 연대하며 반올림을 결성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삼성이 노조와 연대하지 못하도록 협박 회유한 내용들, 그 후 많은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돈으로 입을 막으려 했던 과정들이 기록되어 있다. 반도체 공장이 클린 산업이 결코 아닌 여러 유해물질과 방사선을 이용하는 위험 산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미국 IBM에서 일어났던 반도체 피해 사례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은 삼성에서 제대로 된 노조를 만들려고 하다가 삼성 측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이 2003년부터 2년 10개월 복역하는 사이 쓴 글, 그리고 여러 진보진영 사회 인사들이 보내준 서신과 석방을 촉구하는 글을 모은 책이다. 여러 글들이 명확하게 삼성 경영 윤리 3대 골격1. 노동 탄압: 무노조 경영 2. 정경유착 일등공신: 검찰, 정계 뇌물 3. 국세청도 내맘대로: 불법 승계를 자세히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의 핵심은 노조를 결성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와 부록으로 첨부된 노조 결성 움직임, 사내 수상한 행동 발견 시 대처방안으로 삼성의 인력구조조정T/F에서 작성한 내부지침서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 방안>이다.

‘사내낙서 혹은 유인물 살포시’에는 낙서 발견 장소 폐쇄, 발생장소 감시조 배치, 유인물 채증, 주동자 격리, 대상외 인력 안정화 작업, 사내순찰강화… ‘노조결성 움직임이 포착되면’ 리더급(주동자)파악 및 설득, 반발자 개별면담, 격리등을 시행…. ‘대외 정보망 강화’ 혹은 ‘관공서 업무담당자 내 사람화’는 노동부, 정보기관(기무사, 안기부, 검찰청), 노동계, 언론계 등을 관리한다.

문서만 본다면 이것은 박정희 욕만 해도 잡아 갔다던 군부 독재 시절의 안기부 문서 같다. 몇 년 전 삼성에서 일하는 사람이 화장실에 이건희 회장 욕이 발견되었는데 회사에서 필적조회를 하더라, 사내 증에 GPS가 달려 한 사람에게 몰아주고 점심 먹는다는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지만 설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3대 세습만 북한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내부 구조도 북한과 닮았다. 삼성이 고집하는 무노조 경영은 이병철의 회장의 철학이었다고 한다. 이병철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은 인정 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회장의 눈에 흙이 들어 간지 오래전 인데, 아직도 전 근대적 사고를 고수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삼성의 주장은 노동조합이 필요 없을 정도로 노동자를 잘 처우하고 있다는 것인데 삼성에 제대로 된 노조만 있었더라도 스무 명이 넘는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문에 따르면 삼성이 무노조를 고수하는데 드는 비용이 노조를 허용할 때보다 약 3배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노동자를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비합리성이 이 거대 기업을 지배하고, 이 기업이 우리나라 법질서와 언론마저 흔들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노조도 허용하지 않는 삼성폰이 아이폰에 뒤지는 것은 예견 된 미래이다. 무노조를 고수하는 한 삼성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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