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여치와 떠난 여행

10화-달려라 자전거

- 배문희

우리는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나무로 만든 집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집 안은 깔끔하고 아늑했다. 벽에는 톱이며 망치 같은 각종 공구들이 키를 맞춰 걸려 있었고 닥터 제페토의 책상에는 각종 실험기구와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주 훌륭한 자전거구나.”

닥터 제페토, 아니 제페토 할아버지는 먼저 풀여치의 몸을 찬찬히 쓰다듬으며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청진기를 갖다 대고 페달이 돌아갈 때 나는 소리에 오랫동안 귀를 기울였다. 수술은 간단하지만 정교하게 진행됐다. 할아버지는 나무망치로 구부러진 몸체를 곧게 편 후 끊어진 체인을 걷어내고 새로운 체인으로 갈아 끼웠다. 마지막으로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구석구석 기름칠을 하니 몰라보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우와. 할아버지 정말 대단하시네요. 마치 새 자전거 같아요.”

할아버지는 풀여치의 몸체를 헝겊으로 정성스럽게 닦으며 미소룰 지었다.

“예전엔 정말 굉장했었지. 고장난 텔레비전, 라디오, 휠체어, 시계, 재봉틀 같은 것들이 가게 앞에 끝도 없이 줄지어 있었단다. 서로들 고쳐달라고 야단들이었지. ‘척척박사 제페토’, ‘만물박사 제페토’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버렸어. 아무래도 요즘 나오는 물건들은 고장이 나지 않는가보지. 어떠냐?”

요즘은 아무도 고장난 물건을 고쳐서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는 아직 모르시나보다. 공장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것들을 열심히 사 모은다. 그러니 닥터 제페토의 가게에 사람들이 오지 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아버지에게 할 수는 없었다.

“언덕 너머에 고장난 물건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카페가 하나 있어요. 사실은 제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할 일이 참 많을 거예요. 그리고 카페엔 히피 할머니라는 분이 계시는데 춤도 잘 추고 스타일이 좋은 멋쟁이 할머니랍니다. 잊지 마세요. 카페 고장난 기억을요.”

제페토 할아버지는 ‘히피 할머니’라는 말에 표정이 환해지더니 이내 얼굴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흠흠… 글쎄다. 요즘은 좀 바빠서… 시간이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하지만 말이다… 너가 그렇게 부탁을 하니 시간을 좀 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구나…”

가게를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머리가 조금 젖긴 했지만 기분은 조금도 젖지 않았다. 나는 풀여치 위에 올라타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올 때는 풀여치를 끌고 힘겹게 걸어왔지만 갈 때는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함께 달리고 있다. 그 사실이 우리를 가슴 벅차게 만들었다,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우리에게 박수를 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쏴아아 쏴아아” 힘찬 박수소리를 들으며 풀여치와 나는 달리고 달렸다.

다음날 풀여치를 타고 여행을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쥐며느리처럼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이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꼴 안 보게 돼서 살 것 같겠네. 제발 영영 사라져주라.” 동생의 목소리.

“쟤는 아무래도 학원에 다니나봐. 어쩜 저렇게 매번 새로운 바보짓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언니의 목소리.

“자전거 여행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 기껏해야 며칠도 안돼서 기어 돌아와 밥 달라고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엄마의 목소리.

하지만 아빠의 생각은 달랐다. “나도 젊을 적에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전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 있었지. 모모도 땀 흘리며 여행을 하다보면 틀림없이 깨닫는 바가 있을 거야.”

아빠가 내 편을 들어준 덕분에 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단 몇 가지 조건이 붙긴 했지만. 첫째, 해가 지기 전에 하루의 일정을 끝낼 것. 둘째, 매일 전화로 상황보고를 할 것, 셋째, 경비는 알아서 해결할 것. 다행히 카페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이 상당히 많이 모아져 있었다. 아껴서 쓴다면 여행경비로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친구들은 나와 풀여치의 계획을 열렬히 응원해주었다. 수자 언니는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려면 체력이 좋아야 한다며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매일 만들어 주었고 랭보 엉아는 지도를 선물해주었다. 히피 할머니는 간단한 소지품을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손수 만들어 주셨고 나몽달 씨는 즉석에서 응원가를 만들어 기타연주와 함께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다.

하지만 얄리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보다 나를 응원해줄 거라고 믿었던 얄리의 반응에 나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 하지만 나쁜 사람들도 참 많아. 그래서 나는 네가 나중에 떠났으면 좋겠어. 모모가 세상을 좀 더 알고 난 다음에.”

“하지만 얄리도 세상 곳곳을 여행했잖아. 그래놓고서 나한테 가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해.”

“내 마음엔 굳은살이 박혀 있어서 괜찮아. 하지만 너는 너무 여려. 마음이. 나는 걱정이 돼.”

하지만 나의 굳은 결심을 얄리도 막을 순 없었다. 대신 얄리는 나에게 한 가지 약속을 제안했다. 첫째, 사람을 너무 믿지 말 것. 둘째, 동물적인 육감에 따를 것. 얄리의 말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동물적인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말이나 경험으로 판단하다가 위험을 자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약속은 목표에 집착하지 말 것.

“나는 한 사람을 알고 있어. 그는 산의 정상에 올라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등산가야. 그는 아주 높은 산들의 정상에 올라갔어.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에베레스트가 그의 발 아래 있었지. 하지만 그는 산의 아름다움을 몰랐어. 정상에 올라가는 것만이 중요했거든. 그에겐 샘물과 꽃들과 나무들이 모두 장애물일 뿐이었지. 그는 아주 유명한 등산가야. 하지만 산하고는 조금도 친하지 못했지.”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일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나머지 것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그리고 그런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노력이 값진 것 아닐까?”

“물론 중요해.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은. 하지만 산은 가장 높은 곳에 정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야. 가장 아름다운 곳에 정상을 지니고 있어. 그러니까 산은 곳곳에 자신의 정상을 감추고 있는 거야. 그러니 모모. 목표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와.”

나는 얄리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항상 얄리의 말을 기억하고 꼭 그 말대로 하기로. 어쩌면 나의 여행은 벌써 오래전에 시작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방에서 나와 고장난 기억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의 여행은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의 여행길에서 만난 이 소중한 친구들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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