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여치와 떠난 여행

7화 너와 함께라면

- 배문희

내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라니… 나는 풀여치의 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원래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다. 누군가 내 칭찬을 조금만 해도 수줍어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한다. 이날도 수줍은 마음을 감추려다보니 고작 이런 말이나 퉁명스럽게 내뱉고 말았다.

“네가 내 심정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 자전거 주제에.”

내 말에 풀여치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완벽히는 아니겠지만 나도 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자전거로 살아간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거든.”

나는 풀여치가 말한 ‘자전거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자전거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건데? 너희들은 아무 걱정 없이 한가로운 줄만 알았는데.”

“대부분의 자전거들은 사회적 성공을 꿈꾸지. 자전거 사회에서 가장 큰 성공은 올림픽 대회에 출전하는 거야. 하지만 아무나 그런 성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건 타고나야 하는데다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까.”

“엄청난 노력이라고? 너희들은 사람이 조종하는 대로 그저 굴러가기만 하잖아. 그저 그 뿐 아니야?”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람을 태우고 달린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야.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서 스스로를 무수히 깎아내고 낮추는 훈련이 필요하지.”

“그럼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자전거들은 어떻게 되는 거니?”

“꼭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동호회에서 크고 작은 대회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꽤 존경받는 지위에 오르게 되지. 그저 동네를 산책하거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자전거들은 아주 평범한 축에 속하고.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자전거들도 있는데 그건 정말 특별한 거야. 어차피 달릴 운명… 주목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또 있겠니. CF도 찍고 말이야.”

“그럼 너의 꿈은 뭐니?”

나는 이 말을 하고 난 후 ‘아차’ 싶었다. 찌그러져 주저앉은 바퀴, 떨어져나간 페달, 곳곳에 긁힌 흔적들. 풀여치는 달리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나의 질문에 풀여치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지금 내 꿈에 대해 물어본 거니? 하하. 내 꿈은 하늘을 나는 거야. 어렸을 때 ET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어. 그 영화에 하늘을 나는 자전거가 나오거든. 정말 멋졌어. 다들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자전거의 멋진 연기력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달랐어. 그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라고 믿었거든. 나도 그렇게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 언젠가…. 언젠가는…”

그러다 갑자기 풀여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눈에서 별빛이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이젠 틀렸어. 나는 이제 고물이 돼버렸는걸. 이제 영영 달릴 수 없을지도 몰라.”

“걱정 마. 얄리는 무엇이든 척척 고치거든. 너도 다시 달릴 수 있을 거야.”

“모모. 너의 꿈은 뭐니?”

풀여치의 물음에 나는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꿈을 묻는 말은 항상 위협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내 얼굴만 보면 혀를 끌끌 차며 묻곤 했다. 넌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는 거냐. 넌 꿈도 없냐. 그럴 때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고3 때였다. 대체 넌 꿈이 뭐냐는 담임의 질문에 나는 등대지기라고 대답했다. 정말이지 나는 어두운 바다를 밝히는 등대지기가 되고 싶었다. 바다를 향해 난 창에 대고 밤새도록 고독과 희망에 대한 시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담임은 그런 나를 비웃었고 아이들은 와하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이젠 등대지기라는 꿈도 멀리 사라져버렸다. 담임과 아이들의 비웃음 때문이 아니라 등대업무가 전부 디지털화돼서 더 이상 등대지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부터다. 그 후부터는 꿈을 꾼다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잘 모르겠어.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

“그럼 우리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게 어때? 어느 한 곳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돌아다니는 거야. 이 나라 어딘가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는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너는 잃어버린 꿈을 찾고 말야.”

풀여치의 입에서 ‘여행’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가슴 속에서 푸른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정지돼 있던 뭔가가 서서히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얄리를 머나먼 땅으로 이끈 것도, 얄리와 수자언니를 만나게 한 것도, 고집 센 종갓집 안주인을 히피할머니로 변하게 한 것도 바로 여행이었다. 낯선 공간과 시간 속으로 내던져지면 나는 이전과는 다른 눈빛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는 사람은 매순간 다시 태어난다는 글을 책에서 읽은 기억도 있다. 나는 풀여치의 손을 잡았다.

“좋아! 여행을 떠나자. 당장 어디부터 가야할지 모르겠지만 너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아.”

응답 2개

  1. 서울사는만두말하길

    생채기 상처많은 모모와 풀여치가 서로를 다독여 주면서… 미지의 길로 여행을 떠나는 게 맞지요. 이티처럼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런 여행이요. 그렇게 마음 설레이는 삶이고 참된 꿈, 여정이었음 합니다.

  2. 나무야말하길

    나도 오랫만에 떠올려봅니다.
    내꿈이 뭐였지…

    그동안 많은걸 잊고 포기하고 살았나 봅니다
    나도 풀여치와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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