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5호] 큰 수레를 만드는 법, 더불어 사는 삶의 기술

- 기픈옹달(수유너머 R)

큰 수레를 만드는 법, 더불어 사는 삶의 기술: 윤구병의 <흙을 밟으며 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귀로만 듣게 되는 책이 있다. 신명조체의 활자가 한순간에 저자의 목소리로 변해 귀에 박히는 책. 저자와 약간의 일면식이라도 있거나, 그 자신의 문체만큼이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쓴 책이라면 더 그렇다. 윤구병의 <흙을 밟으며 살다>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칼칼한 선생의 목소리가 쟁쟁 울리고, 그때마다 변산 공동체의 명랑, 왁짜, 싱싱한 풍경들이 활짝 피어난다. 막걸리냄새 효소냄새, 작물들의 양식인 퇴비냄새도 함께.

2006년이었나, 2007년이었나. 공부하는 놈들일수록 몸을 움직이고 흙을 밟아봐야 한다는 윤 선생의 제안(?)으로 연구실 식구들과 변산 식구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10년 만에 농활이라니 감개무량’ ‘화장실이 놀랍다더라’ ‘피랑 벼는 어떻게 구별하지?’ 등등 기대와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농활’ 첫 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도서관 책 정리와 식당 벽에 황토 칠하기였고, 며칠 내내 줄기차게 내리던 비 덕분에 흙은 밟아보지도 못했다. 어쨌든, ‘구름 밥 먹고 무지개똥 싸는’ 공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변산 공동체는 그 자체로 생명들의 온갖 인연조건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흙을 밟으며 살다>에서 윤구병 선생은 흙을 밟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 함께 땀 흘려 땅을 일구고 공동의 살림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목소리로 말한다. 흙을 밟고 살아 봐야만 “끼니거리도, 입성도, 잠자리도 돈이 마련해주는 건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깨우칠 수 있다고. 이 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어떻게 사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명쾌하다. ‘더불어’ 살면 된다. 사람들과, 자연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온 우주 만물과 좋은 관계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면 된다.

좋은 관계 혹은 공동체적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윤선생 식으로 말하자면, 생긴 대로 봐주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면서 공생하는 관계다.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좋은 관계만 있는 건 아니다. 억압과 차별, 불평등과 폭력은 어떤 권력의 특권만은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절연체로 되어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한순간에 관계를 냉각시키기도 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다가서는 태도, 고통조차도 함께하는 전도체의 신체가 되어야 한다. 그의 시선이 변산 안에만 머물지 않고 여성들, 노인들, 장애인들에게로 향하고 다시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것으로까지 확장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큰 수레는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다.” ‘큰 수레’를 만들기 위한 고통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타인의 고통과 교감하면서 오는 고통도 있고,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상황 즉 ‘없어야 할 것이 있어서’ 오는 고통도 있으며, 공생하는 ‘작은 수레’ 안에서 생겨나는 다툼에서 오는 고통들도 있다. 다툼이 없는 삶이야말로 어찌 보면 가짜다. 공생하는 삶을 위해서는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고, 없어야 할 것을 없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변산에도 다툼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고추모종을 심는 삼촌과 퇴비를 만들던 아저씨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옆에서 뜯어 말리던 윤 선생까지 합세해서 치열하게 싸웠다는데, 당시의 사건(?)을 목격한 변산 어린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 싸움의 결말은 상신이 아저씨가 범석이 아저씨한테 사과하고, 윤구병 선생님은 싸우다 얻어터져서 병원에 입원하려다가 ‘나는 애들한테 모범을 보여야 해. 지연 치유라는 걸 실험해 보자’ 그런 다음 병원에 안 가고 우리한테 와서 ‘얘들아, 나의 억울함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라’ 하고 이 이야기를 말씀해 주신 다음 밖으로 나갔다.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선생님 성격이 개 같아서다.(선생님 성격이 개 같다는 건 선생님도 시인하신 것이다)” 심각할 뻔 한 싸움을 이토록 유쾌하게 넘어설 수 있는 힘이란, 역시 흙을 밟고 사는 데에서 오는 걸까?

마지막으로 선생의 육성 한마디. “도시에 남아 있기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왜 젊은 당신들이 몸 놀려 나이 든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고, 나이 든 우리가 힘겹게 농사지어 당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

– 권용선(수유너머 남산)

응답 3개

  1. 고추장말하길

    정말 윤구병 선생님 육성이 쇳소리로 들리는듯 해요…^^ 올해도 농활가고 싶다~

  2. 갈매나무말하길

    변산공동체에 가고 싶어하는 1인입니다. 글 잘 읽었어요

  3. 박혜숙말하길

    샘, 오랜만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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