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10호] 단물에 폭 빠진 어느 총각 이야기

- 기픈옹달(수유너머 R)


달맞이의 책꽂이
단물에 폭 빠진 어느 총각 이야기
– <단물고개> 소중애 글 / 오정택 그림 / 비룡소

장사익의 노래 <꽃구경>은 모성의 지극함을 보여준다. 꽃구경 가자는 말에 입이 헤벌어져서 아들 등에 업힌 노모는, 숲속 깊숙한 곳에 들어서자 꽃구경이 그냥 꽃구경이 아님을 직감한다. 노모는 순간 너무 놀라 말을 잃고 눈조차 감아버린다. 하지만 곧 정신을 추스르고 아들을 위해 솔잎을 따서 길에 뿌린다.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빵조각을 뿌렸듯이, 노모는 아들의 귀환을 염려하며 솔잎을 뿌린다. 자신을 버리려는 아들에 대한 원망이나 꽃구경 가자며 자신을 꾀인 아들에 대한 미움보다는, 아들의 안전이 더 걱정이 되는 마음. <꽃구경>의 마지막 대목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 너 혼자 내려 갈 일 / 걱정이구나 /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라는 대목은 자식에 대한 사랑, 그 곡진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천안 지방에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단물고개> 역시 노모와 아들의 이야기다. 깊은 산골에 살고 있는 아들은 쌀독에는 늘 쌀이 달랑달랑하지만, 온갖 정성을 다해 어머니를 모신다. 가을이면 이 산 저산 돌아다니며 맛난 열매를 따다 드리고, 방에는 뜨끈뜨끈하게 불을 때고, 행여 어머니가 고뿔이라도 들까 봐 가마솥에 물을 설설 끓여 세숫물을 마련한다.

그러던 어느 무더운 날, 나뭇짐을 팔러 장에 가던 아들은 더위에 지치고 기력이 딸리자 ‘작은 옹달샘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는다. 아들의 열망은 한 입 크기의 옹달샘을 현현하게 한다. 그런데 옹달샘 물이 참 별나다. 얼음처럼 차갑고, 머루처럼 달콤하고, 박하처럼 향기롭다! 단물을 먹고 기운을 차린 아들은 장에 가서 나무를 잘 팔게 되고……. 그 다음부터 아들은 장에 오고 갈 때마다 샘에 들러 목을 축인다.

단물 맛에 반한 아들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좋은 단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항상 ‘조금 더 생각’을 하는 게 문제! 사람들과 좋은 것을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은, 좋은 것을 나누니 돈을 받아도 될 거라는 욕심으로 이어진다. 급기야 고갯마루에 움막을 짓고 단물 장사를 벌인다. 단물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자 아들의 생각은 조금 더 발전한다. ‘단물 판 돈으로 뭘 할까?’ 구상하게 되는 것.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발전시키는 데 생각이 집중되자, 어머니에게로 향했던 마음은 빛을 잃는다. 어머니가 덜덜 떠는 것을 보면서도 나무하러 갈 새가 없다고 핑계를 대고, “바빠요, 바빠.”를 입에 대고 살며, 맛난 열매를 먹고 싶다는 어머니의 바람을 틈이 안 난다며 야박하게 거절한다. 단물을 파느라, 단물을 얼마나 팔았는지 계산하느라 아들은 점점 더 바빠진다.

단물을 마시러 온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한 입 크기의 샘에서는 단물이 너무 더디 차오르고, 아들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급기야 아들은 곡괭이를 들고 단물 샘을 판다. 샘을 깊이 팔수록 단물은 점점 꽁지를 감추더니, 흙먼지만 남기고 아예 사라진다. 땅을 치며 울던 아들은 그제야 어머니가 사는 산골 집으로 돌아간다.

이야기도 맛깔나지만, 그림도 매혹적이다. 파란색 겉표지부터 사람을 사로잡는다. 오정택은 파란색, 검은색, 주황색, 분홍색, 흰색 등 몇 가지 색만으로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풍경을 잘 살려내고 있다. 순박한 총각의 모습을 단순한 캐릭터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총각이 살고 있는 ‘깊고 깊은 산골’을 궁벽한 촌이 아니라 호젓한 공간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아들이 어머니가 있는 산골 집으로 돌아갔다는 마지막 장면은 흡사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구수하고 단순한 이 이야기는 ‘단물 샘’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의 욕심을 비웃는다. 맨 처음 단물은 나이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나무를 해다 파는 효자 총각의 피곤과 목마름을 달래주는 청량제였다. 그러나 ‘단물’ 즉 ‘달달한 맛이 나는 물’은 임시방편일 뿐, 갈증을 근원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갈증을 해소시키기는커녕 점점 더 심화시킬 뿐이다. ‘알짜나 실속이 있는 부분’이라는 뜻이 의미하듯, 단물은 총각이 가진 유일한 알짜처럼 보인다. 하지만 숲에서 발견한 그 알짜는 진정한 알짜가 아니다. 유일한 알짜인 어머니를 외면하게 한 신기루일 뿐이다.

‘守分之足’ 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욕심을 내지 말고, 자기 분수에 알맞게 살라는 말이다. 이야기 속 총각처럼 죽을 때까지 달랑달랑 쌀독에 쌀이 떨어질까 염려하며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나치게 ‘私慾’을 부리지 말자는 거다. 잘 살고 싶은 욕망이 나쁜 것이 아니라, ‘私慾’이 ‘邪慾’으로 변질됨을 경계하자는 것. 욕망에 취해, 욕망에 휘둘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지는 말자는 것. 順理대로 살자는 것. 물 흐르는 대로. 그것이 바로 道理이기도 할 터이니.

그러나 저러나 노모는 무탈할까? 긴긴 기다림에 지쳐 재가 되진 않았을까? 아니지, 아니지. 자식에 대한 곡진함으로 가득한 <꽃구경>의 노모처럼, 자식 스스로 삶의 이치를 깨닫기를, 그래서 하루 빨리 무사 귀환하기를 학수고대하며 방문만 뚫어져라 보고 있을 테지.

– 달맞이

응답 2개

  1. 둥근머리말하길

    샘물이 ‘달다’는게 참 와닿아요.. 욕망으로 쭉 이어지는 모든 것에는 왜 ‘단맛’이 있는지요.ㅜㅜ 먹어도 먹어도 계속 먹고싶은 ‘단맛’이 제 생활 곳곳에 참 많아요.. 그래서 좋다가 무섭고 그래요..

    • 박혜숙말하길

      나두 그렇다우. 지치고 힘들 때 ‘달달한 게’ 생각나는데…. 정말 꿀맛같은 데… 때론 피곤도 확 가시는데…. 근데 거기 너무 의지하다 봄 자꾸 빠져들게 되고, 낭중에는 지치고 힘들어서 달달한 게 필요한 건지, 달달한 게 먹고 싶어서 지친 티를 내는 건지 모르게 된다우. 그래서 자기를 아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부쩍 한다우. 그래서 또 정신분석 세미나가 매력적이고. 바쁜 일 끝내고 같이 함 넘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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