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만남, 공감, 질문 던지기

- 풍경지기 박혜숙

『느낌의 공동체』신형철 지음, 문학동네

노를 젓는다. 그녀와 그의 뒷모습이 고요하다. 아마 저 배는 어딘가에 가 닿을 것이다. 그곳에 가 닿기 전에 그는 그녀에게, 그녀는 그에게 가 닿았을 것이다.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9쪽)

저자는 글을 쓴다는 것을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라고 했지만 글을 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를 읽는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가 닿는다. 시 속에서 자기 고백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가 닿고, 소설 속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주고 있는 누군가에게 가 닿는다.

2.

학교 현장에서 문학시간에 이런 만남은 쉽지 않다. 아이들은 시를 어려워한다. 물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인이 치열한 고뇌 속에서 건져올린 시어는 하나하나가 진주 같은데 아이들은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 그 진주 속에 응축되어 있는 느낌을 복원할 수 없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설명해 달라는 독자의 요구에 자신이 표현한 언어 외에는 다른 언어로 더이상 표현할 수 없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난관 아래 아이들은 다른 길을 택한다. 시를, 시인을, 시적 화자를 만나지 않는 길이다.

시를 배우는 시간에 아이들은 시를 읽지 않는다. 아니, 읽기는 한다. 문자를 확인하는 읽기 정도에 머문다. 그런 후 필기할 준비를 한다. 아이들이 교사에게 원하는 것은 참고서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필기가 끝나면 이를 암기해서 시험 준비를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 시를 만나지 못하고, 시인을 만나지 못하고, 시적 화자를 만나지 못하고,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고, 교사를 만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를 만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시인 유홍준의 「그의 흉터」(『나는, 웃는다』, 창비)라는 시를 수업자료로 준비했다. 이 시는 트라우마에 관한 시이다. 나는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각자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사유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우선 네 명으로 이루어진 모둠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를 읽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다음에는 모둠 별로 이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어떤 이야기도 좋다고 했다. 다만 시 한 편을 일관된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15분 동안 아이들은 모둠토론을 했다. 그 후 아이들 자리를 교실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마주보고 앉는 배치로 바꾸었다. 한 아이를 지명해서 시를 간단히 설명하게 했다. 설명이 끝나면 앉아있는 아이들 중에 한 명을 지명해서 발표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을 하게 했다. 질문을 받은 아이는 어떤 이야기든지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했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시 한편에 담긴 언어, 그 언어에 담긴 시인의 고민을 만나려는 노력을 했다. 다음 시간에는 이 시를 다른 작품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 전 배웠던 이청준의 「눈길」과 이 시를 관련짓는 활동으로 「눈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흉터’를 이야기해보게 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품 속 인물이 가진 흉터뿐만 아니라 자신의 흉터에 대해서도 사유하기 시작했다.

3.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난다. 뉴스에서 방송되는 사고 소식에 등장하는,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다쳤다는 말은 더 이상 울림을 가지지 못한다. 그저 지난 사고보다는 사망자 수가 많다, 적다로만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통계숫자 속에서 인간을 복원해내는 것이 문학이다. 산사태로 몇 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공포 속에서도 누군가를 지켜내려던 마음을 살려내는 것이 문학인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타인과의 만남이며 타인에 대한 공감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랑이 담긴다.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는 문학평론가인 그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발표한 칼럼을 모아 엮은 산문집이다. 시인에 관한 글, 작품에 관한 글, 우리 사회에 관한 글, 영화에 관한 글들이 어우러져 있는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것은 그의 문학관이다. 그는 첫 평론집의 제목을 ‘몰락의 에티카(윤리학)’라고 붙였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신형철,『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그는 사유한다. 탈이념의 시대에 자본이라는 가치만이 숭상되고 성공만이 찬미되고 있다. 그 속에서 몰락한 자가 있다. 문학은 그런 존재를 그린다.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을 선택한 것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몰락한 자가 지키려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들은 스스로 몰락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한 부분을 무너뜨린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는 이런 사유를 ‘몰락의 에티카’라는 말 속에 담았다.

이러한 그의 사유가 『느낌의 공동체』에 실린 모든 글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사유 위에서 그는 시인을 이야기하고 문학 작품을 이야기하고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고 영화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한 바탕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이들과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행복하게 받아들였다.

4.

앞으로 내게 숙제로 남겨진 것은 그가 던진 ‘몰락의 에티카’란 화두이다. 아이들이 예전보다는 시를 통해, 소설을 통해 누군가와 더 깊이 공감하고 만나겠지만 이것이 일시적 연민이나 동정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그 인물들을 그런 상황에 놓이게 한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비로소 문학을 만나는 과정이 자기를 만나는 과정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 과연 어떤 게 올바른 삶이고 정의로운 삶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빠져버린 문학은 단지 고뇌하지 않는, 자신을 소외시킨 계몽에 불과하다. 이제는 아이들과 이 일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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