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발칙한 천사, 룰레트

- 달맞이

-『룰레트』클레르 클레망 글 / 정지혜 그림 / 류재화 옮김 / 국민서관

한 사내가 있다. 반백의 사내는 늘 구부정하니 걷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사내는 꽃다발을 들고 벌써 두 시간 째, 봉분 주위를 왔다 갔다 한다. 가끔 멈춰서 멍하니 하늘을 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 ‘허허’ 낮은 신음을 토해내기도 하고, 또 아주 가끔 눈을 지그시 감고 회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이윽고 사내가 봉분 앞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떨군다. 사내는 비 맞은 여린 새처럼 처량해 보인다. 한동안 사내는 봉분 앞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간 좁고 거친 비탈길을 내려온다.

사내는 그 짓을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사내는 그렇게 산다. 그의 집 시계는 10년 전, 어느 시간에 딱 멈춰 버렸다. 아니, 시계뿐이 아니다.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물이 그렇다. 사내는 자신을 기꺼이 10년 전 어느 시간에 유폐시켜 버렸다. 끔찍이도 사랑했던 반려자를 떠나보낸 뒤, 그는 그렇게 박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내는 내가 어릴 적, 잠시 외가 마을에 와서 살았다. 사내의 기이한 삶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사람들에게 사내는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간절함을, 떠난 뒤에도 차마 보낼 수 없는 애틋함을, 혼자 남겨진 안타까움을 사내를 통해 보상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룰레트』를 읽는 순간, 홀연히 사내가 떠올랐다. 룰레트의 할아버지도 사내처럼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 사랑하던 아내를 잃자, 할아버지는 말문을 닫는다. 걷지도 못하고, 먹여주지 않으면 먹지도 못하고, 눈도 깜빡이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천장에 붙은 할머니의 사진만 응시할 뿐이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졸증’이라고 말한다. 충격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마음이 치달아 잠시 뇌가 기능을 하지 않는 상태라고. 그들에게 할아버지는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보호를 해 주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할아버지를 보살펴 주러 오는 도우미 아줌마 또한 할아버지를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으로 규정한다. 아니라고 반박하는 룰레트에게 아줌마는 병원 의사의 진단이라며 쏘아붙인다. 그들의 시선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분명 ‘비정상인’이다. 그래서 아줌마는 할아버지를 아이 다루듯이 하고, 행여 더러운 것이라도 옮을까 봐 집에 들어서는 즉시 머릿수건과 앞치마부터 두른다. 싱글 맘인 룰레트의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는 있으나 마음뿐이다. 두 아이의 양육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여유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방패삼아, 일찌감치 할아버지에게서 손을 놓아버린다.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어른들이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비정상인’에 대한 우리네 시각을 고대로 반영한다. ‘정상’의 범주에서 비껴나 있는 사람들을 근대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교정이라는 이름으로 격리시켜왔다. 때로는 그들을 위해서라는 미명으로, 때로는 그들은 나와 다르므로 당연히 격을 두어야 한다는 이기심으로, 그들을 우리에게서 배제시켜 왔다. 당사자들은 자신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룰레트의 할아버지처럼. 그러나 할아버지가 정말 ‘비정상인’인가? 할아버지는 제 감정에 조금 더 충실한 사람일 뿐이다. 조금 더 많이 애도하는 사람일 뿐이다. 조금 더 슬퍼한다고 해서 ‘비정상인’인 취급을 하는 건, 애도할 줄 모르는 자들의 치기요, 오만이요, 독선일는지도 모른다. 아니, 할아버지는 우리와 다른 ‘비정상인’이 아니라, 미래 어느 순간에 불현듯 찾아 올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므로. 할아버지의 영혼을 잠식한 졸증은 어느 날 불쑥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이므로.

할아버지와의 정겨운 추억을 바리바리 갖고 있는 룰레트는 어른들과는 생각이 다르다. 룰레트에게 할아버지는 그냥 조금 다친 사람일 뿐이다. 심장에 멍이 들었으므로, 나으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므로 기다려줘야 하는 사람이지, 격리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다. 룰레트는 할아버지를 위한 양로원이, 할아버지를 가두는 감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룰레트가 할아버지의 양로원 행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할아버지가 양로원을 싫어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해바라기를 좋아하고, 작은 텃밭 일구는 것을 좋아하고, 시 짓는 걸 좋아하는 할아버지에게 양로원은 잘 맞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작가는 룰레트를 통해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는 일이 실은 할아버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변의 편리함 내지는 독선이었음을 고발한다.

“우리나라에선 절대 노인들을 혼자 두지 않아. 항상 식구들이랑 아이들이랑 같이 있어. 그래서 오래 사는 거야. 어서 죽어야지, 어서 죽어야지 하지 않아. 행복하니까. 그런데 이 프랑스라는 나라에선 말야. 고독이 노인들을 죽이고 있어.”

작가는 또한 룰레트의 이웃인 야스미나 언니를 통해 우리가 ‘비정상인’을 격리시키는 방식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짓인지 일깨운다.

룰레트는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기 위해 발칙한 모험을 감행한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할아버지에게 새 거처를 마련해 주고, 할아버지를 위한 물품과 음식물을 배달한다. 할아버지의 임시 거처는 녹슨 철길 위에 방치되어 있는 기차칸, 초라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그 곳에서 할아버지는 남들이 보기엔 ‘거지임’이 분명한 부랑자 사내와, 먹을 것을 들고 들랑날랑하는 떠돌이 여자와 다리가 셋인 강아지와 가족이 된다.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사회로부터 ‘비정상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이 모여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 기적이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강아지랑 산책을 하고, 나무 땔감을 가져오고, 설거지를 하고……… 말문을 연다.

파리 아줌마는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축하 편지를 쓰고 싶어 하지만 글을 모른다. 그래서 매년 그림엽서에 달랑 ‘엄마’라는 사인 하나만 해서 보낸다. 그 이야기를 들은 푸푸 아저씨가 대신 편지를 써 주겠다고 나서자, 모두 멋진 말들을 생각해 내느라 바쁘다.

그때 할아버지가 슬며시 입을 뗀다.

“해가 떠서부터 나는 너를 생각한다.”

“새가 울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쉰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파리 아줌마의 아들을 향한 메시지는 어느덧, 먼저 간 할머니를 향한 가슴 절절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당신이 그립소. 나는 물 없는 땅.”

“당신 없는 나는 완전한 내가 아니오.”

조약돌처럼 굵은 눈물이 할아버지 뺨 위로 줄줄 흘러내리자, 할아버지의 고백도 봇물처럼 터진다.

“따스한 살, 부드러운 향기를 맡고 싶어. 당신이 웃는 것을 보고 싶어. 당신이 우는 것을 보고 싶어. 내가 위로할 수 있게. 따스한 손길로, 부드러운 말들로, 꽃으로, 나비로, 달팽이로, 개미로, 당신이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반짝이는 기쁨의 눈빛을 볼 수 있게.”

“내가 숨을 내뱉을 때 내 숨결은 당신에게 가오. 가끔 그걸 느끼지 않아? 여린 입맞춤처럼.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당신, 내 사랑, 영원히, 영원히…….”

시를 완성한 할아버지는 탁자에 머리를 파묻고 오래도록 흐느낀다. 한참 동안. 눈이 시뻘개진 할아버지가 고개를 든다. 할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먼 산을 보지 않는다.

작가는 할아버지가 사람들이 말하는 ‘졸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이 자연의 힘이었노라고 말한다.

자연의 힘은 신중함, 기다림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룰레트는 빨리 기억을 되찾으라고, 얼른 말 좀 하라고 할아버지를 채근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묵묵히 할아버지를 대한다. 그냥 기다려주는 게 최선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은 배려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룰레트가 할아버지를 작은 텃밭(할아버지와 룰레트가 가꾸던) 가까이 있는 기차 칸으로 데려간 것도, 할아버지가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 할아버지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 한 것도 모두 할아버지에 대한 배려였으니까. 자연의 힘이란 할아버지의 표현을 빌자면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이다. 할아버지는 배가 엄청 고픈 사자를 그냥 되돌아가게 한 어린 소녀의 힘이 울음이나 막대기가 아닌, 소녀의 눈에 드러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힘인데, 룰레트에겐 그런 자연의 힘이 있다고. 아마 스피노자가 말하는 ‘코나투스’쯤 될게다.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는 노력인 코나투스는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서 빛을 발한다. 나와 이웃한 유한한 존재들에게 능동성과 해방과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룰레트를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천사’라고 불렀던 것과 절묘하게 들어맞는 부분이다. 할아버지의 말문을 트이게 해 주었다는 점에만 주목해 보면 자연의 힘이란 치유, 혹은 다시 살아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주 소박하게 말하자면,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자연일 수도 있을 게다. 남쪽 지방으로 떠난 할아버지가 보내온 그림엽서의 시처럼 ‘햇볕의 온기와 바람의 손길과 나무들, 꽃들의 향기’일지도.

앗, 아니다. 할아버지가 바로 자연이었구나. 해와 새에 감응하고 나비, 달팽이, 개미……온갖 것들로 양태 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야말로 자연이었구나.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었을 때, 자기 전 존재를 걸고 애도할 수 있는(기투(企投)할 수 있는) 할아버지야 말로 자연이었구나. 아뿔싸, 결국 우리가 배제하고 격리시켜 왔었던 것, 우리가 ‘비정상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것들이 바로 ‘우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그 무엇’이었구나! 저런 알맹이는 쏙 빼놓고, 암껏도 모르면서 잘난 척 고개 빳빳이 들고 엉덩이를 씰룩쌜룩 흔들고 다녔었구나!

응답 2개

  1. 그저울처럼`말하길

    할아버지의 시 한편을 위한 소설 같군요. 아름다운 책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 둥근머리말하길

    책 한 권이 주는 힘을 고스란히 전해주시다니요.. 고맙습니다. 늘 얻어가는 터라 죄송하기도 하고요..선생님 책꽂이에서 좀 자주 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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