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옛글에서 만나는 인생의 스승들

- 김대경

나이 마흔이 넘으면 고전을 읽으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르치는 일 때문에 혹은 시험에 대비해서 이런 저런 책들을 의무삼아 읽어 왔지만, 고전을 읽으려는 엄두를 내본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 현재 내가 안고 있는 고민을 고전이 해결해 주지는 못할 거라는 막연한 거리감과 고전이 지니고 있는 딱딱함과 고리타분함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으리라. 그리고 일단 고전은 두껍지 않은가.

고전이 주는 물리적, 정신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우리 학교 교사독서모임에서 여름방학 동안 도전해 본 고전이 바로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 완역본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았다. 고전은 요약본으로 읽어서 될 게 아니라 되도록이면 완역본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어리석고 무모하기 짝이 없다고 느꼈던 돈키호테가 감동과 행복감을 안겨주는 인물임을 완역본을 읽지 않고는 느낄 수 없으리라. 그때의 독서 경험을 통해 고전에 도전해 볼 만한 용기(?)를 얻긴 했으나 여전히 시간의 발목에 잡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를 운영하는 아는 선배가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우리 옛글을 고르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했다. 마침 휴직 중이라, 이참에 좋은 옛글 좀 읽어 봐야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을 했다. 도서관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옛글 번역본(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우리 옛글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원본 그대로 읽는다는 건 언감생심이다)을 보이는 대로, 잡히는 대로 찾아 통독을 했다. 그러나 좋은 글 찾아서 기분 좋게 읽으려는 의도와는 달리, 청소년들의 수준에 맞는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글을 기한 내에 맞추어 찾느라고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시중에 나와 있는 옛글 번역본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틈틈이 헐떡거리며 소화도 채 못 시키면서 읽었다(이런 것도 읽었다고 해야 하나?). 다만 선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을 이렇게 읽는 것이 못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물론 번역자에게도) 나중에라도 시간이 되면 다시 읽어 보겠다고 결심한 책들은 구입을 해서 서재 한 구석에 따로 모아서 꽂아 놓았다. 그러고 나서 몇 달 뒤 출판사에서 글에 대한 간략한 서지 사항과 안내글을 부탁한다며 내가 고른 글과 다른 선생님들이 고른 글 중에 수십 편을 골라서 다시 보내왔다. 그 덕분에 짤막한 옛글을 다시 한 번 정성들여 음미하며 읽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옛사람들이 쓴 글을 읽노라니, 시대도 다르고 처지도 다른데,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고, 왠지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든든하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비슷한 생각을 했고, 비슷한 고민을 했으며, 세상에 대해 비슷한 이해와 해석을 하면서 살았구나 하면서 수백년을 뛰어넘은 이들을 스승삼아 내 현재 삶을 비추어 보게 된다.

우선 허균이 친구에게 보낸 짧은 편지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볼까 한다.

나는 큰 고을의 수령이 되었는데, 마침 자네가 사는 곳과 가까우니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오시게. 내가 의당 절반의 봉급으로 대접하리니 결코 양식이 떨어지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네. 자네와 나는 처지야 비록 다르지만 취향은 같네. 자네의 재주는 진실로 나보다 열 배나 뛰어나지만 세상에서 버림받기는 나보다도 심하니, 이 점이 내가 언제나 기가 막혀 하는 일일세. 나는 비록 운수가 기박하기는 해도 이천 석짜리 벼슬을 여러 차례 하여, 오히려 달팽이가 침 바르듯 스스로 적실할 수 있지만 자네는 입에 풀칠도 면하지 못하는구려. 세상의 불우한 사람은 모두 우리들의 책임이네. 밥상을 대할 때마다 부끄러워 문득 땀이 나며, 음식을 먹어도 목에 넘어가지 않으니 빨리 빨리 오시게. 비록 이 일로 비방을 받는다 해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겠네. (김풍기 옮김, 『누추한 내 방』에서 인용)

서얼 출신인 친구 이재영에게 보낸 척독이다. 이런 친구의 편지를 받으면 그저 읽기만 해도 마음 든든하지 않겠는가.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읽으면서, 역시 다산은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아집 때문에 뭇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교감이 되는 인물이 되려면 이렇게 자기 내공이 있어야 하는구나 생각한다.

세상의 옷이나 음식, 돈이나 물건 등은 모두 헛되고 부질없는 것이다. 옷은 입으면 해지고, 음식은 먹으며 썩어 버리며, 재물은 자손에게 물려줘도 끝내 흩어지고 사라져 버린다. 오직 못사는 친척이나 가난한 벗에게 나눠 주면 오래도록 없어지지 않는다. 의돈(중국 노나라의 큰 부자)이 창고에 쌓아 두었던 보물은 흔적도 없지만, 소광(한나라의 태부로 황제로부터 하사 받은 황금을 날마다 잔치를 열어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함께 누렸다고 한다)이 하사 받은 황금을 친구나 친척들과 함께 누린 일은 아직도 유명하다. 석숭(중국 진나라의 큰부자)의 별장에 있던 호사스런 장막은 티끌로 변했으나, 범중엄(중국 송나라의 재상)이 배에 가득 실은 보리를 어려운 친구에게 다 준 일은 아직도 명성이 높다. 그 까닭은 무엇이겠느냐? (중략) 재물을 깊이 감추려면 남에게 베푸는 것이 가장 좋다. 도둑이 훔쳐 갈 걱정도 없고 불에 타 버릴 염려도 없으며, 소나 말에 실어 힘들게 나르지 않아도 거뜬히 간직할 수 있고, 몸이 죽은 천년 뒤에도 천 년토록 이름이 전해지니 세상에 이처럼 큰 이익이 있겠느냐? 재물이란 단단히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더욱더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메기와 같은 것이다.
저물녘에 숲 근처를 거닐다가 우연히 한 어린아이를 보았다. 다급하게 소리쳐 울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마치 누군가가 무수한 송곳으로 배를 찌르고 절굿공이로 마구 가슴을 때리는 듯했다. 너무나 참담하고 절박하여 잠깐 사이에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나무 밑에서 밤 한 톨을 주웠는데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다고 했다. 아아, 천하에 이 어린아이처럼 울지 않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관직을 잃고 세력이 꺾인 사람, 손해를 보고 재물을 잃은 사람, 자식을 잃고 너무 슬퍼 거의 실성한 사람, 이 모두가 달관한 경지에서 본다면 밤 한 톨에 울고 있는 것일 따름이다.
(박혜숙 편역, 『다산의 마음』에서 인용)

이런 멋있는 대가에게 학문을 배울 수 있었던 사람은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 갔을 때 그를 따르던 제자 중 한 사람인 황상은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60년이 지난 후에 옛날을 회고한다. 가르침을 받기 시작할 무렵, 자신은 공부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걱정하자, 다산은 그것이 오히려 크나큰 재능이라며 오로지 부지런히, 마음을 확고히 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황상은 그 가르침을 평생 실천한다.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만남. 오늘날 교육 현실을 돌아보면서 이 글을 읽으니, 새삼 가슴이 아프다. 진정한 교사가 된다는 것, 그것을 다산이 가르쳐 주었고, 진정한 제자가 된다는 것, 그것을 황상이 몸소 보여준다. 나는 과연 제자로서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6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사이 책을 놓고 쟁기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그 말씀만은 늘 마음속에 간직했다. 지금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먹과 벼루에 젖어 있다. 비록 이뤄놓은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공부에 파고들고 막힌 것을 뚫으며 닦으라는 가르침을 삼가 지켰다고 말하기에는 넉넉하며,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라는 당부를 받들어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내 나이 칠십오 세다. 내게 남은 날짜가 많지 않으니 어찌 함부로 내달리고 망령된 말을 할 수 있으랴? 지금 이후로 스승님께 받은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제자로서 스승님을 저버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안대회, 『선비답게 산다는 것』에서 인용)

이 세상에 태어나 만물 속에 티끌만한 존재로 살아가면서 적어도 나를 해치지 않은 존재를 해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 몸이 아파 드러누웠는데, 지렁이탕이 좋다는 벗의 권유에 단호히 거절하는 채제공의 다음 편지글을 보라.

나는 한 가지 병이 수십 일을 끌어 의원도 재주를 발휘하지 못하여 왔다가 바로 돌아갈 뿐, 내 마음속을 시원하게 휘저어 놓기에는 부족하였소. 저 하늘의 운명을 즐긴 이가 하필 팽택령 도연명 한 사람에 그칠 수 있겠소. 적어 보낸 약방문을 보니, 대감이 나를 사랑하여 살리겠다는 뜻을 볼 수 있었소. 대감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런 것을 받을 수 있겠소? 비록 그렇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마음에 슬픔이 없을 수 없소이다. 살기를 기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지렁이나 나나 한 가지라오. 저 지렁이는 위로는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는 흙탕물을 마시니 일찍이 나와 다툴 바가 없고, 뱀의 이빨도 없고 또 모기 주둥이도 없으니 일찍이 나에게 독이 된 적이 없다오. 지금 나의 우연한 병으로 인하여 저 허다한 생명을 죽인 다음 불로 익히고 녹여서 탕으로 만들어 가지고 복용하여 즉시 효험이 있다면, 효험을 얻은 사람은 다행이겠지만 효험을 나게 한 지렁이로서는 또한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 아니겠소? (이종묵,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에서 인용)

살다보면, 나를 이렇게 만든 세상과 상황이 원망스럽고, 내 뜻을 마음껏 펼쳐보지 못하니 한스러워 가슴이 아플 때도 많은 법. 그런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단을 내리는 존재도 다름 아닌 바로 ‘나’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남 탓하지 않고, 나 스스로 기꺼이 삶에 동참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에게 조식과 박지원의 글은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조식은 지리산을 등반하고 나서 심경에 일어난 변화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여행과 경험이 주는 앎과 깨달음이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운수(雲水) 속에 있을 때는 운수가 아닌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보니 보이는 것은 별것이 아니고, 서당 훈장이 지나가는 것이나 산꿩이 날아가는 것도 시선을 줄 만하게 되었으니 어찌 견문을 넓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략> 앞이나 뒤나(지리산에 올라가기 전과 후) 같은 사람이었는데, 청학동을 들어갈 때는 신선이라도 된 듯 여겨 그것도 모자라듯 하였다. 다시 신응동으로 들어가매, 거기서는 신선의 세계인 요지(瑤池)에라도 오른 듯하되 그것도 모자라서 은하수에 배를 띄워 하늘에 올라 학을 몰아 하늘로 치솟아서, 티끌세상에 내려오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개미 언덕만도 못한 좁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분수로 달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비록 아무 지위도 없이 현재에 만족은 하더라도, 견문을 늘리지 않을 수 없고 머무는 곳이 작고 낮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착하게 되는 것도 습관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악을 저지르는 것도 역시 관습으로 말미암는다. 위로 올라가는 것도 그 사람이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그 사람이니, 다만 발 한 번 내딛는 데 딸린 일이다.
(심경호, 『산문기행』에서 인용)

연암 박지원이 쓴 <일야구도하기>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다가 깨알같이 해석을 달아 가며 어렵게 어렵게 읽은 글이어서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다’라는 주제만 얼른 외우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읽어보니, 묘사의 섬세함과 논리의 빼어남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오늘 나는 밤중에 물을 건너는지라 눈으로는 위험을 볼 수 없으니 그 위험은 외곬으로 듣는 데만 쏠려 귀가 바야흐로 무서워 부들부들 떨면서 그 걱정을 이기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그 이치를 깨달았도다. 마음의 눈을 감는 자,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힘이 더욱 까탈스러워서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라고. <중략> 소리와 빛깔은 바깥 사물에서 생겨난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게 하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한 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문득문득 병이 됨에 있어서랴. 내가 사는 연암협 산골짝으로 돌아가 다시 앞 개울의 물 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증험해 보니 영락없이 맞았다. 그리하여 이로써 사람이 제 몸 건사하는 처세술에 능란하고 제 자신의 듣고 보는 총명만을 자신하는 것을 경고하는 바이다. (김혈조 옮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에서 인용)

가끔 내 나이가 그리 적지 않음을 알고 놀랄 때가 있다.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의 무게만도 만만치 않은 탓이다. 뒤늦게 대학원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강의 시간이나 세미나 시간에 독서 이론이나 실제에 대한 논문을 읽으면서 왜 그리도 할 얘기가 많은지. 젊은(?) 대학원생들은 묵묵부답 열심히 적고 있는데, 아줌마 또래의 나 같은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할 말도 많고 공감가는 대목이 많았다. 나이 들어서 공부하면 재미있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고전을 마흔 이후부터 읽으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고전은 다름 아닌 ‘인생’이라는 값진 경험이 녹아들어가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삶을 어느 정도 겪어 본 후에 고전을 읽으면 어느새 텍스트 속에 빨려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때가 많다는 것, 고전 속에 담긴 우리와 비슷한 인물들이 전해 주는 진실한 마음과 수고로운 삶의 여정이 어느새 우리에게 감동과 고마움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오뒷세이아>에 도전한다. 물론 혼자서 읽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읽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수유+너머에서 하는 여행문학 세미나에 나간다. 영웅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던 오뒷세우스의 역정과 함께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버무려 이야기하는 맛이 쏠쏠하다. 참, 그리고 원전으로 읽는 <오뒷세이아> 정말 재밌다. 절대로 어렵지 않으니, 도전해 보시길. 인간 오뒷세우스의 삶에 십분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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