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오직 시험 공부를 하느라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 김대경

한달 간의 제주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제주로 내려갈 때의 예상과 마찬가지로 마음먹은 계획 중 10분의 1정도밖에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 중 하나가 아들 녀석과 중학교 1학년 1학기 수학 범위를 함께 공부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뭐 그리 대단하고 거창하게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한 단원씩 매일 함께 읽고 예제와 유제를 풀었다는 사실에 무척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정작 아들보다 부모인 내가 더 기분이 좋은 건 왜일까? 공부에 대한 부모로서 느끼는 부담감과 의무감이 이다지도 컸단 말인가? 아니면, 아들 녀석보다 오히려 내가 공부한 셈인가? 사실 오랜만에 수학 문제를 풀어보니, 내가 학교 다닐 때 못 느꼈던 희열 비슷한 것을 느끼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뿌듯함과 대견함도 잠시, 개학 후 학교에 갔다 온 아들의 반응.

“엄마, 내 친구들은 벌써 두꺼운 문제집을 거의 다 풀었더라.”
“어떤 애들은 중학교 3학년 문제 풀고 있던데…”

아니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린가? 나는 사실 아들 녀석과 중학교 교과서를 읽으면서도 약간의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학기 중에 공부해야 할 내용을 이렇게 미리 공부해 버리면 아들 녀석이 수업 시간에 흥미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가르치는 수학 선생님은 또 무슨 재미로 가르칠까 싶어서 아들에게 조만간 학교에서 자세히 배울 테니, 어려운 문제는 남겨 두라고 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이미 벌써 저 앞에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역시 나는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엄마구나 싶어 한숨이 나오면서도, 이러다가는 조만간 학교무용론이 나오지 않을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다 선행을 하고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게다가 며칠 전 설 연휴 기간에 조카들과 아들을 데리고 잠깐 서울 시내 나들이를 했더랬다.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샤갈의 그림을 전시한다기에 일산에서 기차를 타고 아이들 다섯을 데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 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림을 보면서 감탄을 내지르고 있는 것은 나였다.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 “외숙모, 너무 더워요.” “그림이 저 방에 또 있어요?” “엄마, 자장면 언제 사줄 거야?” 불만과 짜증을 토로하는 애들을 달래면서 그림 하나라도 놓칠세라 나는 열심히 시선을 줘 가며 둘러 보고 난 뒤, 서둘러 전시관을 나왔다. 몇 년 전부터 방학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조카들을 데리고 박물관, 전시회, 고궁, 공연 등을 찾아다니곤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조카들보다는 내가 더 좋아서 다닌다.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대단한 물건과 예술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즐거움과 행복감을 아이들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니까.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걸어서 종로 1가 1번지에 있다는 교보문고에 들렀다. 신학기이자 독서의 필요성을 몸소 느끼게 해 주겠다는 나의 거창한 의도는 여기서도 무참히 깨어지고 말았다. 발 디딜 틈 없이 쌓인 책더미와 사람들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었다. 방향 감각마저 잃어 버려서 행여 아이들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면서 간신히 청소년 학습서 코너에 다다랐다. 수학 문제지와 학습서들이 쌓여 있는 곳에서 나는 이전에 눈여겨봐 두었던, 좀 괜찮다 싶은 수학 문제지를 하나 가리키며 새학기에 대비해서 한 권 사 줄까 하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조카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외숙모, 이 책은 너무 쉽다고 해서 요즘 애들 잘 안 풀어요. 차라리 이런 책을 많이 사서 풀어요.” 하며 다른 책들을 가리킨다. 앗, 그것은 이십여 년 전 내가 전교 1등 한다는 학생을 과외할 때 썼던 책이 아닌가. 너무 어려워서 나도 과외하러 가기 전에 미리 해답지 보고 예습을 해야 했던 그 문제집을 지금 대부분의 중학생이 사서 풀고 있다니. 언제 이런 고난이도의 책이 대중화(?)가 되어 버렸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이건 너무 잔인하구나.”
학습서는 포기하고, 청소년 추천도서 코너로 발길을 돌렸으나, 돌아오는 조카들의 대답은,
“휴, 이런 책들을 다 읽어야 하다니, 정말 중학생은 너무 고달퍼요.”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읽고 싶지도 않아요.”
결국, 나는 조카들에게 책 한 권 못 사 주고, 내가 읽고 싶었던 책 두 권만 달랑 사 들고 서점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책들이 있는 건 아닌가? 공부를 강요만 하지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게 하지 않는 책이라면 차라리 책이 없는 세상이 더 나은 것은 아닌가?
공부해야 하는 책들은 아이들의 삶과 시간을 옭아매고 있고,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책들은 전혀 지금 아이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책과 공부와 삶을 거의 연관짓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부모이자 교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이익의 『성호사설』에 나오는 글을 가려 뽑아 번역한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김대중 편역, 돌베개, 2010)를 읽었다. 나는 그에게서 진정한 의미의 공부란 무엇인지,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한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해 공부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송나라 인종 때 정이천이 18세의 나이로 임금에게 글을 올려 스스로를 천거하면서 자신을 제갈량에 비견하고 임금 앞에 나아가 자신이 배운 것을 아뢰기를 원했다. 만약 그때 인종이 그를 불러서 어전에 오게 했다면, 그는 평소 마음속에 생각했던 것들을 틀림없이 자세히 말했을 것이다. 그의 학문이 실질적인 것에 힘쓴 것이 이와 같았다. 글 읽는 선비들은 일반적으로 모두 책에 쓰여 있는 대로 글을 욀 뿐, 절실하게 자기 몸에 체험하고 실천하여 세상에 기여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의 경전과 현실의 시급한 문제가 판이하게 갈라져 별개의 물건이 되고 만 것이다. 지금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성현의 말을 이리저리 인용하여 그럴싸하게 꾸며 글을 짓기는 하지만, 실은 말만 그럴 듯하고 행동과 합치되지 않는다. 지금 떡이 앞에 있다고 치면, 그걸 본 사람이, 그 떡을 어떻게 만들고 모양은 어떤지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당초에 먹어 본 적이 없어서 그 맛을 모르는 것과 같다. <중략>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오직 과거 시험 공부를 하느라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시험이라는 것은 출세를 탐하는 무리들을 사방에서 모아 놓고 오직 한 가닥 요행의 길을 터놓은 다음 사람들더러 뚫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니, 세상에 실질적으로 쓸모있는 것과는 이미 정반대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교의 경전은 다만 허황되고 화려한 글을 짓는 것을 돕는 데에나 사용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지은 글은 대체로 그럴 듯해 보이지만 막상 그들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과거 시험 공부로 인해 마음이 병든다는 대목에 나는 특히 마음이 간다. 글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마음을 기르고 가꾸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심정을 미루어 생각할 줄 알고, 자신이 배운 지식을 통해 다른 상황으로 확대하여 상상할 줄 알고,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정직하고 구체적으로 발언할 줄 아는 마음, 그 마음을 얻는 것이 바로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익은 제대로 공부한 이가 아닐까. 그와 관련된 대목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정자(程子)는 “병아리를 살펴본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백성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해석하고 싶다. 병아리는 아직 어려서 털과 날개가 제 모습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솔개와 매가 위에서 노리고 생쥐와 족제비가 아래에 숨어 있다. 살쾡이와 고양이가 둥지를 뚫기도 하고, 기왓장과 돌멩이가 옆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병아리가 죽을 수 있다. 이렇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것이 많지만, 사람이 잘 막아 주면 괜찮다. 그러다가 돌봐 주는 사람이 긴장을 한번 풀면, 그 틈을 타 온갖 걱정거리가 닥친다. 이런 걱정거리가 없어졌는데도 병아리가 잘 자라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만 굶주림과 추위 때문이다. 만약 성심성의껏 세심하게 보살펴 준다면 어찌 잘 자라지 않겠는가?(21쪽)

30년 전의 일이다. 저물녘에 서울을 지날 때였다.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 어느 눈먼 거지가 옷은 해지고 배는 고픈데 남의 집에 빌붙지 못해서 대문 밖에 앉아 통곡하며 “죽고 싶다. 죽고 싶어”라고 하늘에 하소연했다. 그 뜻이 정말로 죽고 싶었지만 그렇게 안 된 것이었다. 지금도 이 일을 잊을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158쪽)

나의 논밭을 관리하던 노비가 있었는데 그가 죽은 지 몇 년이 됐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물어보니, 그 무덤에 제사를 지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 주었다.
<전략> 너는 한평생 수고스럽게 상전을 받들었다. 내가 실로 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어찌 차마 잊겠느냐? 네 자식이 불초하여 내가 예전에 타이른 적이 있었는데, 이제 과연 먹고살 길을 잃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네가 죽고 무덤에 풀이 우거졌는데도 벌초해 주는 이가 없구나. 살아 생전에 그렇게 고생하더니 귀신이 되어서도 항상 굶주리니 어찌 슬프지 않겠느냐? 내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이 때문에 측달한 마음이 들어, 떡과 과일을 대충 갖추어 놓고 네 외손자더러 가지고 가서 제사 지내게 하고, 변변치 못하나마 몇 마디 글을 지어 주어 묘소 앞에서 불사르고 고하게 한다. 네가 비록 글을 모르지만, 귀신의 이치는 감통하여, 정성이 있으면 반드시 알아차리는 법이니, 너는 이 제사를 받아먹으라.
남들이 이 일을 보면 틀림없이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꼭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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