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책꽂이

사랑스러운 뇌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사랑스러운 뇌

아파트라는 공간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외로운 공간인 것 같다. 쓰레기를 버리고,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먹고 자고 싸는 것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정말 편리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나만의 이로움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기적인 공간이다. 한편 주변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모르고 지내다보니,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따뜻한 대화를 나누기가 그 어느 곳보다 어렵고 벅차다는 점에서는 그야말로 외로운 공간이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가 넉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말문을 틔우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가 없다.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스쳐 지나가다가 만난 것이 딱 두 번이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도 인사를 건네기가 참으로 데면데면하기 이를 데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일한(?) 대화 상대였던 남편마저 제주도로 발령이 나 버려서, 하룻동안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슈퍼마켓 직원이나 경비 아저씨뿐이다. 그것도 아주 실제적인 이야기만을 나누는.

그래서 며칠 전 초등학교 도서관 봉사활동을 하겠노라 선뜻 신청을 했더랬다. 한달에 한 번 정도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 분류하고, 서가 정리하는 일인데, 학급별로 한 명씩 신청을 한 터라 6학년 엄마들이 다 모이니 11명이었다. 오랜만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였으니,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못 나눈 대화의 기아 상태를 좀 메워 볼 생각으로 동네 패스트푸드점에 반가운 마음으로 나갔다. 그러나 웬걸, 처음부터 끝까지 사교육 얘기 뿐이다. 주변의 중고등학교의 실정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학원은 어디가 좋다는 둥, 과목별로 잘 가르치는 강사들의 전화번호를 서로 알려주고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꼭 좋은 성적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더라구요.’했더니, 그말이 끝나자마자 학원보다는 개인 과외가 더 효과적이라며 일 주일에 두 번 가르치는 데 한달에 백만원인 수학 과외 얘기가 나온다. 나는 그 액수에 기함을 할 지경인데, 엄마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선생님 연락처가 어디냐고 묻는다. 아무래도 내가 자리를 잘못 알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고등학교 교사라는 사실을 끝까지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며 엄마들과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아들 녀석을 보니 텔레비전 앞에서 ‘무한도전’을 보고 있다. 속에서 화가 좀 치민다. 슬그머니 “너 학원 한 번 다녀 보고 싶지 않니?”하고 묻자, 아들 왈 “엄마, 난 학교 공부로 충분해. 학원까지 다니면 스트레스 받는단 말야.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학교에서 수업 받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문제집 풀다가 틈틈이 나가 노는 게 우리 아들의 일과이다. 그걸로도 충분히 바쁜 것 같은데, 이 땅의 초등학생들은 어느 어른 못지않게 바쁘다. 학원 가방 들고 혼자 걸어가는 초등학생들의 얼굴 표정을 보라. 하나같이 즐겁고 활기찬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직 아들을 학원 한 군데도 보내지 않는다. 사실 더 큰 이유는 학원비가 턱없이 비싸서이다. 교재비와 수강료 액수를 들으면 정말이지 욕이 나오려고 한다. 정말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대한민국 초등생의 부모로서 이 상황을 담대하고 무덤덤하게 지나가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책꽂이에 <굿바이 사교육>이라는 책을 꽂아 놓고 틈틈이 읽고 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단체에서 몇몇 강사들이 강의했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인데, 오늘날 교육 현실의 문제점과 자녀 교육에 대한 방향을 짚어보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하지만, 이런 책 역시 현재 우리나라의 사교육 열풍이 얼마나 거센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만큼 사교육에 올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다가 수유 너머에서 하는 마음 공부 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책 한 권을 만났다. 사교육 얘기는 한번도 안 나오지만, 그동안의 마음의 불편한 자리를 말끔히 씻어준 책, <달라이 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이다. 이 책에는 실제로 달라이 라마보다 쥐와 원숭이가 더 많이 등장한다(뛰어나신 분을 감히 동물과 비교하는 우를 범해서 죄송하지만). 달라이 라마는 어쩌다 한 번씩 등장하여 몇 마디(?) 질문하는 게 전부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뇌과학자들의 다양한 실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중에 나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던 내용은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쳇바퀴와 뛰어오를 수 있는 사다리, 같이 놀 친구들이 있는 자극이 풍부한 환경에 놓인 쥐들이 친구도 장난감도 없는 곳에서 자란 쥐들보다 두꺼운 피질을 갖게 되었다. … 야생과도 흡사한 ‘자극이 풍부한 환경’이 단순히 뉴런 사이에 더 많은 연결을 야기하는 것 이상의, 훨씬 더 중요하고 극적인 현상을 불러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뉴런 생성 자체가 증가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젊은 성년 쥐의 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쳇바퀴, 장난감, 터널이 구비된 우리 속에서 다른 형제들과 함께 45일을 보낸 쥐들에게는 뉴런 생성 현상이 극적으로 일어났다…. <중략>

운동의 자발성이 어느 정도 중요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과학자들은 실험 쥐들을 쳇바퀴 속에 넣고 빠져나올 수 없게 했다. 쥐들은 계속 달리거나 아니면 지쳐 쓰러지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며칠간 이런 상황에 놓아둔 후 쥐들의 해마를 조사해본 결과 동일한 시간에 자발적으로 동일한 거리를 달렸던 쥐들보다 새로운 뉴런의 생성이 적었으며 학습 속도도 훨씬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강요된 운동은 뉴런 생성을 촉진하지 않는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이들을 어린 나이에 학원만을 빽빽하게 돌리는 것이 오히려 학습을 저해할 수 있음을,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만났던, 숱한 사교육의 혜택을 입은 아이들이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공부를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왜 기대만큼 안 나오는지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뇌의 가소성’을 증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즉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것과 달리 뇌는 어린 나이에 이미 굳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스럽게도(?) 주변의 환경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변화를 일으키는 주역(엑스트라가 아닌)이 다름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이제는 더이상 나이 들어가면서 부쩍 늘어가는 건망증이 결국 뇌의 노화 현상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지레 한숨짓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 과거의 고통이나 우울증과 강박 장애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을, 세상에서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부유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도 알게 되었다. 고달픈 현실을 불평하면서도 ‘마음’이나 ‘수행’이라는 말만 나오면 현실과 동떨어진다며 손사레를 치는 사람들이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문제만 나오면 까칠하게 대응하는 자칭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인 것 같다.

오늘도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농구공과 자전거를 챙겨서 동네 공원으로 씩씩하게 놀러 나가는 아들을 보며, 덜 다그치고 더 사랑하기로 마음먹게 한 기특하고 든든한 책이었다.

– 김대경(고등학교 교사)

응답 3개

  1. 비포선셋말하길

    사랑스러운 뇌. 사랑스러운 자식. 사랑스러운 책을 생각하게 하는 사랑스러운 글 잘 봤어요. ^^

  2. 고추장말하길

    해람이는 좋겠네요 ㅎ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급공감하면서….

  3. 연초록말하길

    책 이름 메모합니다.

    사교육,그 현장에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운 사람이라서 마음 한구석이 참 아프네요.

    맞습니다.그래서 저는 영어교사이지만 한 아이 한 아이 다 다른 책으로 수업을 합니다.

    수업을 한다는 말은 맞지 않네요.각자 공부하게 하고,모르는 것을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모른다고 하면 다시 네가 생각해서 나에게 설명해보라고 하지요.이런 방식을 찾아내고 나서

    역사책을 영어로 읽는 수업을 곁들이고 있는 중인데요,그 시대를 알기 위해서 우선

    우리말로 된 사전지식을 읽어보게 권하고 있습니다.가끔씩 영어시간에 왜 한국어책을

    그렇게 많이 읽게 하는가 의아해하는 엄마들이 있더군요.아,실력은 한국어에서 나온다고

    한국어에서란 말은 적합하지 않네요.한국어로 된 기초지식에서 영어를 읽을 힘이 나오는 것이라고

    제대로 이야기하면 알아듣는 사람,모르겠다는 사람 반응이 각각이지만 제가 생각할 때

    설레는 마음.그 내용을 알고 싶은 마음,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대학생이 되어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토풀 준비하겠다고 찾아온 아이를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더구나 회화과인 그 아이와 일년만에 만나서 다시 공부하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요.

    한 학년동안 이런 저런 문화사를 들은 아이와 영어책속의 이야기를 대화로 나누면서

    만나는 시간,그 사이에 이렇게 성장했구나,둘사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고등학생들,중학생들이

    어리둥절해하네요.한국어는 한국어인데 내용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공부가 제일 쉽고 재미있다는 이상한 선생님과 함께 하는 아이들에게 말을 하지요.언어는 도구라고

    그러니 언어에 주눅들지 말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무엇을 읽고 싶은가 먼저 생각해보라고

    이 책을 읽고 나서 읽고 싶은 사람 물으면 서로 손들게 될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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